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 제42장. 적천수/ 9.유연성(柔軟性)

작성일
2024-03-25 10:00
조회
767

[509] 42. 적천수(滴天髓)

 

9. 유연성(柔軟性)

========================

[509] 42. 적천수(滴天髓)

 

오행원의 제자들은 저마다 자연의 이치를 알고자 하여 인연이 된 사람들인지라 현담의 교육방식을 보고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 자신에게 질문이 쏟아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로 현담도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서 시도하는 것이었으니 일단 작전은 성공했다고 봐도 충분했다.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을 정도의 준비한 다음에 다시 강당에 모였으나 여느 때와 달리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창도 그러한 긴장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제 갑목(甲木)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머릿속이 상당히 무거워졌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등단한 현담에게 예를 하고는 모두 자리에 앉자 염재가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 오늘은 을목(乙木)을 공부하겠습니다. 염재가 먼저 읽을까요?”

염재는 이미 오늘 배울 대목을 읽으려고 현담에게 물었다. 그러자 현담이 손을 저어서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자 염재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차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긴 현담을 보면서 제자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잠시 후, 현담이 우창을 보고 말했다.

우창, 을목이 무엇인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우창에게 질문이 떨어졌다. 현담의 물음에 우창도 일순간 얼떨떨했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일반적인 을목은 음목(陰木)이고 식물(植物)입니다. 그리고 작용하는 을목은 정재(正財)이고 신체(身體)이며 일체만물(一切萬物)입니다.”

우창의 답을 듣고서 현담이 또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다시 물었다.

아니, 을목이 정재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갑목은 편재인 것과 짝을 이루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이 또 물었다.

을이 정재인 이유는 무엇인가?”

()의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다소 의아했다. 지금 이야기로 봐서는 우창이 스승이고 현담이 제자인 것처럼 보여서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현담의 물음이 이어졌다.

경을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경은 정신(精神)이 되고 을은 육체(肉體)가 되는 까닭입니다. 육체는 정신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니 이것은 내 마음대로 따라주는 정재와 같은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알겠네. 그런데 일체만물이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같은 뜻입니다. 일체의 만물(萬物)에는 그 만물을 이끄는 정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정신이 있다면 당연히 그 정신의 지배를 받는 물질이 있기 마련입니다. 소와 말이나 물고기와 같이 움직이는 동물은 물론이고, 집이나 길이나 심지어는 마차도 정신이 있기에 그 상대인 물체는 모두가 을목이 되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초목은 어떤가?”

초목도 을입니다. 초목에도 정령(精靈)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신이라고 해도 괜찮고 목신(木神)이라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초목에도 혼령(魂靈)이 있단 말인가?”

아마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가령 화분(花盆)에 심은 난초(蘭草)를 생각해 봐도 이치는 명백합니다. 햇살이 쏟아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꽃대를 보면서 어찌 정령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으랴 싶습니다. 식물이 단순히 식물일 따름이라면 주어진 환경에서 단지 적응할 뿐인데 따뜻한 봄날이면 모두 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얼마나 경이(驚異)로운 것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뿌리는 수분이 있는 것으로 뻗고 잎은 태양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눈이 없어도 물을 찾고 볕을 찾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한 포기의 화초에도 정령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죽은 나무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정령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곡식들이 자란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식물에게도 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단순히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차를 마시면서 생각하던 현담이 다시 물었다.

사람은 어떤가?”

사람의 몸은 을()입니다. 그 사람의 주인은 경()입니다. 을이 경과 합()을 하고 있을 적에는 생동감(生動感)이 넘칩니다. 두뇌(頭腦)는 민첩(敏捷)하고 사유(思惟)는 활발합니다. 이것은 을경(乙庚)이 조화(調和)의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일단 을경이 분리되면 을목은 생명을 마치게 됩니다. 다시 다른 정령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분해(分解)라고 하고 시신(屍身)이라고 하고 진토(塵土)가 된다고 합니다.”

진토가 되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은 정재를 만나야만 존재할 수가 있듯이 을()도 정관(正官)을 만나야만 생명을 부지(扶持)할 수가 있기에 다른 몸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수천의 벌레가 생겨서 다시 을의 경이 될 것입니다. 대상(對象)을 잃은 존재(存在)는 항상 그 대상을 찾게 됩니다. 선남(善男)이 성장하게 되면 선녀(善女)를 찾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조차도 일시적이란 말인가? 참 오묘하군. 다시 또 묻겠네. 죽은 나무는 어떤가? 을의 관점에서 설명해 보게.”

현담이 이렇게 묻자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던 제자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이야기가 아님을 비로소 깨달았다. 염재가 읽으려는 것을 제지(制止)한 것도 비로소 이해되었다. 우창이 다시 담담하게 현담의 물음에 대답했다.

, 스승님. 오백 년을 꿋꿋하게 살아온 소나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봄이 되면 새로운 순을 틔우고 그 끝에 송화(松花)를 피웁니다. 물을 찾아 공급하고 햇살을 받아서 영양분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소나무의 정령이 시키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세상의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오백 번이나 겪은 소나무의 정령을 신목(神木)으로 받들고 치성(熾盛)을 드리면 소나무의 정령은 신통력(神通力)을 발휘합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나무를 수호(守護)합니다. 그러다가 나무가 죽으면 베어서 신당(神堂)을 짓습니다. 죽어서도 신령을 모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을목은 경금을 떠나지 않고서 다시 천 년을 그렇게 신령을 모시고 함께 합니다.”

목재가 되지 못하는 나무는 어떻게 되는가?”

눈비를 맞으면서 급속하게 변화(變化)합니다. 목재로 사용할 수가 없도록 썩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정령(精靈)을 만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썩은 나무에 벌레가 깃들면 벌레의 몸에 들어갑니다. 자기의 몸을 기꺼이 벌레의 식량(食糧)으로 삼아서 파먹습니다. 이것은 다시 동물의 삶이 되기에 생략합니다. 오랜 시간이 되면 완전히 썩어서 진토(塵土)가 됩니다. 그러면 그 토양에는 또 다른 생명체들이 뿌리를 내리고 부활(復活)을 함니다. 또 다른 모습의 을목(乙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환하면서 항상 경금(庚金)과 합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창의 말을 들어봐서는 길가의 풀 한 포기조차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아름다운 그만의 조화가 이뤄져 있습니다. 균형이 무너지면 또 다른 생명체로 변신(變身)합니다.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새롭게 태어나지도 않고 소멸도 되지 않습니다. 단지 끊임없이 순환(循環)할 따름입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순환하고 물이 순환하고 불이 순환합니다.”

우창의 말을 들으며 현담은 대중을 둘러봤다. 모두 이야기에 취한 듯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육신(肉身)을 떠난 경()은 어떻게 되는가?”

역부여시(亦復如是)입니다. 육체가 망가지면 다시 새로운 육체를 찾아서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 육체가 반드시 사람의 영혼(靈魂)일 수는 없습니다. 생전의 업력(業力)에 따라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돼지처럼 탐욕스럽게 물질을 집착했다면 돼지의 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왔다면 학의 몸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결정한단 말인가?”

천지자연(天地自然)이라고 하고 조물주(造物主)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결정하는 이를 천지자연이라고 한다면 천지자연은 다시 영혼을 을목(乙木)으로 삼는 셈입니다. 그래서 자연(自然)을 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까닭입니다. 이것을 불타(佛陀)는 윤회(輪回)라고 하고 일반인도 업보(業報)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아니, 그렇게 촘촘하게 엮여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고 합니다.”

오호!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로구나! 그러니까 모든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자작자수(自作自受)가 아니었단 말인가?”

자작자수도 맞습니다. 일념(一念)으로 세상이 시작되고, 다시 일념으로 세상은 종료합니다. 스스로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정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인과(因果)라고 합니다. 선심(善心)으로 베풀고 살면 영혼도 점점 고양(高揚)됩니다. 반대로 흉심(兇心)으로 남을 해치게 되면 그 영혼도 점점 피폐(疲弊)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떤 술수(術數)나 모략으로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영혼이고 그러한 행위를 지켜보는 것도 천지자연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선사(禪師)는 불이(不二)라고 했고, 학자(學者)는 음극양생(陰極陽生)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니고 둘이지만 둘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을경합(乙庚合)으로 생각합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말을 마친 우창이 합장하고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더 드릴 말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현담이 다시 대중을 둘러보고는 군엄(君嚴)을 가리켰다. 그러자 이야기에 취해 있던 군엄이 일어났다.

태사님 군엄(君嚴)입니다.”

그래 군엄이 읽어보게.”

! 읽어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군엄이 우렁찬 음성으로 을목편을 읽었다.

 

을목수유 규양해우(乙木雖柔 刲羊解牛)

회정포병 과봉승후(懷丁抱丙 跨鳳乘猴)

허습지지 기마역우(虛溼之地 騎馬亦憂)

등라계갑 가춘가추(藤蘿繫甲 可春可秋)

 

이렇게 읽은 다음에 합장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군엄의 소리를 듣고 있던 현담이 이번에는 유하(遊霞)를 가리켰다. 그러자 유하가 일어나서는 나지막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풀이를 했다.

제자는 유하입니다. 태사님의 가르침을 기대하면서 부족하나마 풀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하가 이렇게 말하자 현담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유하는 조금 전에 우창과 현담의 이야기를 생각하느라고 그다음의 내용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의 의미가 이렇게나 확장이 가능한 것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다가 갑자기 묻는 바람에 일어나기는 했으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 현담도 이러한 것을 의도하고 물은 것이라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을목수유(乙木雖柔)라고 하니, ()은 목()입니다. 비록 유약(柔弱)하지만 규양해우(刲羊解牛), 양을 가르고 소를 해체합니다. 회정(懷丁)....”

유하가 다음 구절을 읽으려고 하자 현담이 손을 들어서 멈췄다.

, 이 안에 깃든 의미를 풀이해 보겠나?”

글자만 읽어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유하도 그 의도를 이해하고는 다시 생각하면서 풀이했다.

유하가 생각하기에 수유(雖柔)’라는 말은 부드럽다는 의미가 되는데 왜냐면 음목(陰木)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두 분의 말씀을 들었는데 여기에 적용을 시켜본다면 몸과 같아서 유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는 강()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사람으로 본다면 갑()은 막강(莫强)하다고 본다면 을()은 유약(柔弱)하다고 보면 어떨까요?”

실로 유하에게 이러한 풀이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다만 열심히 공부하려는 열정으로 인해서 보이는 대로 풀이를 해 봤으나 자신이 없어서 현담에게 물었다. 이렇게 되면 더 생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현담이 말했다.

애썼네. 그만 앉게. 그리고 고월이 여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 보겠나?”

고월은 언제든 질문이 날아오면 답을 할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바로 일어나서 말했다.

()은 신체이고 사물(事物)이고 그래서 물질입니다. 모든 물질은 부드럽고 연약합니다. 인체도 그렇습니다. 작은 뱀에게 물리면 생명이 위태롭고 막대기에 찔려도 이내 붉은 피가 솟구칩니다. 이렇게 약한 것이 을이라는 것을 스승님과 우창의 대화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제압합니다. 마치 금붕어가 어항에서 사람을 부리는 것이고 여인의 혀끝에서 건장한 사내가 꼼짝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유약(柔弱)해 보이나 그 실체는 유연(柔軟)할 뿐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능소능대(能小能大)하는 힘은 생존력(生存力)과 직결(直結)이 됩니다. 이것이 수유(雖柔)라는 두 글자에 함축된 의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풀이를 하다가 목이 말랐는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몸이 유연하면 위험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능히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면 생각과 달리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여 계단에서도 잘 굴러떨어지고 걸음을 옮기더라도 한 걸음이 태산을 움직이는 듯이 힘겹게 됩니다. 그럼에도 수유(雖柔)라고 한 것에는 의문이 듭니다. 만약에 고월이 이 구절을 썼다면 을목유연(乙木柔軟)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갑목참천(甲木參天)과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경도는 왜 수유(雖柔)라고 했을까요? 이것은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유약(柔弱)으로밖에는 해석을 할 길이 없어 보이는데 혹 다른 뜻이 있는지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고월이 현담에게 묻자 현담은 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염재에게 넘겼다.

그래? 참 재미있군. 염재에게 답을 해 보라고 하겠네. 허허허~!”

염재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수유(雖柔)라고 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약간의 느낌이 있었는데 현담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바로 염재에게 설명할 기회를 준 것이다.

염재가 생각하기에는 경도가 글을 쓸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 반영(反映)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을목(乙木)은 화초(花草)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로 을목은 그렇게 허약하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려면 일단 이렇게 반어법(反語法)을 쓰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월 스승님의 말씀대로 을목(乙木)은 유연(柔軟)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수의 당시 학자들은 왜 그렇게 말하느냐면서 반발을 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의 을()은 도화(桃花)라고 하고, 여름의 을은 벼라고 하며, 가을의 을목은 오동(梧桐)과 계수(桂樹), 겨울의 을목은 매화(梅花)나 온실의 화초(花草)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경도도 처음에는 일일이 설명했으나 참으로 귀찮은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일단 그대들의 주장을 받겠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짐작해 봤습니다. 유연(柔軟)을 양보하고 수유(雖柔)를 택했던 것이지요. 그로부터 사람들이 이 문제를 따지고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이 무시당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현담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현담이 다시 고월을 향해서 말하자 염재는 자리에 앉았다.

고월이 생각하기에 염재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가?”

그렇습니다. 고월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도리(桃李)니 수도(水稻)니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이해가 잘 되었다면 다음 구절을 살펴볼까?”

! 다음은 규양해우(刲羊解牛)입니다. ()은 미()를 말하고 우()는 축()을 말하겠습니다. ()는 찌르는 것이니 을미(乙未)를 말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분위기가 좀 살벌(殺伐)합니다. ()을 말하는 것도 을축(乙丑)임을 알겠는데. 해체(解體)한다는 것은 백정이 서슬이 시퍼른 칼을 들고서 소를 잡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수유(雖柔)에서부터 뭔가 고월과 생각이 통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염재의 말을 빌려다 대신한다면 을목이 약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약하더라도 축미(丑未)에 능히 뿌리를 내릴 수가 있으니 약하다고만 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미 정도로 이해를 하면 되지 싶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문장(文章)은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조건을 붙여서 해결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호! 어떻게 말인가?”

회정포병(懷丁抱丙)도 조건부(條件附)가 아니겠습니까? ‘병정(丙丁)이 있다면 과봉승후(跨鳳乘猴)한다고 했으니 봉()은 유()이고 후()는 신()인데 을유(乙酉)거나 가을의 금왕절(金旺節)이라는 이야기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지지(地支)로 금()을 만나도 병정(丙丁)이 있으면 괜찮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을목은 약하지만....’이라는 전제조건(前提條件)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묘(寅卯)가 있어도 과봉승후가 될 것이고, 해자수(亥子水)가 있어도 될 것인데 매우 공격적(攻擊的)으로 병정(丙丁)을 거론한 것을 보면 약간은 납득이 되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고월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의 의견이 있으면 들어봐도 되겠군. 어떤가?”

스승님께 말씀드립니다. 우창의 생각도 고월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의 환경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필시 어떤 조건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을이 능동적으로 대처를 할 수가 없다고 할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을은 그야말로 식물(植物)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을 만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도 없는데 무엇인들 할 수가 있겠습니까? 특이한 것은 지지(地支)와 연관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갑목(甲木)에서 말한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갑은 동물이고 바람이기 때문에 앉은 자리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을은 식물이기에 신체(身體)거나 초목(草木)이거나 관계없이 극히 제한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몸의 수명(壽命)도 큰 영향을 받을 테니 말입니다. 다만 이러한 글귀를 통해서 을목(乙木)을 배우게 된다면 그야말로 유연(柔軟)한 을목(乙木)을 허약(虛弱)한 것으로 오해하게 될 가능성도 다분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현담이 우창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에는 채운(彩雲)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래 매우 타당한 논리로군. 그렇다면 그대가 말을 해 볼 텐가? ‘허습지지(虛溼之地)면 기마역우(騎馬亦憂)고 한 것은 어떻게 해석하겠나?”

! 채운의 생각으로는 습지(濕地)를 말하는 것으로 보여요. 원래 초목은 지지에 수분(水分)이 많기를 원하나 그것도 너무 지나치면 뿌리가 썩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로 너무 못 먹어도 큰일이지만 지나치게 영양(營養)이 과잉(過剩)된다면 또한 약이 변해서 독이 되는 형국이에요. 그러니까 과습(過濕)하면 한냉(寒冷)할 텐데 이 말은 오화(午火)가 될 것이고, 오화를 타더라도 또한 근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이해하겠으나 실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그것은 을오(乙午)가 없는데 어떻게 걸터앉을 수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죠. 고월 스승님의 말씀마따나 뭔가 하기 싫은 말씀을 글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태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채운이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정작 현담은 별다른 의견이 없이 제자들의 의견만 나누도록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럴 바에는 현담의 존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면서 내심 반발을 한 셈이다. 우창과 고월은 깍듯이 받들어 보시지만 채운이 볼 적에는 두 스승님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노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귀신처럼 물고 들어갔다. 그 말에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오호! 채운이 늙은이에게 자릿값이나 하라는 말이로구나. 허허허~!”

그게 아니오라....”

채운은 말문이 막혔다. 정말 현담의 눈치는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자리에 앉을 수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내심으로야 당연하죠! 어디 말씀해 보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을 할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용히 앉아서 현담의 말을 기다렸다. 우창도 채운의 말이 내심 고소했지만 지켜보고 싶었다. 여하튼 이야기를 들어야 공부든 정리든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담이 차를 마시고는 말했다.

채운이 말을 제대로 했네. 나도 뭔가 해야지? 허허허! 우선 그대들의 의견을 들어본 것은 함께 생각하는데 연료(燃料)가 되는 까닭이라네. 이런 생각과 저런 의견들이 모여서 큰불이 되니까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이제 내 의견을 말하려던 참에 채운에게 한 방 맞았군. 그런데 이 통쾌감은 뭔가? 가려운데 긁어준 것 같다고 해도 되겠네. 허허허!”

현담이 채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자 채운이 얼른 합장하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현담은 채운에게 미소를 짓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대들의 생각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네. 저마다 걸림 없이 생각하고 말하는 모습에서 흡사 전쟁터에서 서로 창검(槍劍)을 겨누면서 승부를 겨루는 것과도 같은 긴장감이 좋군. 그런데 갑목(甲木)에서는 우레를 떠올렸으면서 을목에서는 바람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군. ()은 주역에서 동남(東南)의 손풍(巽風)이지 않은가? 염재에게 시켜본 것도 그러한 생각이 있으려나 싶었는데 그냥 넘어가고 말았지. ()의 뜻에는 유순(柔順)하고 공손(恭遜)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네. 그래서 바람이라고 하지. 명학(命學)에서는 갑()을 바람이라고 하지만 주역에서는 을()을 바람이라고 한다네. 물론 갑을(甲乙)을 부여한 것은 경방(京房)이 시초(始初)였지.”

현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합장하며 말했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보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우창의 좁은 안목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현담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을 초목(草木)이라고 했으니 또 생각해 볼까? 초목이 땅에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동물처럼 마음대로 천하를 누비고 다니는 것인가?”

? 그야 당연히 고정된 것이지 않습니까?”

 

 

우창은 현담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