7. 공망

작성일
2007-09-11 11:5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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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면 어느 책이든지 공망(空亡)에 대한 이야기는 반드시 끼어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연한 명리학의 이치인 것으로 알고 있는 벗님들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미 명리학계의 모범 답안지로 정평이 나있는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자평진전(子平眞詮)》그리고《궁통보감(窮通寶鑑)》《명리신론(命理新論)》등 상당수의 교과서에는 공망이라고 하는 말이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과연 공망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우선 공망이 생겼다는 발생의 이유가 너무나 엉성하고, 또 실제로 적용을 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공망에 대한 이론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언급을 하느냐면 벗님의 고민을 덜어드릴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즉 책만 보면 공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고 한다면 그 처리 문제가 여간 고민스럽지 않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망의 역할이나 작용은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과연 이러한 공망설이 타당성이 있겠느냐는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1) 공망이 발생한 연유




우선 공망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싫든 좋든 간에 공망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 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래서 육십갑자의 도표를 하나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다. 이 표를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기왕이면 六甲를 외우는 도표로 사용해 주시면 그나마 덜 억울하겠다.














甲子


乙丑


丙寅


丁卯


戊辰


己巳


庚午


辛未


壬申


癸酉


戌亥


甲戌


乙亥


丙子


丁丑


戊寅


己卯


庚辰


辛巳


壬午


癸未


申酉


甲申


乙酉


丙戌


丁亥


戊子


己丑


庚寅


辛卯


壬辰


癸巳


午未


甲午


乙未


丙申


丁酉


戊戌


己亥


庚子


辛丑


壬寅


癸卯


辰巳


甲辰


乙巳


丙午


丁未


戊申


己酉


庚戌


辛亥


壬子


癸丑


寅卯


甲寅


乙卯


丙辰


丁巳


戊午


己未


庚申


辛酉


壬戌


癸亥


子丑








표를 보면 맨 뒤끝의 칸에 들어있는 것이 공망이다. 즉 甲子에서 癸酉까지 干支를 일명 갑자순(甲子順) 이라고 부른다. 즉 갑으로 시작되는 것으로부터 열 개의 간지를 한 묶음으로 나눠서 맨 앞의 干支를 대표로 삼아서 갑자순, 갑술순, 갑신순, 갑오순, 갑진순, 갑인순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같은 줄에 들어있는 간지들은 모두 戌亥를 공망으로 삼게 된다. 즉 日柱나 年柱에 이 줄의 干支가 들어있다고 보면 그 사람에게서는 戌亥가 공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표에 나와있는 각자의 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 끝에 있는 두 개의 地支가 공망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면 이렇게 발생한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선 특징은 각 줄의 간지 배합을 보면 맨 끝의 칸에 들어있는 地支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천간은 열자이고 지지는 열두자 이니까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빠진 것이 공망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싸 하기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별로 도움이 되지않는다. 즉 육십갑자는 계속 돌아가는 물레방아와도 같은 구조이다. 이것은 마치 설날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잘라 놓듯이 그렇게 도막을 쳐서 늘어놓는 것 자체가 도표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실제로는 존재를 하지않는 관계를 마치 실제하는 것처럼 설명하는 이야기가 등장을 하면서 이것을 또 확대해석하고 또 살을 붙이다 보니까 결국은 이것으로만 한권의 책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을 잘 음미 해본다면 공망론은 그야말로 공허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능히 짐작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치에 대해서 생각이 있으신 선배님들께서는 이러한 공망론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공망에 대한 설명은 명리교과서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중국의 교과서에서는 별로 취급이 되지않고 있는 공망이 어째서 한국에서는 중요하게 취급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건데, 이것은 틀림없이 일본의 영향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과연 일본에서 나온 책들을 교과서로 삼아서 공부를 하신 경우라고 한다면 아마도 공망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짐작을 할 수가 있겠다.

이렇게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이론이 시작하게 되면 그 후에 공부를 하는 학인은 자연히 영향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연해자평을 교과서로 삼아서 공부하는 분위기였기도 했으니까 이 책의 공망에 대한 이야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참고로《사주첩경(四柱捷徑)》이나《명리요강(命理要綱)》에서도 비판이 없이 그대로 수용을 하고 있는 내용이 보인다. 물론 고명하신 선배님들이시므로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셔서 그렇게 기록을 했을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이제는 우리 명리학에서도 공망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도 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공망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생각할 나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치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실제적으로 작용만 한다면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 마치 야자시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서로 통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실제로 공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응용하지 않더라도 운명감정에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혹 공망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벗님을 제외하고는 구태어 이것을 외워서 활용하려고 고민을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명리학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몇 년이 더 걸릴런지도 모른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있는데, 몰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을 책에 나와 있다는 이유 만으로 답습을 할 필요는 없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