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 제43장. 여로(旅路)
25.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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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말이야. 고전(古典)의 이론 중에서 적천수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은 헛된 주장들이었다는 거야? 그게 갑자기 궁금해졌어.”
“당연히 궁금하실 만합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어느 현(縣)의 수령(首領)도 오랜 세월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의지해서 명학을 연구하다가 우창에게 적천수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즉시로 그 책을 던져버리고 적천수에 몰입하게 되었으니까요.”
“아, 그랬어? 정말 그분도 귀한 인연을 만나셨구나. 다행이네.”
“그렇기도 합니다만 실은 적천수에서 거론하지 않은 것에서도 쓸만한 것이야 왜 없겠나 싶습니다. 다만 중요성(重要性)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다른 것을 아무리 거론하고 논쟁한다고 하더라도 적천수의 이치를 모르고서 논한다면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이론을 이해한 학자라면 당연히 적천수에서 거론하는 왕쇠론(旺衰論)으로 정리를 한 다음에 기타의 논리는 알아서 수습하라는 말이구나. 그렇지?”
“맞습니다. 그렇게 보면 타당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러니까 자평법(子平法)의 골격(骨格)은 적천수를 기준으로 삼으란 말이지?”
“우창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자마다 다른 생각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오류라고는 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하하~!”
“알았어! 무슨 뜻인지 이해했으니까 그만하면 되었고.”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던 기현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팔격(八格)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잖아? 그 말은 격국론(格局論)도 채용했다고 봐야 하는 것은 아냐?”
“맞습니다. 앞의 구절은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적천수에는 팔격(八格)의 다음에 체용(體用)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정작 중요한 핵심은 팔격의 다음에 거론하겠다는 심증(心證)이 었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원래 팔정격에서는 비겁격(比劫格)은 외격(外格)으로 취급하니 기본적인 이론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으로 봐도 될 테니까 말이야.”
“다음의 구절을 살펴보면 왜 적천수로 골격을 삼아야 하는지 명료하게 드러난다고 하실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음 구절에 대해서 살펴봐야 하겠네.”
우창은 기현주가 원문을 살펴보면서 생각하는 동안 잠시 창밖에서 새들이 씨앗을 쪼아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음..... 길조(吉兆)로구나.....’
우창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기현주가 말했다.
“어? 뭐가?”
“예?”
“지금 혼잣말로 그랬잖아. ‘길조로구나’하고 말이야. 뭐가 길조라는 거지?”
“아, 아닙니다. 하하하~!”
“뭔가 조짐을 본 것이 틀림없잖아?”
“그렇긴 합니다. 누님의 공부에 길조가 보였다는 뜻이긴 합니다. 마침 산새들이 나무에 매달린 씨앗을 쪼아먹느라고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냥 보면 평상(平常)한 일상이었겠습니다만, 마침 누님이 글을 읽으려고 하는 순간이어서 길조라고 여겨졌나 싶습니다. 하하하~!”
“그랬구나. 고마워! 호호호~!”
우창은 다시 기현주가 보는 글에 눈길을 줬다. 잠시 후에 자신이 풀이한 것을 소리 내서 읽었다. 삼진과 자원은 물론이고 여정도 두 사람의 대화에 몰입하느라고 찻잔의 차가 식는 줄도 몰랐다.
“이게 뭐야? ‘그림자가 메아리를 바라보느라고 얽혀있으니 이미 허망하게 되었고, 잡다한 기운의 재성과 관성에는 얽매이면 안 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잖아? 동생이 설명해 줘야 하겠네. 무슨 뜻이지?”
“그렇습니까? 실은 이 구절로 인해서 앞의 팔격은 이름일 뿐이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한 경도 선생의 의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창이 잠시 경도 선생의 마음을 빙의(憑依)해서 말씀드려 본다면 이렇습니다.”
“어떻게?”
“그래, 명학(命學)을 공부하는 학자들이여! 고래로 존중해 온 팔격을 무시할 생각은 없어! 그러나 우선 허접한 것들은 정리하고서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네!”
우창이 이렇게 나이가 든 노인의 음성으로 말하자 자원이 깔깔대며 웃었다.
“아니, 싸부! 이제는 배우(俳優)의 놀이도 하시남요? 호호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도 자원과 함께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누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마음은 동심이고 정신은 초롱초롱하고 감정은 즐거워져서 이런저런 것들을 거침없이 표현하게 되잖아. 그래서 해 본 거야. 하하하~!”
기현주도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영(影)은 그림자를 말하는 것이니 실물이 없는 것을 말하잖아?”
“그렇습니다.”
“실물이 없는 것을 격국에 끌어들였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줘봐.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잖아. 간지(干支)에 무슨 그림자가 있다는 거지?”
“누님, 혹시 비천록마격(飛天祿馬格)격은 아시지요?”
“그야 알지, 경자(庚子)나 임자(壬子)로 태어난 일간(日干)이 사주에 정관(正官)이 없을 적에 사주 원국에는 오화(午火)가 없더라도 충입(衝入)하는 작용에 의해서 자오충(子午冲)으로 오화(午火)를 불러들이게 되니까 경일(庚日)은 오중정화(午中丁火)의 정관을 용신으로 삼는 것이고, 임일(壬日)은 오중기토(午中己土)를 정관으로 삼는 것을 말하잖아?”
“그것을 일러서 그림자 격국이라고 해서 ‘영격(影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왜? 비천록마격은 연해자평(淵海子平)에도 나와 있는데 격국이 올바르지 않다는 말이야?”
“명식(命式)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지 싶습니다. 누님에게는 당연히 책이 있을 테니 하나 찾아서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시지 싶습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잠시 서가(書架)로 가서는 때가 많이 묻은 『연해자평(淵海子平)』을 들고 와서는 비천록마격에 나온 사주를 찾아서 적었다.
“이 사주잖아. 비천록마격으로 삼자(三子)가 오화(午火)를 충(冲)으로 불러왔으니 절묘하게 되었다는 채귀비(菜貴妃)의 사주라고 나와 있어. 그런데 감히 비천록마격을 그림자라고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걸.”
“그렇습니다. 월지(月支)의 격국으로 보면 상관격(傷官格)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도 말하지 않고 비천록마라고 하면서 귀비(貴妃)가 되었던 것은 군왕(郡王)을 의미하는 정관(正官)도 없는데 어떻게 가능했겠느냐는 풀이로 보면 되겠습니다.”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잖아. 이 사주를 비천록마로 봐서 대귀(大貴)한 것으로 풀이를 한 연해자평은 틀렸다는 말이지? 과연 적천수는 적천수구나! 감히 연해자평과 삼명통회에 도전(挑戰)하다니 말이야. 호호호~!”
기현주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끼면서 우창에게 다시 말했다.
“그런데, 왜 이것이 틀렸다는 거지? 그것까지 알아야만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할 테니까 말이야.”
“그림자라는 말은 허상(虛像)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다시 의혹이 남네. 그건 말이야, 왜 애초에 이러한 것을 만들었느냐는 거지. 뭔가 필요해서 만들었을 텐데 이제는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폐기한다는 것이잖아?”
“그랬을 것입니다. 이유가 있었겠지요. 이 사주를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무관(無官)의 사주인데 왕의 총애를 받았으니 당연히 정관(正官)이 있어야 한다는 가설(假說)을 세웠을 것입니다.”
“아, 맞아~! 그래야지. 그건 나도 이해가 되는걸.”
“아마도 서승(徐升)도 고민에 잠겼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누군가 쓴 명리학자(命理學者)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서승은 강호에 떠도는 자료들을 정리해서 『연해자평』에 모았을 테니 말이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서승이 채귀비의 사주를 놓고서 곰곰 궁리하다가 보니까 자수(子水)가 보이고 자수는 오화(午火)와 충을 한다는 것까지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그렇게만 되면 비로소 귀비를 한 여인의 사주에 전혀 없는 정관을 찾아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이네. 그러니까 설명을 위해서 학리(學理)를 뒤집었다는 말이야?”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경도 선생이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황당한 논리가 난무하는 명학계(命學界)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특단(特段)의 조치가 필요하겠다고 판단하셨겠지요. 그래서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칼을 뽑아 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겨우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영향요계(影響遙繫)’라는 글자를 쓰시면서 내심으로는 비분강개(悲憤慷慨)를 하셨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고마운 가르침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설명이 되네. 사주에 없는 오화(午火)를 용신으로 삼아서 숨은 관이 더 귀하다는 말까지 섞어서 왕에게 설명했을 그 학자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걸. 왕의 면전(面前)에서 얼마나 땀이 났을까. 호호호~!”
기현주는 우창의 설명에 공감(共感)되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는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아, 그런데 말이야.”
“예, 무슨 말씀이든 하시지요.”
“그러니까 약자의부(弱者宜扶)의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허약한 사주에 관성도 없는데 어떻게 왕의 총애를 받아서 귀비가 되었느냔 것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할지 그게 궁금해서 말이야. 정말 용신이 토(土)가 된다면 이것에 대해서 경도 선생이 어떻게 설명했을지 궁금하네.”
“그러실 만하겠습니다. 부귀빈천(富貴貧賤)으로 본다면 비천록마격(飛天祿馬格)이 맞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도 선생의 관점은 마음이 편안한 것이 우선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런 관점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어린 시절은 초년운(初年運)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맞아, 그렇게도 말하잖아.”
“연주(年柱)에 기미(己未)가 있습니다. 부모(父母)의 권세(權勢)가 대단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연주를 대입해 보면 어린 시절의 기쁨이고 꽃 같은 시절이니 말입니다. 그런 나이에 부모의 도움으로 왕과 인연이 되어서 귀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치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적천수의 관점으로 풀이해도 됩니다.”
“그래 이상하다고 할 것이 없어. 이해되었어.”
“만약에 경도 선생이 하충 선생을 그때 알았더라면 무릎을 치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오랜 후에 하충 선생이 출현했으니 말이지요.”
“그렇다면 동생의 설명을 듣는 것이 낫겠구나. 어디 어떻게 설명하는지 듣고 싶어.”
“우창의 풀이는 이렇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꿈같은 나날이었으나 월주(月柱)가 작용하는 청년(靑年)의 시절부터 노년까지는 쓸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월일시(月日時)에는 일점(一點)의 토(土)가 없으니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건 너무 작위적(作爲的)인 해석이 아냐? 그렇게 풀이를 해봐도 되는 거야? 구중궁궐(九重宮闕)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살아가는 귀비에게 말이야.”
기현주의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창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보통의 생각이라면 누님의 말씀이 당연히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만, 우창의 관법은 유심론(唯心論)입니다. 연해자평은 유물론(唯物論)이라고 할 수가 있다면 이것은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경도 선생의 관점은 그 사람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맞습니다. 초년은 희락(喜樂)의 시절이었으나 그다음에는 비애(悲哀)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팔자의 구조에서도 능히 짐작되고도 남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판단하지?”
“팔자를 봐하니 왕의 사랑이 식어버려서 마음이 떠났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그 후로의 삶은 어떨지 누님도 짐작하실 수가 있지 싶습니다만.”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기현주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하~! 내가 착각했네. 녹의홍상(綠衣紅裳)으로 치장하고 왕의 사랑을 받는 것만을 생각했지, 수없이 많은 미녀에게 밀려서 독수공방(獨守空房)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 지금 동생이 하는 말이 그런 뜻이지?”
“그렇습니다. 그제야 ‘비단으로 감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지낸 것을 후회하는 제단(祭壇)의 돼지’가 된들 이미 늦었지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돼지라니?”
“아, 장자(莊子)에 나온 말입니다. ‘잠시의 호의호식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미로 자신은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던 것이지요. 하하하~!”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하던 기현주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우와~ 멋진 논리구나! 둘 다 맞는 말이라면 당연히 망설이지 말고 논리적으로도 타당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야 학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잖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경도 선생이 세워놓은 골격에 하충(何忠) 선생이 살을 붙이셔서 우아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후학은 별로 큰 노력도 없이 이렇게나 맛있는 명리로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하~!”
“정말 그것도 궁금하긴 한데, 우선 팔격(八格)의 내용부터 더 살펴보고 설명해 줘.”
“바쁠 일이 없으니 천천히 풀어도 되겠습니다.”
“고마워. ‘영향요계(影響遙繫)’라고 한 네 글자의 조합이 너무 재미있어서 말이야. 영(影)은 비천록마격(飛天祿馬格)의 정황(情況)을 통해서 이해되었어. 그림자를 실체로 대입해서 설명하는 고인들의 고충(苦衷)도 느껴졌어. 정말 우리 명학의 선현(先賢)들도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고통을 겪었겠다는 것도 겸해서 말이야.”
“그렇습니다. 물론 그러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바람에 후학은 다시 고통의 늪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방황해야 하는 부작용도 생겼으니 말이지요.”
“맞아, 그렇다면 다음에 향(響)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려줘 봐. 그것도 알고 나야 제대로 이해될 것 같아서 궁금하네.”
기현주가 이렇게 묻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누님의 궁금증은 이해가 됩니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향요계는 팔정(八定)격을 제외한 기격이국(奇格異局)을 모두 묶어서 네 글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자요사격(子遙巳格)이나 축요사격(丑遙巳格)은 말할 것이 없고, 도충격(倒冲格)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하, 을기서귀격(乙己鼠貴格)도 그런 거야?”
기현주의 물음에 우창이 얼른 말했다.
“맞습니다. 기왕 말씀하시니까 참고로 명식을 살펴볼까요?”
“그래 설명을 들으면 다시는 잊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호호~!”
우창은 기현주를 위해서 사주 하나를 적었다.
우창이 적은 사주를 보더니 기현주가 말했다.
“그래, 이것이 바로 자요사격(子遙巳格)이구나. 을(乙)의 천을귀인(天乙貴人)은 자신(子申)이고, 자(子)는 양귀(陽貴), 신(申)은 음귀(陰貴)잖아? 천을귀인이야 신살 중에서 최상급으로 존중하는 것인데 이것은 또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연해자평으로 논하면 누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귀인의 도움을 받아서 귀하게 산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 사주를 오행법(五行法)으로 논명(論命)한다면 강(强)한 을목(乙木)이 시간(時干)의 병화(丙火)를 용신으로 삼으니 시지(時支)의 자수(子水)는 흉물(凶物)이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행의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둘이 아닌지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아하~ 알았어! 왜 기격(奇格)과 이국(異局)을 모두 ‘기위허(旣爲虛)’라고 했는지 이제야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어.”
기현주는 그제야 만족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며 우창도 한마디 거들었다.
“과연 현명하십니다. 하하~!”
“그다음에 있는 구절은 잡기재관격(雜氣財官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불가(不可)는 ‘안 된다’는 것이고 구(拘)는 구애받는 것이니까 결국은 ‘잡기재관에도 구애받지 말라’는 뜻이잖아? 이렇게 보는 것이 맞아?”
“적확(的確)하게 풀이하셨습니다. 그대로 맞는 말씀입니다. 잡기(雜氣)는 격국론으로 본다면 진술축미(辰戌丑未)월을 말하는 것인데 지장간에 잡다하게 들어있다고 해서 잡기라고 했으니, 예를 들어서 무기토(戊己土)가 진월(辰月)에 태어나서 진중을목(辰中乙木)이 투출(透出)되었으면 을목(乙木)을 용신으로 삼게 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은 알고 계시지요?”
“맞아! 그런데 그것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그 말은 이미 많은 사람이 그러한 것에 구애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쓴 글로 보이는데 왜 구애받지 말라는 거지?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야.”
“인생을 살면서 부귀(富貴)를 누리려면 재관(財官)이 필요하다고 하는 고정관념(固定觀念)에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부자(富者)는 재성(財星)이 담당하고 귀자(貴者)는 관성(官星)이 담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갇힌 까닭이지요.”
“그렇지. 그건 나도 이해가 되네.”
“누님이 이해되셨다니 이미 답은 얻으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주를 접하게 되면 부귀를 찾게 되는데 이미 부귀한 사람에게 재관(財官)이 없다면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장간(支藏干)에 들어있는 재관(財官)이라도 있기만 하다면 꺼내어서 쓴다고 하면서 견간부회(幹部會)라도 해서 그 사람이 부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여 부귀격(富貴格)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머나! 그랬구나. 동생의 설명을 들으니 흡사 ‘봄날에 얼음이 스르르 녹듯’이 궁금했던 것들이 녹아서 없어지는 신기한 것을 맛보네. 호호호~!”
우창은 기현주가 참으로 기뻐한다는 것을 보니 내심으로 큰 보람이 느껴졌다. 쉽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지만 이렇게 귀를 기울여서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마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기현주가 다시 물었다.
“나도 지락(至樂) 선생을 만나서 오주괘(五柱卦)를 배웠으나, 그것도 무수히 많은 점술(占術)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오늘 동생을 만나서 적천수를 듣다가 보니까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명학(命學)은 쓰레기처럼 느껴지고 오행의 이치를 바탕에 두고서 사유(思惟)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것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 진심으로 고마워.”
“우창도 동감입니다. 누님, 하하~!”
“참, 하충 선생의 신공(神功)으로 채귀비의 사주를 풀이한다면 어떻게 해석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네. 귀찮겠지만 우둔한 나를 위해서 설명을 부탁해.”
“누님도 참, 귀찮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인데 말이지요.”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원과 삼진을 바라보다 두 사람도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우창이 채귀비의 사주를 보면서 풀이했다.
“경금(庚金)이 자월(子月)에 태어났고 또다시 일지(日支)에도 자수(子水)가 있으니 상관(傷官)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유추해 본다면 상관의 능력은 표현에 있으니 이러한 재능이 탁월(卓越)하다고 하겠습니다. 꾸밈새도 뛰어나서 남자가 바라보게 되면 한눈에 혹하고 반하게 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맞아, 상관구재(傷官口才)라고도 하잖아.”
“더구나 좌우에 있는 병화(丙火)는 편관(偏官)입니다.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에서는 우아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인의 품성에서 자중(自重)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이 세상의 풍습이니 말입니다.”
“맞아 나는 그것이 없잖아. 호호호~!”
이렇게 말하는 뜻은 기현주는 관살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고는 우창이 다시 말했다.
“누님은 식신생재(食神生財)를 타고났으니 무엇이든 잡고 늘어지면 끝장을 봐야만 되는 본성을 갖고 있으신데 무엇이 부러우십니까? 학문을 한다면 대학자가 되실 것이고, 장인(匠人)이 되더라도 명인(名人)이 될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기존의 명서(命書)의 논리로 풀이한다면.....”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기현주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앞에 펼쳐놓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사주는 정관(正官)이 없으니 천박(淺薄)한 팔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누님은 아무리 자신의 팔자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삶의 모습이 천박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우아(優雅)하다고 해도 되겠습니까?”
우창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기현주가 움찔하고는 잠깐 생각하더니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살 뿐이야. 이것을 누가 우아하다고 하겠어? 다만 천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학문을 즐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시서(詩書)를 즐기게 되었나 싶기는 해. 호호~!”
“우창이 보기에 누님처럼 살아가는 여인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싶은 정도로 멋진 삶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고법(古法)은 믿을 것도 못 될 뿐만 아니라 내다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쉰 떡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하~!”
“그런가?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나도 기쁘긴 하네. 호호~!”
기현주도 여자였다. 좋은 말이 듣기 싫을 까닭은 없어서 만면에 웃음기를 띠면서 웃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화제(話題)를 전환해서 사주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