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 제43장. 여로(旅路)
23. 방국(方局)의 해석(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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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났는데도 기현주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은 초저녁이라서 잠을 자기에도 어중간하던 참에 앞에서 차를 마시던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괜찮으시면 적천수나 한 편 읽어보고 싶은데 풀이 좀 해주시겠습니까? 매일 봐도 자꾸 보고 싶으니 말입니다.”
마침 뭔가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았던 우창도 삼진의 말에 반겨서 대답했다.
“그렇군. 매우 적절한 생각인걸. 어디 펼쳐볼까?”
우창이 흔쾌히 말하자 삼진이 책을 챙기고 여정은 종이를 준비했다. 접객실은 등불을 일곱 개나 켜놔서 환하게 밝았다. 자원도 밖으로 나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정말 오라버니의 호학(好學)은 따를 사람이 없겠어요. 나도 괜히 밖에 나가서 어슬렁거릴 것이 아니라 여기 앉아서 공부해야 하겠네요. 호호호~!”
재빠르게 책을 펼친 삼진이 「형상(形象)」편에 이어서 「방국(方局)」편을 공부할 차례임을 생각하고서 펼쳤다. 자원이 먼저 말했다.
“오늘은 저녁도 잘 먹었고 푹 쉬었으니 자원이 읽어볼게요.”
이렇게 말하고는 원문을 읽었다.
방시방혜국시국(方是方兮局是局)
방요득방막혼국(方要得方莫混局)
국혼방혜유순자(局混方兮有純庇)
행운희남혹희북(行運喜南或喜北)
원문을 읽고 난 자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아니, 싸부, 이 내용은 도대체 무슨 말이죠? 이름이 방국(方局)이니까 방합(方合)과 삼합(三合)의 이야기이겠거니 싶었지만, 막상 내용을 보니까 해괴(駭怪)한 의미로 밖에는 안 보이니 말이에요.”
자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자 삼진이 의견을 말했다.
“누이의 생각도 그렇구나.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혹시 무슨 깊은 뜻이 있으려나 싶어서 다시 살펴보기는 했지.”
“어디 삼진의 풀이를 들어볼까? 글자가 앉은자리 값도 못 하면 내쳐버려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우선 보이는 대로 풀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삼진이 내용을 짚어가면서 풀이했다.
방(方)은 방이고, 국(局)은 국이다
방은 방을 얻어야 할 뿐 국과 섞이면 안 되니
국이 방과 혼합이 된다면 허물이 되고
운에서는 남방을 반기거나 혹 북방을 반긴다
“스승님, 방(方)은 동방(東方)의 인묘진(寅卯辰)이나 남방(南方)의 사오미(巳午未)나 서방(西方)의 신유술(申酉戌)이나 북방(北方)의 해자축(亥子丑)이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달리 풀이할 방법은 없지 싶습니다.”
“맞아. 달리 해석할 것은 없겠지.”
“그렇다면 국(局)은 또 목국(木局)의 해묘미(亥卯未)와 화국(火局)의 인오술(寅午戌)과 금국(金局)의 사유축(巳酉丑)과 수국(水局)의 신자진(申子辰)을 말하는 것도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겠지.”
우창이 이렇게 동의하자 삼진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동방(東方)이라고 해서 인묘진(寅卯辰)이 있다면 이 셋이 모여서 목방(木方)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동방이라고 해도 그만이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세 글자가 모여있다면 진토(辰土)까지도 목(木)으로 보라는 뜻입니까?”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으니 그대로 보면 될 것이네.”
이때, 밖에서 말방울 소리가 들리면서 시동의 말소리가 들렸다.
“마님, 이제 귀가하십니까.”
“그래, 손님들 대접은 잘했지?”
“성의껏 한다고 했습니다만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래 잘했다.”
이미 술시(戌時)도 지나서 해시초(亥時初)가 되어서야 귀가한 기현주를 모두 일어나서 반겼다. 자원이 말했다.
“많이 늦으셨네요. 우리는 편히 쉬고 있어요.”
“손님을 기다리게 했나 봐. 미안해요~! 호호~!”
우창도 기현주를 반기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저녁을 잘 먹고 우리끼리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책을 본다는 말에 기현주의 눈은 다시 반짝이면서 탁자에 놓은 책에 눈길을 주면서 말했다.
“책을 본다니 참 학자들이시구나. 그래서 무슨 책을 보시는 거지?”
이번에는 자원이 말했다.
“아, ‘적천수’라는 책이에요. 언니도 알고 계시죠?”
기현주는 자원의 말을 듣고서 안다는 듯이 말했다.
“멋진 책이지. 중간에 누군가 섞어놓은 뉘가 있어서 그렇지, 그것만 식별할 줄 안다면 그야말로 명학(命學)의 보물(寶物)이라고 해도 되지. 좋은 책을 보고 있구나. 나도 읽은 지가 오래라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 이참에 같이 들어봐야 하겠구나. 어디 계속 봐.”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물었다.
“그런데 누님이 외출하셨던 이야기가 더 궁금한데 그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우창은 강행성의 일에 대한 처리가 궁금해서 물었는데 기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야 천천히 말해도 되니까 우선 하시던 말씀부터 마무리하고 봐, 방국을 공부하고 있으신가 보구나.”
“예, 무료(無聊)해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간단히 펼쳤습니다. 누님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이게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인지 모두 궁금하다고 하니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창은 기현주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견해를 듣게 되면 또 새로운 안목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고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내용에 대한 의견을 청하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이렇게 간단한 내용이야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 가령 목방(木方)이어서 인묘진(寅卯辰)이 사주에 있는데 여기에 목국(木局)인 해묘미(亥卯未)가 섞여 있다면 목기(木氣)가 넘쳐나서 이미 중도(中道)를 잃어버린 셈이 되니까 이렇게 되면 순수(純粹)하지만 하자(瑕疵)가 된다는 의미인데 뭘.”
기현주의 시원한 풀이를 듣고서 삼진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역시! 견해는 많이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 과연 맞습니다. 공화 선생의 풀이에서 한마디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겠습니다. 하하~!”
우창도 생각해 보니 과연 그럴싸했다.
“누님의 풀이가 명쾌합니다. 그러니까 해묘미(亥卯未)로 되어 있는 사주라면 여기에 다시 인묘진(寅卯辰)이 있게 된다면 지나치게 강왕(强旺)해서 그 쓸모를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였군요.”
“맞아, 그리고 마지막 구절인 ‘운은 남방을 좋아하기도 하고 북방을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은 있으나 마나 한 군더더기잖아? 이게 뭐야? 용신이 정해짐에 따라서 운의 방향의 길흉이 달라질 뿐인데 그냥 글자의 행(行)을 맞추려고 하다가 보니까 경도 선생이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려니 하면 되겠지?”
“과연 누님이십니다. 하하하~!”
우창도 속이 시원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기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이미 알만한 사람들이 뭘 호들갑스럽게. 다음 구절이나 살펴봐. 호호호~!”
이번에는 삼진이 다음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약연방국일제래(若然方局一齊來)
수시간두무반복(須是干頭無反復)
성방간투일원신(成方干透一元神)
생지고지개비복(生地庫地皆非福)
성국간투일관성(成局干透一官星)
좌변우변공록록(左邊右邊空碌碌)
만약에 그렇게 방국이 같이 있다면
모름지기 천간의 머리가 이를 등지지 말 것이니
이미 방이 이뤄졌는데 천간에 원신이 하나라도 투출된다면
생지(生支)든 고지(庫支)든 모두 복이 되기 어렵고
국이 이뤄졌는데 다시 관성이 하나 투출했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공허하게 떠돌 뿐이다
“이렇게 풀이했는데 이치에 부합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풀이를 한 다음에 삼진은 다시 기현주에게 의견을 청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잘했어. 결국은 태왕(太旺)한 사주라면 쓸모가 없다는 말이잖아? 이러한 것은 종왕격(從旺格)과 상반되는 말인데 이것은 우창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기현주는 쉽게 말하면서도 내용은 깊이가 있었다. 웃으면서 하는 말에 핵심이 담겨있어서 우창도 내심 긴장이 되었다.
“누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라도 우창은 종격의 이치는 상리(常理)에서 벗어난다고 봐서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국(方局)의 이론이 더 부합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기현주의 의견을 들으려고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구절의 내용도 이미 비겁(比劫)이 태왕(太旺)한 상황에서 천간에 무력한 정관(正官)이 있다면 비록 용신(用神)이라고는 하지만 허약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말이잖아? 그래서 항상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오행의 균형을 제외하고는 논할 것이 없지 않겠어?”
“과연, 누님의 탁견(卓見)이십니다. 하하하~!”
우창은 속이 시원하게 풀이하는 기현주의 말을 듣고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우창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적천수를 읽는 이유가 있어? 내가 봐서는 이미 더 읽을 필요가 없는 수준이 분명한데 말이야.”
“그래도 아는 길도 물어본다고 하는 의미지요. 하하하~!”
“물론 그렇겠지만 괜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찻잔을 기울이는 것만 못하잖아? 호호호~!”
“이제 방국에 대해서도 이해했으니 공부는 그만하고 누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우창이 궁금했던 것을 묻자 기현주가 책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띠고서 말했다.
“다음에 공부할 구절은 팔격(八格)인가 보네. 팔격은 내일 아침에 또 살펴보기로 하고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싶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 짐작은 했겠지만 나가서 현령을 만나서 저녁을 대접하고 왔지. 결과는 점괘대로 해결되었으니까 전혀 마음을 쓸 일이 없어. 내일 오시(午時)에 관청(官廳)에서 집행하기로 했어.”
“집행한다는 말씀은 죄인을 놓고 벌하는 것일 텐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집행한다는 뜻이지요?”
“죽은 사람이 워낙 고리대금(高利貸金)으로 원성(怨聲)이 자자했던 사람인지라 현령도 내심으로 앓던 이가 빠진 만큼이나 무척 좋아하더구나. 호호호~!”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강행성은 피신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괜히 겁을 먹고 달아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좀 다르지. 누군지 몰라야 하는데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지목당하게 되면 아무래도 조용하게 넘어가는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또 다른 뜻이 있었어. 자원은 그걸 짐작했지 싶은데 어때?”
조용히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던 자원을 향해서 기현주가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대답했다.
“언니 눈은 속일 수가 없네요. 아침에 서둘러서 보내면서도 전혀 걱정스러운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뜻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지금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싸부에게 붙여서 공부하도록 할 요량이셨던가 봐요? 호호~!”
지현주는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 붓을 들어서 괘를 하나 그렸다.
자원이 보니 팔괘이기는 한데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몰라서 눈만 껌뻑이며 기현주를 바라봤다. 그러자 팔괘의 눈이 밝은 삼진이 설명했다.
“이 괘는 수산건(水山蹇)의 오효(五爻)가 동한 것으로 봐서 건지겸(蹇之謙)인가 싶습니다. 그래서 공화 선생이 서둘러서 강행성을 남쪽으로 급히 보내셨군요. 과연 민첩하십니다. 하하~!”
삼진의 설명에도 자원은 이해를 할 수가 없자 삼진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자원을 위해서 설명해 줘봐요. 알아들을 수가 없네.”
자원이 다그치자 삼진이 기현주를 보면서 말했다.
“삼진의 생각이 맞는다면, 위험한 물을 건너서 남쪽의 산으로 피신하게 되면 귀인을 만나서 허물은 사라지고 큰 터전을 얻게 되는 것으로 풀이가 되지 싶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맞습니까?”
삼진이 이렇게 묻자 기현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야~ 삼진도 수준이 예사롭지 않으시구나. 맞아요, 맞아~! 호호호~!”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건괘(蹇卦)의 오효(五爻)가 나왔는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까 조카 녀석의 말을 들으면서 점기를 살폈더니 수산건(水山蹇)이 보였지 뭐야. 시신(屍身)을 물에 넣었다고 하니 감괘(坎卦)가 위에 있고, 그를 묶었다고 하니까 걸음을 걸을 수가 없는 것으로 봐서 상괘(上卦)가 수(水)인 괘를 훑어보니까 바로 수산건(水山蹇)이지 뭐야. 이때 우창을 만나서 동행하여 귀가한 것을 보고서 바로 대인(大人)임을 알았고, ‘서남득붕(西南得朋)’이 떠올라서 남쪽으로 가라고 했던 거야. 물론 우창이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면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되겠지만 이것은 이미 서로 얽혀 있어서 이대로 끝날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거든. 호호호~!”
자원은 설명을 듣고서도 뭔가 명료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서호로 가서 우창을 기다리라고 한 의미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역시 언니의 안목은 다른 경계에서 노니는 것이 분명해요. 자원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어요. 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면서 감탄하자 삼진이 말했다.
“과연, 공화 선생은 팔방미인(八方美人)이십니다. 두루 섭렵하신 학문의 세계가 광활하다고 해야 하겠으니 말입니다.
삼진의 말에 기현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과찬은 하지 말아요. 그보다도 적천수의 이치를 탐구하는 자세에 내가 감동한걸요. 자세한 것은 내일 오시(午時)에 현청(縣廳)에서 보기로 하고 오늘은 고단하실 테니 그만 쉬어요. 나도 조금 고단하네.“
그러자 이미 시간도 늦어서 해시말(亥時末)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서 모두 작별하고는 침소에 들었다.
우창은 이른 새벽에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깼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신 반주가 과했는지 갈증이 났다. 눈을 뜨자 어느 사이에 따뜻한 귤을 우려서 만든 음료가 옆에 놓여 있었다. 갈증이 난 김에 한 잔을 마시고 나자 심신이 쾌적했다. 옷을 대충 걸치고 정원으로 나가보니 이슬에 촉촉하게 젖은 꽃들이 벌써 벌 나비를 부르고 있었다.
항상 이맘때의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우창인지라 어제는 가보지 못했던 뒷산까지도 둘러봤다. 소박한 정자에서는 물에서 헤엄치고 다니면서 아침을 해결할 먹이를 찾는 오리도 볼 수가 있었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보는데도 한 시진은 걸릴 듯한 넓은 장원이었다. 비록 여행하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내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돌아오는데 화원에서 꽃을 자르고 있던 기현주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말했다.
“누님, 기침하셨습니까.
“응, 우창도 잘 쉬셨어? 싱그러운 꽃을 보니 마음이 밝아지잖아? 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한 웅큼의 싱싱한 꽃들을 들고 앞장을 섰다. 접객실은 어느 사이에 불을 환하게 밝혀놓았다. 그 중앙에 있는 화병에 있는 꽃들을 새 꽃으로 바꿔 꽂아놓자 방안의 분위기가 더욱 환해졌다. 은은한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자 우창도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온종일 기분이 좋잖아.”
“그렇겠습니다. 좀 전에 화원에서 보니까 꽃을 고르시는 것 같았는데 예쁜 것을 고르셨겠지요?”
“맞아, 절정(絶頂)에 다다르기 직전의 꽃을 찾느라고 좀 골랐지.”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싱싱한 꽃을 보려면 절정을 넘긴 꽃이나 너무 이른 시기의 꽃을 자르면 안 되니까 말이야.”
“그런 것도 있습니까? 그럴 법은 합니다만 처음 듣습니다.”
“당연하지, 무엇이든 순환의 시기가 있잖아. 그리고 만개(滿開)하기 직전의 꽃을 잘라서 꽂아놓으면 하루를 버티지만 이미 만개한 꽃은 하루를 못 버티고 시든단 말이야. 더구나 아직 미숙(未熟)한 꽃은 향이 약해서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 순간을 잘 포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새벽의 일과지. 호호호~!”
기현주는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밝게 웃으며 우창에게 말했다. 이내 아침을 먹으라는 통보에 모두 식당에서 즐겁게 아침밥을 먹고는 접객실에 모여앉아서 차를 마셨다. 말없이 차를 마시던 우창이 물었다.
“어제 누님이 말씀하셨던 풀무질의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기발한 생각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가 우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우창이 또 궁금한 것이 생겼구나. 말씀해 봐. 들어봐야지.”
“예, 그렇습니다. 실은 팔괘(八卦)의 도판(圖板)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든 생각입니다. 수화기제(水火旣濟)를 인체에 적용하면 어떤 해석을 할 수가 있을 것인지 누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우창의 말에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야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그게 궁금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평법(子平法)에서 일간(日干)과 월지(月支)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다가 보니까 팔괘의 수화(水火)가 하나씩 있는 이유를 만약에 사람으로 비유하면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 것이지요.”
“그랬구나. 다행히 그 질문에는 내가 답을 할 수가 있겠어. 호호호~!”
기현주가 즐거워하자 자원도 거들었다.
“정말 언니의 기발하고 탁월한 설명이 기대되네요.”
기현주가 자원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응, 인체(人體)에서 수(水)는 뭐지?”
기현주의 물음에 우창이 너무 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 혈액(血液)이 아니겠습니까?”
“혈액은 차가울까? 아니면 따뜻할까?”
“따뜻합니다.”
“정말?”
“예? 아닙니까? 몸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 다시 물어볼까? 자연의 물은 따뜻할까 차가울까?”
“물은 차갑습니다.”
“그렇다면 인체의 물도 차가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현주가 이렇게 묻는 말을 듣고서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그 뜻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누님의 가르침에 또 한 번 감탄합니다. 과연 누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혈액은 따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착각하고 살았네요. 하하하~!”
“너무 쉽지? 그래서 내가 웃은 거야. 호호~!”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인체에서 화(火)는 온기(溫氣)가 아니겠습니까? 온기의 원천은 심장(心臟)에 있으니 냉기(冷氣)의 원천은 오장(五臟)의 배속에 따라서 신장(腎臟)에 있지 싶습니다.”
우창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설명하자 이번에는 기현주가 물었다.
“신장이 오행으로 수(水)가 되는 것은 맞지만 냉기라고 하니까 뭔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냉기는 얼어붙게 만든다는 생각이 앞서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은데?”
기현주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우창에게 묻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수(水)가 냉기라고 해서 차가운 얼음물을 떠올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수의 기능 중에는 응고(凝固)하는 성분이 있고, 응고는 혈액에서 죽은 것과 몸에서 사용하고 남은 액체들을 모이게 한 다음에 방광을 통해서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니 그것도 냉기라고 할 수도 있을 듯 싶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하~ 언뜻 생각하기로는 황당하다 싶었는데 수(水)의 기능이 그렇다는 생각은 미쳐 못했었네. 이제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어.”
우창은 기현주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다시 물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혈액이 차가운데도 엉겨 붙지 않는 이치를 말해 볼까? 몸에서 나온 혈액은 이내 굳어버리는 것은 또 왜 그럴까? 그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말이야.”
“아하! 그 뜻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중요한 것을 간과(看過)할 뻔했네요. 그것은 바로 수화기제(水火旣濟)가 아닙니까?”
“그건 왜?”
“그야, 차가운 혈액은 이내 굳어질 것이지만 따뜻한 화기(火氣)로 굳지 못하도록 해 주니까 말이지요. 몸을 벗어난 혈액은 수화기제를 이루지 못하니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되어서 이내 죽어버리는 것이고 자연의 물도 그래서 차가운 것이지만 대지(大地)가 얼어붙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지하와 지상을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 오묘하지? 호호호~!”
기현주는 우창의 설명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 것을 보면서 우창은 기현주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