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 제42장. 적천수/ 4.길흉(吉凶)의 갈림길

작성일
2024-02-2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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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 42. 적천수(滴天髓)

 

4. 길흉(吉凶)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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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사시초(巳時初)가 되었다.

아침을 먹은 다음에 어제의 열기를 그대로 이어왔다는 듯이 제자들은 미리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필사(筆寫)한 적천수(滴天髓)를 들여다보면서 삼삼오오로 의논이 분분했다. 더러는 천도(天道)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또 더러는 오늘 배울 것으로 예상되는 지도(地道)에 대해서 분석하느라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열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우창도 고월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조용히 참선(參禪)하면서 현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도 현담의 가르침 한 방이면 말끔히 사라져 버리게 될 것임을 알기에 차라리 마음을 다스려서 평정심이 되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오광이 찻잔을 들고 들어와서는 조용히 말했다.

태사님 들어오셨습니다.”

그 말에 모두 일어나서 현담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문안하고는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모두 공부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본 우창이 염재에게 말했다.

오늘은 지도장(地道章)을 공부할 차례이니 먼저 읽도록 하지.”

! 스승님. 읽겠습니다.”

 

곤원합덕기함통(坤元合德機緘通)

오기편전정길흉(五氣偏全定吉凶)

 

염재가 크고 낭랑한 음음으로 지도의 내용을 읽고는 현담에게 합장하고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 순간 수십 명의 대중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현담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현담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우창은 어제 천도장을 공부하면서 혹 제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서 의문이 남지 않았겠지?”

! 그렇습니다. 모든 제자는 스승님의 자상하고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인해서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이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디 우창이 지도장(地道章)을 해석해 봐.”

! 그럼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일어나서 목을 한 번 가다듬으려고 가볍게 헛기침하고는 풀이했다.

땅이 천덕(天德)에 부합(符合)하여 기틀을 열거나 닫아 통하니 다섯 기운의 치우치고 온전함에 따라서 길흉이 결정(決定)되느니라.”

이렇게 풀이하고는 앉아서 현담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현담이 우창에게 물었다.

천도(天道)에서는 삼원(三元)이라고 하고 지도(地道)에서는 곤원(坤元)이라고 했는지를 생각해 봤는가?”

, 그 말은 아마도 삼원(三元)이 천지인(天地人)을 말하는 것은 아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삼원에서 천지인을 말했다면 다시 번거롭게 곤원, 즉 지원(地元)에 대해서 언급을 했을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이로 미뤄서 천도장의 삼원은 천지인과 무관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겠군. 잘 이해하고 있었네. 허허허~!”

여기에서 가르침을 주시는 곤원(坤元)은 단순히 밟고 있는 땅이고 주역에서의 곤괘(坤卦)로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맞아, 그렇다면 합덕(合德)이란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말인가?”

,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늘의 덕이란 사시(四時)에 맞춰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번갈아드는 것을 말하므로 땅도 이에 따라서 씨앗을 싹틔우고 곡식이 여물도록 한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이 땅에서 하늘의 기후를 따라 그 도를 실행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땅은 덕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가정에서는 부창부수(夫唱婦隨)요 나라에서는 상명하복(上命下服)하는 질서와 같다고 이해했습니다.”

우창의 답변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담의 질문이 쏟아졌다.

합덕(合德)이라고 했으니 덕()이란 베푸는 것인가? 아니면 누리는 것인가?”

우창이 항상 덕()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기에 이 물음에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는 답을 할 수가 있었다.

덕은 도체(道體)의 실행(實行)이라고 여겼습니다. ()는 달라고 요구하는 법이 없이 베푸는 것이고 덕은 그 구체적인 행동(行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부친의 뜻을 받아들여서 가정을 돌보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말없이 하늘의 도를 받아서 덕으로 짝을 이뤄서 만물을 생장(生長)시키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도덕(道德)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창의 답을 듣던 현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창을 다시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답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우창도 합장했다.

우창이 도덕을 말해서 내심 깜짝 놀랐다네. 그 정도의 수준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지. 천도(天道)에 덕으로 부합하는 것이 도덕이었다는 말이로군. 그만하면 적천수를 놓고 많은 날을 궁리했겠다고 생각해도 되겠네. 허허허~!”

늘 미흡하고 자신이 없었는데 스승님이 말씀을 들으니 그나마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담의 질문은 곧바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기함(機緘)은 무슨 뜻인가?”

곰곰 생각해 봐도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 좀 난해(難解)하기는 합니다만, 겨우 이해를 한 것은 아마도 기밀(機密)을 봉함(封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그 이치를 기함이라고 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만하면 잘 이해했네. 기밀은 결국 하늘과 땅만이 주고받는 조짐(兆朕)을 말하고, 여기에는 말도 없고 몸짓도 없어서 단지 알고 있는 자만의 소식(消息)이라고 할 것이니 그래서 기밀(機密)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것을 묶은 끈이라고 해서 함()을 썼으니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중요한 진리(眞理)라는 의미도 된다네. 그래서 기함(機緘)이라는 글로 표현했으니 경도(京圖)는 문장력도 과연 탁월(卓越)했다고 생각되는군. 이보다 더 간결하게 핵심을 짚은 글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네. 이러한 두 글자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글자를 뒤져서 써보고 또 지웠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글맛을 아는 자만의 유희(遊戱)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네.”

과연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제자가 글자만 생각했던 것에 스승님께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니 바짝 마른 고목(高木)에 새싹이 돋아나는 듯이 그 의미가 되살아나는 것만 같습니다. 경도가 얼마나 깊이 생각했으면 이렇게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글자를 찾았을 것인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쉽게 말을 써놓지 않고 이렇게나 어려운 글자를 사용해서 후학을 골탕 먹이는 것은 무슨 심보냐고까지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랬나? 원래 모르면 원망하고 알면 감사하는 것이라네. 허허허~!”

꼭 맞는 말씀입니다. 기함(機緘)이라는 두 글자 안에 그렇게도 맛있는 꿀이 들어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있는 통()은 천지(天地)의 소통(疏通)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혹 다른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라도 되는가?”

아닙니다. 기함으로 통한다는 의미를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는 천지간(天地間)에 서로 큰 길이 있는 것처럼 통로(通路)가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천도장에서 오행(五行)의 이치와 음양(陰陽)의 변화를 먼저 보라고 한 이유가 뭔지 말해 볼 텐가?”

, 천도에서 한 말씀이군요. 그러니까 기함으로 통하는 길은 오행과 음양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까? 궁리하면서도 천도와 지도를 연결해서 생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절름발이 공부를 한 셈이었네요. 참으로 스승님의 언급(言及)이 아니면 도달하지 못할 경지를 이렇게나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뭔가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으로 지도를 바라보면 된다는 정도로만 이해했었는데 이미 큰 오행도(五行道)를 활짝 열어놓은 줄을 알고 직관(直觀)하라는 의미까지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은 현담이 불쑥불쑥 던지는 한마디에서 깊은 세계로 통하는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 못내 신기하고도 부끄러웠다. 그 정도를 생각할 줄도 모르면서 많은 제자를 이끌고 길을 헤맸던 것이나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현담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우러나왔다. 스승을 만난다는 의미가 이런 것임을 다시 음미했다. 항상 명쾌하지 않았던 기함(機緘)이 풀리고 나자 머릿속이 청명하게 맑아졌다. 우창이 말이 없자 현담이 다시 물었다.

앞 구절이 이해되었으면 다음 구절도 살펴볼까?”

, ! 다음 구절은 오기(五氣)가 나옵니다. 오기는 오행(五行)의 다른 말이라고 여겼는데 그렇게 봐도 되는 것일까요?”

, 그렇게 본다고 해도 크게 틀릴 것은 없겠지.”

스승님의 말씀은 우창의 생각이 아직은 미진(未盡)하다는 말씀이시네요.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오행은 체()가 되고, 오기는 용()이 된다네.”

현담이 체용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을 듣자 문득 느끼는 바가 있었다.

스승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오행은 고정불변(固定不變)이라서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오기(五氣)는 실제로 작용하여 목전(目前)에서 느낄 수가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자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오행의 이치가 오기를 타고서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결실을 이루면 그것을 오질(五質)이라고 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오행은 도()가 되고, 오기(五氣)는 도의 태동(胎動)이 되니 이것이 후에 완성되면 비로소 물질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이것을 체용변(體用變)이라고 할 수가 있지. 체에서 용이 나오고 용에서 변화무쌍한 결과물이 등장하니 말이네.”

단순하게 오기는 오행이려니 했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그 차이가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봄이 되어서 불어오는 훈풍(薰風)은 오기(五氣)이고 초목(草木)에 개화(開花)하는 것은 오질(五質)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까?”

현담이 말없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서. 우창은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에서도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이치를 깨달았다. ()가 체라면 기()는 용이고, 기가 체라면 다시 질()이 용이라는 이치를 생각하자 밝은 등불이 더욱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천지(天地)의 도에서는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무엇인가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꼭 그렇지도 않네. 다음 구절을 살펴볼 텐가?”

알겠습니다. 편전(偏全)입니다. 치우치거나 온전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오기(五氣)의 기운은 고르게 운행이 되면 좋으나 여러 요인에 의해서 고르지 않게 된다는 의미고 이해했습니다. 가령 봄인데 볕은 부족하고 연일 비가 내린다거나, 반대로 볕은 충분한데 오히려 가뭄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여름철에 덥지 않거나 겨울철에 춥지 않은 것도 치우친 것이라고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창은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말하게 되고 말을 하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다시 물었다.

그만하면 무리가 없군. 다음 구절을 보지.”

, 다음의 구절은 정길흉(定吉凶)입니다. 길함과 흉함이 정해진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건 무슨 뜻인가?”

, 오행의 기운이 사시(四時)에 맞춰서 온전(溫全)하면 땅은 그것을 받아서 자연은 풍요롭게 성장하고 토끼와 노루는 새끼를 낳아서 잘 키우게 될 것이며 곡식은 알차게 결실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편중(偏重)되어서 폭우(暴雨)나 폭염(暴炎)이 이어지거나 태풍(颱風)과 운무(雲霧)가 만물의 생장(生長)을 순조롭게 하지 못한다면 농부는 쭉정이를 수확하여 굶주리게 될 것이고, 동물들도 새끼를 온전히 키울 수가 없게 되고, 화재(火災)가 발생하여 온 산천(山天)을 불태울 수도 있고, 농작물과 가옥까지도 물에 쓸려갈 수가 있으니 이것을 일러서 흉악(凶惡)하게 되는 것은 정()해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산이 궁금한 것이 있었던지 글을 적어서 염재에게 전했다. 염재가 그것을 읽어보고는 일어나서 현담에게 물었다.

태사님께 여쭙습니다. 지도장(地道章)의 오기(五氣)는 사주에 있는 지지(地支)의 오행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요? 지지의 오행이 조열(燥熱)하거나 과습(過濕)한 것으로 인해서 운명(運命)의 길흉이 정해진다는 뜻으로 봤는데 스승님의 말씀이 좀 달라서 의외입니다.”

이렇게 안산의 질문을 대신해서 말하자 현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창에게 대신 물었다.

어디 염재의 질문에 우창이 답을 해 보게.”

제자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천도(天道)가 천간(天干)의 이야기인 줄로 알았을 적에는 당연히 지도(地道)는 지지(地支)의 이야기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주역의 건괘(乾卦)와 천도장(天道章)이 대응(對應)하고, 곤괘(坤卦)와 지도장(地道章)이 대응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치 않음을 알았습니다. 아직은 간지를 논하는 단계가 아니기에 지지의 오행은 대지(大地)의 존재로만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큰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작은 길흉을 논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도(乾道)는 크고 곤도(坤道)는 지극(至極)하다는 이치를 이렇게 해서 또 명백하게 깨달았습니다.”

, 혹 오해를 할 수도 있어서 언급하겠는데 사주에서도 이러한 이치는 의연(依然)히 살아있다네. 그러니까 어디에서라도 다 통하나 온전히 간지(干支)에만 제한하여 이해하지는 말라는 의미라네.”

이렇게 말을 덧붙인 현담이 안산을 바라보자 안산도 이해가 잘 되었다는 듯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현담이 말했다.

이 정도로 이해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도 되겠네. 다음은 인도장(人道章)이로군. 어디 읽어보겠나?”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를 바라봤다. 그러자 염재가 일어나서 낭랑한 음성으로 운율을 붙여서 읽었다.

 

대천리지인위귀(戴天履地人爲貴)

순즉길혜흉즉패(順則吉兮凶則悖)

 

염재가 인도장을 읽고서 자리에 앉자. 이번에도 현담은 우창에게 해석을 하라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니까 현담의 뜻은 우창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넘어가도 잘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질문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야기는 최소한(最小限)으로 줄이고 우창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인도장은 좀 쉬워 보입니다.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것에서는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사람이 가장 귀하다면 그와 비교하는 대상(對象)은 무엇이란 말인가?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귀천(貴賤)을 논할 테니 말이네.”

, 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잘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바로 알겠습니다.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략 생각해 본다면, 동물 중에서 날개가 있는 종류는 화()에 속한다네. 그리고 털이 있는 종류는 목()에 속하지. 또 비늘이 있는 것은 금()에 속하고, 딱딱한 것으로 감싸고 있는 것은 수()에 속하는 것이라네. 이들은 치우친 오행이라서 완전하지 않지. 그로 인해서 귀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겠지?”

아하!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토()에 해당하여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귀하다는 의미란 말씀이죠? 그냥 사람이 귀하다고만 생각했지 왜 귀한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하게 밝아집니다.”

그렇겠지? ()에 속하는 것은 우충(羽蟲)이라고 하고, ()에 속하는 것은 모충(毛蟲)이라고 하고, ()에 속하는 것은 인충(鱗蟲)이라고 하고, ()에 속하는 것은 개충(介蟲)이라고 하니 조개와 같은 것이 되겠네. 그리고 토()에 속하는 것은 나충(裸蟲)인 것도 참고삼아 알아 두게.”

? 나충이라면.....?”

, 털도 없고, 깃도 없고 비늘도 없고 단단한 껍질도 없으니 벌거벗은 벌레가 아닌가? 허허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도 머리털과 눈썹이 있으니 털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순(矛盾)이 아니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현담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인간은 모충(毛蟲)에 속한단 말인가? 원숭이처럼 온몸이 털이라면 우창의 말이 일리가 있으나 극히 일부분이라면 비율로 봤을 적에 그것을 털이 달린 동물이라고 할 수가 있겠나?”

비율로 논한다면 나충이 맞겠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럼 이해가 된 건가?”

아닙니다. ()에 속하는 것은 왜 개충(介蟲)이라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 오행의 수()는 응고(凝固)하고 단단하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그것은 알지 싶은데?”

아하! 그런 뜻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거북이나 자라도 수()에 속하는 것입니까? 또 천산갑(穿山甲)은 비늘에 감싸져 있으니 금()에 속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네. 어떤 것은 겹치기도 하겠지만 대략의 형태를 봐서 오충(五蟲)으로 나눈다고 알고 있으면 되겠군.”

잘 알았습니다. 오행의 이치에서도 목화금수(木火金水)는 편중되어 있는데 오직 토()는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으니 인간이 존귀(尊貴)하다는 의미와 상통(相通)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럼 다음 구절을 풀이하지.”

우창이 다시 두 번째의 구절을 풀이했다.

순즉(順則)은 천지(天地)의 흐름에 따른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면 길()하다는 것이니 이것도 쉽게 이해됩니다. 또 흉즉(凶則)은 천지간의 기운을 거스르게 되면 흉()하다는 뜻이니 아무리 만물(萬物)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일지라도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흉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군. 인도장(人道章)은 역경(易經)의 수뢰준(水雷屯)에 해당한다고 했던가?”

맞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는 스스로 살아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어머니를 찾아서 젖을 먹고, 잠이 오면 또 곤하게 잠이 듭니다. 그러나 모기가 와서 물어뜯어도 그것을 막을 힘이 없고, 파리가 귀찮게 해도 쫓을 힘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 길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흉하여 생존도 어려울 것이니 수뢰준(水雷屯)의 이치가 그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인도장에서도 같은 말이라는 것도 알겠습니다. 아무리 귀한 존재인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 점차로 성장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만, 이러한 것을 따르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거나 혹은 목숨은 부지하더라도 신체가 온전치 못하거나 신체는 온전하더라도 정신이 올바르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천리지(戴天履地)라는 의미가 새삼스럽군. 이것이야말로 건곤(乾坤)일테니 말이지.”

그렇겠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한 것은 적천수의 해설가 중에서 혹자는 인도장(人道章)은 지장간(支藏干)을 말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천도와 지도를 간지(干支)로 놓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인도에서는 지장간을 생각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 간지에 대해서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보니까 무엇이 오류(誤謬)인지를 깨닫겠습니다.”

결국은 무엇을 말하는가? 천지의 이치(理致)를 알아야 하고, 그 이치의 성쇠(盛衰)를 깨달아야 하고, 그 성쇠의 흐름에 따라서 순응(順應)하라는 의미로 요약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비로소 확연(確然)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물어서 간지(干支)를 찾아놓고 용신(用神)의 길흉(吉凶)을 설명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원(三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것으로부터 전개되는 모든 이치는 오행과 그 변화에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서 존귀하다는 인간일지라도 길하기도 하고 흉하기도 하다는 것으로 요약(要約)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현담이 우창의 말을 듣고서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우창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확인도 할 겸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스승님이 말씀을 모두 이해했습니다만, 혹 길흉(吉凶)을 용신(用神)과 기신(忌神)의 관계로 대입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것도 일종의 습관(習慣)인가 싶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삼원의 이치로만 논하기에는 뭔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해서 말입니다.”

그 또한 망상(妄想)이니 바로 내려놓게나. 왜 삼도장(三道章)으로 적천수를 시작하는지 아직도 의문이 있는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로군. 사주를 풀이하기 이전에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겠나? 아무리 팔자가 좋아서 날고뛴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천지(天地)의 이치에 순응하지 않으면 흉한 꼴을 보게 될 것이고 팔자가 비록 균형을 이루지 못해서 기구(崎嶇)하다고 할지라도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면 또한 흉함이 없다는 이치를 말하고자 하는 경도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군. 허허허~!”

우창은 그제야 뭔가 꺼림칙했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현담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잘 이해한 것으로 생각은 했으면서도 뭔가 목에서 살짝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현담이 바로 지적해 주는 바람에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참으로 깊은 뜻이 있음을 지나칠 뻔했습니다. 팔자를 논하기 전에 사람을 논하고, 사람을 논하기 전에 자연을 깨달으라는 깊은 가르침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를 놓칠 뻔했습니다. 예전에 어느 선생에 대해서 들었던 말이 있는데, 그는 팔자를 잘 타고난 사주를 갖고 오는 사람에게는 입에 침을 튀기면서 극찬(極讚)을 하고, 오행이 치우치고 균형을 이루지 못한 팔자를 갖고 오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명식을 적은 것을 면전에 내팽개치면서 이따위 사주를 어디에다 내놓느냐!’고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 선생의 공부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오호, 그런 사람도 있던가? 철학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말도 듣지 못한 사람이었던가 보군. 허허허~!”

스승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간지를 조금 배워서는 세상의 이치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듯이 거들먹거리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 무리 말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천지의 이치를 따르지 않으니 필시(必是) 흉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시간의 낭비가 아닌가? 이 소중한 시간에 그런 이야기로 허비할 수는 없으니 이제 그만하고 다음의 내용이나 살펴보는 것이 좋겠지? 허허허~!”

과연, 우창은 감동했다. 남의 허물을 논하는 것도 시간의 낭비라고 말하는 현담의 깊이를 측량할 길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올바른 길로 안내를 받게 되겠다는 신뢰감(信賴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