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 제44장. 소요원(逍遙園)/ 4.무념(無念)과 부지(不知)

작성일
2024-12-15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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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 44. 소요원(逍遙園)

 

4. 무념(無念)과 부지(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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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적천수도 읽고 토론할 필요가 없단 말이잖아?”

기현주가 문득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결국은 버리기 위한 공부라고 하는 것을 알고 나자 허무감(虛無感)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나 진리를 찾아서 동분서주(東奔西走)했는데 지금 그것이 모두 목마르고 배고팠던 결과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누님, ‘잊는다는 것과 모른다는 뜻이 같은 말입니까?”

? 그건 다른 말이잖아? 잊는 것은 털끝만큼도 생각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고, 알지 못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거나 들어본 적도 없다는 말인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맞습니다. 물을 찾는 나그네는 물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목이 마른 것입니다. 누님이나 우창은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목이 마른 것이고요.”

이렇게 말하던 우창이 현령을 보며 말했다.

여기, 일지(一志) 선생께서는 또 백성을 어떻게 해야 편안하게 할 것인지를 몰라서 목이 마르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현령은 우창이 갑자기 자기에게 묻자 얼떨떨했지만 잠시 생각하고는 얼른 대답했다.

우창 선생이 내가 혹시라도 심심할까 염려하여 말을 걸어주는구료. 허허허~!”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깊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만의 목마름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다가 여쭙고 싶었던 것이지요.”

맞는 말이오. 그렇게 천신만고의 고뇌(苦惱)를 거치고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일순간 환희의 기쁨을 누리고는 곧 잊고 말게 된다오.”

맞습니다. 또 여쭙겠습니다. 만약에 다음에 또 그와 유사한 일이 발생할 적에는 처음에 겪었던 고뇌가 다시 발생합니까?”

그렇지 않소이다.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이 바로 해결책을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오.”

현령의 말을 들으면서 기현주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이네! 오라버니의 말을 듣고 보니까 깨달음과 잊어버림은 무수히 반복되고 있었단 말이잖아? 그런데 그러한 일이 다음에 생겼을 적에는 즉시로 해결이 된단 말이지? 그건 나도 생각지 못했어. 겪어야만 한다는 이치를 이렇게 쉬운 말로 알려주다니. 고마워요. 호호호~!”

기현주가 의미를 이해하자 우창도 기뻤다. 그래서 다시 설명을 보탰다.

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불(諸佛)이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한다는 의미를 우창도 겨우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부처가 이미 다 깨달았는데 왜 만행해야 한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거든요.”

그랬겠다. 그런데 육도만행이라니 육도는 뭐지? 만행은 궂은일이나 좋은 일을 가리지 않고 행한다는 의미려니 하겠는데 말이야.”

우창도 깊은 이미는 모르겠습니다만, 육도(六度)는 여섯 가지의 중생을 제도하는 방법인데,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은 물론이고 아수라(阿修羅), (), 인간(人間)의 세상을 모두 아울러서 가리지 않고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온갖 일을 실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도를 깨달은 이도 육도(六途)를 윤회(輪回)하면서 저마다 맡은 일을 수행(隨行)하는 것을 말한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괜히 육도만행은 꺼내서 누님을 혼란스럽게 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다소 어려운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면서 생각에 잠겼던 기현주가 겨우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난또 대단히 어려운 말인가 했더니 듣고 보니 쉬운 이야기였잖아. 그러니까 깨닫고 난 것과 그다음에 행하는 것도 같은 의미란 말이지? 생각으로는 이해되었더라도 실제로 겪어야 완전한 해결이 되고 그것은 뼛속 깊이 들어간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목마른 나그네가 생각으로는 이렇게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시면 된다고 하겠습니다만, 그렇게 생각만 한다고 해서 실제로 목마름이 해결되지는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오호라! 정말 멋진 말이구나. 어쩜 말도 그렇게 쉽고 명쾌하게 할 수가 있을까? 난 그것도 부럽단 말이야.”

원래가 쉬운 말입니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잖아.”

이제 이해되십니까?”

?”

그러니까, ‘잊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고인의 말씀 말이지요.”

, 알겠어. 그래서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쌓이는 것이었어. 맞지?”

맞습니다. 그래서 식자(識者)는 항상 목마른 사람입니다. 하하~!”

안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어?”

잊고 또 잊어서 더 이상 잊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대오(大悟)하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되신다면 말이지요. 하하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장안(長安)을 다 둘러본 사람은 장안을 잊어버리는데 장안을 가보고 싶은 사람은 잊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 말이야. 설명한다면 장안을 가보고 싶은 사람은 책에서 읽은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장안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기 때문에 설명잘 할 수가 있겠지. 그런데 장안을 가서 두 발로 돌아다니면서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으면서 코로 냄새까지 맡았던 사람에게는 장안의 풍경을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지.”

이미 다 깨달으셨습니다. 공부해야 할 이치를 깨달으셨으니 이제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우십니다. 하하~!”

, 끝난 것이 아니었구나. 난 이제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할 뻔했잖아. 호호호~!”

문득 도덕경(道德經)에 언급한 말이 떠오릅니다.”

무슨 말? 나도 도덕경은 읽었는데.”

물론 좋은 말이야 많지만, 그중에서 지자무언(知者無言)이요 언자부지(言者不知)니라라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잘 어울리는 말이지 않을까 싶어서인가 봅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나~! 맞아! 난 왜 그것을 알고서도 생각지 못했을까?”

바로 이것입니다. 생각에서는 사라졌는데 그 상황을 만나면 읽었던 구절이 바로 떠오르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념(無念)의 공덕(功德)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오늘은 깨달음의 축제를 만난 것과 같구나.”

깨달음의 축제라고요? 정말 누님께서 멋진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하하~!”

말만 멋지게 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언자부지(言者不知)라며? 호호호~!”

이렇게 깨달은 것은 사리함(舍利函)에 차곡차곡 담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해 봤습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내공이 되어서 골중(骨中)에 담겨있다가 언제라도 필요할 때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맞아! 선사(禪師)는 머뭇거리는 것을 싫어하잖아. 염두(念頭)를 굴린다면 이미 틀렸다는 거지. 그러한 장면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선사의 물음에 제자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순식간에 외치더란 말이야. ‘틀렸어!’라고. 그것을 보면서 당시에는 제자의 기를 꺾으려고 하는 것인가 싶었잖아.”

답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신 까닭이지요?”

내 말이 바로 그것이었지. 이제 생각해 보니까 골중(骨中)에 박혀있는 깨달음은 시간을 지체(遲滯)하지 않고 언하(言下)에 바로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겠어.”

맞습니다. 그래서 음양을 생각하고 또 배우고 익히고 또 배우고 익히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오행도 마찬가지고요.”

알았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쉼 없이 공부해야 하는지를 활연(豁然)이 깨달았단 말이야. 그렇다면 또 다음 구절을 보자. 그게 궁금하네. 다시 소화되어서 배가 꺼졌나? 호호호~!”

이미 앞에서 배운 것이 소화되어서 자양분(滋養分)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음 구절을 봐도 머리만 어지러울 뿐이거든요. 궁금하실 테니 다음 구절을 읽어 보시지요. 하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미소를 짓고는 책을 펼치고 다음에 있는 원류(源流)편을 읽고 풀이했다.

 

하처기근원(何處起根源)

유도하방주(流到何方住)

기괄차중구(機括此中求)

지래역지거(知來亦知去)

 

어느 곳에서 근원(根源)이 일어났는지

어느 방향으로 흐르다 머무르는지

이 가운데에 핵심을 구한다면

온 곳도 알고 간 곳도 알게 되리라

 

다 읽고 풀이한 기현주가 내용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동생, 근원(根源)이라고 해서 심오한 의미가 있으려나 보다 싶었는데 막상 내용에서는 무슨 말인지 오히려 모르겠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잘 이해하신 겁니다.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멋스럽게 꾸민다고 했는데 내용은 있으나 마나니까요. 하하하~!”

오호라! 동생의 말로 봐서 이것도 가탁 선생이 쓴 것이란 말이로구나. 그렇지?”

가탁 선생보다 더 수준이 낮은 선생의 사족(蛇足)으로 봐서 사족 선생이라고 이름해야 할 듯싶습니다.”

뭐라고? 사족 선생?”

기현주가 무슨 뜻인가 싶어서 잠시 생각하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아니, 가탁보다 더 못한 수준이라는 뜻이었어? 호호호호~!”

다시 봐도 경도 선생은 체용(體用)과 정신(精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드러냈다고 보면 되겠고, 그다음에는 가탁 선생과 사족 선생의 합작(合作)으로 군살을 붙여서 보기만 좋게 꾸민 것이라고 봐도 되지 싶어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없어도 되는 말이란 거지?”

맞습니다. 하하하~!”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현령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우창 선생은 고인의 저서(著書)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검술(劍術)을 펼치는구료. 과연 학자의 예리한 안목은 무섭소이다. 허허허~!”

현령의 말투 속에는 다소 방자(放恣)하다는 듯이 비꼬는 느낌도 전해졌다. 그도 그럴 만했다. 현령의 말에 우창이 말하기 전에 기현주가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는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 단련된 유학파(儒學派)라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런데 우리 도학파(道學派)는 부처가 지나간 길도 따라가지 않는 배짱이 있거든요. 아마도 이러한 소식은 모르실걸요? 호호호~!”

기현주의 응원에 우창은 내심 고소했으나 모른채하고서 한마디 했다.

일지 선생의 말씀이 지당(至當)합니다. 실로 우창은 아직도 천방지축이어서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휘둘러 보는 난검술(亂劍術)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 맞는 누님을 만나서 맘대로 놀아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현령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게 아니오. 내용이며 어투를 봐서 나름대로 확신이 있는 듯하오. 오행의 이치를 중심에 세우고 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소이다.”

이해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현령의 말에 우창이 고맙다는 듯이 합장했다. 그러자 기현주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동생, 사족 선생은 후학이 뭘 어쩌라는 거지? 간지(干支)를 놓고서 근원과 흐름을 보라는 뜻이야?”

의미는 그렇습니다. 가장 세력이 큰 오행(五行)을 원두(源頭)로 삼고, 이어지는 생생(生生)을 원류(源流)로 삼아서 흐르다가 생이 끊어지는 곳을 유종(流終)인 줄을 알면 거래(去來)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야 오행의 생극(生剋)만 알면 삼척동자도 알 이야기잖아? 그러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는 이유가 뭐지?”

기현주의 말에 속이 시원한 사람은 또 있었으니 바로 삼진(三塵)이었다. 이미 오행원에서도 군더더기를 찾아낸 혜검(慧劍)이었으니 이런 내용은 볼수록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기현주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기 때문이었다.

역시~!”

기현주는 삼진이 감탄하는 소리에 무심코 바라보자. 삼진이 합장하고 미소를 지었다. 표정으로 봐서 전적(全的)으로 동의(同意)한다는 뜻이었다.

! 삼진 선생도 하실 말씀이 있는 듯싶은데?”

이미 속이 시원합니다. 듣는 것만으로 아침 먹은 것이 모두 다 내려갔습니다. 계속 냉검(冷劍)을 휘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 냉검이라니? 그건 또 무슨 검법(劍法)이지?”

냉검은 냉철(冷徹)한 검술(劍術)입니다. 하하~!”

기현주가 그 뜻을 알고는 웃으며 말했다.

냉검이라니, 삼진 선생도 재미있어.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삼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표정에서는 어서 계속 말하라는 뜻임을 알고는 다시 우창에게 말했다.

단지, 그러한 의미 말고는 찾아낼 내용이 없단 말이지?”

누님도 살펴봐서 알다시피 그 외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맞아! 왜 사족 선생의 말이라고 하는지 분명히 알겠어. 그렇다면 이후로 나오는 것은 모두 사족 선생의 이야기라고 보면 되는 거야?”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탁 선생의 글로 보이는 내용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살펴 가면서 판단하면 되겠습니다.”

알았어. 적천수보다도 그 글을 쓴 선생을 가려내는 재미가 더 알차잖아? 이런 재미가 있는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어떤 학자는 문자(文字)를 이고 다니고, 어떤 학자는 문자를 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문자를 손에서 공깃돌처럼 갖고 놀기도 하지요. 하하하~!”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문자를 갖고 논다는 말이잖아? 멋져~!!”

다음 구절도 보긴 하셔야지요?”

맞아, 궁금하잖아. 어디 보자, 이번에는 통관(通關)편이네? 읽어보고 뜻도 새겨볼게.”

 

관내유직녀(關內有織女)

관외유우랑(關外有牛郎)

차관약통야(此關若通也)

상요입동방(相邀入洞房)

 

관의 안에는 베 짜는 여인이 있고

관의 밖에는 소치는 목동이 있어

만약 관문을 통하게 한다면

서로 만나 신방을 꾸미게 되느니라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맞는 거지?”

뜻을 풀이했으면서도 뭔가 미심쩍은지 다시 물었다.

, 잘 풀이하셨습니다. 누가 봐도 그러한 내용임이 분명하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북두칠성(北斗七星) 이야기인가 싶어서 의아했지.”

아마도 사족 선생은 상상력이 풍부하셨던가 봅니다. 하하~!”

근데, 통관(通關)은 원래 있는 말이기는 하잖아? 그래서 통관용신법(通關用神法)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서요? 이렇게 중요한 것을 사족(蛇足)’이라고 하면 되느냐는 뜻입니까?”

맞아, 오대용신법(五大用神法)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억부(抑扶), 조후(調候), 통관(通關), 병약(病弱), 전왕(專旺)이 그것이잖아.”

그래서 적천수는 파격(破格)이라고도 합니다. 하하하~!”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럴 만도 하겠구나. 틀을 완전히 깨어버리고 자유롭게 관하는 방법이란 말이지?”

맞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맞장구를 치자, 기현주는 삼진을 보면서 말했다.

더구나 삼진은 파격의 고수(高手)인 것으로 보이고 말이야. 호호호~!”

삼진이 기현주가 추켜세우는 말이 부담스러웠던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직도 긴가민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스승님의 예리한 가르침이 없다면 혼돈탕(混沌湯)을 매일 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 혼돈탕은 또 뭐야? 오호~ 혼란스러웠을 거란 말이구나. 호호호~!”

삼진이 말없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아니, 동생의 말로는 통관법(通關法)은 의미가 없다는 거야?”

인족(蚓足)이죠.”

? 인족은 또 뭐야? 지렁이 발이라고?”

사족보다도 더 기가 막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

설명을 좀 해줘 봐. 통관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조금 혼란스럽네.”

누님 간단합니다. 가령, 남의 집에 들어가거나 남의 나라에 가려면 필요한 것일지는 몰라도 자평법에서 오행으로 논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 남의 집에 들어가려면 현관(玄關)을 거쳐서 문을 두드리고 주인이 문을 열어줘야만 비로소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

맞습니다. 종격(從格)을 보면 흡사, 나라가 망하면 백성도 새로운 군주를 따른다는 이론과 뭐가 다르냐고 생각해 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 왕성(旺盛)함이 극에 달하면 그것은 극하면 안 되니까 생조(生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맞습니다. 종격(從格)도 허언(虛言)이고, 통관(通關)도 망언(妄言)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것이 어려울 까닭이 있습니까?”

아니, 그래도 통관법은 ……

기현주가 아무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자 우창이 다시 설명했다.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라고 했습니다. 이 인족 선생이 자평대도(子平大道)를 인도(蚓道)로 만들어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습니다. 대도를 소도(小道)도 아닌 졸도(卒道)로 만든 허물을 물어서 곤장(棍杖)을 안겨야 하겠습니다. 하하~!”

우창은 기현주와 대화하는 것이 마냥 즐거워서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은 귀엽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관()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 거야?”

이미 앞에서 원류(源流)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흐름과 멈추는 것을 말했고, 멈추는 곳은 막힌 곳이니 그것이 관문(關門)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괜한 글로 후학만 괴롭힘을 당할 따름이지요. 하하~!”

우창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았어. 그렇다면 이러한 구절은 삭제(削除)해야 하는 거잖아? 고통도 우리까지만 당하고 후학은 이러한 것에서 자유롭게 해줘야 할 테니 말이야. 안 그래?”

그렇긴 합니다만, 그것을 또 삭제하고 나면 어떤 후학은 통관은 여전히 거론해야 하는 것인 줄로만 알 수도 있으니 이렇게 가만히 놔두고 인족(蚓足)이라는 것을 붙여놓으면 총기(聰氣)가 있는 후학은 가려서 판단하리라고 봅니다. 하하~!”

맞아! 역시 동생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네. 난 아직도 멀었어. 호호~!”

만약에 말입니다.”

우창이 기현주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현주가 귀를 쫑긋 세우고 우창을 바라보자 또렷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만약에 양대(兩大) 세력이 팽팽하게 마주 보며 백중지세(伯仲之勢)라고 한다면 이때 둘 사이를 터주는 오행이 통관용신(通關用神)이라고 하는 것은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맞아! 내가 알기로도 바로 그럴 때 쓰는 용신이 통관용신이야. 그래서? 이런 경우를 당하면 통관법을 논하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거야?”

아무래도 누님의 의혹이 남으시는 것으로 보여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고마워. 귀를 활짝 열고 들어볼게.”

가령, 인성(印星)과 재성(財星)이 반반이라면 용신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야 재성이 인성을 극할 테니 불강(不强)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겁(印劫)을 용신으로 삼아야 하겠지?”

, 관살(官殺)과 식상(食傷)이 반반이라면 어떻습니까?”

반반이거나 말거나 일간은 허약할 테니 용신은 어차피 인겁(印劫)에 있는 것이잖아?”

그렇다면 비겁(比劫)과 관살(官殺)이 반반이면 또 어떻게 합니까?”

비겁은 관살을 이길 수가 없을 텐데 반반이라면 이미 약하니 용신은 인성(印星)을 봐야지. 가만, 이런 경우에는 통관이라고 해야지 않을까? 관생인(官生印)하고 인생아(印生我)해서 흐름을 만들어 주니까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억부(抑扶)로 보면 안 되겠습니까?”

, 안 될 이유가 없네. 어차피 일간은 약할 테니 말이야. 그야말로 일약용인격(日弱用印格)으로 잡으면 된단 말인가?”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통관으로 볼 수도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조차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 식상(食傷)과 인성(印星)이 반반이면? , 이미 강할 테니 식상을 용신으로 삼으면 된다는 말인가?”

우창은 기현주가 비로소 통관에 대해서 이해를 한 것 같았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괜히 없는 관문(關門)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만들어서 쓸데없이 궁리하는데 혼란만 보탰다는 말이네. 맞지?”

그래도 이러한 것을 빌미로 누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니 또한 공덕이 전무(全無)하다고는 하지 않아도 되지 싶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도 즐겁지. 호호~!”

두 사람의 대화에 삼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