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 제43장. 여로(旅路)
24. 관살(官殺)의 의미(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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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창문을 비추니 방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자 시동(侍童)이 들어와서 등불을 들고 나갔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말했다.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
“그것은 등유(燈油)가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맞아, 등유는 오행이 뭐야?”
“등유는 액체(液體)이니 오행은 수(水)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은 새삼스럽게 기현주가 묻는 오행에 답을 하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항상 제자들에게 묻던 말을 자신이 답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러한 것이 좋았다. 문득 학생이 되어보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였다.
“맞아, 그리고 풀무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름과 불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기름만 있으면 불이 꺼지지 않고 잘 타오를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나?”
“예?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 필요한 것이 더 있습니까? 등불에도 풀무질이 필요하다니요. 무슨 의미입니까?”
“거참, 이상하네.....”
기현주가 알 수 없다는 듯이 우창을 보며 말했다.
“이상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우창이 다시 묻자 기현주가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이제 알겠구나. 제자들을 위해서 바보가 되기로 했단 말이구나. 그래 참된 스승은 그래야지. 호호호~!”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은 무슨 말이겠어. 이미 알만한 사람이 자꾸 바보처럼 물으니까 하는 소리지 뭘. 호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을 곁에 있던 찻잔으로 살짝 덮었다. 그러자 불이 까물까물하다가 이내 꺼졌다.
“이게 왜 꺼진 거야? 기름이 없어서인가?”
“그야 공기가 없어서지 않습니까?”
“맞아. 실은 풀무질을 멈춘 까닭이지. 호호~!”
“아니, 거기에서도 풀무질이 나오는군요. 참 놀랍습니다.”
“놀랍긴 뭐가 놀랍다는 거야? 세상 만물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몰랐다는 말은 아닐 테고 말이지. 호호호~!”
“그러니까 말입니다. 몰랐던 것은 아닌데 그러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하하~!”
“수화(水火)가 원활하게 돌아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풀무질이잖아. 그것을 일러서 순환(循環)이라고 하지.”
기현주의 말에 이번에는 자원이 물었다.
“순환이라면, 수생목(水生木)하고 목생화(木生火)한다는 말씀인가요?”
“뭐, 그렇게 말해도 되겠지. 목생화(木生火)하고 목생수(木生水)한다고 해도 되겠고 말이야. 호호~!”
“목생수라고 하시면?”
“기름이 심지를 따라서 올라오도록 하는 일도 바람이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지 뭐. 호호~!”
오행의 생극에 대해서는 뭐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원이 문득 바보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런 이치가 있다는 것을 살피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피가 혈관을 타고 돌아가는데도 풀무질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네요? 정말 오묘한 이치에요.”
자원이 감탄하는 듯이 말하자 기현주의 말이 이어졌다.
“맞아, 심장이 음양(陰陽)으로 운동(運動)하면서 벌떡거릴 적에 바람은 거기서도 풀무질을 하고 있는 거야. 모든 움직임에는 풀무질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정말 감탄했어요. 그렇게 관(觀)하는 것이었네요.”
“심장도 혈액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지?”
“아, 그렇겠네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죠. 호호~!”
“그것이 바로 수생화(水生火)잖아. 관상동맥(冠狀動脈)을 타고 흐르는 피는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윤활유(潤滑油)가 되어주는 것이니까 말이지.”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 우창이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누님의 설명이 명쾌합니다. 인체의 수화(水火)는 그렇게 운행되고 있는 것임을 잘 이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팔괘도(八卦圖)는 자연계에서나 인체에서나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네요.”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니 내가 다 기쁘구나. 호호~!”
“그렇다면 인체는 정신과 육체로 되어 있는 을경(乙庚)이라고 이해했으니, 이번에는 자연에서도 을경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살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자연에서 온갖 사물은 다 주체가 있잖아? 나무는 나무처럼 자라고, 호랑이는 호랑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경(庚)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그리고 그렇게 유지하도록 지탱해 주는 것이 모두 풀무질하는 을(乙)이지.”
기현주의 설명은 거침이 없었다. 우창은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물었다.
“자연에서 일출(日出)과 일몰(日沒)을 인유(寅酉)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그러한 이치가 적용되겠습니까?”
“그게 뭐가 어렵다고. 생노병사(生老病死)가 바로 인유(寅酉)가 아니고 무엇일까? 태어남은 인(寅)이니 갑(甲)과 같은 것이요. 죽음은 유(酉)가 되니 신(辛)과 같은 것이듯이 인생의 황혼이 되면 서산낙조(西山落照)라고 하지 않아? 인생의 황혼과 하루의 일몰은 조금도 다르지 않잖아?”
“정말 꼭 맞습니다. 그러니까 경(庚)인 건(乾)과 을(乙)인 손(乾巽)의 육체가 모태에서 성장한 다음에는 진목궁(震木宮)에서 인중갑목(寅中甲木)의 상징인 인월(寅月)에서 시작된 삶이 일생을 잘 보내고는 죽음의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태금궁(兌金宮)의 흐름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로군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혈액(血液)인 감수(坎水)를 따뜻하게 해주는 리화(離火)의 도움을 받아서 일평생을 쉼없니 움직여 주기에 감리(坎離)가 되니 그렇다면 육체(肉體)는 곤토(坤土)가 되고, 골격(骨格)은 간토(艮土)가 됩니까?”
“옳지! 이제 정리가 되었구나, 참 다행이네. 호호호~!”
그때 시동이 들어와서 아침이 마련되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모두 일어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이번에는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식전(食前)에는 우창이 물었으니 식후에는 내가 묻는 것이 맞겠지? 실은 어제 본 적천수에서는 팔격(八格)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했어. 많은 명서(命書)에서도 팔격에 대해서 하는 말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라서 말이야.”
기현주가 궁금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다시 접객실에 둘러앉았다. 밥보다 공부가 더 좋다고 할 사람들인지라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다. 책을 펼치자 기현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팔격(八格)」편을 읽었다.
재관인수분편정(財官印綬分偏正)
겸론식상필격정(兼論食傷八格定)
영향요계기위허(影響遙繫既爲虛)
잡기재관불가구(雜氣財官不可拘)
원문을 읽고 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이건 통상 하는 말이잖아? 재성(財星)은 정재(正財)와 편재(偏財)로 나누고 관살(官殺)도 정관(正官)과 편관(偏官)으로 나누고 또 인성(印星)도 정인(正印)과 편인(偏印)으로 나눈다는 말이니 새롭다고 할 것이 없잖아?”
“그렇습니다. 기본이야 당연히 자평법이지 않겠습니까? 하하~!”
“하긴, 자평법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고 하겠구나. 다만 깊이가 다를 수는 있단 말이지? 우창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봐서 말이야.”
“그렇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중요한 것은 깊이를 더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구나. 다음 구절을 보면 앞의 여섯 가지에다가 식상(食傷)인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을 같이 넣어서 팔격(八格)이 정해진다는 말이니 여기에는 비겁(比劫)이 빠져있네? 이건 왜 그렇지? 외격(外格)으로 본 건가?”
“맞습니다. 체(體)가 용(用)이 될 수가 없어서 외격이라고 했지 싶습니다. 물론 그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팔격(八格)도 논할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 경도 선생의 관점이지 싶습니다. 팔격은 월지(月支)의 십성(十星)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러니까 일월(日月)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당연히 격국(格局)도 월지(月支)에서 나왔다고 보면 되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월에 국한(局限)시키지 않고 용신격(用神格)으로 논하는 것이 경도 선생의 관점이고 우창도 그것이 옳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월지격국(月支格局)은 논하지 않을뿐더러 지장간(支藏干)의 월률분야(月律分野)도 거론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던 기현주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뭐라고? 그렇게 봐도 되는 거야? 그건 너무 파격적(破格的)이잖아?”
“원래 적천수는 파격적입니다. 틀을 깨는 것이 맞으니까요. 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되는 거냐고?”
“누님이 놀라시는 것을 보니 명가(命家)에서 하늘같이 떠받들던 격국(格局)을 추구(芻狗)처럼 길가에 버리듯 하는 것처럼 느껴지셨습니까?”
“어? 추구라니? 그건 또 뭐야?”
“아, 옛날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려면 짚으로 개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제물로 소중히 받들어서 사용했답니다. 그렇게 하고는 행사가 끝나면 그것을 길에 던져버린다고 노자(老子)가 말했거든요.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하하~!”
“맞아, 딱 그런 느낌이네. 어떻게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할 수가 있어?”
“그래서 파격이지 않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랜 세월을 격국옥(格局獄)에 갇혀서 모든 사주를 격국에만 집어넣고 궁리하느라고 드넓은 천하를 바라볼 생각도 못 했지요. 또 그러한 것이 있다는 생각조차도 할 줄을 몰랐으니 그야말로 정중청와(井中靑蛙)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도 의미를 알아듣고는 이해가 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하! 그랬구나. 정말 듣고 보니 파격(破格)이 맞네. 정말 왜 이렇게 통쾌할까? 호호호~!”
“원래 파격의 보상은 통쾌(痛快)지요. 하하하~!”
“그렇구나. 그래서 월률분야도 버리고 격국도 버리고 무엇으로 판단한다는 거야? 이제 슬슬 걱정되잖아. 호호~!”
“여기에 옷을 입힌 스승님이 하충(何忠)이십니다. 십성(十星)의 심성(心性)으로 논명(論命)하는 것이지요.”
우창이 진지하게 말하자 기현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십성의 심성이라고? 언뜻 이해가 안 되는걸. 어떻게 한다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누님의 공부라면 한 시진만 설명하면 바로 깨우칠 수가 있을 것이니 전혀 염려하실 일이 아니지요. 하하~!”
“우창이 그렇게 말하니까 안심은 된다만 그래도 안개 속인걸. 어서 명쾌(明快)하게 설명해 주셔봐.”
“누님께서는 부귀영화(富貴榮華)를 풀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창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말했다.
“그야 부귀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마음이 편하지 못하면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더라도 마음에는 냉풍(冷風)이 지나갈 뿐이니 말이야.”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누님 정도면 능히 대화가 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과연 우창을 실망(失望)시키지 않으십니다. 하하하~!”
우창은 통쾌하다는 듯이 말하며 웃었다. 그러자 기현주도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참으로 다행이네. 그래서? 십성으로 심상을 살피는 요결(要訣)을 어서 알려줘야지. 그깟 칭찬이야 개나 줘버리고 말이야. 호호~!”
“격국(格局)의 초점(焦點)은 부귀빈천(富貴貧賤)을 살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에는 그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경도 선생도 처음에는 그렇게 관명(觀命)을 하셨으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부귀빈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셨겠지요.”
“오호~! 그래서?”
“어쩌면 부처의 가르침에서 답을 찾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도 선생이 우연한 계기에 수행이 깊은 고승(高僧)을 만났더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건 또 무슨 이유지?”
“부처의 가르침은 유심론(唯心論)이지 않습니까?”
“맞아, 부처는 항상 세상의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명학(命學)에 불학(佛學)이 접목(接木)된 것이란 말이야?”
“겉으로 보이는 것을 연구하다가 실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팔자 속에 있는 용신(用神)이야말로 핵심(核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으셨겠지요.”
“아니, 용신이야 격국(格局)에서 나오는 것이잖아?”
기현주는 갑자기 혼란스럽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맞습니다. 격국에서 나오는 것을 격용(格用)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그래야만 일용(日用)과 혼란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건 처음 듣는 말인걸. 그러니까 월지(月支)에 당령(當令)한 오행(五行)을 용신으로 삼는 것이 원래는 용신이었는데 경도 선생은 그러한 논리를 격용(格用)이라 한단 말이지? 그 말은 격국용신(格局用神)이라는 말이겠구나. 듣고 보니까 이치는 타당한걸.”
“적천수에는 ‘격용(格用)’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우창이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이해하셨던 것으로 미뤄서 짐작되는 것이지요.”
“정말이지 격용을 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도 어려운 일인걸. 참으로 놀랍구나. 그런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네.”
“그것은 마치 ‘부귀빈천을 버리겠노라’라고 하는 선언과 같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후로는 길 없는 길을 가면서 가시덤불과 험한 바위를 헤집고 다니셨을 것입니다. 손톱은 빠지고 발에는 물집이 생기셨겠지요.”
“고인들이 닦아놓은 편한 길을 두고서 고행(苦行)하셨단 말이네? 과연 놀랍구나, 정말.”
“우창은 이러한 말을 바로 알아들으시는 누님이 더 놀랍습니다. 하하~!”
“그 정도야 뭘. 그래서? 결국은 일용(日用)을 찾아내신 거잖아?”
기현주는 감동했다는 듯이 합장하면서 우창에게 물었다. 그 표정은 위대한 스승을 만난 사람의 표정이었다. 우창은 오히려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격국은 허상(虛像)이었음을 깨달으셨던 것이지요.”
“와우~! 다행이고 축하할 일이네.”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면서 손뼉을 쳤다. 우창은 계속 설명했다.
“명리(命理)의 핵심은 겉으로 보이는 부귀빈천보다 그 사람이 느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이지요.”
“정말 그 말을 들으니 경도 선생이 불가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이 되는걸.”
“아, 희노애락은 불가에서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가(儒家)에서도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의 감정(感情)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구나. 이야기에 빠져서 그것도 잊어버렸네. 그런데 칠정(七情)에는 락(樂)이 없는 걸.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이니까 말이야. 안 그래?”
“그렇다면 아마도 우창이 오히려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인가 봅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격국이 아니라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으로 판단하셨던 것이지요.”
“맞아!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지. 그렇다면 일용(日用)에는 그러한 의미가 나타난단 말이야?”
기현주가 급하게 묻는 것을 보며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격용의 기준은 당령(當令)이라면, 일용의 기준은 왕쇠(旺衰)입니다.”
“왕쇠는 나도 아는데? 일간이 득령(得令)이 되면 왕성(旺盛)하고 실령(失靈)이 되면 쇠락(衰落)한 것이잖아?”
“맞긴 합니다만, 비록 득령을 했더라도 불왕(不旺)인 경우도 있고, 실령을 했더라도 불쇠(不衰)인 경우가 있다는 것을 경도 선생은 파악하셨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월령에만 매달려서는 올바른 감명(鑑命)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고는 일용(日用)에 대해서 거듭해서 연구하셨던 것입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보니까 정말 대단하셨던 경도 선생이었구나. 생각할수록 감동이네. 왕쇠는 어떻게 알아내지? 월령만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은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이지?”
“월지도 중요하고 일지(日支)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세력(勢力)도 살펴야지요. 물론 세력을 살피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어려워서 왕왕(往往) 혼란스러워하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숙련(熟練)하게 되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알겠어. 그렇다면 왕성(旺盛)한 일간(日干)은 어떻게 해결하는 거야? 왕성한 일간의 희노애락은 어디에 있느냔 말이야.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네. 어서 설명해 줘봐. 호호호~!”
“여러 가지로 다양한 실험(實驗)과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겪은 다음에 깨달으신 네 글자는 강자의억(强者宜抑)입니다.”
“어? 왕자의억(旺者宜抑)이 아니고?”
“강왕(强旺)은 같은 뜻이니까요. 왕쇠(旺衰)는 강약(强弱)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면 되지 싶습니다.”
“아, 그렇구나. 서로 같은 말이네. 그래도 차별하고 싶어서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 줄 거야?”
기현주는 이미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었다. 우창도 이렇게 집중해서 파고드는 경우는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즐거웠다.
“누님이 몰입하시니 우창도 즐거울 따름입니다. 하하하~!”
“알았으니까 어서 설명해 줘봐.”
“그 차이를 설명한다면, 비겁(比劫)이 많으면 왕(旺)한 것이고, 인성(印星)이 많으면 강(强)한 것이며, 식상(食傷)이나 관살(官殺)이 많으면 약(弱)한 것이고, 재성(財星)이 많으면 쇠(衰)한 것으로 구분할 수는 있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그렇게 말해주니 일목요연(一目瞭然)하구나. 잘 알았어. 그러니까 비겁(比劫)만 있으면 왕(旺)하겠으나 그것만으로 왕하기는 어려우니까 필시 인성(印星)도 있을 것으로 가정(假定)한다면 강왕(强旺)이니까 줄여서 강(强)이라고 했단 말이지?”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하하~!”
“결국은 왕쇠(旺衰)는 강약(强弱)으로 말하는 것이 맞겠구나. 관살이나 식상이 있으면 약(弱)한 것이 되니까 말이야.”
“맞습니다. 누님이 제대로 이해하셨습니다.”
“강자의억(强者宜抑)은 ‘일간이 강왕(强旺)할 때는 눌러주는 것이 옳다’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극제(剋制)하란 말이지? 그렇다면 관살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그리고 억(抑)에는 설(洩)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악한 어머니도 자식을 품에 안으면 온화(溫和)해지니까 말이지요. 하하~!”
“그러니까 이때는 관살(官殺)이나 식상(食傷)을 일용(日用)으로 삼는다는 말이지? 그것참 간단하구나.”
“맞습니다. 일용의 이치는 조화(調和)의 균형(均衡)에 있으니까 말이지요.”
“듣고 보니까 격용과 일용은 전혀 다른 말이구나. 격용은 당령에 있고, 일용은 균형에 있단 뜻이니까 말이야.”
“정말 제대로 잘 이해하셨습니다.”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짓던 기현주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렇다면 약자의방(弱者宜幇)이 되는 건가? 당연히 약한 자는 도와야 할 테니까 말이야.”
“그렇습니다. 경도 선생은 약자의부(弱者宜扶)라고 하셨습니다.”
“방(幇)과 부(扶)의 차이는 뭐야?”
“비겁으로 도우면 방조(幇助)가 되고 인성으로 도우면 생부(生扶)가 되는 차이라고 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렇겠네. 정말 시시콜콜한 물음에도 얼른 답을 해 주니 내 속이 시원하네. 동생은 그런 것도 생각해 봤다는 말이잖아?”
기현주의 말투가 동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
“허구한 날에 일없이 그런 궁리나 하고 있으니까요. 하하하~!”
“정말로 멋지다! 호호호~!”
“뭘요. 누님도 그러면서 자연의 이치를 즐기시잖아요? 하하~!”
“그런가?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러니까 약자(弱者)는 인겁(印劫)에서 희락(喜樂)이 되고, 강자(强者)는 식상이나 관살에서 희락(喜樂)을 찾는단 말이지?”
“맞습니다. 그 마음에 부합하는 것을 본다면 일간(日干)의 용신(用神)이면 환희(歡喜)가 되어 기뻐하고, 희신(喜神)이면 용신을 도와주니 총애(寵愛)가 되어서 아끼고, 기신(忌神)이면 용신을 극제(剋制)하니 분노(忿怒)하고 구신(仇神)이면 기신(忌神)을 도와주니 슬퍼하여 비애(悲哀)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희노애락(喜怒哀樂)이라고 할 만하겠지요?”
기현주는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잠시 멍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우창도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을 즐기도록 가만히 기다리면서 차를 한 잔 마셨다.
“아하~ 그렇게 해서 새로운 자평법의 골격을 세웠다는 말이네? 그런데 심성(心性)을 살피는 것은 하충 선생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하충 선생은 살을 붙인 것이라면 여기에 옷을 입힌 것은 지락 선생의 오주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니, 듣고 보니까 무슨 말인지 짐작은 되는데 이해는 안 되는걸. 차근차근 풀이해 줘야 하겠어. 힘들겠지만 나를 위해서 부탁해.”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설명해 주기 위해서 목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