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 제42장. 적천수/ 2.천지인(天地人)의 의미(意味)

작성일
2024-02-20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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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42. 적천수(滴天髓)

 

2. 천지인(天地人)의 의미(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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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에 생각을 정리한 우창이 합장하고서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 한 말씀으로 학문에 대한 갈증이 춘설(春雪)처럼 녹아버렸습니다. 이제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오행지리(五行之理)에 대해서만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파고 들어가도 되겠습니다. 오늘 너무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뭘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네. 그냥 마음으로 달게 받고 거추장스러운 성의 표시는 생략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네. 한번 보고 말 사이라면 무관하겠지만 날마다 봐야 하는 사이에 거추장스러운 예의는 또 다른 굴레일 따름이니까 말이지.”

현담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말했다.

,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우창의 성향에도 꼭 부합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이어서 대중을 향해서도 말했다.

모든 대중도 이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러다 대중들도 한목소리로 답했다.

,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답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다시 현담에게 말했다.

이제 비로소 공부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모두 스승님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담도 대중이 어느 정도 공부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오광이 따라주는 차를 마시고는 말을 시작했다.

주역(周易)은 건괘(乾卦)로 시작하고 적천수는 천도(天道)로 시작하니 서로 같다고 봐도 되겠지? 처음에 경도가 말한 것이 천도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좋겠군. 고월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고월에게 물었다. 고월이 지명을 당하자 조용히 일어나서 현담의 물음에 답을 했다.

지당(至當)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두 번째의 가르침에 지도(知道)를 담은 것도 주역에서 곤괘(坤卦)를 놓은 것과 같지 않은가 싶습니다.”

옳지! 하나를 물으니 둘을 답하는군. 맘에 들어. 허허허~!”

거듭 말씀을 드린다면, 세 번째로 인도(人道)를 놓은 것도, 주역에서 세 번째의 괘인 수뢰준(水雷屯)을 놓은 것과 서로 통한다는 생각은 해 봤습니다.”

오호! 고월의 공부가 이미 깊었구나. 좋군.”

현담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고월이 다시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 이렇게 물어주시는 것만으로 이미 마음이 상쾌합니다.”

과연 경도가 경방의 후예(後裔)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배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무릎을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역의 의미를 그대로 적천수에 담았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합니다.”

그런데 보통은 수뢰둔(水雷屯)이라고 하는데 고월은 수뢰준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나?”

고월의 답을 듣고서 현담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고월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으로 읽을 때에는 군대가 주둔(駐屯)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친(父親)인 하늘과 모친(母親)인 땅의 사이에서 막 태어난 태아(胎兒)에게 군대가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서 왜 그런 뜻을 사용하는가 하고 궁리하다가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준여(屯如)라고 하게 되면 고난(苦難)을 당하게 되어 허덕이는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태아가 모체를 떠나서 대자연에 떨어진 상황이니 얼마나 힘든 시작이 되겠나 싶어서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고월이 정확히 알고 있었군. 수뢰준(水雷屯)은 수중(水中)에서 우레가 일어남과 같으니 물 밖으로 나올 힘도 없어서 우르릉대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네. 여하튼 천지인(天地人)의 의미를 이렇게 읽었다니 참 놀라운 통찰력이네.”

현담의 말에 고월이 합장을 하고는 말했다.

아닙니다. 누구라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능히 헤아릴 만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있습니다. 어떻게 위대한 하늘과 드넓은 대지에서 태어난 인간(人間)이 그렇게도 왜소(矮小)하고 무력(無力)하고 무능(無能)한 형태를 뜻하는 의미로 나타냈을까 싶은 것입니다. 명색(名色)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일컫는 인간을 말입니다.”

, 그런가? 누가 인간이 위대하다고 했는가? 오히려 무기력하고 무능한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면,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용맹한 힘도 없고, 독수리처럼 예리한 눈과 바람처럼 날아오르는 날개도 없고, 하다못해 험준한 산을 내달리더라도 사슴보다도 무력하고, 심지어는 토끼보다도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인간이 아니던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본즉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월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인간이 위대하다고 했는지요?”

그야말로 자화자찬(自畵自讚)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만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인간은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본 것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라네. 그리고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을 말하는 것일 뿐이지. 그러므로 수행하는 인간은 위대하고 물욕에 사로잡혀서 탐욕을 부리는 인간은 무력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네.”

, 그렇겠습니다. 여기 모인 대중은 위대한 인간이고 오욕에 사로잡혀서 하루를 허둥지둥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잘 것이 없는 인간이란 말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 가르침으로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할 것인지 단박에 깨닫겠습니다. 과연 지혜의 말씀에 탄복(歎服)합니다.”

그렇다네. 그렇기에 수뢰준을 역경(易經)의 세 번째의 괘로 놓은 것이라네. 그래 놓고서 문왕(文王)이 묻지. ‘! 그대는 어느 길을 갈 텐가?’라고 말이네. 이 얼마나 가슴이 절절한 한마디인가?”

준괘(屯卦) 다음에 산수몽(山水蒙)을 놓은 의미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적천수와는 무관하더라도 궁금해서 여쭙지 않고 배길 수가 없어서입니다.”

그야 무슨 상관인가? 궁금하면 묻는 것이라네. 그리고 역경도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우리가 잠시 그 속을 음미한다고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적천수를 배우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유를 얻는 것이 목적인가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겠군. 허허허~!”

고월은 현담의 거침없는 답변에 감탄하면서 얼른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오늘 깨달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산수몽(山水蒙)이 수뢰준(水雷屯)의 다음에 자리한 의미를 알고자 합니다.”

고월의 말을 듣고서 현담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야 선택(選擇)의 기로(岐路)가 아니겠는가? 그대는 정신(精神)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육신(肉身)의 길을 갈 것인가를 묻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나약한 존재인지라. 한꺼번에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가 없다네. 그래서 처음에 방향을 세간(世間)이냐 아니면 출세간(出世間)이냐로 정하게 되는데 산수몽(山水蒙)이 무슨 뜻인가? 입히는 것이지 않은가? 무엇으로 입힌단 말인가? 벌거벗은 아이가 세상에 고고성(呱呱聲)을 울리며 태어났네. 그 아이에게 무엇을 입히겠는가?”

그건 아마도 옷을 입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어떤 옷?”

고월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현담은 몰아칠 적에는 숨을 쉴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이 질문을 퍼부었다. 고월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사량(思量)과 분별(分別)을 할 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내면의 영감을 끌어내려는 시도였다는 것을. 그래서 최대한 빨리 답을 해야만 했다. 이것은 선사(禪師)가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이기도 했다.

()과 어울리는 글자는 계몽(啓蒙)입니다. 괘명(卦名)이 산수몽(山水蒙)인 것은 분명히 고인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현자(賢者)를 만들고 지자(知者)를 만들어서 몽매(蒙昧)한 중생을 이끌어가는 성인(聖人)이 되는 첫걸음을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몽()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옳지! 옷은 심상(心象)을 의미한다네. 몸은 누구나 동등하게 주어졌네.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고 태어났으니 말이네. 여기에 상인(商人)의 옷이냐, 관리(官吏)의 옷이냐, 아니면 철인(哲人)의 옷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 택하는 것이지. 부모가 어린 시절에는 권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욕망대로 가게 될 것이니 말이네. 그래서 어릴 몽()의 의미는 어리석은 존재인 인간이지만 성현(聖賢)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배워서 현명하게 살아가라는 의미가 될 것이니 고월이 이해한 것도 무리가 없군. 잘 생각했네.”

그런데 스승님, 말씀을 듣고 보니 욕심이 자꾸 생깁니다. ()을 알고 나니까 그다음의 괘인 수천수(水天需)가 또 궁금해집니다. ()는 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무엇을 구한단 말입니까? 몽매(蒙昧)를 벗어나기 위해서 계몽(啓蒙)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사람을 찾으라는 의미입니까?”

허허허~! 고월은 이미 역경의 핵심에 근접했다네. 허허허~!”

아하! 고월의 생각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다면 스승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스승이 찾아오지 않으니까 찾아야죠. 배가 고픈 아이는 밥을 찾고 마음이 고픈 아이는 가르침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 모인 대중들은 마음이 고파서 이렇게 스승님의 가르침에 정신을 기울이고 지혜를 흡입(吸入)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번에는 현담도 고월을 다그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계속 이야기하라는 뜻이었다. 그 뜻을 알고는 고월이 말을 이었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습니다. 다섯 번째의 수()를 지나면 여섯 번째가 송()입니다. 천수송(天水訟)의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어디 대중을 위해서 설명해 보려나?”

! ()은 말씀[]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청(官廳)에서도 송사(訟事)하여 진위(眞僞)를 가려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같이 말입니다. 집행이 공평(公平)해야 하는 것과 같이 말의 진실을 가려서 받아들일 소중(所重)한 것은 받아들이고 물리칠 사특(私慝)한 것은 물리치면서 가려내는 능력을 기르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일단 분별력(分別力)을 키워야만 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예전에는 천수송(天水訟)을 보면서 위가 하늘이고 아래가 물인데 왜 쟁송(爭訟)을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만 하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스승님의 한 수에 얽혔던 의문들이 봄눈처럼 풀리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고월은 제칠괘 까지는 가야 할 모양이로군. 허허허~!”

, 그렇습니다. 말의 진실을 가려낼 줄을 안 다음에서야 비로소 스승을 찾으라는 의미가 바로 일곱 번째의 괘인 지수사(地水師)로군요. 말을 가릴 줄도 모른다면 스승을 만나더라도 올바른지 사악한지를 구분할 수도 없을뿐더러 스승을 잘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존귀함을 모르고 맹종(盲從)만 할 테니 그것도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기에 송()을 거쳐서 사()에 이르는 것이 맞는다고 길을 닦아놓은 것이 분명하겠습니다. 역경의 순서에 이러한 의미가 들어있는 줄은 오늘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한 고월이 다시 현담에서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까지 알았으면 그다음은 현담에게 묻지 않아도 스스로 풀어낼 수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현담도 미소를 짓고는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우창은 고월이 이야기하다가 말고 자리에 앉은 이치를 알겠는가?”

우창은 화들짝 놀랐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느라고 얼이 빠져 있다가 갑자기 묻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대중들이 기대하고 있는데 그냥 얼버무릴 수는 없어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봤다. 지수사(地水師)에서 멈췄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기에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했다.

스승님, 잠깐만 생각하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우창이 잠시 생각했다. 하늘과 땅의 건곤(乾坤), 그사이에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길을 찾는 데는 준몽(屯蒙), 그리고 찾아서 배우면서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가릴 줄 알면 수송(需訟), 그다음에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스승을 찾는다는 사(),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월이 말을 멈춘 의미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현담을 향해서 말했다.

스승님 생각해 보니까 고월이 딱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한 것을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수사(地水師)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다음은 아직 가보지 않아서 모르니 이제부터 스승님의 가르침을 뗏목으로 삼고자 하니 모든 것을 믿고 내맡기겠습니다.”

우창도 이렇게 말하고 합장한 다음에 자리에 앉자 고월이 우창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바로 맞췄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손을 들고는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의 가르침에 가슴이 뜁니다. 고월 스승님과 우창 스승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의 등불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 주역의 강()과 명리의 산()을 자유롭게 누비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고 또 자극도 받았습니다. 더욱 열심히 분발해서 정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주제넘게 한 말씀 올렸습니다.”

염재도 이렇게 말하고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염재에게 물었다.

그대는 호를 어떻게 쓰는고?”

현담이 염재에게 묻자. 다시 일어나서 말했다.

! 이름은 도대림(陶大臨)이고 호는 염재(念齋)입니다.”

, 그래, 열심히 정진하게나. 총명하군. 허허허~!”

고맙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염재가 배례(拜禮)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대중을 둘러보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얼굴은 평온하면서도 기뻐하는 기색이 풍겨 나왔다. 그 모습으로 차를 한 잔 더 마시고서 잠시 틈을 둔 다음에 대중을 향해서 말했다.

고월이 주역을 물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나 어찌 진리가 둘일 수가 있으랴. 세상의 모든 이치는 하나로 통한다네. 학문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어떤 학문을 공부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이느냐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라네. 결국 모든 학문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안다면 말이네. 심지어 활을 쏘고 칼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조차도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정자(爲政者)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군대를 끌고 이웃 나라를 침범하여 말의 등에서 잠을 자고 깨기를 반복하는 고단한 삶을 살다가 떠나기도 하지. 그대들은 학문의 길로 들었으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네. 이제부터 주제는 적천수가 되겠지만 진지하게 삶과 길과 자연의 이치를 토론하며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즐겁기만 바라네.”

현담의 말에 모두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우창이 일어나서 말했다.

스승님, 적천수의 천도(天道)를 이야기하다가 말고 갑자기 주역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또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면서 누비는 시간이 너무 즐겁습니다. 또다시 천도로 돌아와서 말씀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의 길이라고 하겠는데 여기에 적힌 구절은 염재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서 염재를 돌아보자 염재가 일어나서 낭랑한 음성으로 천도장(天道章)을 읽었다.

 

욕식삼원만법종(欲識三元萬法宗)

선관제재여신공(先觀帝載與神功)

 

이렇게 읽고는 자리에 앉아서 현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현담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어디 우창이 보이는 대로 해석을 해 보겠나? 번거롭게 일어날 필요 없으니 그 자리에서 화답하게.”

그러나 우창은 일어나서 말했다.

아닙니다. 제자가 일어나서 대중이 잘 들리도록 말을 해야 하겠기에 일어나는 것이며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 그렇군. 알았네. 천도장의 글은 무슨 뜻인가?”

제자가 이해하기로는, ‘천지인(天地人)의 이치가 세상의 모든 것과도 통하는 이치임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제재(帝載)의 오행(五行)과 신공(神功)의 음양(陰陽)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천도(天道)에서 삼원(三元)을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 그 생각은 못 해 봤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천도(天道)를 논하려면 천원(天元)에 대해서만 알면 될 텐데 무슨 연유로 지원(地元)과 인원(人元)까지를 포함했을까요?”

우창은 예전부터 적천수를 볼 때마다 의문이 생겼던 것을 물었다. 그러자 현담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것은 처음이고 시작이니까 포괄적으로 말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가령 이런 느낌일 수도 있을까? ‘그대는 지금 거대한 간지(干支)의 바다를 바라보고 항해하기 위해서 작은 조각배를 타려는 존재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세상으로 여행하듯이 바다를 무사히 건너려면 먼저 뭘 갖춰야 할까? 그것은 바로 제재와 신공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하는 것이라는 뜻이네.”

우창은 현담의 설명이 간명하면서도 핵심을 잘 짚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적천수의 이치에 대해서 그 본바탕을 적확(的確)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궁금했던 부분이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명쾌해졌습니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였군요. 그것을 왜 천도장(天道章)에서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른 말로 이해한다면 하늘을 여행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겠느냐?’고 하는 것과 통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천도는 천간(天干)이라고 하는 말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 천도(天道)가 천간(天干)을 말하는 것이라고? 허허허허~!”

우창의 말을 듣자마자 현담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제자들은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이해되지 않아서 눈만 멀뚱거릴 따름이었다. 우창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웃고 난 현담이 정색하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천간의 이야기는 천간론(天干論)에서 충분히 논할 텐데 왜 천도장에서 그것을 언급했을 것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군더더기의 해석이지 않으냔 말이지. 안 그런가?”

여태 그것을 몰랐습니다. 참으로 밝은 스승님의 탄지공(彈指功)이 우둔한 제자의 10년 궁리보다 영험하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하하~!”

우창과 현담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월이 손을 들고 말했다.

여태까지 고월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천지인(天地人)은 다른 말로 우주(宇宙)를 말하고 천지자연(天地自然)을 말한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좁은 소견으로 천도(天道)는 천간(天干)이고 지도(地道)는 지지(地支)이며 인도(人道)는 지장간(支藏干)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비로소 적천수의 비밀이 하나씩 풀려나려나 봅니다. 감동입니다.”

비밀이라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네. 단지 알거나 모르거나 할 뿐이지. 깨달은 자가 감추면 비밀이 되는 것이고 내어놓으면 학문이 될 따름이라네. 나눔을 즐기는 보살(菩薩)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무엇이든 모두 쏟아낼 것이고, 옹색한 독각(獨覺)은 홀로 움켜쥐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즐기다가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일 뿐이라네. 허허허!”

현담의 말에 모든 대중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학문은 누리는 것임을 이렇게 간명하게 설파하는 가르침은 처음 접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우창이 현담에게 물었다.

스승님. 그렇다면 다시 풀이해야 하겠습니다. ‘천지자연의 이치를 알고자 한다면 제재(帝載)와 신공(神功)을 먼저 볼지니라.’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현담이 한마디로 동의했다. 그러자 우창은 다시 또 질문을 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재(帝載)를 혹자(或者)는 오행(五行)이라고 하고, 혹자는 음양(陰陽)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제재가 오행이라면 신공(神功)은 음양이 되고, 제재가 음양이라면 신공은 오행이 될 것이므로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우창의 질문에 미소를 짓던 현담이 차를 마시고는 다시 말했다.

왜 아니겠나. 옛날에도 그와 같은 해석으로 분분했었던가 보더군. 태극(太極)의 다른 이름을 제재라고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관점이 있다네. 그렇다면 옛말에 매이지 말고 어디 생각해 보려나? 글자로 풀이한다면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 그러니까 역경에서 말하는 것은 논하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해 보란 말씀이시지요? 잘 알겠습니다. 우선 제재(帝載)의 제()는 임금입니다. 천하의 절대적인 존재로 상황에 따라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직 비교의 대상이 없는 존재일 따름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음양이라고 하기는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왜냐면 음양은 수시로 양극음생(陽極陰生)하고 음극양생(陰極陽生)하게 되는데 임금이 그와 같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재()는 수레입니다. 왕의 수레는 앞으로만 나아갈 뿐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변화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재를 오행(五行)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것이 태극의 이치와 다르다고 하니 고인의 가르침에 거역(拒逆)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불경(不敬)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현담이 진지하게 물었다.

우창! 어제가 중요한가? 아니면 오늘이 중요한가?”

그야 오늘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묻겠네. 어제의 가르침이 중요한가? 아니면 오늘의 깨달음이 더 중요한가?”

가르침도 깨달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진대 오늘의 깨달음에 비유할 어제의 가르침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타(佛陀)의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더라도 오늘의 깨달음에 비교하면 작은 반딧불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군. 그 이치는 알면서 옛날에 누가 한 말인지도 분명치 않은 것에 갇혀서 오늘의 깨달음을 의심하는 것은 과연 현명한 사람이 할 생각인가?”

그러시다면 스승님께서도 제재는 오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신공(神功)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를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춘추(春秋)와 하동(夏冬)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오행은 하늘의 주체이고 사계절은 하늘의 신공이라고 하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이를 일러서 천도라고 한다는 말입니까?”

우창은 오래전부터 내심으로 궁금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말끔히 정리하려는 듯이 다시 현담에게 물었다. 현담도 그것을 이해했는지 조용히 그리고 힘찬 어조로 설명했다.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않은가? 오행은 절대적인 존재라서 왕과 같이 변화하지 않으며 비교의 대상도 없으니 당연히 제재(帝載)이고, 음양은 날마다 변하고 달마다 변하며 계절에 따라서 변화가 무궁하니 이것을 일러서 신공(神功)이라고 한단 말이네. 그래서 춘절(春節)에는 신통력(神通力)을 발휘하여 삼라만상이 부활(復活)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신공(神功)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추절(秋節)에는 삼라만상이 휴식(休息)을 취하여 동면(冬眠)을 하게 되니 이 또한 신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그러니까 고인의 가르침은 참고(參考)는 하되 다 믿고 끌려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구습(舊習)에 매이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네.”

현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다시 합장하고는 물었다.

실은 제자가 갖고 있었던 적천수에서도 제재(帝載)를 음양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왜 그렇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오늘 스승님께서 명쾌하게 풀이해 주시고 그것이 맞는다고 하시니 십 년 체증이 일시에 뚫리는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학문에는 왕도(王道)가 없네. 단지 깨닫는 자가 왕이 되고, 어제 깨달은 자는 오늘 깨달은 자에게 왕위(王位)를 물려주고 조용히 물러갈 따름이라네.”

이제야 비로소 천도장의 시구(詩句)가 완전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말끔해졌습니다. 이제 의문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적천수의 천도장에서 말끔히 해결하다니 망외소득(望外所得)입니다.”

그런가? 축하하네! 허허허~!”

큰 강당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우창과 현담의 이야기에 취해서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노닐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