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제42장. 적천수(滴天髓) / 1.적천수를 쓴 사람

작성일
2024-02-1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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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42. 적천수(滴天髓)

 

1. 적천수(滴天髓)를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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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講堂)은 현담이 등장한다는 것으로 인해서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단상(壇上)에서만 만나던 우창(友暢)과 고월(古越)이 청중(聽衆)의 자리에 함께 앉았다는 것부터였다. 일상적인 것에는 익숙했던 오행원의 제자들이 문득 생소한 분위기를 느꼈을 때 여느 때와 또 다른 기대감이 생기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고월도 춘매와 함께 앞쪽에 앉아서 현담이 등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담이 적천수를 두고 간 사이에 염재를 시켜서 오행원의 제자들이 모두 필사(筆寫)를 했는데, 오늘은 그것을 앞에 펼쳐놓고서 현담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여전히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광이 찻잔을 들고 현담과 함께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우창과 고월이 일어나서 공수하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담이 단상에 앉자 염재가 말했다.

현담 태사님께 경례(敬禮)~!”

모두 염재의 구령에 따라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태사님을 뵈옵니다~!”

염재가 다시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모두 자리에 앉느라고 어수선한 시간이 잠시 지나가자 넓은 강당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우창이 일어나서 대중에게 말했다.

오늘부터는 현담 스승님을 모시고 적천수(滴天髓)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삼고 오행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혹 이야기 중에 궁금한 것이 있더라도 일일이 이야기를 나누면 혼란스러울 수가 있으니 쪽지에 적어서 염재에게 전해 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염재가 대신 정리해서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서 모두 궁금할 만한 내용은 고월 사부와 우창이 그때마다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귀한 가르침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말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대중을 훑어보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셔서 입을 축이고 말을 꺼냈다.

어험! 그대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가 참 좋군. 예전부터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 꿈이 이뤄졌으니 나도 무척이나 기쁘네. 그대들에게 우창과 같은 스승을 만나서 수행하는 인연을 축하하네. 내가 비록 공부는 미약하고 깨달음은 더욱 부족하네만 열정은 여러분보다 못지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전달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네. 그런데 태사라는 호칭은 듣기에 거북하군. 다른 호칭이 없나?”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이 잠시 생각하는데 염재가 일어나서 대신 말했다.

태사님께서 태사(太師)님이 되셔야 우창 스승님과 고월 스승님의 위신이 조금 살아납니다. 아니면 태사님을 큰 스승님이라고 하는 것은 좋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창 스승님은 작은 스승님이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오호!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그럼 모두가 편한 대로 하지. 우선 이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내력(來歷)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 줘야 하겠지?”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때가 묻어서 거의 검은 빛이 되어버린 책을 한 권 쳐들어서 대중에게 보여줬다. 대중들은 이미 필사하느라고 익숙하게 알고 있는 책이기도 했다. 표지에는 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 침을 삼키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책의 이름은 삼명기담적천수명학지남(三命奇談滴天髓命學指南)이라고 하네. 다만 이름이야 아무렴 어떤가. 실로 이 책에는 여러 가지의 이름이 붙어있으니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앞으로는 적천수(滴天髓)’라고 부르겠네.”

이렇게 말을 꺼내놓고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오광이 뜨거운 차를 잔에 채웠다. 그러자 우창이 대중을 대신해서 현담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여러 가지의 이름이라고 하시니 어떤 것인지 한 번은 들어보고 싶습니다. 책의 이름에 따라서 내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할 것으로 짐작은 됩니다만, 아마도 필사(筆寫)하고 전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생겼을 것이고, 저마다 의미를 주해(註解)하면서 또 달라지고 변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대략적(大略的)으로 이름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면 정리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찻잔을 놓으며 미소를 짓던 현담이 우창의 질문에 말했다.

내가 예전에 가르쳐 본 제자들은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는데 오늘 우창의 질문을 받고 보니 흐뭇하기 짝이 없네. 과연 무엇이든 흘려보내지 않고 차곡차곡 정리하려는 열정이 보이는군. 그럼 대략적으로나마 말을 할 테니 잘 들어보게. 그보다도 더 궁금한 것이 있을 텐데?”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실은 이러한 글을 남기신 고인(古人)은 어떤 분인지가 더 궁금합니다. 다만 부족한 소견으로는 알아볼 방법이 없어서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막혔던 체증(滯症)이 쑥 내려가겠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독서법(讀書法)이란 원래 그렇다네. 처음에는 글을 읽고, 다음에는 글을 쓴 사람을 읽고, 마지막으로 그 글을 읽는 자신을 읽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 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우창이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이야말로 적천수를 쓴 선생을 제외하고 무엇이 있겠느냔 말이지.”

우창은 자신의 폐부(肺腑)를 꿰뚫어 보는 듯한 현담의 통찰력에 소름이 돋았다. 실로 그러한 생각은 늘 있었지만 이렇게 곧바로 그것에 대해서부터 말을 하겠다니 이보다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이제야 적천수를 지은 경도(京圖) 스승님에 대해서 뭔가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 글을 남기신 고인은 경도(京圖)라고 하신다네. 성은 경()이요 이름은 도()인데, 혹 경()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서울 경()을 쓰는 성씨가 또 있었던가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우창이 과문(寡聞)한 까닭인가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모르겠다고 하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월이 손을 들고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하문(下問)하시는 것은 혹 경방(京房) 선생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고월이 이해하기로 경방(京房)을 제외하고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고월이 이렇게 답하자 현담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역시! 고월의 박학다식(博學多識)이 예사롭지 않구나. 허허허~!”

현담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자 우창이 고월을 향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서 보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고월도 미소로 답하고는 다시 현담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렇다네. 고월이 말했듯이 경방(京房)은 이미 아득한 전설이 되어버린 고인(古人)이지. 역경(易經)을 새롭게 해석하여 경방역전(京房易傳)을 저술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현담이 고월의 말에 답을 하자 이번에는 우창이 물었다.

예전에도 경방역전이라는 서명(書名)은 들어봤으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조금만 이해를 위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가? 아마도 그럴 것이네. 오행원의 주된 공부는 간지(干支)일 테니까 말이지. 경방은 역경의 철학적인 영역에서 점서(占書)의 활용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네. 그가 생각했던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죽은 학문이었다고 본 것이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훌륭하셨습니다. 학문은 박제(剝製)가 된 동물의 껍질이 아니라 생생하게 피가 돌고 호흡하는 존재라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 역학(易學)에서는 경방을 유학(儒學)의 공자만큼이나 비조(鼻祖)로 삼는다네. 전설상의 복희(伏羲)나 주대(周代)의 문왕(文王)이 있지만 실제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서 고심한 것은 아마도 경방을 능가할 고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우창은 그러한 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여태 한 공부가 모두 하룻강아지의 수준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네. 비록 역경에 능통했던 경방도 자기가 거처할 집을 짓는 방법은 몰랐을 테니까 말이지. 저마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라네. 허허허~!”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창안하셨습니까? 비록 의미는 모르더라도 대략 뜻이나마 이해하는 것으로도 제자들의 안목이 넓어지겠습니다.”

오호~ 그런가? 항상 배운다는 것은 즐겁기만 하지.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육십사괘(六十四卦)를 팔궁(八宮)에 배속(配屬)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이로 말미암아 육효법(六爻法)을 활용해서 풀이하는 점술(占術)이 생기게 되었고, 소강절(邵康節)이 이 방법을 활용하면서 궁리한 끝에 다시 매화역수(梅花易數)를 창안했던 것도 기실 알고 보면 여기에 뿌리를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말이지. 더구나 그의 놀라운 업적은 음양(陰陽)에 오행(五行)을 배속시켰다는 점이라네. 간지(干支)는 오행을 위주(爲主)로 하고 음양을 보조로 하지 않은가?”

우창이 역경에 오행론을 도입했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원래부터 오행이 역경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까? 너무나 익숙하게 오행의 이치가 역경에 있는 것으로 여겼는데 오늘 새로운 가르침을 배웁니다.”

그렇다네. 역경은 음양으로 바탕을 삼고 길흉을 예측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던 경방이 오행론을 접목해서 상대적인 길흉(吉兇)으로 나뉘었던 풀이의 변화를 다섯 가지로 확장하면서 주역의 풀이에는 날개를 단 형국이 되었다네.”

과연 명인이십니다.”

경씨(京氏)는 원래 성이 이씨(李氏)였는데 스스로 경으로 바꿨다더군. 문자(文字)와 학문으로 연구했던 당시의 풍조에 납갑(納甲)을 적용하고 여기에 더해서 직관적(直觀的)인 영감(靈感)까지 영역을 추가해서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던 것이라네.”

우창은 현담의 말을 들으면서 팔궁(八宮)이라는 말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자평(子平)에서도 팔궁(八宮)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경(易經)에도 팔궁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今始初聞)이어서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창의 말에 현담이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뭐라고? 자평에 팔궁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야말로 듣느니 처음이로군. 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게.”

아니, 우창은 스승님의 말씀이 더 궁금합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궁금하니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네.”

우창은 현담의 말에 감동했다. 이렇게 명학(命學)에 정통(精通)한 고수(高手)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말을 들으면 바로 해결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전해지는 느낌이 새로웠다. 보통은 새로운 이야기를 듣더라도 겉으로는 에헴!’하고 점잔을 빼기 마련인데 이렇게 소탈(疎脫)한 모습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승님께서 관심을 보이시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해를 위해서 간단히 글자를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마친 우창이 앞에 마련된 붓을 들어서 글자를 써서 현담에게 올렸다.

 

 

 

  

우창이 탁자에 올려주는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들여다보고는 우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천간(天干)을 보니 시간(時干)부터 편인(偏印)이 비견(比肩)을 생하고, 비견은 식신(食神)을 생하고, 식신(食神)은 편재(偏財)를 생하는 것이 맞나?”

,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지(地支)는 시지(時支)부터 상관(傷官)이 정재(正財)를 생하고 정재는 정관(正官)을 생하고 정관은 정인(正印)을 생하는 것도 맞겠군?”

이렇게 확인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이 동의했다.

맞습니다. 또 간극지(干剋支)의 구조로도 되어있습니다.”

으흠...... 그렇군. 그런데 편관(偏官)과 겁재(劫財)는 어디로 갔는가?”

역시! 스승님의 통찰력은 예리하십니다. 그것을 바로 찾아내시네요. 겁재는 비견의 뒤에 숨고 편관은 정관의 뒤에 숨어있습니다. 겁재가 비견의 뒤에 숨어있는 이치는 누구나 평상시에 그 마음은 비견으로 강개(慷慨)한 마음을 갖고 있다가 탐욕(貪慾)이 발동하면 순식간에 겁재로 변하는 까닭입니다.”

현담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다가 바로 그 의미를 깨닫고서는 말했다.

오호! 재미있군. 그러니까 편관은 월지(月支)의 정관에 숨어있다가 질서를 무너트리면 바로 튀어나온단 말인가? 마치 항아리에 갇혀있던 108요괴(妖怪)가 뚜껑이 열리면서 뛰쳐나오듯이?”

그렇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이십니다. 하하~!”

아니, 그렇다면 이것은 심령(心靈)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닌가?”

참으로 예리하십니다. 맞습니다.”

오랜만에 감탄했네. 내가 우창에게 가르칠 것이 없겠군.”

그럴리가 있습니까? 스승님께서는 적천수에 정통(精通)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창은 그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 자평팔궁(子平八宮)이야 이미 스승님께서도 바로 살피셨으니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현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겠네. 적천수야 내가 아는 데까지 알려주겠지만 명리학(命理學)의 팔궁론(八宮論)은 참으로 오묘하군. 다음에 조용히 그 의미를 배우도록 하겠네.”

당연하지요. 무엇이든 하문하시면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서 역경의 팔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현담은 잠시 흥분되었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았네. 경방이 역괘(易卦)를 팔궁에 배속한 것은 음양학(陰陽學)에 오행론(五行論)을 끌어왔기 때문이라네.”

아니, 그렇다면 경방의 이전에는 역경에 오행론이 포함되지 않았었단 말씀입니까? 그것은 참으로 의외입니다.”

그야 모르지. 다만 암암리에 나름대로 적용은 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공식적으로 배속(配屬)하여 적용한 사람은 경방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네.”

그렇군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자평(子平)에서 조종(祖宗)으로 삼고 있는 오행(五行)의 이치가 그렇게 흡입되었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팔괘의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고, 예를 들어서 팔괘(八卦)가 각 궁의 대표라네. 예컨대, 건궁(乾宮)을 예로 든다면, 여기에 소속된 팔괘(八卦)는 첫째로 중천건(重天乾), 둘째로 천풍구(天風姤), 셋째로 천산둔(天山遯), 넷째로 산화비(山火賁), 다섯째로 풍지관(風地觀), 여섯째로 산지박(山地剝), 일곱째로 화지진(火地晉), 마지막으로 여덟째는 화천대유(火天大有)가 모두 건궁에 속하는 것으로 배속했지.”

현담의 이야기를 듣고 우창이 잠시 쉴 틈을 주기 위해서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나마 귀동냥으로라도 역괘(易卦)를 알아뒀던 것이 이렇게나 유용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귀에 들어와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의 괘()도 자신을 포함해서 8개의 괘를 거느리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잘 이해했네.”

그런데 여기에 어떤 오행이 자리를 잡는 것인지요? 궁은 여덟인데 오행을 배속시킨다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경방의 탁월한 감각과 천부적(天賦的)인 재능이 발휘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군. 건궁(乾宮)은 경금(庚金), 태궁(兌宮)은 신금(辛金), 이궁(離宮)은 병정화(丙丁火), 진궁(震宮)은 갑목(甲木), 손궁(巽宮)은 을목(乙木), 감궁(坎宮)은 임계수(壬癸水), 간궁(艮宮)은 무토(戊土), 곤궁(坤宮)은 기토(己土)로 나뉜다네.”

정말 재미있습니다. 천간의 오행이 나오니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활짝 열립니다. 역시 문제는 수화(水火)로군요. 목토금(木土金)은 음양(陰陽)으로 되어있는데 유독 수화(水火)는 겹쳐서 놓으니까 자연스럽게 팔괘에 오행을 배속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역시 경방은 대가(大家)임을 알겠습니다.”

오호! 그것을 바로 느낀단 말인가? 나는 그 이치를 생각하느라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골몰(汨沒)했는데 참으로 우창은 천재가 아닌가. 허허~!”

현담이 놀랍다는 듯이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그보다도 하필이면 수화(水火)를 음양으로 나누지 않고 겹쳐서 배속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왜 그랬겠는가? 팔괘(八卦)에 배속하려고 궁리하다가 그 묘리(妙理)를 터득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네. 만약에 간법(干法)처럼 팔괘가 아니라 십괘였더라면 당연히 수화(水火)도 음양으로 나뉘었겠으나 어떻게 해서라도 팔괘(八卦)에 집어넣어야 했을테니 얼마나 고심을 했겠느냔 말이지. 그러다가 문득 수화는 이미 치우쳤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으리라고 짐작해 보네. 그러니까 수()는 극음(極陰)이요 화()는 극양(極陽)인지라 음양(陰陽)으로 나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테니, 이렇게 하나씩 배속하고 나서야 십괘(十卦)가 아닌 팔괘(八卦)의 구조에도 딱 부합하여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네.”

참으로 절묘(絶妙)합니다. 수화(水火)는 도()가 없다는 이치는 대략 짐작됩니다. 그렇게 해서 오행을 배속하는 것이로군요. 과연 경방의 탁월한 직관이 느껴집니다. 이미 오행의 이치에도 정통(精通)했다는 것을 미뤄서 능히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다행이로군. 혹여 이해되지 않는 다른 학인들도 시간을 두고 궁리하면서 토론하다가 보면 자연히 깨닫게 될 것이니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가름하겠네.”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경방이 활약한 전한(前漢)을 지나서는 경씨(京氏)가 사라졌다가 송대(宋代)가 되어서 비로소 경도(京圖) 스승님이 강호(江湖)에 출현하셨던 것입니까? 그 긴 세월 동안의 묻힌 사연은 추론(推論)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경방(京房)은 역학(易學)의 명저(名著)를 남기셨고, 경도 스승님은 명학(命學)의 명저를 남기셨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라고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략 1천 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서 말이지요.”

그렇군.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내 생각으로는 경방의 후신(後身)이 바로 경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봤지.”

현담의 말에 우창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했다. 과연 그러한 생각까지도 했다는 현담의 깊은 사유가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스승님께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셨습니까?”

생각으로야 뭔들 못하겠는가? 곰곰 생각해 보니까 역경의 이치를 통달하고 수명이 다해서 세상을 하직한 다음에 다시 시절 인연이 도래하여 태어나고 보니 세상은 바뀌어서 송대(宋代)가 되었더란 말이지. 원래 경씨(京氏)는 은나라의 후손이었는데 망한 왕조의 후예가 발을 붙일 곳은 없었던지라 초야에 은거하면서 자연의 철리(哲理)를 궁리하면서 대대손손(代代孫孫)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짐작해 봤지.”

과연,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조리(條理)가 정연(整然)해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그렇게 되면 음양의 이치를 깨닫고 다시 오행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도 됩니다. 그리고 적천수에도 항상 그 근저(根底)에는 음양(陰陽)의 개념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저절로 공감(共感)됩니다. 우창은 스승님의 통찰력에 감탄했습니다.”

우창은 진심으로 감동해서 말했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전후의 사정에 밝은 스승을 만나본 것이 언젠가 싶은 정도였다. 그야말로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발상(發想)이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말했다.

그런가?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또 때가 되면 서로 만나서 담소(談笑)를 하게 되는 것도 또한 우연이겠는가? 또 누가 알겠나? 그때의 경도가 내 앞의 우창인지도 말이네. 그러니 과거는 그렇게 흘려보내고 우리는 또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면 될 따름이지 않겠나? 허허허~!”

감히 바라지는 못할지언정. 그 언저리에서 세숫물이라도 떠다 드렸던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경도 스승님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 않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현담을 바라보자 현담이 우창에게 말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를 존경한다면 스승님이라는 호칭은 생략해도 되지 않겠나?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네. 그러니 그냥 평이(平易)하게 호칭하세. 앞으로 누구라도 현존(現存)하지 않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라도 경어(敬語)는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 공자나 부처라도 말이네. 허허허~!”

우창은 다시 한번 자질구레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현담의 품성에 매료되었다. 간단명료(簡單明瞭)하게 전해 주고 전해 받는 것만 알차다면 그 방법이나 예의는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창의 답을 듣고는 현담이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대중을 둘러봤다. 제자들은 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 내용에 푹 빠져들어서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우창이 말한 그대로네. 실로 경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네. 오로지 2천여 자()로 된 작은 책만 전해지고 또 전해졌을 따름이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다가 보니까 위작(僞作)이라는 말도 있고, 가탁(假託)이라는 말도 나올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어쩌면 당연히 누군가는 원문(原文)에 덧붙여 자기의 의견도 끼워 넣었을 테지. 그러나 내용이 워낙 심오(深奧)해서 감히 위작이라는 말은 사라졌고, 과연 경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설왕설래(說往說來)하였으나 아무도 그 진위는 살필 방법이 없었지. 실은 경방(京房)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내가 얼마나 경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온갖 궁리를 다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혼자서만 그렇게 정리했던 것일 따름이라네. 허허~!”

그런데 왜 이름이 서로 다르다고 하셨습니까? 한 사람의 저작이라면 이름도 같은 것으로 전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원래의 이름은 적천수(滴天髓)였을 것으로 짐작되네, 그리고 이름이 달라진 것은 이 책의 앞이나 뒤에 붙는 수식어(修飾語)라고 보면 될 것이네. 그래서 거두절미(去頭截尾)하면 오롯이 남는 것은 적천수의 세 글자거든. 그렇기에 여러 판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은 여기에 있는 줄로 알고 있으면 된다네.”

그렇다면 대략 유통되는 판본들의 이름은 어떤 것이 있는지나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궁금합니다.”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으니 괜한 것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지. 내가 알려준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네. 삼명기담적천수명학지남(三命奇談滴天髓命學指南)말이네. 실로 삼명기담(三命奇談)은 명리학(命理學)의 기이(奇異)한 이야기라는 의미이니 수식어가 분명하지 않은가? 또 뒤에 붙은 명학지남(命學指南)은 뭐겠나? 명리학의 안내서(案內書)라는 정도에 불과하니 앞뒤로 붙은 이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네. 그래도 알아야 하겠는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괜한 호기심이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치만 배우면 될 일이라는 가르침에서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오행문(五行門)으로 들어가서 자유로울 텐데 말입니다. 오늘 큰 가르침에 다시 한번 감읍(感泣)합니다.”

우창은 잠시 말을 잊었다. 이렇게 명쾌한 가르침을 접하고 보니까 괜한 것들에 대해서 이해를 해 보겠답시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던 시간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정을 본 현담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지. 왜냐면 그 모든 과정이 어우러져서 오늘의 그대가 있는 것이니 말이네. 생각해 보게. 현담도 오로지 오행만 연구했겠는가? 아니면 오만가지의 잡동사니를 뒤지면서 진리를 찾느라고 온 천지를 방황했겠는가?”

그제야 우창은 자신이 지나온 나날들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보니까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현담을 바라보는데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모두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