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 제42장. 적천수/ 5.지극(至極)하고 자상(仔詳)함

작성일
2024-03-05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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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 42. 적천수(滴天髓)

 

5. 지극(至極)하고 자상(仔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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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생각을 정리하고는 현담을 바라보니 현담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라 계속해서 다음장을 읽으라는 의미로 이해하고는 염재에게 다음 구절을 읽으라고 했다. 염재도 다음 구절이 궁금해서 조바심이 나던 차에 우창의 말을 듣고는 얼른 일어나서 그다음의 구절을 읽었다. 지명장(知命章)이었다.

 

요여인간개농외(要與人間開聾聵)

순패지기수리회(順悖之機須理會)

 

염재가 큰 소리로 지명장을 읽고는 자리에 앉자 현담은 다시 우창에게 뜻을 풀어보라는 듯이 바라봤다. 우창도 다시 글자를 짚어가면서 천천히 풀이했다.

부족하지만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人間)과 더불어 귀먹고 눈먼 것을 열어주고자 한다면 순패의 기틀을 모름지기 잘 깨달아야 하느니라라고 읽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그렇군. 의미도 생각해 보겠나?”

의미는 이름에 나와 있듯이 지명(知命)이니까 천명을 잘 알아야 올바른 길로 안내를 할 수가 있다는 의미로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드는가?”

그게 말입니다. 앞에서 천지인의 도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것은 무슨 뜻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언뜻 봐서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막상 의미를 잘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그러니까 공부 잘해라하는 느낌이랄까요? 흔히 하는 말로, ‘하나 마나인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우창이 깊은 뜻을 몰라서일까요?”

물론 그러한 의미로 본다면 일리는 있네. 그런데 왜 소중한 자리에 이러한 글귀를 남겼는지를 또 생각해 보면 그만한 이치가 있다네.”

맞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지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를 활짝 열겠습니다.”

우창이나 고월과 같이 순패지기(順悖之機)를 잘 알고 있는 학자에게는 그야말로 군더더기일 뿐이라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뜻은 순패지기를 모르는 학자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당연하다네. 경도가 이 글을 썼을 당시의 풍경을 떠올려 봐야 하지 않겠나? 고인이 남긴 글에는 그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는데 오늘의 기준으로 읽게 된다면 오류가 일어나기도 쉽단 말이네. 그러니까 눈멀고 귀먹은 인간이야 자신의 길을 몰라서 추명관(推命館)을 찾아왔다고 하겠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해야 할 사람이 망담(妄談)으로 사람의 정신을 빼앗고 구렁텅이로 안내하는 무리가 얼마나 성행(盛行)했는지를 미뤄서 짐작할 수도 있어야 하네.”

우창은 현담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무슨 뜻인지를 이해했다. 그래서 오만한 생각을 품었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스승님 맞습니다. 우창이 함부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가르침을 청합니다. 당시의 무리는 어떤 방법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혹세무민(惑世誣民)했다는 것인지요?”

명색이 인간의 길흉을 알려주고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 오행의 이치를 배운 사람이 오히려 재리(財利)에 눈이 어두워져서는, 도화살(桃花殺)이 있으니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겠다느니 원진살(怨嗔殺)이 있어서 부부가 생이별하게 된다느니 하면서 사람을 현혹해서 굿을 하게 종용하거나, 혹은 잘 알아듣지도 못할 기이(奇異)한 격국이라고 하는 말로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온갖 신살을 망라해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주(日柱)의 강약(强弱)은 논하지도 않으면서 상관(傷官)이나 겁재(劫財)는 미워하고 정관(正官)을 보면 귀하게 된다는 식으로 망발(妄發)을 일삼았으니 이러한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경도의 심사(心思)가 어떠했을지 짐작이나 해 봤겠는가?”

정말 놀랍습니다. 과연 그럴법한 설명이십니다. 순패지기(順悖之機)는 그런 의미였군요.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남에게 길을 안내한다고 하면서 명학(命學)을 배웠으니 이 학문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귀먹고 눈이 먼 것과 같은데, 스스로 농외(聾聵)의 존재임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허언(虛言)을 남발(濫發)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면 우창도 속에서 천불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적천수가 쓰였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경도가 더욱 위대해 보이기조차 합니다. 적천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도 남겠습니다.”

그렇다면 순패지기(順悖之機)란 무엇인지 설명해 보겠나?”

()은 천리(天理)를 따르고 지리(地理)를 따르며 자연(自然)에 순응하는 것을 말하겠고, 어그러질 패()는 거스를 역()과 같아서 자신의 탐욕(貪慾)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겁박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 것을 두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조짐을 사주(四柱)의 간지에서 잘 살펴야 하는 이회(理會)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모름지기 올바른 오행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한다는 가르침을 그 안에 담아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수리회(須理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니 비로소 지명장(知命章)의 지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르게 깨달았습니다. 남의 운명을 논하기 이전에 스스로 올바른 공부를 해서 깊은 이치를 제대로 깨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명장은 잘 이해한 것으로 보면 되겠네. 다음은 또 무엇인지 염재가 읽어보려나?”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염재도 가슴이 뜨끔했다. 우창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고 있다가 그 당시의 시속(時俗)이 어떠했는지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현담의 말을 듣고서야 얼마나 좁은 시야(視野)를 갖고 있었는지 반성하고 있던 차였다. 현담의 말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서 이기장(理氣章)을 펴서 읽었다.

 

이승기행기유상(理乘氣行豈有常)

진혜퇴혜의억양(進兮退兮宜抑揚)

 

염재가 글을 읽고서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우창이 일어나서 뜻에 대해서 풀이했다. 당연히 현담이 우창에게 풀이를 하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승님, 또 뜻을 풀이해 보겠습니다. 이승(理乘)이치를 탄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이 대목의 이치는 자연의 순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치에 의해서 기운(氣運)도 따르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가면 몸이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행(氣行)이 되는 것이지요. 기유상(豈有常)어찌 항상하랴라고 했으니 시시때때로 변화하고 절기(節氣)에 따라 변화하고 조석(朝夕)으로 변화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이치에 타당한지요?”

현담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나머지 구절을 풀이했다.

진혜(進兮)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퇴혜(退兮)는 뒤로 물러나는 기운을 말합니다. 의억양(宜抑揚)은 억압(抑壓)과 선양(宣揚)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여기에 의()가 있는 것으로 봐서 눌러야 할 것과 부축해야 할 것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지! 잘 풀이했네. 혹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게.”

이기(理氣)를 이렇게 나눠놓고 보니까 오히려 일목요연(一目瞭然)한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와 기()는 일체(一切)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따로 떼어놓고 관찰하는 이론도 있다고 들었는데 경도는 하나로 묶어서 관찰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지요?”

잘 이해했네. 이기를 일원(一元)으로 보기도 하고, 이원(二元)으로 보기도 해서 이러한 이치를 갖고서도 논쟁을 끊이지 않으니 유학자(儒學者)들 간에도 서로 의견이 분분하다네. 그런데 경도는 이것을 단칼에 말끔하게 정리해 버렸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가 없는 기()도 없고, ()가 없는 이()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자연의 이치란 이렇게 이치를 알면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기가 움직이는 것을 읽을 수가 있다네.”

그렇군요. 기는 이치를 따라 흐르고 이치는 기가 흐르는 길을 알고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가령, 역마차(驛馬車)가 장안(長安)으로 간다고 하면 역마차는 기가 되고 그 길은 이가 되어서 올바른 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필시 그 길로 장안까지 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고정된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니, 그 상황은 이치가 되고 계절이 되고 주야가 된다고 보겠습니다.”

맞네. 엉뚱한 생각으로 길을 벗어난다면 영원히 장안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네.”

잘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진퇴(進退)의 이치는 우창이 이해하기로 여름이 되면 화()는 진기(進氣)가 되고, ()은 퇴기(退氣)가 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신월(新月)은 차오르고 만월(滿月)은 기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되지 싶습니다. 자연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서 차면 기울고 기울면 또 차오르게 되므로 이러한 이치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계절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適應)하고 이해하느냐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계절의 변화도 모르고서 쌀밥을 먹겠다고 볍씨를 한겨울에 논에 심거나 원두(園頭)를 먹고 싶다고 해서 서리가 내리는 가을에 밭에다 참외나 수박의 종자를 심는 것이야말로 진퇴를 모른다고 할 수가 있겠군.”

우창은 현담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이 대목에 대해서도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적어놨을까 싶은 생각을 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앞에서 지명장(知命章)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는 다시 조심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니까 그 안에는 이기를 관찰(觀察)하지 않고서 막무가내로 사주를 풀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스쳐 갔다. 우창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보던 현담이 다시 물었다.

어떤가? 다 이해되었다면 다음 구절까지 봐도 되겠는데 더 묻겠나? 아니면 다음 구절을 보려나?”

, .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염재 부탁하네.”

우창의 말에 염재는 다음 장을 펼쳤다. 다음은 배합장(配合章)이었다. 그리고는 처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읽었다. 염재도 어느 사이에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평온해진 듯했다.

 

배합간지자세상(配合干支仔細詳)

단인화복여재상(斷人禍福與災祥)

 

염재가 읽은 대목을 우창이 풀이하기 위해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묵직한 우창의 음성이 강당에 울려 퍼졌다.

배합(配合)은 이치에 합당하게 짝을 짓는다는 의미이고, 간지(干支)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이치에 맞게 배합하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자세상(仔細詳)은 자세하고 상세하게 살펴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치에서 벗어남이 없겠습니까?”

잘 풀이했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중언부언(重言復言)인 것이 느껴지는지 모르겠군.”

, 그렇습니다. 이기장(理氣章)에서 진퇴(進退)와 억양(抑揚)이 중복(重複)된 것으로 느껴지기는 합니다. 그래서 소홀하게 생각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명장(知命章)에서 말한 순패지기(順悖之機)와도 중복된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것을 딱 짚어서 말씀해 주시니 흡사 가려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신 것 같습니다. 하하~!”

우창이 웃으면서 말하자 현담도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했다.

혹자는 지명(知命)과 이기(理氣)와 배합(配合)은 그 내용으로 봐서 누군가 나중에 덧붙여서 쓴 것이라고 하는 설도 있는데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되는지 말해 보려나?”

아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 말이 맞겠습니다. 우창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용이 겹치기도 하고 뜻도 특별하게 언급되는 내용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행여 누군가 여기에 가필(加筆)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런 생각도 해 볼 만 하겠습니다. 스승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가필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짐작은 되네. 다만 가필이면 어떻고 또 덧칠이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라네. 가필했더라도 감히 적천수에 가필할 수준이라면 보통의 능력은 아닐 것이잖은가? 순수한 것만 찾는 것이 목적이거나 고증(考證)을 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라면 탓을 할 것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는 학문의 의미와 이치를 추구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가필이 아니라도 이치에 부합하지 않으면 삭제(削除)하고, 가필이 명백해도 이치에 맞는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서 연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네.”

우창은 현담의 수준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정도는 단박에 파악을 할 것으로 생각이 되었는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다 진리의 말이라면 수용한다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니까 이치에 대해서만 논하고 진위(眞僞)는 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않은가. 실로 의심하기로 든다면 공자의 논어나 부처의 경전인들 불설(佛說)이라고 확신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봤던 것이기도 했다.

오늘 또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고 뜻이고 배움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네요. 괜히 진가(眞假)를 찾다가 세월을 헛되이 흘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할 텐데 그러한 문제를 일거(一擧)에 해소하는 비법입니다. 과연 진실로 알아야 할 것은 그 의미를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일 따름입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대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은 내려놓을 수가 있겠습니다. 실로 우창도 의심이 많아서 종종 그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가? 아마도 그럴 것이네. 학자(學者)가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학자가 아니라네. 당연히 의심은 해야지. 다만 의심하되 내용에 대해서 의심해야지 지은 사람이 누구냐는 것으로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네. 무명소졸(無名小卒)이 지었더라도 내용이 심오하면 삼배(三拜)하면서 배우고,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지었더라도 내용이 허접하다면 두 번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니 말이지. 허허허~!”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들어봤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둠 속에서 험한 산길을 가게 되었을 적에 혹 죄인이 횃불을 들고 가다가 건네준다면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히 받아서 자신이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옳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두 말은 서로 같은 뜻이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다른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현담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우창이 말을 마치자 현담이 말했다.

그러면 다음 구절도 마저 살펴보고서 토론(討論)하세.”

, 알겠습니다. ‘단인(斷人)’의 뜻은 사람의 미래를 판단(判斷)하고 예단(豫斷)한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화복(禍福)과 재상(災祥)은 같은 말인데 글자의 운율과 짝을 맞추기 위해서 써놓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명확하게 사주의 이야기임을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句節)은 인도장(人道章)순즉길혜패즉흉(順則吉兮悖則凶)’과도 같은 의미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도장(地道章)오기편전정길흉(五氣偏全定吉兇)’과도 서로 뜻이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중복되는 의미임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적었을까요? 역시 노파심(老婆心)이 간절(懇切)했던 까닭일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로 미뤄서 판단해 보건대, 경도가 적천수를 쓸 때의 나이는 적어도 한 갑자는 지난 다음일 것으로 생각이 되네. 나이가 들지 않은 젊음이었다면 이러한 일은 오히려 번거롭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지.”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우창은 왜 이렇게 한 말을 또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오늘도 스승님의 자상하신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부분은 모두 군더더기라고 여기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 보겠나? 왜냐면 다음 편이 천간론(天干論)인 것으로 보이니 여기까지는 서론(序論)에 해당하는 부분임을 알 것이고, 그래서 정리하면서 혹시라도 빠트린 것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

맞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 천도장(天道章): 하늘의 이치를 살펴서 오행과 음양을 깨닫고

() 지도장(地道章):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땅의 이치를 살피고

() 인도장(人道章): 천지간(天地間)에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고

() 지명장(知命章): 타고난 운명을 순역(順逆)으로 깨닫고

() 이기장(理氣章): 이치과 기운이 서로 따르는 것을 알아서

() 배합장(配合章): 사주의 이치를 살펴서 길흉을 판단하라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막상 정리하고서 살펴보니까 일목요연하게 그 이치가 드러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는 자연의 이치이고, 지명(知命), 이기(理氣), 배합(配合)은 그것의 조화를 알아서 운명에 적용하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게 해서 명학(命學)의 이치를 공부할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다면 비로소 다음으로 넘어가되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더 공부할 생각도 말고 책을 덮으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왠지 추상(秋霜)같은 경도의 서슬 퍼런 눈빛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치를 잘 궁리해서 공부가 깊은 학자에게는 지명과 이기와 배합은 없는 것이 오히려 낫겠지만 처음에 명학문(命學門)으로 들어온 초심자(初心者)라면 당연히 이러한 가르침부터 뼈에 새기고 시작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 말이 나왔으니 생각해 볼까? 이 책의 이름을 왜 기이(奇異)하게도 적천수(滴天髓)라고 지었겠는지 생각해 봤는가? 그렇다면 어디 말을 해 보게.”

알겠습니다. ()은 물방울 적()입니다. 물의 방울도 되지만 매우 작은 알갱이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물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작은 알갱이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흡사 불타(佛陀)나 고승(高僧)의 사리(舍利)를 떠올리게 합니다. ()은 하늘이지만 천연(天然)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천지자연(天地自然)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는 골수 수()입니다. 인체의 골수(骨髓)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리의 핵심(核心)을 말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묶어서 말한다면, ‘자연의 이치를 담은 핵심의 한 방울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풀이해도 되겠습니까?”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고월이 조용히 일어나서 한마디 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기는 합니다만, ()는 핵심(核心) 중의 핵심이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적천수의 2천여 자()는 명가(命家)에서 중요함을 논한다면 불가(佛家)화엄경(華嚴經)이요, 유가(儒家)역경(易經)에 비유해야 할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규모로 봐서는 참으로 방대한 연해자평(淵海子平)이나 삼명통회(三命通會)에 비할 바가 아니나 내용으로 본다면 오히려 연해(淵海)나 통회(通會)는 촛불에 견줘야 할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그간은 겉핥기로 세월만 보냈다는 것을 오늘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비로소 활연(豁然)이 깨달았습니다.”

고월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듣자 우창도 가슴이 뭉클했다. 도반(道伴)이란 이렇게 말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것임을 느끼면서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현담의 말이 생각을 깼다.

그렇다네. 고월의 판단이 참으로 날카롭군. 연해나 통회에 비한다면 적천수의 군더더기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소중할 따름이고 자상할 따름이라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한다는 것도 결국은 그러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기도 하지 않느냔 말이네. 허허~!”

이렇게 이야기에 빠져 있는 동안에 어느 사이 시간은 오시(午時)를 넘기고 있었다. 염재가 우창을 보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하겠다는 수신호(手信號)를 보내자 우창도 비로소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끼고는 일어나서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젖어있다가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가르침은 여기까지 받고 다음 시간으로 미뤄야 하겠습니다. 함께 한 제자들도 귀한 가르침을 잘 정리하고 알찬 보석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태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동음으로 마음을 표현하고는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우창도 서재로 돌아가자 마침 서옥이 아들 일석을 엎고서 청소하다가 우창을 보고서 반겨 맞았다.

무슨 공부가 그리도 열띤지 대중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들어가 보려다가 말았어요. 그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신 거예요?”

재미있었지. 서옥도 같이 공부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서옥도 그러고 싶죠. 저 녀석이 세 살만 되면 혼자 놀게 두고 나도 공부할 거예요. 다만 지금은 공부보다도 아이 돌보는 것이 더 재미있어서 괜찮아요. 그러니까 괜히 마음을 쓰지 마세요. 호호호~!”

몸은 괜찮지?”

괜찮아요. 아기 양식도 풍부해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어요. 씻겨놓고 물을 버리고 돌아오면 요만큼은 더 자란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르겠어요. 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엄지와 검지를 치켜들고 살짝 벌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 바닥에 누워서 자기 주먹을 바라보면서 놀고 있는 일석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점심을 알리는 목탁이 울렸다. 아직은 바람이 차가워서 서옥은 연화가 미역국과 밥을 가져다줬다.

어서 다녀오세요.”

그래

우창은 열심히 공부한 뒤끝이라서인지 몰라도 무척 시장했다. 다른 제자들도 밥과 찬에 대해서 일체 군말이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것도 흐뭇했다. 고월이 앉은 자리 옆이 비어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현담의 밥상만 한쪽에 정해서 차려놓고 나머지 대중은 자유롭게 앉아서 밥을 먹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조용히 생각하면서 산책을 나섰다. 어느 사이에 낮에는 제법 날씨가 포근했다. 그러고 보니 우수(雨水)가 지났다는 것을 문득 생각했다. 버들가지에 물이 올라서 눈이 터져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약동(躍動)하는 목기(木氣)를 느꼈다. 강남의 봄은 빨리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면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