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 제42장. 적천수/ 3.수뢰준(水雷屯)의 소식(消息)

작성일
2024-02-2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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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42. 적천수(滴天髓)

 

3. 수뢰준(水雷屯)의 소식(消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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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오행원의 제자들은 여전히 현담의 이야기에 자극받은 열기에 사로잡혀서 저마다 뜻이 통하는 도반들끼리 삼삼오오로 무리를 지어서 학문토론의 시간을 이어갔다. 우창이 백차방으로 들어가니 10여 명의 제자가 차를 마시면서 담소(談笑)하다가 우창을 보자 일제히 일어났다.

스승님 잘 오셨어요!”

문앞을 향하고 앉아서 차를 마시던 진명이 우창을 보고는 지옥에서 지장보살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자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자기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으로 짐작하면서 자리에 앉자 연화가 당귀차를 가져왔다.

스승님, 저녁이라 심신을 이완시켜주는 당귀차를 마련했어요.”

우창이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자원과 채운도 진명과 함께 마시던 찻잔을 들고는 우창의 차탁으로 모여들었다. 자원이 먼저 우창에게 말했다.

싸부, 오늘 태사님의 가르침은 가히 충격적이었어요. 그렇죠?”

맞아! 배움의 기쁨을 만끽한 시간이었지.”

자원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우창에게 말했다.

옛날 노산에서 공부했던 적천수는 적천수도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놀랍게도 같은 글인데 뜻이 다르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가슴이 계속 뛰었지 뭐예요. 호호~!”

오호, 자원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스승님의 내공이 중후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이로구나. 하하~!”

말도 마세요. 세상에서 우창 싸부가 가장 높은 경지인 줄만 알고 있다가 얼마나 놀랐던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에요.”

그만하면 태사 찬가는 되었고, 그래, 궁금한 것이 생겼던 모양인데 그 이야기나 하지.”

궁금한 것이야 뭐 항상 있는 것이지만 자원이 놀랐던 것은 적천수의 천도(天道)에서 역경의 배열(排列)을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죠. 항상 읽으면서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것에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글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느냐는 것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깨달았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물을 따라서 흐르는 고기도 있지만, 물을 거스르는 고기도 있으니까 말이지. 약동(躍動)하는 힘이 넘치는 고기는 폭포도 차고 오르는 것처럼 생동(生動)하는 활력의 학자는 항상 문자탑(文字塔)을 매일 허물고 그 안에서 사리병을 찾아내곤 하지.”

와우, 싸부의 말씀은 항상 솜씨 좋은 화공이 그린 그림이에요. 호호호~!”

우창은 미소를 지으며 몸에 좋을 것 같은 향을 풍기는 당귀차를 마셨다. 옆에 있던 연화가 다시 뜨거운 찻물을 채워줬다. 그러자 채운이 말했다.

채운은 천지간(天地間)에 벌거숭이로 내팽개쳤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어요. 역경(易經)은 그런 것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수뢰준(水雷屯)이라고 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 다 사라지고 언덕 아래에서 아무것도 없이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보는 듯했거든요.”

그랬구나. 지식에 의해 자극받으면 의욕이 충천(沖天)하지. 하하~!”

수뢰준의 상황은 이해되는데 그것을 나타내는 괘가 왜 상괘(上卦)는 수()이고 하괘(下卦)는 뢰()인지 잘 모르겠어요. 스승님께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면 자세히 듣고 싶어요. 강당에서 태사님께 여쭙고 싶었으나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오면 스승님께 알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가 있으시겠지요? 생각해 보신 만큼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스승님의 말씀은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도 뒷동산을 오르듯이 편안하니까 말이죠.”

채운의 말을 듣고 우창도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서 말했다.

어허, 채운이 오행(五行)을 공부하다가 말고 음양(陰陽) 공부에 빠져들게 생겼구나. 당연히 나도 의미를 잘 모르지. 그것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염재를 불러야지. 내게 물어서 무슨 답을 얻겠다고.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을 때 백차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염재와 오광이 들어오는 것을 본 본 수경이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호랑이가 염재였네. 호호~!”

무심코 들어오다가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것도 놀랐지만 수경이 염재에게 이렇게 말하자 어안이 벙벙해진 모양이었다.

아니, 염제가 호랑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염재가 옆의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연화가 차를 가져다줬다. 오광도 빈자리에 앉아서 무슨 정황인지를 가늠하느라고 눈만 껌뻑였다. 그러자 채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염재를 데리러 가려던 참이었거든. 그런데 마침 들어오니 이것이야말로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나타난다는 속담이 아니겠어? 호호~!”

염재는 채운의 말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던지 다시 채운에게 물었다.

, 갑자기 염재를 보고 싶으셨을까요?”

왜긴 왜겠어, 그놈의 수뢰준때문이지. 호호호~!”

채운이 수뢰준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야 오늘 강연에서 들었던 것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주역에 대해서 그나마 좀 이해하고 있는 염재에게 그것을 묻고자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 우레가 요동을 치고 있다는 의미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잖아. 간지의 공부는 그래도 열심히 궁리하면 가닥이 잡히는데 이것은 도무지 알아낼 방법이 있어야지. 그래서 스승님께 여쭤보고 있었잖아.”

, 그러셨군요. 깊은 이치야 염재도 알 방법이 없으나 기본적인 의미라면 약간 설명해 보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요?”

뭐긴 뭐겠어, 수뢰(水雷)말이야. ()의 뜻은 알았는데 수뢰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가 된다는 거야? 그것에 걸려서 저녁을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었다니까. 여기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 줘봐.”

염재는 우선 우창을 바라봤다. 말을 해도 좋겠느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채운을 향해서 말했다. 다른 제자들도 일제히 염재의 힘찬 목소리에 집중했다.

팔괘(八卦)에서 감괘(坎卦)는 물을 나타낸다는 것이 아시잖아요? 그런데 고래(古來)로 이 괘는 흉한 조짐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물에 빠지면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말이지요. ()를 물구덩이라는 의미로 보고 함정(陷穽)으로도 인식을 한 까닭입니다. 우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 살아나오기 어렵겠네.”

강물에 빠져서 급류에 휘말리는 것도 똑같은 의미로 봤습니다. 그런데 간지(干支)에서는 만물을 적셔주고 키워주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화로운 분위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맞아, 그렇지! ()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구나. 그런 거지?”

채운이 장단을 맞췄다. 그 사이에 염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수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고 해도 실체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역경에서는 현실적인 면에서 바라봤고, 오행에서는 이상적인 면에서 바라본 감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물으신 것은 역경의 관점이므로 그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수()는 검은 것입니다. 흑색(黑色)이라고 하니까요. 검은 것은 항상 위험합니다. 소인배(小人輩)이고 음모(陰謀)이고 함정이라는 의미는 여기에서 파생(派生)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 있던 채운이 말했다.

역시! 우리에겐 염재가 있어서 뭐든 물어보면 답이 나오니 다행이야. 호호~!”

원래 우레는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물 밑에 갇혀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속에 잠겨있는 태아(胎兒)와 같습니다. 물론 그 물은 모태(母胎)의 양수(羊水)가 되지요. 태아가 뱃속에서 편히 쉬고 있을 적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열 달을 채우고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자궁(子宮)에는 벽력(霹靂)이 일어납니다.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듯이 태내(胎內)에서 요동치고 난리가 나는 것이지요. 그 순간이 되면 온 가족은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아기가 산도(産道)를 통해서 잘 태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아기는 물론이고 산모(産母)도 위험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엄머! 염재의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벼락을 치듯이 그 분위기의 긴박함이 느껴지네. 그냥 막연하게 준괘(屯卦)’라고만 알았는데 그렇게 긴박한 상황이 그 안에 있었다는 말이었구나. 그래서?”

그런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준()의 상태이지요. 아직 결말은 모릅니다. 아기가 태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지요. 태동(胎動)은 무사평온한 상황이었지만 산통(産痛)이 일어나면 비로소 물속은 격랑이 일어나고 태중(胎中)은 번개가 치는 것이지요. 이렇게 위험한 장면이 준입니다. 호랑이가 함정에 빠진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염재의 말을 들으며 재미있어하던 수경이 말했다.

아하, 그래서 염재가 오는 것을 보고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나 보다. 오늘 저녁에 염재가 백차방에 들어온 것이야말로 수뢰준이잖아? 호호~!”

그러자 채운도 웃으며 말했다.

맞네, 공부하다가 소화도 시킬 겸 차 한 잔 마시려고 왔는데 이렇게 엄청난 숙제를 안겨주니 말이야. 정말 수뢰준은 이런 것이었구나. 그나저나 주역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어? 완전히 빠져들게 생겼잖아. 호호호~!”

채운의 말을 받아서 수경이 말했다.

그렇구나. 글자만 봤을 적에는 뭔가 딱딱하고 의미도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오늘 함정에 빠진 호랑이 덕에 말랑말랑해진 이치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겪어보니 참 신기하고도 재미있네.”

염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염재가 오늘 저녁에 생각지도 못했던 밥값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수뢰(水雷)의 의미는 이해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채운이 염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 아까 낮에는 준()의 의미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 염재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과연 수뢰(水雷)의 의미에서 이미 험난하다는 의미가 깊이 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겠네. 공자가 말년에 주역에 빠졌었다는 의미도 더불어서 이해가 되네. 그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 같은 생각조차 드는걸. 나도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공부할 것이 많으니 잠시도 게으름을 부릴 겨를이 없잖아.”

그러자 우창이 웃으며 채운에게 말했다.

게으름이라고? 하하하! 그것이야말로 학인의 사치지. 그러니까 가끔은 게으름도 부리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것도 좋은 거야. 게으름에 빠진다면 공부는 끝난 것이지만 가끔 게을러 보는 것이 공부에 지친 정신에 활력(活力)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음양이 순역(順逆)하는 이치를 잘만 활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래도록 공부하는 비결이니 때로는 사치로 즐기면 된다는 말이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자원이 우창에게 말했다.

, 오늘 싸부가 제재(帝載)와 신공(神功)을 말하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과거의 적천수 대가들의 귀싸대기를 속 시원하게 후려치는 것 같아서 말이죠. 호호호!”

그건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정리한 것에 불과한 것인데 뭘. 오히려 현담 스승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정리해 주셨으니까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설명을 할 수가 있었을 뿐이지.”

우창의 말에 이번에는 춘매가 한마디 했다.

스승님과 태사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구름을 타고 있는 듯했어요. 이렇게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옆에서 목도(目睹)할 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천도(天道)의 핵심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이치는 오행(五行)을 바탕에 삼고 음양(陰陽)의 변화(變化)를 볼 줄 알면 된다는 것이잖아요?”

우창이 춘매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맞아. 춘매가 잘 이해했네.”

그렇다면, 평소에 스승님이 늘 가르쳐 주신 것에서 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자연에서 나무는 목()인 줄을 알고 암석은 금()인 줄도 알고, 물은 수()인 줄도 알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허공의 해는 화()인데 하늘에 있으니 땅의 관점에서 보다가 막혔어요. 춘매가 무엇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요?”

, 그야 하늘에서만 답을 찾아야지. 땅에서 찾으니까 서로 연결된 줄이 엉킨 실타래가 되어버렸네. ()은 바람이고, ()는 온기이고, ()은 냉기이고, ()는 우설(雨雪)이라고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태양은 화()가 되지 않겠어?”

우창의 설명을 듣자 춘매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와우! 역시 모르면 물어야 해요. 정말 명쾌하네요. 그 모두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니 천도(天道)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음양을 넣으면 여름의 태양과 겨울의 태양이 변화하고 봄의 나무와 가을의 나무가 변화한단 말이죠? 그 모두는 천기(天氣)의 영향을 받아서 움직인단 말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것이야 공부하지 않은 일반 사람도 알고 있는 것이잖아요? 애써 공부해서 천도를 알아봐도 정작 무슨 이익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 맞다니요? 애써 공부한 보람이 없다니까요.”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진명에게 물었다. 진명은 저녁 내내 계속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창이 갑자기 화살을 돌리자 흠칫하고는 말했다.

진명이 대신 춘매에게 답을 해 줘봐.”

스승님께서는 말없이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캐보고 싶으셔서 진명에게 물으시는군요. 춘매에게 답을 해 주라고 하시니 간단히 소견을 말씀드려보겠어요.”

그러자 춘매도 진명을 바라봤다.

춘매는 쌀을 솥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에 불을 때면 밥이 된다는 것은 알잖아?”

당연하죠. 진명 언니.”

그때 만약에 어린아이가 있어서 쌀이 어떻게 밥으로 변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말을 할 거야?”

뭘요? 어떻게 쌀이 들어갔는데 밥이 되어서 나오느냐고요? 그러면 그냥 하면 밥이 된다고 해 주죠. 뭐 어려운 일인가요?”

맞아,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지. 그렇다면 내게 그대로 물어봐.”

아하! 알았어요. 언니, 어떻게 쌀이 들어갔는데 밥이 되어 나오죠?”

조화(調和)의 이치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거야.”

예에? 조화의 이치에 의해서라고요? 그건 또 무슨 뜻이죠?”

가령, 쌀을 넣고 물을 붓고 불을 땠는데 항상 같은 밥이 나오나?”

그렇게 간단해요? 때로는 진밥도 되고, 된 밥도 되고, 타기도 하고 설익기도 하죠. 그러니까 잘해야지요.”

오호, 그래?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거야?”

우선 쌀을 봐야죠. 지난해에 생산된 묵은쌀인지 햅쌀인지? 남방에서 생산된 긴 쌀인지, 아니면 북방에서 생산된 동그란 쌀인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곤란하니까요. 남방의 쌀은 화기를 많이 받고 자라서 물을 많이 필요로 하고, 또 그만큼 밥의 양도 많아져요. 그러니까 식구들의 수에서 쌀을 덜 넣어도 밥이 부족하지 않죠. 그러나 북방의 쌀은 물을 적게 먹으면서 밥도 줄어서 쌀을 더 넣어야 밥이 부족한 사태를 면하게 되죠. 여기에 묵은쌀은 물을 더 넣어주고 햅쌀은 물을 적게 넣지 않으면 진밥이 되고 말아요.”

우창은 춘매의 말을 들으면서 내심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과연 생각이 깊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었다. 흥미롭게 춘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 진지하게 말에 귀를 기울이자 춘매도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다만 이것은 겨우 솥 안의 사정일 뿐이죠. 솥 밖에서도 생각할 것은 많아요. 나무가 화력이 좋은 소나무인지 화력이 약한 버드나무인지도 알아야죠. 화력이 강하면 물을 조금 많이 붓고 화력이 약하면 물을 조금 적게 부어야 하거든요. 더구나 바람도 여기에 간여해요. 바람이 앞에서 뒤로 불면 땔감을 앞쪽에다 쌓아야 하고, 바람이 뒤에서 앞으로 불면 이번에는 반대로 나무를 안쪽에다가 쌓아야만 솥에 골고루 열기가 도달해서 잘 된 밥을 식구들에게 줄 수가 있으니까요.”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춘매가 이상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언니, 뭐가 잘 못 되었어요? 왜 말이 없으세요?”

아니, 바로 그거야. 학자는 왜 날이 더운지 언제는 추워질지 언제 새싹이 나고 언제 낙엽이 질 것인지를 공부를 통해서 알고 왜 그런지도 알지. 봄에는 목기(木氣)가 왕성해서 나무에 새싹이 돋고 가을에는 금기가 강해서 낙엽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야. 농부는 이러한 이치를 몸소 깨달았기 때문에 그 작용은 알아도 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 춘매는 지금 이 이유를 소상하게 알고 있잖아.”

?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죠?”

방법(方法)과 이치(理致)의 차이라고나 할까?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릴 줄 아는 것은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고, 봄에 목기가 허공에 가득해서 씨앗을 뿌리면 싹이 자라나는 것을 아는 것은 이치를 아는 것이지. 보통 사람도 다 아는 춘하추동의 이치를 학자가 아는 것도 방법으로 본다면 이치를 모르는 농부와 흡사하지만 생각하는 방향은 다르지. 즉 단지 그 현상만 알고 있는 것은 방법만 알고 있는 것이고, 왜 밥이 설익고 타게 되는지를 그렇게 이치적(理致的)으로 훤하게 알고 있으면 문제가 생겼을 적에 즉시로 바로 잡을 수가 있지 않겠어? 아직도 이해되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거창하게 천도(天道)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말끔하게 가시지 않아서 말이에요.”

오호라! 춘매가 알고 싶은 것이 그것이었구나. 호호호~!”

진명이 비로소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는 듯이 웃고는 말을 이었다.

봄철이라고 씨앗을 심었는데 서리가 내렸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리가 내리면 새싹이 얼어 죽잖아요? 그것도 하늘의 뜻이려니 해야죠. 달리 방법이 있나요?”

춘매는 밥을 하는 데는 통달했으나 농사일에는 잘 모른다는 뜻이야. 농부는 잠을 자다가 서리가 내리면 얼른 나가서 밭의 군데군데에 불을 피우지. 왜 그럴까?”

, 그건 알겠어요. 열기로 서리가 농작물을 얼게 하지 못하잖아요?”

팔자는?”

? 팔자라뇨?”

어떤 사람의 팔자가 봄에 태어난 갑목(甲木)인데 사방천지에 경신(庚申)과 신유(辛酉)가 가득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알죠. 금생수(金生水)로 돌려서 수생목(水生木)으로 생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열기가 너무 없으면 한습(寒濕)으로 치우치니까 화생목(火生木)의 이치도 필요하니까 화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어요?”

맞아, 수레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수레가 부서지면 고칠 줄을 알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냥 버리는 수밖에 없지. 자연의 이치도 이와 같아서 순리(順理)를 알고 나면 그것을 벗어난 것도 바로 알아볼 수 있어서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거야. 말이 길어졌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표면(表面)만 이해한 것과 내면(內面)까지도 알고 있는 것의 차이가 된다고 하겠네. 천도(天道)의 이치는 그 내면까지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니까 참으로 큰 짐을 안겨주는 말이야. 그래서 나도 그 이치를 생각하느라고 천상(天象)과 천도(天道)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봤거든. 눈에 보이는 현상(現象)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치야말로 참으로 중요하기에 제재(帝載)와 신공(神功)을 먼저 관찰(觀察)하라고 했단 말이지. 관찰한다는 것이 뭘까?”

춘매는 그 정도는 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 깊이 생각하면서 살펴보는 것이잖아요. 건성으로 보지 말라는 뜻인 줄이야 왜 모르겠어요. 호호호~!”

그래, 지상(地上)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그냥 바라보는 것과 깊이 살펴보는 것의 차이는 같을까?”

? 그것은 다르겠어요. 그냥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배운 내용 중에서 선관제재여신공(先觀帝載與神功)의 선관(先觀)에 대한 의미를 깜빡했어요. ‘먼저 관찰부터 하라는 말인데 이제야 덤벙대는 춘매의 밑천이 다 드러나네요. 호호~!”

아니야, 누구나 그러니까 말이야. 글자 한 자에 무게가 천만 근이 되기도 하고, 책 한 권의 무게가 새털보다 가볍기도 하거든. 그런데 적천수의 천도장(天道章)에 있는 열네 글자는 그 무게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거워서 저녁을 먹은 것도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춘매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나도 머리가 좀 가벼워지는걸. 고마워. 호호~!”

이렇게 말을 마친 진명이 우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태사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왜 먼저 보라는 선관(先觀)의 대목에 대한 말씀은 생략하셨을까요? 당연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우창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야, 여운(餘韻)을 남기신 거지. 모두 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니까 그랬을 것이네. 그 정도는 충분히 스스로 사유를 통해서 찾아내게 될 것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에 진명도 그 이야기를 찾아서 궁리하고 있었잖은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면 우창이나 고월에게 물으라는 뜻이니 행여라도 우창이 놀고 있을까 봐서 배려하신 것인지도 모르겠군.”

정말요? 참 사려가 깊으신 태사님이시네요.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해시(亥時)가 되어온다는 것을 생각한 염재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늘은 참으로 즐겁고 많은 생각을 한 하루였습니다. 그만 스승님을 놓아드려야 또 내일 소중한 가르침을 청할 수가 있겠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야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확인한 제자들이 서둘러서 우창과 작별을 하고는 자리를 일어났다.

스승님 편히 쉬십시오.”

그래 내일 또 보세나. 하하하~!”

제자들과 작별하고 방으로 돌아가니 서옥은 아들 일석을 가슴에 품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서재로 나와서 오늘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