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 오행의 묘미(妙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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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을 본 기현주가 반기면서 말했다.
“아니, 오라버니는 이 시간에 국무(國務)에 힘쓰지 않으시고 무슨 일로 나들이하셨어요?”
기현주의 말에 현령이 신을 벗으며 대답했다.
“아침에 동헌(東軒)에 나가보니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 문득 그대들이 즐겁게 담소(談笑)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좀이 쑤시지 않은가. 그래서 문득 마차를 움직였지. 혹 내가 방해를 한 것은 아니겠지?”
그러자 우창이 반기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더구나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셨는데 반갑지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우창의 말에 다시 현령을 보니 뒤따르던 부관이 양손에 술이며 고기를 들고서 와서는 소호에게 얼른 전해주고는 바삐 돌아갔다.
“오늘 낮에는 내가 한턱내는 것이오. 허허허~!”
“오라버니가 내신다니 허리띠를 풀어놓고 포식하게 생겼네요. 그런데 미리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나들이하셨나 궁금하네요.”
“아, 실은 전해줄 말도 있고 우창 선생과 대화도 나누고 싶어서 겸사겸사 방문했네. 허허허~!”
“이런, 어서 이리 앉으세요. 우리도 막 아침을 먹고 차담을 나누려던 참인데 잘 오셨어요. 호호호~!”
기현주가 현령을 상석(上席)에 앉게 하고는 그 옆에 우창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미 기현주의 마음에는 우창과 현령이 동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창도 아무런 말이 없이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소호가 차를 따라주는 것을 말없이 보고 있는데 현령이 기현주에게 말했다.
“누이의 조카는 어디 갔나? 안 보이는걸.”
“그야 처신을 잘하라고 서호로 보냈죠. 지금쯤 고독을 씹으면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있을 거예요. 호호호~!”
“저런, 그럴 필요가 없어. 사람을 보내어서 오라고 하게. 그 문제는 모두 해결이 되었고, 유가족들도 모두 찾아와서 고맙다고 했으니까 말이네.”
현령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가 반기면서 말했다.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얼른 사람을 보내겠어요. 여러모로 애를 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호호~!”
“그야 고을을 다스리다가 보면 늘 있는 일인데 뭘. 허허허~!”
기현주가 얼른 나가더니 마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돌아왔다.
“행성이 녀석을 데리러 보냈어요. 복잡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일이 빨리 정리가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래 잘했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계속해 보시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 말이지. 그리고 일전에 말했던 문귀(文鬼)도 우창 선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감탄했다더군. 그래서 더 와보고 싶었다네.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하니 나도 그런 가르침을 듣고서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고 싶었단 말이지. 허허허~!”
“그렇다면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봐요. 내용에 대해서 이해가 되고 말고는 공화(空華)가 책임질 일이 아니니까요. 호호호~!”
“나는 없는 양으로 하고 대화를 나누시게나. 어서~!”
이렇게 말하고는 현령은 한 손에 찻잔을 들고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도 이미 적천수의 진가(眞假)에 대해서 확연(確然)하게 구분하고 계셨던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제자는 혹 의문을 품은 것이 경도 선생에 대한 불경(不敬)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죄책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아, 그랬었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생각한 그대로를 말하고 함께 토론하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네.”
“잘 알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기현주는 벌써 책장을 펼쳐놓고 어서 읽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누님, 어서 읽어보시고 설명해 주시지요. 어떤 내용을 새롭게 보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쇠왕(衰旺)」편이구나. 이미 앞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다시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원문을 읽고 풀이했다.
능지쇠왕지진기(能知衰旺之眞機)
기어삼명지오(其于三命之奧)
사과반의(思過半矣)
‘쇠약(衰弱)하고 왕성(旺盛)한 참된 기틀을 능히 안다면
그것이 바로 삼명(三命)의 오묘함이라
벌써 절반은 얻은 것이라고 하리라.’
이렇게 풀이까지 하고 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동생이 앞에서도 말했지만 쇠왕(衰旺)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다시 언급을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지?”
“그런 것도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도 실은 군더더기에 가까우므로 아마도 경도 선생의 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중언부언하는 것으로 봐서는 역시 이 부분도 가탁 선생의 글일 가능성도 절반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 여기도? 왜?”
기현주는 우창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왜냐하면 이미 앞서 체용에서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부지억지(扶之抑之)’라고 말이지요. 이 말이 쇠왕에 대한 핵심인데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뭔가 그럴싸한 문구(文句)로 설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 살짝 비춰지기도 해서 말입니다. 하하~!”
“그런가? 부지억지가 어때서? 뭐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이니까 다시 언급한다고 해도 무방하겠네.”
“그래도 기왕에 있는 내용이니까 살펴보는 것이 해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앞에서 언급한 월령(月令)이나 생시(生時)보다는 훨씬 좋은 내용이니까 말이지요. 하하~!”
“맞아, 나도 그것은 인정~!”
“특히 ‘진기(眞機)’라는 구절에 눈에 들어오네. 여기에는 하고 싶었던 말이 많이 들어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야.”
“잘 짚으셨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득령(得令)하면 강왕(强旺)하고 실령(失令)하면 쇠약(衰弱)하다는 공식만으로는 왕쇠를 다 말할 수가 없다는 의미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를테면?”
“여기에서 ‘참된 기틀’이라고 한 것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득령을 했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쇠약할 수도 있고, 반대로 실령을 했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강왕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된다는 의미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지요.”
“알겠어.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이 갑자기 생겼는데 설명을 해줘야 하겠어.”
“뭔지 말씀만 하시지요.”
“과왕(過旺)한 자는 극하지 말고 생해야 한다는 설이 떠올라서 말이야.”
우창은 기현주가 하는 말의 뜻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아, 누님의 말씀은 일행득기격(一行得氣格)이나 종강격(從强格)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맞아! 바로 그거야. 강한 오행을 극하면 노발대발(怒發大發)하기 때문에 그 뜻을 거스르지 말고 순종(順從)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말이 없어서 말이야.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그것은 천도(天道)가 아니라 권도(權道)가 아니겠습니까? 명리학은 천도를 따르고 인간의 권력(權力)에는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강자를 거스르지 말라는 말은 명학에서는 재론(再論)의 여지도 없는 허언(虛言)일 따름이지요.”
“팔자도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봐야 하는 거잖아?”
기현주는 우창의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실 만도 합니다. 자연의 이치에는 세력이 약하다고 해서 강한 무리를 따르는 이치도 없으며, 세력이 강하다고 해서 약한 무리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천도를 따른다면 이 정도의 판단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겠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이 말하자 기현주는 그래도 미심쩍은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쇠왕의 진기(眞機)에도 그러한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앞에서 억부(抑扶)는 이내 허언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렇기에 기본적인 이치는 억부에 있으나 참된 기틀은 왕자(旺者)를 생부(生扶)하고 약자(弱者)를 극제(剋制)하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잖아?”
기현주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신이 든다고 생각되는 것은 강경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것을 본 우창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예전에 월국(越國)의 백성이 오(吳)에게 정복(征服)당하면 백성은 월나라 말을 쓰지 못하고 풍습도 오 나라의 것을 따라야만 목숨을 부지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논리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명학에도 스며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떻습니까? 다시 오나라가 쇠약해지고 월나라가 강해져서 나라를 되찾게 되자 의연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말과 풍습을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겉으로만 보고서 복종(服從)하고 속국(屬國)이 되는 것을 완전히 굴복(屈服)하고 변했다고 본다면 또한 성급한 판단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현령을 바라봤다. 나라와 나라의 이야기이기에 현령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우창과 눈이 마주친 현령이 말했다.
“오호! 내게도 대화에 끼어들 기회를 주는 것이오? 허허허~!”
“이러한 이야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인지라 일지(一志) 선생이 동참하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는 현령도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잘 아는 지인 중에 고려국(高麗國)의 선비가 있는데 그가 말하는 것을 재미있게 들었던 적이 있었소.”
“아,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고려국에 대해서는 궁금했었는데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실상은 고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려의 이전에 있었던 신라(新羅)와 백제(百濟)의 이야기라고 하오.”
“그것도 좋습니다. 역사에서는 배울 것도 참 많으니까요.”
“백제(百濟)가 번창할 적에는 세력이 대단했었는데 신라에게 멸망(滅亡)하고 말았소. 그러자 백제의 백성들도 신라의 백성이 되었고, 그래서 약 250여년을 완전히 신라인이 되었었다고 하오.”
“그랬겠습니다. 비단 그 나라뿐이었겠습니까? 온 천하가 모두 그와 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되기 마련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패도(覇道)에서 항상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소. 그런데 그가 놀랐던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고 하오.”
“궁금합니다. 무엇이 그를 놀라게 했습니까?”
“신라에게 정복되기 전에는 백제의 화려한 문화가 있었다고 하오. 특히 목조(木彫)의 대탑(大塔)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전한다고 하오.”
“목재로 만든 탑이라면 필시 전화(戰禍)에 온전히 존재하기 어려웠겠습니다.”
“맞는 말이오. 그래서 모두 불타버리고 사라졌다고 하고. 그리고 신라도 결국은 패망하고 그 자리에는 고려국이 들어서지 않았겠소.”
“그랬군요. 그렇다면 옛 백제인들도 다시 고려의 통치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창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말하자 현령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 아니라. 옛 백제의 후손들이 절을 세우면서 석탑(石塔)을 만들었다고 하오.”
“그러니까 목탑(木塔)에서 석탑으로 바뀌었단 말이군요. 문화는 그렇게 서로 융화(融化)되면서 변하는 것이니까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오.”
현령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그 석탑의 형태가 신라의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는 것 아니겠소?”
“예? 그 말씀은 재료만 나무에서 돌로 변했을 뿐이고 형태는 그대로 백제국의 것이었다는 말입니까?”
“바로 그 말이오. 세력에 따르는 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머리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라는 말을 해줬소이다. 누이의 말에 강한 세력에 따라서 변한다는 말은 겉보기만 그럴 뿐이고 실상은 전혀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구려. 허허허~!”
현령의 말을 듣고 난 기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오호! 오라버니가 멋진 가르침을 주셨네. 그러니까 명학에서도 종격(從格)은 깊이 사유하지 못한 산물(産物)이라는 말이잖아요? 정말 세상의 경영을 하는 사람도 깨달을 분야(分野)는 항상 있기 마련이네요. 호호호~!”
우창도 기현주의 말이 끝나자 현령에게 말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결국은 자연의 이치나 인간의 이치나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의미를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쇠해도 자신의 본연은 지키고 있는다는 의미로 봐서 진기(眞機)는 종화(從化)의 논리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맞아, 동생의 설명에 반기를 들었다가 본전도 못 건졌잖아. 호호호~!”
“아닙니다. 그 바람에 귀한 이야기도 들었으니 오히려 소득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삼명(三命)의 오묘(奧妙)함은 쇠왕의 진기를 잘 아는 것에 있고 그것을 벗어나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알았어. 인성(印星)을 따라서 종하면 종강(從强)이고, 비겁을 따라서 종하면 종왕(從旺)이거나 일행득기격(一行得氣格)이라고 하는 말은 자평에서 지워야 한다는 것으로 알면 된단 말이지?”
“우창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모르지요. 참으로 밝은 종사(宗師)를 만나서 그것도 틀렸다고 깨우침을 주신다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하~!”
“그러니까 진기(眞機)의 뜻은 득령(得令)을 했더라도 허약할 수가 있고, 실령(失令)을 했더라도 강왕할 수가 있다는 의미로만 이해하면 되겠구나. 그렇지?”
“맞습니다. 우창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그 강약의 기준선이 미세한 경우에는 그것을 판단하는 데는 어려움이야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경험이 쌓이다가 보면 구관(舊官)이 명관(明官)이라고 하듯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공이 쌓이다가 보면 모두 해결이 되는 것으로 봅니다. 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그래서 쇠왕이 어렵고, 또 어렵기 때문에 쇠왕의 이치를 잘 알게 된다면 이미 절반은 해결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인 거지?”
“맞습니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만약에 강약의 균형이 참으로 미세(微細)해서 어느 쪽이 강한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는 거야.”
“걱정도 팔자이십니다. 약하지 않으면 강한 것으로 보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흑백을 구분하려고 애를 쓴단 말입니까? 하하하~!”
“아니, 그렇게 보면 되는 거였어? 너무 쉽네. 호호~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것을 깊은 곳의 은밀한 뜻까지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구나. 그래서 스승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야 누님의 열정이 있으시니 또한 가능한 일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도 열정이 없다면 또한 스치는 바람에 불과할 따름일 텐데 말입니다.”
“그래, 다음 구절도 살펴보자. 너무 재미있잖아. 이번에는 제목이 「중화(中和)」편이네.”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본문을 읽고 풀이까지 했다.
기식중화지정리(既識中和之正理)
이어오행지묘(而於五行之妙)
유전능언(有全能焉)
‘이미 중화(中和)의 바른 이치를 알았다면
이것이 바로 오행의 오묘함이라
비로소 모두를 다 알았다고 하리라’
의미를 풀이하던 기현주가 한 손으로 이마를 치며 말했다.
“아하~! 왜 앞에서 사과반(思過半)이라고 했나 싶었더니 이 구절에서 유전능(有全能)을 말하려고 그랬구나. 어쩐지, 왜 반을 얻었다고 하는가 싶었어.”
“그러셨군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쇠왕(衰旺)을 알면 절반을 깨달은 것이고, 오행(五行)을 알면 전부를 누릴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자평의 놀이는 오행에 있다는 말로 보면 되겠습니다.”
“정말 감동이야! 오행이 이렇게나 심오하다는 것을 왜 진즉에 몰랐을까 싶어. 그냥 어렵고 복잡한 것에 진실한 조짐을 읽을 수가 있는 비법이 있을 것으로만 생각하고서 육임(六壬)이니 기문(奇門)이니 철판(鐵板)이니 하면서 섭렵(涉獵)하려고만 했지 정작 조고각하(照顧脚下)를 몰랐었잖아?”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까? 하하~!”
“하긴, 봄이 왔다기에 그것을 찾으러 온 산천을 누볐지만 찾지 못하고 지친 몸을 끌고 뜰에 들어서니 매화나무에 봄이 한가득 쏟아졌더라는 말이 떠오르네. 누군지 몰라도 이러한 시를 읊은 고인은 분명히 나처럼 천하를 쏘다니고 나서 깨달은 것일 거야. 그렇지?”
“아마도 누구나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안심입명(安心立命)에 이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유랑(流浪)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깨달음일 테니까요. 하하~!”
기현주는 목이 마른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자, 다시 생각해 봐야지. 그러니까 중화의 바른 이치를 알게 되면 비로소 오행의 오묘함을 알게 된다는 말이잖아? 여기에서 말하는 중화(中和)란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간단하지 않습니까? 쇠왕(衰旺)이 중화이겠습니까?”
“쇠왕? 그것은 편중(偏重)이잖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편중을 알면 절반을 아는 것이고 중화를 알면 전부를 아는 것이라는 말이니 누님의 수준이면 바로 깨달으실 것같습니다만.”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 기현주를 바라봤다. 그러자 잠시 눈을 깜빡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동생, 그러니까 처음에는 편중을 알아야 한단 말이지? 이것은 흡사 음양(陰陽)과 같은 것이 아닐까?”
“맞습니다. 적확(的確)하게 핵심을 짚으셨습니다. 하하~!”
“그렇지? 음양은 음이나 양으로 치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고, 그 음양이 균형을 이루면 중심(中心)이 될 것이고, 그것을 일러 중화라고 한다는 말이잖아?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 거야?”
“누님은 공(空)을 아시는지요?”
“공? 불가에서 말하는 진공(眞空)을 말하는 거야?”
기현주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가령 두 사람이 있어서 한 사람은 음의 극단(極端)에서 출발하고 다른 한 사람은 양의 극단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중간에서 만난다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우창이 너무 어렵게 설명했나 봅니다. 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 것만 같아서 말이야......”
“무풍지대(無風地帶)라고 하는 말은 아시지요?”
“아, 그야 알지. 전혀 바람도 불지 않는 지대를 말하는 것이잖아.”
“두 사람이 마주 보고 걸어서 만나는 곳이라면 음이겠습니까? 아니면 양이겠습니까?”
우창의 말을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비로소 이해된다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비음비양(非陰非陽)~!”
“예.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곳이 무풍지대이고 곧 공의 지역입니다. 하하~!”
“공(空)은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어?”
“우창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음양의 이치를 알고 보니까 바로 그 중화(中和)의 자리가 바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요체였습니다.”
“정말 놀랍구나. 음양에 공의 이치가 들어있을 줄이야.”
우창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생각에 잠긴 기현주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미 앞서 약자의부(弱者宜扶)와 강자의억(强者宜抑)에서 중화지도(中和之道)를 모두 설파(說破)한 셈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쇠왕이나 중화의 구절은 부연(敷衍)해서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앞에서 이해가 채 되지 않은 학자를 위한 경도 선생의 배려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다만 우창의 생각으로는 경도 선생의 의도라기보다는 후대에 자상했던 어느 가탁(假託) 선생의 배려라고 봐야 하지 싶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설명한 것을 다시 설명하기에는 적천수가 너무 간결하니까 말이지요.”
“맞아, 그건 동생의 말이 이해되네. 유전능(有全能)이라니 ‘능히 전부를 얻었다’고 하는 말이 참으로 매력적이잖아?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오행의 이치를 다 모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걸.”
갑자기 기현주의 말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오호! 이제 누님께서 오행의 이치에 입문하셨습니다. 원래 오행은 그렇게 미묘(微妙)한 것이기에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조심 살피면서 얇은 얼음을 피하고 두꺼운 곳을 찾아서 밟으며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정말이네. 처음에는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보면 알았다고 생각한 것도 참으로 알았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니 말이야. 정말 이 공부가 끝이 있기는 한 것이냐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생각해?”
“세상만사에 끝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스스로 깨달은 것이 끝이라고 할밖에요. 그러니까 어제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서 쇠왕(衰旺)을 판단하는 것이 끝인 줄로 알았다가 오늘은 다시 오행의 이치를 깨닫고 중화(中和)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 끝인 것이지요. 이렇게 하다가 보면 결국은 전무(全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무라니? 아무 것도 없단 말이잖아?”
“원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생겨난 음양이고 오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모두 깨달은 다음에 사로(思路)가 끝이 나면 분별도 없을 것이니 비로소 왕쇠(旺衰)도 중화(中和)도 생각에서 사라질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다가 다시 설명하는 것을 듣고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 난 또 무슨 말인가 했어. 그런데 깨닫고 나면 사라진다는 것은 왜일까? 느낌은 알겠는데 말로 설명하려니까 쉽지 않네.”
“가령, 목마른 나그네의 생각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야 시원한 물이 있지 않을까? 목이 마르면 물이 필요하다는 몸의 신호일 테니 말이야.”
“그러다가 시원한 석간수(石澗水)를 발견하고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갈증이 해소된 다음에도 물의 생각이 간절하겠습니까?”
“원, 그럴 리가 있나. 이미 물 생각은 사라지고 없겠지. 아하, 그러니까 모든 것을 깨닫고 나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단 말이었어?”
우창이 대답 대신에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기현주가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난, 예전에 고승전(高僧傳)을 보면서도 무(無)나 공(空)에 대한 구절을 대하면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그렇게 말들 하시나’보다 싶었어. 그런데 오늘 동생의 가르침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말의 본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겠네. 흡사 배가 고픈 아이가 엄마의 젖을 배불리 먹고는 잠이 드는 것과 같다는 것이잖아?”
“그렇습니다. 깨달음이 있고 나면 깨달음이 책장의 책처럼 쌓이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조차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누가 무슨 말을 물어도 답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일러서 고인들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창의 말을 들으며 자원과 삼진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다만 현령은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