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 제42장. 적천수/ 7.하늘에 가득한 기운(氣運)

작성일
2024-03-1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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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 42. 적천수(滴天髓)

 

7. 하늘에 가득한 기운(氣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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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서 백차방에서는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다. 허정도 어느 사이에 대중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서 토론하는지 높고 맑은소리가 밖에서도 잘 들릴 정도였다. 우창은 들어가 볼까 하다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서재에서 책을 보면서 오늘 공부한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먹을 갈아놓고 타오르는 촛불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차방에서는 언제나처럼 연화가 노련한 솜씨로 차를 만들어서 나눠줬다. 작은 잔으로 마시기에는 분주하다고 생각되어서 큰 사발로 하나씩 따라주자 편하게 마시면서 저마다의 생각을 토론했다. 먼저 수경이 말을 꺼냈다.

오늘 태사님으로부터 공부한 천간론(天干論)에 대해서 오후 내내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경도가 이렇게도 간결하게 설명했으나 실은 다른 책들을 보면 참으로 해괴(駭怪)하게 느껴지는 내용이 많은데 그러한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천간론을 본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혹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견문이 많지 않은 제자들은 누군가 이야기를 해줄 것으로 생각하고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자 안산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실로 수경의 말씀에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오늘 태사님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일소(一掃)라는 말이 얼마나 심금(心琴)을 울렸는지 모릅니다. 많은 길에서 방황해 본 사람만이 그 묘리(妙理)를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참으로 별별 논리와 황당한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이 천간론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안산이 이렇게 말하자 가장 궁금한 것이 많았던 염재가 바로 물었다.

예를 들어서 말씀해 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천간(天干)이야 열 개의 간()이 서로 생극(生剋)하는 이치가 전부이지 않습니까? 강호에서는 무슨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전혀 가늠되지 않습니다.”

안산은 염재의 말을 듣고 세상에서 사주를 풀이하는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들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비록 학문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조차도 이야기로 들어봐서는 참으로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모두 상식의 폭을 넓히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갑()은 거목(巨木)이요, ()은 화훼(花卉)라는 식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져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병()은 태양(太陽)이요 정()은 등화(燈火)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만연(蔓延)해 있어서 누구나 이 공부를 시작하면 이렇게 오류(誤謬)를 전해주고 또 전해 받으면서 끊어질 줄을 모르고 유행(流行)하고 있단 말입니다.”

안산의 말을 듣고 있던 허정이 바로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 재미있어요. 그와 같은 말은 허정도 들어봤어요. 오늘 처음으로 오행원에 참여해서 주제넘게 나댄다고 하지 않으신다면 맘 편하게 여쭤볼게요.”

허정의 말에 염재가 대답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대화에 참여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다만 오행원에서 공부하는 제자라면 거목이라느니 등불이라느니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졸업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만, 경험에 따라서는 매우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염재의 말에 허정이 얼른 물었다.

맞아요. 아마도 오늘은 천간에 대해 공부하셨나 봐요. 예전에 듣기에 허정은 정화(丁火)로 태어났는데 양옆에 병화(丙火)가 있어서 두 태양 사이에 있는 촛불의 형국이라서 평생을 빛도 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살다가 죽을 팔자라고 하는 말을 들었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서는 팔자의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주역에만 매달려서 약간의 공부를 했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고 보니까 다시 그 생각이 나잖아요. 정말 태양이나 등불과는 무관한 것인가요?”

허정의 말에 채운이 가만히 듣고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호호호! 정말 그런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그런 기분이 들겠네.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그러한 말은 여전히 살아서 강호를 유람하고 있다는 것이야. 그렇지만 오행원의 관법(觀法)에서는 그런 말은 일체 사라지고 없으니까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되겠어. 그럼 내친김에 허정의 사주를 살펴보는 것은 어때? 호호호~!”

채운이 도반들이 모인 김에 허정의 사주를 놓고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하자 허정도 흔쾌히 사주를 불러주고 염재가 적었다.

병오(丙午), 병신(丙申), 정축(丁丑), 병오(丙午)로 알고 있어요.”

 

 


 

우창이 써서 앞에다 내어놓자. 사주를 알아볼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제자들이 일제히 눈길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가장 먼저 진명이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 특이한 구조이기는 하네. 그런데 과연 어딘가에서 들었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정화(丁火)가 천간(天干)에 삼병(三丙)을 만났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법하지?”

이렇게 말하면서 채운을 바라보자 채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사주는 처음 봐요. 이렇게 비겁(比劫)으로 둘러싸인 정화(丁火)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듯이 일지(日支)에 축중기토(丑中己土)와 축중신금(丑中辛金)을 품고 메마르지 말라고 축중계수(丑中癸水)까지 고스란히 독차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사주에요. 이런 형태라면 격의 이름은 봉황포란격(鳳凰抱卵格)이라고 해야 하겠으니 참 신기하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적에 우창도 목이 말라서 차가 생각나던 참에 백차방에서 떠들썩한 소리에 흥미가 동해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마음이 동해서 들어가자 제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나누다가 우창을 보고서는 모두 반갑게 맞이했다. 진명이 먼저 말했다.

스승님, 마침 잘 나오셨어요. 지금 허정의 사주를 놓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렇게 생긴 간지의 조합도 있네요. 너무 신기해서 모두 감탄하고 있던 참이에요. 이 사주를 놓고서 태양 앞의 등불이라 인생이 빛을 볼 일이 없다고 하는 해석을 했다기에 어떤 사주인가 싶어서 살펴봤는데 이렇게 생겼어요. 스승님은 이러한 사주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창도 허정의 사주를 보고는 감탄했다.

허정이 수향(水鄕)인 소주(蘇州)를 잘 찾아왔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제자들은 이것이 어디에 떨어지는 소식인지를 가늠하느라고 저마다 머리를 굴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채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사주에 이렇게도 염열(炎熱)한 형국이니 소주(蘇州)의 물이 그것을 식혀줘서 사주가 편안하게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채운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 웃자고 한 말이네. 행여 그 말을 곧이듣고서 남들에게 그리 말하지 않도록 하시게. 하하하~!”

그러자 이번에는 안산이 물었다.

스승님, 정화가 등불이어서 빛을 보기 어렵다는 해석은 일리(一理)라도 있는 것입니까? 안산이 보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잘 생각하셨습니다. 무슨 말이 되겠습니까. 호사가(好事家)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 조금도 현혹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천간론에 분명하게 못을 박아놓지 않았습니까. 오로지 오양(五陽)과 오음(五陰)으로만 논하고 그 나머지는 생각지 말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채운이 봉황포란격(鳳凰抱卵格)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것은 타당하겠습니까?”

안산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다시 사주를 들여다보고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채운의 공부가 일취월장하는구나.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었네. 나도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놀랍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소를 짓던 채운이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제자의 기운을 북돋는 능력이 참으로 탁월하세요. 우스갯소리 삼아서 한 말이지만 스승님의 생각을 거쳐서 나오면 어느 사이에 그럴싸한 법이 되어버리니 말이죠. 호호~!”

이번에는 수경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물었다.

스승님, 궁금한 것이 있어요. 만약에 정축(丁丑)이 아니고 정미(丁未)였다면 어떻게 해석이 될까요?”

정미라? 그렇게 되면 불붙은 봉황의 둥지라고 해야 할까? 하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 다시 사주를 들여다보면서 그 말의 뜻에 대해서 생각했다. 염재가 이번에는 먼저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과연, 스승님의 한 말씀은 금과옥조(金科玉條)입니다. 정축(丁丑)과 정미(丁未)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임을 비로소 확연히 깨닫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주라고 하겠습니다.”

아무렴. 일간의 정화는 마치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간 듯이 화려하고, 일지(日支)의 축토(丑土)는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는 데다가 식신생재격(食神生財格)을 이루고 있으니 이보다 아름답고도 기이한 사주는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참으로 잘 왔네. 오행원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되겠군.”

우창의 말을 듣고서 모두 손뼉을 쳐서 축하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창도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다음 날을 위해서 모두 휴식했다.

 

날이 갈수록 현담의 지혜를 나눠 갖는 듯한 충만감으로 가득한 오행원의 대강당에서는 여전히 기대감과 설렘이 교차하는 듯했다.

어제의 천간론(天干論)을 설명하면서 현담의 재치가 돋보이는 해석에 옛 고인의 글을 음미하는 방법까지도 전수(傳受)한 듯이 저마다 오늘 배워야 할 대목에 대해서 선행학습(先行學習)을 한 다음에 또 어떤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조용히 현담이 등단(登壇)하기를 기다렸다. 허정도 춘매와 나란히 앉아서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심 자신의 공부에 기초가 없음이 걱정되었는지 춘매에게 나직이 물었다.

언니, 어제 분위기로 봐서 내가 감히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 이런 가르침이 다시 시작된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참석해야 하는 거야. 예전에 스승님이 말했거든. 귀는 알아듣지 못해도 내면의 부처는 다 여래장(如來藏)에다 저장한다잖아. 그랬다가 언젠가 그 수준이 되었을 적에 다시 나와서 깨달음의 시금석(試金石)이 된다고 했거든. 다만 중요한 것은 흘려듣지 말고 마음에 새겨놓으라고 하셨는데 지금 허정에게 딱 필요한 말 같네? 어렵다고 회피(回避)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어려워도 언젠가는 뚫어내고 말겠다는 생각이라면 반드시 유익할 거야.”

춘매가 이렇게 말해주자 총명한 허정도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바라보면서 현담이 단에 오르는 것을 기다렸다.

태사님을 뵙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현담이 오광과 함께 등장하자 앉아있던 제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좌정(坐定)하기를 기다렸다가 합장하고는 동음으로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현담이 대중을 둘러보더니 오늘은 수경을 가르치면서 배울 대목을 읽어보라고 했다. 지적(指摘)받은 수경이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 수경(水鏡)입니다. 오늘 배울 대목을 읽겠습니다.”

수경이라, 물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거울은 그것을 반사(反射)시켜서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로구나. 스스로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항상 살피는 자세이니 오행원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겠군. 어서 읽어보게.”

현담의 덕담에 합장으로 답례하고는 오늘 배울 대목을 읽었다. 이번 대목은 십간체상(十干體象)의 갑목(甲木)에 대한 장()이었다.

 

갑목참천 탈태요화(甲木參天 脫胎要火)

춘불용금 추불용토(春不容金 秋不容土)

화치승룡 수탕기호(火熾乘龍 水蕩騎虎)

지윤천화 식립천고(地潤天和 植立千古)

 

여덟 개의 사언절구(四言節句)로 된 시였다. 수경이 또박또박하게 다 읽고서 조용히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미리 마음에 결정했다는 듯이 자원(慈園)을 가리켰다. 자원이 풀이해 보라는 뜻이었다.

이번엔 그대가 풀이해 보려나? 다만 앞의 여덟 글자만 풀이하도록 하게 그래야 이야기를 이해하기 좋을 테니까 말이네.”

지적받은 자원이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 자원입니다. 부족하지만 보이는 데까지 풀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다 알아, 그대들이 부족하지 않으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이렇게 모여서 배움에 갈망(渴望)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러니 당연한 인사치레나 겸양(謙讓)은 생략하도록 하기 바라네. 모두 잘 알아두게. 허허허~!”

현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도 같았다.

내용을 봐하니 여덟 글자가 한 조()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核心)이 여기에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목(甲木)’이란 말은 제목(題目)이니 다른 의미는 없겠습니다. 이어지는 참천(參天)은 하늘에 참여한다고 하겠는데. 이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탈태(脫胎)’는 모태(母胎)를 벗어나는 것이고, ‘요화(要火)’는 화기(火氣)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겠습니다.”

 

갑목은 하늘에 참여하는 것이니

태어날 때는 화기가 필요하네

 

이렇게 직역으로 정리하고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월을 향해서 말했다.

어디 고월이 속뜻을 꺼내 보려나?”

현담의 말을 듣고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고월이 일어나서 해석(解釋)했다.

, 갑목(甲木)이란, ‘()은 목()이다라는 선언으로 생각이 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지당(至當)한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왜 이렇게 지당한 것을 썼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오호! 그래서 무엇을 찾았는가?”

현담이 기대가 많다는 듯이 고월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물었다. 다른 제자들도 귀를 기울였다.

적어도 적천수를 펼칠 정도의 수준이면 갑()이 목()인 줄을 모를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중요한 뜻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 누구라도 수경처럼 당연한 듯이 넘어가는 것조차도 다시 멈춰놓고 그 속을 들여다봤더란 말인가? 과연 고월이로군. 허허허~!”

현담은 고월의 답이 매우 마음에 흡족했던지 차를 마시면서 웃었다. 그러자 고월이 다시 풀이를 이어갔다.

()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대자연(大自然)의 모습을 단지 다섯 개의 글자로 표현하였는데 글자마다 얼마나 깊은 뜻이 가득하게 담겨 있겠습니까? 우선 그 첫 번째의 글자는 양목(陽木)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갑목(甲木)은 양목(陽木)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이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고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서 궁리를 해 보니 양목에는 또 그가 갖는 특징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양목을 주역(周易)에서는 사진뢰(四震雷)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덧붙인다면 갑목은 진뢰(震雷)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현담을 바라봤다. 자신이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괜한 이야기로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현담의 반응에 따라서 혹 쓸데없는 소리라고 한다면 줄일 생각이었다. 다행히 현담이 매우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으며 계속하라는 뜻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괘(震卦)는 떨칠 진()입니다. 그리고 뢰()는 우레입니다. 태허공(太虛空)에서 천둥과 벼락이 일어나서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갑목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어지는 참천(參天)의 뜻과 연결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참여(參與)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 대해서 음미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아서 혹 주역에 이미 통달한 경도라면 뭔가 조짐을 그곳에서 찾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호~! 멋진 생각이로군. 경도가 하늘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겠네.”

세상을 뒤흔든다는 진뢰(震雷)의 격렬(激烈)한 의미를 사용하지 않고 조용하게 하늘에 동참(同參)한다는 뜻으로 순화(純化)시켰습니다. 그러나 진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동참은 태허공을 뒤흔들고 그 영향은 만물이 두려움을 갖게 될 정도로 뇌성벽력(雷聲霹靂)의 위력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헤아릴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천둥을 치고 벼락이 번쩍이면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 없는지를 되새겨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참천의 뜻을 고월이 제대로 짚었네. 허허허~!”

고월이 말을 끊고 다시 현담을 바라보자 현담도 바로 자기의 생각을 고월에게 전했다. 그러자 고월도 만족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로 미뤄서 짐작해 보건대, ()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며, 매듭을 풀어내는 것이며, 끝장을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갑()의 본질(本質)이 편재(偏財)임을 생각하면서 얻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갑이 편재라니? 이것은 또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스승님, 여기에 대해서는 우창에게 이야기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디 우창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

고월이 우창의 설명을 청하자 이번에는 우창이 일어나서 말했다.

참 놀랍게도 고월이 갑목에 진뢰(震雷)를 배합시켜줘서 우창의 안목이 크게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해야만 하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편재(偏財)가 갑목에 배속(配屬)된 것은 일간(日干)이 경금(庚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거론할 때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아마도 경금(庚金)편에서 나오게 되겠습니다. 경금에게 갑목(甲木)은 편재(偏財)에 해당하는 고로 편재라고 이름을 하게 된 것입니다. 편재는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성분입니다. 그런데 고월의 진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무슨 일을 행하더라도 벼락같이 처리하고 누구에게 의논하고 심사숙고하고 다시 생각하는 등의 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이유를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갑목을 편재로 보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 현담이 말했다.

그랬구나! 과연 예사롭지 않은 오행원이로군. 어떻게 흔히 말하는 고목(高木)이니 거목(巨木)이니 하는 이야기는 간 곳이 없고 이렇게 허공에서 한바탕 벼락 춤을 춰대느냔 말이지. 참 기이한 일이로군. 허허허~!”

우창이 말을 마치자 다시 고월이 일어나서 말했다.

참천(參天)의 의미를 갑()은 양목(陽木)이므로 나무라고 생각을 제한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것입니다. 나무가 하늘에 참여한다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언저리에서 배회할 뿐이고 더는 확장할 단서가 없기 때문이지요. 태풍(颱風)이 몰아치는 것도 갑목인데 단순하게 나무에 갇혀서 다른 것을 볼 수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알겠네. 오늘은 내가 그대들에게서 배우는 날이로군. 그렇다면 탈태요화(脫胎要火)는 어떻게 풀이를 할 텐가? 그것도 궁금하니 어서 말해 보게.”

현담은 고월의 풀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다시 재촉했다.

()이 식물(植物)이 아니라는 의미는 이렇게 명백합니다. 태아(胎兒)라는 것은 동물(動物)에게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두고 여전히 갑은 거목이라는 등식(等式)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니 생각도 그것에 갇혀서 새로운 길을 찾을 방법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는 잉태(孕胎)에서나 사용하는 말이 분명하지. 그렇다면 탈태(脫胎)란 말은 출산(出産)이라는 의미이지 않은가? 왜 갑목에게 출산에 대한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갑목이 처음이기 때문인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천간(天干)은 갑()으로 시작하고 인생(人生)은 출태(出胎)로 시작하니 갑의 장()에서 태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갑은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오호! 점입가경(漸入佳境)이로군.”

()의 글자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만 크고 발은 부실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원래 태아는 머리만 성숙한 채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갑()의 윗부분은 밭 전()입니다. 이 밭은 농사를 짓는 전답(田畓)이 아니라 심전(心田)을 말합니다. 마음이 그 안에서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꾸게 될 밭인 셈이지요. 고인은 이 글자를 만들면서 씨앗에서 싹이 솟아 나오는 모습을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갑의 아래에 있는 곤()은 단단한 껍질을 뚫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을 보며 생각해 봤습니다. 즉 이것은 싹이라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혹은 유()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천둥 번개는 동남서북으로 나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칫 갑은 거목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무의 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봐도 그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도 궁리해 봤습니다. 어쩌면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가 된 다음에 껍질을 쪼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겠지요. 졸탁동시(啐啄同時)가 되어서 껍질을 뜯고 있는 모습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요화(要火)의 의미는 그것을 더욱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설명을 들어보세.”

병아리는 어미가 알을 품고서 삼칠일(三七日)이 되면 안에서 병아리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껍질을 뚫고 나와야 하는데 그것을 하기 위해서 안에서 백번이나 쪼아야 합니다. 바로 그때 대지(大地)에 해당하는 모계(母鷄)가 두어 번 툭툭 쳐주지요. 그러면 비로소 어린 병아리는 대지와 하나가 되면서 호흡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요화(要火)는 넘치는 힘이 되는 셈이고 불의 폭발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경도의 예리한 통찰력은 아무리 찬탄한다고 해도 부족할 지경임을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고월의 말을 듣고 있던 허정이 춘매의 손을 꼭 잡았다. 춘매가 돌아보자 감동이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춘매도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서 같이 손을 잡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