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 제41장. 유유자적/ 7.조짐(兆朕)의 진위(眞僞)

작성일
2024-01-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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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 41. 유유자적(悠悠自適)

 

7. 조짐(兆朕)의 진위(眞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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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염재의 질문에 내심으로 무척 반가워하면서 천천히 설명했다.

그래 잘 물었네. 조짐(兆朕)의 진위(眞僞)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네. 조짐이 먼저인지 알고자 함이 먼저인지를 판단하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그런 생각은 염재도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실은 염재도 그러한 생각을 어렴풋하게 했습니다만, 이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계속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더 명쾌한 해답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스승님께서 시간이 있으시면 이점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왔는데 마침 백차방(百茶房)에 모여 계셔서 반갑게 들어온 것입니다.”

염재의 말에 진명은 물론이고, 자원과 연화도 눈빛을 반짝이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짐의 이야기라면 사양을 할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원이 먼저 말했다.

싸부, 염재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도 그에 대해서 생각해 봤던 것도 떠올라 관심이 커지네요. 조짐(兆朕)과 현상(現象)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보면 조짐이 먼저인 것도 같고 또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도 같아서 정리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조짐에도 허실(虛實)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염재가 그것을 콕 짚어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어요. 싸부의 설명이 기대되네요. 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어서 말을 해 달라는 재촉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우선 조짐(兆朕)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겠군. ()는 점괘(占卦)도 의미하지만 1()1() 배가 된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억조창생(億兆蒼生)이라고 할 적에 그 조()는 바로 1억의 1만 배에 해당하는 의미란 말이지. 재미있는 것은 조짐에 이러한 글자가 붙어있다는 것이 아닐까?”

우창의 말을 듣자 염재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그런 뜻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징조(徵兆)가 있다는 의미를 머금고 있었는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런가? 그러니까, ‘()’의 뜻에는 무수히 많은 경우라고 이해하면 되겠지? 다음에 짐()을 볼까? 이 글자의 뜻은 라는 뜻이지만 그 나는 보통의 자신이 아니라 황제가 자신을 가리킬 적에만 허용하는 뜻임도 생각해 봤나?”

우창의 말에 염재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 어떻게 두 글자 속에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뜻이 들어있을 수가 있습니까? 생각을 해 볼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 의미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러니까 직역(直譯)하면 억만(億萬)의 황제(皇帝)’라는 뜻이고,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갖는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지? 말이 쉬워서 조짐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조짐에는 이렇게나 많은 조짐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단 말이네. 하하하~!”

이번에는 진명도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스승님께서 풀이해 주시면 아무리 하찮았던 글자도 태산을 무너트릴 만큼의 위력을 갖는 것 같아요. 조짐에서 그러한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정말 그 안에 깃든 의미까지 말씀해 주신다면 얼마나 놀라울지 상상도 못 하겠어요.”

참으로 놀랐다는 듯한 진명의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말을 이었다.

진명에게 물어볼까? 왜 황제는 대신(大臣)을 가리켜서는 경()이라고 하고 자기를 가리켜서는 짐()이라고 하는지 알면 말해 봐.”

아니, 스승님 듣는 것도 처음인데 어째서 그러한지까지 어찌 생각이나 해 봤겠어요? 보통은 겸손하게 하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과인(寡人)이라고 하는 말과 비교를 해 볼 수도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자기를 낮춰서 하는 말로 보이는데 조짐(兆朕)을 듣고 났더니 갑자기 혼란이 생겼어요. 호호~!”

그렇다네. 겸손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그 내면에는 작짐(作朕)이라는 의미가 숨어있지. 말하자면 자기는 신과 같아서 조짐조차도 만들 수가 있는 능력자라는 의미라고나 할까? 하하~!”

어머! 정말이네요. 겸손을 가장한 우월감(優越感)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러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는 진명에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디 생각해 볼까? 조금 전에 꿈이라고 했나? 우선 꿈에 대해서 조짐을 생각해 봐야 하겠군. 꿈을 꾸고 나면 우리는 이 꿈이 조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하지 않는가?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지를 생각하는 거지.”

이번에는 연화가 말했다.

맞아요. 스승님의 말씀대로 꿈을 꾸고 나면 그 꿈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어떤 조짐일지를 생각하게 되어요. 더구나 간지(干支) 이야기도 아니어서 연화도 알아들을 수가 있으니 정말 기대되네요.”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의 잔에 따끈한 차를 채웠다. 우창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꿈을 꾸고 나면 그 꿈이 조짐(兆朕)인지 기억(記憶)인지를 판단하면 된다네. 사실 조짐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으나 기억인지는 바로 구분할 수가 있지 않겠나?”

구분하기 쉽다는 말에 연화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구분을 바로 하겠어요? 꿈의 종류도 하도 많아서 말이에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구나. 그러니까 꿈에서 조짐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아무런 생각도 없는 상태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

우창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던 연화가 이 말에는 동조했다.

그건 맞아요. 무심결에 꾸게 되는 꿈이니까요.”

꿈에는 조짐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 말에는 모두 부정하지 않을 거야. 모든 꿈에는 조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네. 그러니까 적어도 꿈에서 조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면, 이러한 것은 조짐이 먼저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의문(疑問)이 먼저 나타난 것일까?”

이번에는 염재가 말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나타난 조짐이니까 조짐이 먼저 나타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해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염재는 이러한 것을 선조짐(先兆朕)’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우창이 염재에게 묻자 염재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가능하겠습니다. 조짐이 먼저 나타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조짐은 사안(事案)에 비해서 먼저 나타나는 것이지 않습니까? 스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짐의 진위(眞僞)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 이 주제(主題)의 목적(目的)이지 않으냔 말이지. 그리고 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지. 일단 선조짐에 대해서는 이해했지?”

그야 물론입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선조짐이란 말은 묻기 전에 얻은 조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맞습니까?”

맞아. 묻기 전에 얻은 조짐이라고 하겠네. 그렇다면 여기에는 함정(陷穽)아닌 함정이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을까?”

그건 전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짐에 함정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무슨 뜻인지만 알면 바로 이해할 수가 있을 걸세. 조짐인 줄로 알았는데 조짐이 아닐 경우가 되었을 적에 해당하는 말이니까. 하하하~!”

우창이 웃으며 말하자 염재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아찔함이 느껴졌다. 조짐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조짐이 아니었던 경우는 그동안에도 많이 경험했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조짐에 많이 속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함정이라고 하시는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함정이 아니라 내가 함정 아닌 함정이라고 하는 뜻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조짐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조짐이라고 여겼다면 그것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겠나?”

맞습니다. 당연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누가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그 조짐을 물었을 적에 풀이를 한 사람의 견해가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먼저는 스스로 그것이 조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말이라네. 스스로 조짐이 아닌 것을 조짐이라고 생각하고 속았으니 함정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함정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란 말이지. 하하하~!”

이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됩니다. 그런데 함정은 예상치 못한 곤경(困境)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까? 조짐으로 인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것은 마치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격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가령 돈이 많은 사람이 꿈에 자기 옆집의 땅에서 황금이 묻혀있는 꿈을 꾸었다고 가정해 볼까? 그 꿈을 깨고 나서 생각하겠지?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 땅속에는 황금이 들어있다는 조짐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땅을 사라는 조상님의 계시(啓示)로구나. 그 땅을 사야만 속을 파볼 수가 있으니 일단 옆집의 땅부터 사고 봐야겠다.’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네. 그다음에는 땅을 사기 위해서 큰돈을 마련하느라고 분주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 땅을 사서는 열심히 파봤을 적에 그 땅에서 황금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나?”

그것은 알 수가 없겠습니다만, 거의 없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지~! 그래서 필요도 없는 땅을 수천 냥을 지불하고 샀다면 이것이 함정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어쩌면 그 집의 주인 조상이 파놓은 함정에 덜컹 빠졌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네. 하하하~!”

염재는 그제야 우창이 왜 웃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결과를 알고 보면 참으로 허황한 자기 꾀에 조짐인 줄로 알고 땅을 사기 위해서 막대한 금전을 지출한 것이 우습기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우습기만 할 일이겠습니다. 다만 정작 본인은 속이 무척이나 쓰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우선 조짐을 얻었다고 생각을 할 적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스승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그 조짐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염재가 이해하기로는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맞아~!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조짐이라고 생각한 것이 함정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정도의 상식이 필요하단 말이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조짐은 모두가 깊은 의미가 있으므로 그 안에 깃든 의미를 생각하는 것으로만 여겼는데 우창의 말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과연 자칫하면 착각에 빠져들어서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재물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 안달하는데 꿈에 그러한 조짐이 보인다고 생각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 사람도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해 보니까 함정도 그런 함정이 없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할 말을 잃고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조짐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우창의 말에 진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답했다.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욕심을 버리고 조짐을 봐야 해요. 그렇게 되면 괜히 스스로 설레발을 치면서 허둥댈 일은 막을 수가 있지 않겠어요?”

물론 옳은 말이긴 하지. 다만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중심을 잡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로군. 어떻게 한다? 하하하~!”

우창이 진명의 말에 동의하지 않자 이번에는 자원이 말했다.

싸부, 자원이 생각하기에는 조짐이든 아니든 모조리 무시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최소한(最小限)으로 함정에 빠질 일은 없지 않을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연화가 자원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게 하다가 참으로 소중한 조짐을 그냥 놓쳐버리면 어떡해?”

연화의 말에 자원도 말을 하지 못하고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대신 답을 했다.

어떤 꿈을 꾸었을 적에 그 꿈이 조짐이 될 가능성과 개꿈이 될 가능성을 비교해 본다면 얼마나 될까?”

이렇게 말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백()에 한둘이 조짐이거나 그나마도 아닐 가능성도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을까? 조짐을 무시하는 거지. 물론 보통 사람들이 선조짐(先兆朕)에 대해서 취해야 할 방법이라고 해야 하겠네. 진명과 같은 능력자는 제외로 하고 하는 말이니까. 하하하~!”

조짐을 무시하게 되면 뭔가 큰 손실이 생길 것만 같다는 마음으로 인해서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러니까 아예 무시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라는 말씀은 간단한 해결책이네요. 그보다 쉬울 수가 없겠어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명이 물었다.

스승님, 왜 진명의 선조짐은 제외한다고 하셨는지요?”

그야 진명이 보는 조짐은 특별한 영감(靈感)에서 나타나는 것이니까 당연하지 않겠나? 하하~!”

그래서 때로는 힘들 때도 많아요. 말을 해줄 수가 없는 조짐도 마구마구 보이니까 말이에요. 호호호~!”

그러자 자원이 진명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난 미리 환하게 알고 있는 진명이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까 그것만은 아닌가 보네? 호호~!”

진명이 자원에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선조짐에 대해서 무슨 뜻인지 잘 알았어요. 그러니까 인과(因果)가 불분명한 조짐은 조짐이라고 생각지 말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선조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조짐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까 조짐의 진위(眞僞)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죠?”

맞아~! 바로 그 말이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겠구나. 하하~!”

조짐의 진위를 알기 전에는 조짐은 차라리 조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낫다는 말씀도 핵심인걸요. 그렇죠?”

진명이 재차 확인하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이렇게만 알고 조짐에 대응한다면 크게 낭패당할 일은 미리 방지할 수가 있을 것이네.”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염재도 이해가 잘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조짐의 진위에 대해서 잘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조짐(先兆朕)이 있다면 후조짐(後兆朕)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역시~! 염재의 예리함은 날이 갈수록 더하는군. 난 또 누가 물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지. 하하하~!”

자원도 이러한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사람이 아니었다. 우창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말했다.

싸부, 후조짐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오호~! 어디 말해 보려나? 하하~!”

자원이 우창의 말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후조짐에 대해서 전혀 가닥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선조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니까 비로소 후조짐에 대해서도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잖아요. 이것을 다른 말로 정리한다면 문후조짐(問後兆朕)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물음이 있고 나서 조짐을 보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오주괘(五柱卦)나 육갑패(六甲牌)가 감당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어요. 그러고 보니까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선조짐(先兆朕)에 해당하는 것으로도 볼 수가 있겠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겠죠?”

오호~! 팔자가 선조짐이라니, 나도 그 생각은 못 했는걸. 하하하~!”

싸부가 실마리를 주기만 하면 자원은 또 그것을 갖고 노는 것은 잘하거든요. 호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 있던 연화가 감탄하면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아니, 어떻게 하나를 들으면 둘을 넘어서 셋을 깨달을 수가 있을까? 나는 언제나 그렇게 공부가 깊어지려나 참 갈 길이 멀기만 하네.”

그런 말 말아요. 언니도 타고난 영감이 있어서 어쩌면 자원보다 더 빨리 변화의 이치를 깨달을 텐데요 뭘. 호호호~!”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 늦게 공부한 것이니 그렇게라도 되어야 이번 생에 맛이라도 보고 가지.”

이미 인연이 닿았으니까 정진만 하시면 되죠. 그리고 그 옆에는 자원과 진명도 있잖아요. 염재도 있고요. 호호~!”

이렇게 연화를 위로한 자원이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후조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여기에도 진위(眞僞)가 있지 않겠어요? 세상의 모든 것에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말이에요.”

그야 당연하지. 후조짐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에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지. 그것은 바로 점기(占幾)라는 것이야.”

우창이 점기를 말하자 염재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점기라면 늘 들어본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잘 알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네. 점기를 얻는다는 것은 질문자와 해석자의 사이에 신뢰감이 쌓여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점이지.”

무엇인가를 물었을 적에 그 사람의 마음에 진실함이 있어야 점기도 제대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 장난으로 묻는다면 아무리 점기를 찾아서 풀이한다고 해도 그것은 올바른 조짐을 본 것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니 그야말로 개꿈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 자신이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한다면 점괘를 볼 수가 없는 일이지. 그러니까 자신의 점부터 잘 맞기 시작하면 비로소 남의 점도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네. 자신의 문제를 점신께 물어서 명쾌한 답을 얻게 된다면 남의 조짐을 풀이해도 맞게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그러자 연화가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는지 물었다.

스승님, 무당이 제 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연화가 이렇게 묻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도 말했다.

제 점만이 아니고, 제 굿도 못 한다고 하던데? 이것도 같은 의미일까요?”

두 여인의 질문을 받은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모두 맞는 말이네. 신내림으로 예언자가 된 사람이 자기 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네. 비록 영감은 있으나 학문적인 내공이 없기 때문이지. 신령(神靈)이 계시(啓示)를 내려주면 그것을 받아 읽기만 하기에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이라네. 다만, 비록 접신(接神)을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천성(天性)이 학문적인 논리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점괘도 잘 볼 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 그리고 학문적으로 조짐을 풀이한다고 하더라도 그 깊이가 얕다면 당연히 현기(玄機)가 서린 조짐을 얻고서도 해석하지 못해서 엉뚱한 답을 줄 수도 있을 테지.”

우창의 말을 듣던 진명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당연한 말씀이죠. 오행의 이치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방문자(訪問者)의 질문에서 조짐을 찾아서 그것을 풀이해 주는 것이니까 이것도 후조짐이네요. 조짐이 억만(億萬) 가지이니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도 억만 가지가 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과연 어느 가닥을 잡고서 해석할 것인지 참으로 난제(難題)네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오행원에 모여서 오늘도 이렇게 담소(談笑)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공부하다가 보면 점차로 조짐의 핵심인 적중(的中)으로 접근이 될 것은 틀림없을 테니까 말이네. 하하하~!”

맞아요~! 그렇게 되고 싶어요. 조짐에도 진위가 있다는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흐릿했던 것이 안개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걸요. 이제는 조짐을 풀이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일이 줄어들었어요. 호호~!”

진명의 말에 자원이 물었다.

아니, 무슨 말이야? 진명은 내가 몰랐던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말이잖아? 그게 뭔지 설명해 줘봐. 궁금하니까 말이야.”

스승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진명의 운명이기도 한 까닭이야. 자원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미리 보이는 것이 없잖아?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점괘를 찾으면 되니까 비교적 헛된 조짐으로 시간을 낭비할 일이 적지. 나는 일단 먼저 조짐이 보이기 때문에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부터 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그 조짐이 보인다고 해서 모두 붙들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해석할 필요가 없는 조짐을 미리 털어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일이 줄어들었느냔 말이야. 호호호~!”

진명의 말을 듣고서 자원도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다. 전에는 무엇이든 훤하게 보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서 진명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니까 부러워만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으로 진명의 남다른 능력이 오히려 안쓰러운 생각조차 들었다. 남모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것을 본 진명이 웃으며 자원에게 말했다.

그래서 세상은 참으로 공평한 것이라고 하는가 봐. 처음에는 힘들어서 이런 내가 싫었는데 스승님의 옆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것을 통해서 스승님의 판단에 도움을 드릴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나름대로 보람이 더 크니까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거야. 호호호~!”

진명의 재빠른 눈치는 누구도 속일 수가 없었다. 그것을 바로 알아보고 괜한 걱정을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염재와 연화도 감탄했다. 그때 목탁 소리가 울렸다. 점심을 알리는 소리였다. 모두 담소를 멈추고는 식당으로 향하면서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오늘 차담은 너무나 향기로웠어요. 덕분에 진명의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고요. 정말로 감사드려요.”

진명의 말에 자원과 염재도 우창에게 합장했다. 연화는 새로운 공부를 통해서 깊은 조짐의 이치까지 이해하게 되었으니 감동으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것을 본 진명이 나가려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연화에게 말했다.

언니가 그렇게 느끼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걸요. 진명도 처음에는 삶의 순간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삶을 그만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조차도 깊이 생각하는 우울증(憂鬱症)에 빠졌으니까요.”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어? 이렇게 해맑은 사람에게 그렇게나 힘든 때가 있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네. 괜찮으면 이야기를 좀 들려줘.”

연화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도 지난 시절에 애욕(愛慾)에 사로잡혀서 자기를 사모하다가 죽은 남자의 혼령에 의해서 힘든 시절을 보냈던 것에 대해서 소상하게 이야기해 줬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연화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랬구나. 참으로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다 알 수가 없는 것이 맞아. 그렇게 아픈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그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통찰력과 영감까지도 얻게 되었다고 봐야 하겠지?”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다면 잘 사용해서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호호~!”

 

 

진명의 다시 밝아진 표정을 보면서 연화는 진명의 두 손을 꼭 잡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