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제42장. 적천수/ 8.탈태요화(脫胎要火)

작성일
2024-03-20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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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42. 적천수(滴天髓)

 

8. 탈태요화(脫胎要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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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또 물어볼까? 동물만 탈태요화가 필요한가?”

고월의 말에 현담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고월이 다시 현담을 향해서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행(五行)의 이치가 포라만상(包羅萬象)한다는 의미가 너무나 초라해지는 까닭이겠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존재에서도 탈태요화는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가령 사람도 앉아있다가 움직이려고 하면 처음에는 힘을 들여서 일어나야 합니다. 말을 타게 되는 경우도 같습니다. 가만히 있는 말을 처음에 움직이게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하고, 말도 처음에는 힘차게 걸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탈태(脫胎)의 태()라는 뜻은 태아에게도 해당하나 만물이 고정된 자리에서 움직이고자 할 경우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오호! 그것참 재미있는 말이로군.”

현담이 다시 감탄하자 고월이 합장하고는 말했다.

스승님께서 귀를 기울여 주시니 더욱 흥이 납니다. 정신적인 면으로도 생각해 봤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처음에 시작이 어렵습니다. 일단 생각의 두서(頭緖)를 찾게 되면 그다음에는 일사천리로 풀려가게 되는데 처음에 시작할 적에는 심력(心力)을 모아서 최선을 다해야 하기에 힘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항상 심신이 피곤(疲困)하고 지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은 마음을 쓸 일도 없기에 힘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생동감(生動感)을 느끼기에도 부족한 것은 반대급부(反對給付)로 주어진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심사(心事)에도 탈태요화가 적용된다니 더욱 재미있는 말이로군. 고월은 이미 적천수에 대해서 깊이 통찰하는 것으로 봐서 하루 이틀을 생각한 것이 아니군. 이미 오래전에 깊은 궁리가 있었다는 말이잖은가?”

어찌 심사뿐이겠습니까? 마차를 타고 가려고 해도 말의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말이 먹은 여물에서 화화(化火)한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모든 것은 항상 그 이치는 탈태요화(脫胎要火)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물심양면(物心兩面)이라고 해야 하겠구나. 적천수를 얼마나 궁리한 것인가?”

적천수는 이미 수년 전에 노산(嶗山)에서 우창과 같이 수학하면서 짧은 식견이나마 풀이해 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계속해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어서 자주 떠올리곤 했는데 오늘 이렇게 스승님께서 적당히 추임새를 주시니 기억들이 묻혀있다가 바람을 받아서 흙 속의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듯합니다.”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네. 그렇다면 우창과 같이 공부를 한 날도 오래되었구나.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한 기대가 되는군. 탈태요화의 의미에 대해서 그만하면 모두 잘 이해가 되었으려니 싶으니 혹 추가로 질문을 할 사람이 없다면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좋겠지? 다음 구절은 우창이 풀이해 보게.”

현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일어나서 다음 구절에 대해서 생각한 바를 설명했다.

우창의 소견으로 다음 구절의 춘불용금(春不容金)과 추불용토(秋不容土)는 앞의 구절에 비하면 의미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사주를 관찰하는 데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이 구절은 일간(日干)이 갑목(甲木)일 경우에 적용되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인묘(寅卯)월의 갑목은 금을 용신으로 삼지 않는 것이 좋고, 신유(申酉)월의 갑목은 용신으로 토를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로 보입니다.”

, 용신의 관점까지도 파악했구나.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다행입니다. 말씀을 드리면서도 더 깊은 뜻이 있는데 얕게 본 것이 아닌가 싶어서 조마조마했습니다. 하하~!”

그것도 공부하는 재미가 아니겠나. 다만 어찌 일간(日干)에 국한(局限)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겠나? 인묘월에는 모든 것이 발산(發散)하고 성장하는 계절이 아니겠는가? 산에 사는 동물도 이때에는 새끼를 낳고 초목은 싹을 틔우는데 이때 금기(金氣)인 서리가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나? 식물은 냉해(冷害)를 입게 될 것이고, 동물은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사주에서나 자연에서는 이치는 하나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창은 현담의 설명을 듣고서야 편협(偏狹)하게 일간이 갑목일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 수가 있었다.

역시 스승님께 여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보면 봄에는 초목(草木)이 기운을 받아서 무성하기에 금극목(金剋木)을 하려고 해도 능멸(凌蔑)하는 까닭에 쓰지 못한다는 주해(註解)를 본 것이 기억났는데 주해가 다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 주해에 대해서 말인가? 그야 고인의 생각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갑을 초목이나 거목으로 봤다면 그 생각도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을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기준으로 이 글귀를 대한다면 당연히 갑목(甲木)이 경신금(庚辛金)을 용신으로 삼기에 불편하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있겠나? 그러니까 시야가 넓은 학자가 살펴보는 것과 좁은 학자가 살펴보는 것의 차이가 아니겠나? 그래서 정저지와(井底之蛙)라고 하지 않던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생각하는 하늘은 우물 위로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말이네.”

참 신랄(辛辣)하면서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명성이 높은 제갈량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내용이 부실하면 당연히 그런 말을 들어도 할 수 없겠습니다. 하하~!”

당연하지, 그래서 고승(高僧)이 말하지 않았던가? 살불살조(殺佛殺祖)한다고 말이네. 이름에 매이지 말고 이치를 추구하라는 추상같은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정말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마음으로 사리(事理)를 판단하고 이치(理致)를 추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추불용토(秋不容土)의 관점도 자연계(自然界)의 이치에서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나무의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기 때문에 토양(土壤)은 그 기운이 허약해져서 용납(容納)할 수가 없다는 식의 해석은 갑자기 태양 앞의 등불을 든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의심하지 않고 타당하다고만 여겼었거든요.”

이미 우창의 관점이 그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네. 적어도 갑목편의 전반부의 네 글귀는 상근기(上根機)를 위해서 가르침을 베풀었고 하반부의 네 글귀는 하근기를 격려하기 위해서 쓴 것으로 생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까 고월이나 우창에게는 앞의 글귀만 알고 있어도 되겠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정신이 황홀해지고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를 가늠하지 못해서 공부할 의욕조차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써놓은 것이라고 알면 될 것이네. 이것은 이미 통천론(通天論)에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놓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될 것이네.”

우창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아니, 천도장(天道章) 등등의 여섯 대목을 묶어서 통천론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책에 따라서는 이렇게 묶어서 구분한다고 알아두면 될 것이네. 통천론에서 앞의 세 구절은 핵심을 담고 뒤의 세 구절은 보조적인 뜻을 담았잖은가. 그리고 천간론에서도 앞의 두 구절은 핵심을 담고 뒤의 두 구절은 보충하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면 될 것이네.”

참으로 경도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하셨군요. 다시금 위대한 스승은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후학을 살핀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십간체상(十干體象)의 장()에서도 이러한 뜻은 그대로 유지가 되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실은 춘불용금이나 추불용토조차도 군더더기로 보입니다. 실로 핵심은 앞의 두 구절인 갑목참천과 탈태요화에 이미 다 드러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호! 그런가? 그렇다면 그대는 이미 상근기조차 벗어났다고 봐도 되겠네. 그렇지만 경도의 노력을 고맙게 여겨서 풀어보기는 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네. 그러한 정성으로 후학에게 오행의 이치를 전해주려고 고심(苦心)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라도 말이네. 허허허~!”

, 잘 알겠습니다. 추불용토(秋不容土)를 나무뿌리로 설명하는 것은 하근기를 위한 것으로 본다면, 상근기를 위해서는 가을의 금왕절(金旺節)인 신유(申酉)월에는 이미 금기(金氣)가 자연의 만물을 숙살(肅殺)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에서 토()가 할 일은 없어야 합니다. 왜냐면 토생금(土生金)을 하게 된다면 금기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휴식(休息)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消滅)을 시켜버릴 수도 있습니다. 달리는 말에는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채찍질이 필요할지 모르나. 가을에 이미 만연(蔓延)한 금기를 더 강하게 한다면 초목도 동물도 모두 생명을 유지할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생기는 것을 염려하는 뜻에서 추불용토(秋不容土)라고 한 것으로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창의 말을 듣고 있는 현담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고월에게 물었다.

어떤가? 고월이 생각하기에 지금 말한 우창의 풀이는 이치에 맞겠는가?”

당연하겠습니다. 고월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보니 역시 우창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고월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정리삼아 말했다.

그렇다네. 과연 우창의 풀이는 아마도 경도의 생각에 구할(九割)은 근접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군. 그러니까 토는 항상 춘하추동의 사시(四時)가 변화하는 그대로 둬야지 아녀자의 인정으로 아무 곳에나 끼어들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네.”

우창이 현담의 말에 합장하면서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말로 적천수의 이치에 제대로 접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학문을 탐구(探究)한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지은 현담이 이번에는 대중을 둘러보다가 춘매에게 눈길이 멈췄다. 춘매도 현담과 눈길이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자 현담이 춘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 구절은 춘매가 풀이해 볼 텐가? 항상 맛있는 공양을 지어줘서 늘 고마웠는데 오늘은 어디 춘매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군.”

현담이 이렇게 말하자 춘매도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께서 불시(不時)에 하문(下問)하시니 언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놀라서 정신이 나가겠어요. 비록 생각은 조잡하겠으나 풀이하라고 하시니까 참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도반들도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 춘매는 입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허정이 얼른 물잔을 들어주자 받아서 한 모금 마시고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풀이했다.

화치승룡(火熾乘龍)은 지지(地支)를 말하는 것이에요. 불이 치열하다는 것은 인오술(寅午戌)나 사오화(巳午火)가 많음을 의미하고, 갑목(甲木)은 화세(火勢)가 강하면 불에 타버리게 될 테니까 진토(辰土)를 의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춘매가 기어들어 가는 음성을 애써서 끌어내어 이렇게 풀이하자 곧바로 현담이 물었다.

왜 하필 진토(辰土)인가? 해자수(亥子水)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수극화(水剋火)도 하고 수생목(水生木)도 하니 일거양득(一擧兩得)이지 않은가?”

? ..... 그것은..... 잘 모르겠어요.”

춘매는 갑자기 당황했는지 얼굴만 붉어졌다. 그러자 현담이 앉으라고 하고는 안산을 가리켰다.

, 제자는 안산(安山)입니다. 해자수를 거론하는 것이 당연한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은 수생목과 수극화를 떠올리게 되니까요. 그러나 경도는 토()를 거론하면서도 축진술(丑辰戌)을 제외하고 진()을 거론했습니다. 그 이유는 갑진(甲辰)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술미토(戌未土)는 이미 조토(燥土)이기 때문에 수분(水分)이 없어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축토(丑土)도 좋겠으나 갑축(甲丑)의 간지는 없는 관계로 진토(辰土)를 거론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안산이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자 현담은 다시 춘매에게 물었다.

이해되었나?”

춘매가 합장하고 이해가 되었다는 뜻을 전하자 현담은 계속해서 풀이하라는 듯이 물었다.

다음은?”

그러자 춘매가 다시 일어나서 다음 구절을 풀이했다.

수탕기호(水蕩騎虎)의 뜻은 지지(地支)에 해자축(亥子丑)이 많아서 물이 넘치게 될 지경일 때는 인목(寅木)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인목을 의지하게 되면 수생목(水生木)하고 목은 의지가 되므로 최선의 해결책이 되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어요.”

훨씬 낫군.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찾아낼 수가 있을까?”

? 문제라고요? 그것은 또 뭘까요?”

춘매가 다시 당황하자 이번에는 춘매에게 앉으라고 하고는 다시 우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춘매는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허정이 진정하라는 듯이 춘매의 등을 토닥여 줬다. 우창이 일어나서 풀이했다.

우창이 생각하기로는 수준이 떨어지기는 합니다만 춘매가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공부의 깊이에 따라 이해하도록 배려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인 화치승룡(火熾乘龍)은 안산의 해석대로 이해하는 것도 무방하겠습니다. 다만 너무 지지의 사정에만 치우쳐서 설명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지(地支)에 화가 많으면 진()도 좋기는 합니다만 임계수(壬癸水)도 안 될 이유가 없고. 비록 인오술(寅午戌)이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갑자(甲子)를 쓰지 못할 까닭이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네 글자에 담아놨는데 보통의 학인들은 글자만 뜯어먹고 그 속에 든 알맹이는 간과(看過)할 수가 있기에 딱 그만큼만 이해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가령 진토(辰土)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옆에 술토(戌土)가 있어서 뿌리를 흔든다면 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래, 아마도 그렇게까지는 풀어야 제대로 이해한 것이겠군. 실로 갑자(甲子)라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할 테니 말이네. 그렇다면 수탕기호는 또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우창에게 물으면서 현담은 차를 마셨다.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눈길이 머무는 대로 물어보고는 다시 우창이나 고월에게 마무리를 짓도록 하는 방법을 쓴다는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수탕기호(水蕩騎虎)의 기본적인 의미는 앞에서 설명한 것도 타당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살펴볼 부분이 있다면 최선(最善)은 갑인(甲寅)이지만 차선으로는 갑술(甲戌)도 좋고, 지지에 이와 같은 것을 만날 수가 없다면 또 반대로 천간에서 병정화(丙丁火)를 만난다고 해도 전혀 꺼릴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상징이 전체를 포함하는 것은 아님을 미뤄서 짐작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현담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대중을 둘러봤다. 그러자 그 눈길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있다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물어주기를 바라는 제자들이 눈에 띄자 바로 손가락을 들어서 가리켰다. 이번에 지적을 받은 사람은 주역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시작했던 운봉(雲峯)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

지윤천화(地潤天和)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지()는 땅을 의미하고 지지(地支)를 의미한다고 이해했습니다. 또 천()은 천간(天干)이겠고, ()는 온화(溫和)하다는 의미로 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봐서 그야말로 풀이할 필요도 없는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에서는 달리 해석할 것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다음 구절로 넘어가겠습니다.”

운봉의 말을 듣고서 현담도 묵묵히 인정했다. 그러자 운봉은 다음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식립천고(植立千古)라고 했습니다. 땅에 심어져서 서 있으니 일천(一千)의 세월을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이 또한 없어도 될 구절인데 아마도 행을 맞추기 위해서 써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외에 깊은 뜻이 있는데도 운봉이 찾지 못했다면 태사님의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보이는 관점으로는 모두 해석했지만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달리 해석할 내용이 없었다는 말에 우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담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고월에게 물었다.

고월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에 더 얹어서 풀이할 것이 있다면 설명을 보태도 좋겠네.”

, 고월이 생각해 봐도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세간에서 말하는 의미를 그대로 담아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듯 보입니다. 지윤천화(地潤天和)는 오행의 균형이 잘 이뤄져서 극제(剋制)를 할 것은 극제를 하고, 생조(生助)를 할 것은 생조를 하여 생극(生剋)의 균형이 잘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비단 갑목(甲木)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천간도 같이 보면 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은 보통은 나무를 땅에 심는 것을 의미하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나무에만 제한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월의 말에 현담이 짐짓 물었다.

그렇다면 나무를 제외하고서도 설명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람도 자기의 일에 전념하게 되면 같은 의미가 되는 까닭이지요. 언뜻 생각하면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글이지만 자세히 음미해보면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모두가 옳은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오행의 조화(調和)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비로소 천간은 화목하고 지지는 윤택하여 일생을 살면서도 풍파(風波)와 환란(患亂)을 만나지 않고 안락(安樂)한 삶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원문의 뜻은 비록 식물(植物)로써 나무를 대상으로 설명했으나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은 온후(溫厚)하고 땅은 기름지다면 먹고살아야 할 풀이 가득할 것이고, 인간이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또한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豊盛)할 테니 이것이야말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주에서 어떤 형태가 되면 무릉도원이 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면 되겠지요. 지윤천화(地潤天和)하면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팔자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야말로 이 여덟 글자에 모두 담았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경도의 문장력은 소동파(蘇東坡) 못지않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또 감탄하게 됩니다.”

고월이 자상하게 설명하자 대중들도 모두 이해가 잘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고월이 말을 마치자 현담이 정리 삼아서 말했다.

오호! 지윤천화에 그렇게나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군. 과연 고월은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심성이 보이는군. 그것도 매우 좋은 자질(資質)이라고 하겠네. 없는 뜻이라도 찾아서 추가하는 것이 가볍게 여기고 대충 넘어가다가 행여라도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 말이네. 잘했어. 허허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오늘의 공부가 마무리되었다는 염재의 말에 따라서 모두 현담에게 감사의 예를 올리고는 저마다의 숙소로 흩어졌다. 우창이 서재로 돌아오자 춘매와 허정이 뒤를 따라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스승님, 허정은 명리학에 깊은 공부가 없음에도 오늘의 이야기를 모두 다 알아듣네요. 참으로 신기하잖아요? 춘매가 처음에 공부할 때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것이 참으로 놀라워요. 호호~!”

그런가? 이미 오랜 시간을 손헌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렇게 쌓은 내공(內功)이 어디 가겠어? 당연하지.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깊은 철리(哲理)를 깨우칠 것이네. 하하하~!”

우창이 덕담 삼아서 이렇게 말하자 허정이 감사의 말을 했다.

과연 서호(西湖)의 노인이 허정에게는 관음보살이셨나 싶어요. 오늘 여러 도반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정신이 활짝 열린 기분이었잖아요. ()의 한 글자를 놓고서 이렇게도 다양한 의미를 끌어내어서 토론하고 깨달음의 밑거름이 되도록 가르침을 주시는 태사님의 열정(熱情)이 가득한 가르침은 손헌 스승님과도 많이 닮으셨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감사드리고 싶어서 언니를 졸랐어요. 열심히 깨달음의 공부를 하겠어요.”

이렇게 말을 한 허정이 합장하고 깊이 허리를 굽혀서 진심을 표했다. 우창도 그렇게 마음을 받았다. 춘매와 같이 점심을 챙기러 가는 것을 보고서야 우창도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뻗었다. 갑목참천(甲木參天)의 의미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은 수정해서 정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마지막에 말한 고월의 한마디는 한동안 여운(餘韻)을 남겼다.

지윤천화(地潤天和)는 세상 모든 이치에 두루 적용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것을 빤히 알만한 고월이 언제 이러한 부분까지도 세세하게 살폈는지 깜짝 놀랐던 우창이었다. 정작 자신도 작은 가르침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을 알고서는 내심으로 무척 부끄러웠다. 경도의 깊은 사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면서 어느 하나라도 사소하게 여겨서 허투로 흘려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나자 지금부터 다시 꼼꼼하게 글자를 뜯어가면서 공부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또한 큰 소득이었다.

그러고 보니 식립천고(植立千古)도 마찬가지였다. 삼라만상은 모두 제 자리에 곧게 심어져서 일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공자가 나이 55세에 고향을 떠나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14년을 주유(周遊)하면서도 어느 곳에서도 식립(植立)하지 못하고서 결국은 나이 68세에 고향인 곡부(曲阜)로 돌아가서야 식립했으니 이것도 운명으로 본다면 지윤천화(地潤天和)를 하지 못한 까닭에 늘그막에 겨우 식립한 셈이니 운명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서옥이 일석과 함께 서재로 와서는 말을 걸었다.

아니, 스승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도 골똘하세요?”

일석이 우창을 보고서 방긋방긋 웃는 것을 보자 우창도 아들을 안아주고 얼렀다.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는 서옥에게 말했다.

아기가 볼 때마다 다르네. 잘 자라고 있으니 고맙구나. 하하~!”

맞아요. 크게 보채지도 않고 무럭무럭 자라네요. 오늘은 무슨 공부를 가르치셨어요?”

가르치다니 내가 배웠지. 하늘은 우순풍조(雨順風調)하고 땅은 윤택(潤澤)하니 만물이 풍요로운 세상의 이치를 말이지.”

어마나, 듣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좋은 구절이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거예요? 옆에서 봐서는 깊은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서옥의 예리한 눈을 피하지 못했던 우창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을 그대로 말했다.

실은 내가 아무래도 자만심(自慢心)이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네. 그래서 자기를 처벌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겸허(謙虛)한 마음으로 글자 하나라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로군.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네. 하하~!”

그렇다면 참으로 의미가 있는 시간을 보내셨네요. 축하해요. 호호~!”

그 사이에 점심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