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 제43장. 여로(旅路)/ 26.변사체(變死體)의 재판

작성일
2024-11-10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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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4] 43. 여로(旅路)

 

26. 변사체(變死體)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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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채귀비의 사주를 풀이해 보겠습니다. 그가 말도 잘하고 절제(節制)까지 하는 모습에서 왕의 간택(揀擇)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어린 시절에는 글도 열심히 읽었을 테니 교양(敎養)도 갖췄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우창이 갑자기 묻자, 기현주도 얼떨결에 채귀비의 사주를 보고 연주(年柱)의 기미(己未)를 짚으며 대답했다.

 

 

 

 

정인(正印)이 연주(年柱)에 있어서인가?”

그렇습니다. 더구나 부모(父母)도 이미 상당한 지위(地位)에서 공부하도록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양과 미모와 말씨를 보고서 귀비가 되었을 것으로 추론(推論)해 봅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기현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말 오행의 이치에 부합하는 풀이구나. 그래서?”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습니다만, 대략 이십(二十)이 지나고 나면 월주(月柱)의 운을 타게 됩니다. 물론 세운(歲運)이야 길흉에 따라서 작용하겠으나 이미 고인이니 세세(細細)하게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그래 맞아, 그리고 대운도 작용할 테니까 그것도 봐야잖아? 첫 대운은 음녀(陰女)니까 정축(丁丑)이고 다음은 무인(戊寅)이네.”

차차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대운도 거론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간지의 팔자(八字)와 매년(每年)마다 들어오는 태세(太歲)일 뿐이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대운은 허상(虛像)인 까닭입니다. 영향요계와 같은 의미인데 궁금하시면 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물론 당연히 그 연유에 대해서도 들어봐야 하겠으나 지금은 우선 하충 선생의 풀이가 궁금해.”

하하~ 알겠습니다. 하충 선생의 관점(觀點)으로 본다면 일간(日干)의 좌우(左右)에 있는 병화(丙火)는 창검(槍劍)을 들고서 옆을 지키는 병사(兵士)입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호위(護衛)한다고 합니다만 실상은 감시(監視)하면서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상부에 보고하는 편관(偏官)과 같은 존재들이지요.”

설명을 듣고서 보니까 정말 그렇게 보이네. 딱해라~!”

그런데 정작 자신은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월일시(月日時)에 어디에서도 인성(印星)인 토()는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로지 가마에 올라서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이구나. 비천록마격으로는 전혀 볼 수가 없었던 인간의 심층(深層)에 깃들어 있는 내면의 세상을 훑어볼 수가 있다니 놀라워!”

그렇다면 누님께 묻습니다. 구중궁궐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역사에서는 귀비(貴妃)로 살았다는 것을 적어놓겠으나 장작 본인의 삶은 어땠을까요? 흡사 생불여사(生不如死)는 아닐까요?”

그렇겠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마구 드는구나. 동생은 어떻게 이러한 학문을 모두 깨닫게 된 거야? 참으로 인연이란 중요하단 말이야. 나는 처음 듣는 말인데 동생은 이미 그 안에서 푹 젖어있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니까 난 그게 부럽네.”

누님도 이미 우창의 오행 놀이에 동참하셨으니 머지않아서 자유자재로 운용하실 수가 있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근래의 3년 중에서 오늘보다 기쁜 날은 없었던 것 같네. 정말 푹 쉬면서 귀한 가르침을 준다면 고맙겠어.,,...”

이렇게 말하면서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마음에서 격동(激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그러더니 우창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고대광실(高臺廣室)이 아니고 부귀영화(富貴榮華)도 아냐, 그냥 편히 잠들었다가 기쁜 마음으로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르는데 큰 고통이 없기만을 바랄 따름이지. 오늘 새삼스럽게 동생을 만나서 깨달음이 컸어. 부귀빈천(富貴貧賤)이 아니라 희노애락(喜怒哀樂)이라는 가르침 말이야. 이런 생각을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가르침을 듣고서 자평학(子平學)의 이치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명료하게 알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스승님으로 부를 테야. 우창 스승님~!”

기현주의 말에 우창은 물론이고 자원과 삼진도 감동했다. 아쉬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저택(邸宅)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배움에 대해서는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청하는 모습에 느낀 바가 많았다.

언니의 모습에서 자원도 더욱 열심히 수학(修學)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항상 싸부 옆에 있는 것으로만 만족했는데 그것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看過)했어요. 그래서 절박한 마음이 솔직히 없었는데 오늘 언니가 말씀하시는 것이나, 가르침을 청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자책(自責)하게 되네요. 정말 감사해요.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향해서 물었다.

내친김에 자원도 싸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호호~!”

우창이 무엇이 궁금하냐는 듯이 바라니까 기현주의 사주에서 시간(時干)의 정화(丁火)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싸부, 이 식신(食神) 말이에요. 본질이 정관(正官)이잖아요. 그래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매료되는 것일까요? 같은 식신이라도 하는 모습은 또 제각기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했어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는 또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자원을 보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식신을 정관이라고 하는 이유는 뭐지? 아직도 내가 모르는 기밀(機密)이 있다는 거잖아?”

모르신다고 하니 말씀드릴게요. ()의 본질을 비견(比肩)에 놓고 나머지 천간을 대입해서 이름을 붙이게 되면 바로 알게 되실 거니까요. 호호호~!”

뭐라고? 그렇게 간단한 말이야? 가만, 그러니까 정()은 정관(正官)이고 병()은 편관(偏官)이란 말이야? ()는 정인(正印)이고?”

그렇다니까요. 호호호~!”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어? 난 또 석 달 열흘간 면벽수행(面壁修行)이라도 해야 알 수가 있는 것인 줄로 알았잖아. 참 내. 호호호~!”

알고 보면 원래 간단한 것이라고 항상 말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해보면 그게 맞긴 해요. 다만 아쉬운 것은 늘 익히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죠. 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아니겠어? 익히는 것은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그래서 이렇게 밝은 가르침을 남겨준 고인들의 역작(力作)을 대하면 항상 감동할 수밖에 없는 거야. 경도 선생이 그렇고 하충 선생이 그렇잖아.”

맞아요. 우창 선생도 그렇고요. 호호호~!”

그렇구나. 스승의 목록(目錄)에 동생도 추가하게 되어서 기뻐. 호호~!”

기현주의 말에 자원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다시 여쭐게요. 정화(丁火)가 정관이 아니었더라면 또 다른 형태의 식신이 되는 거죠? 왜냐면 자원의 팔자는 편관(偏官) 식신(食神)이라서인지 궁리하다가 보면 머리가 아파져서 쉬어야만 하는데 말이죠.”

자원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가 급하게 말했다.

맞아, 자원의 사주도 궁금하네. 어디 적어 봐. 어떻게 풀이가 되는지 공부 삼아 연구하게 말이야.”

기현주의 말에 자원도 붓을 들어서 자기의 명식을 적었다.

 

 

 


자원의 사주를 보던 기현주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호라~ 스승을 팔자에 달고 태어났으니 이렇게 복이 많구나. 부럽다.”

부럽긴요. 자원은 언니가 부러운걸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이 관살(官殺)들을 보세요. 잠시라도 정신을 다른 곳에 팔면 사고가 발생한다니까요. 호호~!”

그런데..... 여태까지 살아온 나날이 순탄치는 않았나 봐. 내가 맞게 본 거야?”

언니가 본 것이 맞아요. 혼탁(混濁)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잖아요? 그래서 여태까지 잘 살아있는 것도 다행이다 싶어요. 호호~!”

그렇구나. 자원을 봐서는 모습도 지적(知的)이고 사유(思惟)도 깊어 보이는데 사주를 봐서는 왜 이렇게 생겼나 싶었지. 이건 무슨 이치인지 설명해 줘봐.”

아마도 팔자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싶어요. 도관(道觀)으로 떠돌고 유리걸식(遊離乞食)으로 천하를 유람하다가 어느 곳에서 돌봐 주는 사람 하나도 없이 쓸쓸한 임종을 맞이했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오행을 공부하게 되면서 날뛰던 마음도 다스리게 되고, 더구나 전생에 무슨 공덕이 있었던지 우창 싸부를 만나는 바람에 이렇게 지금은 그래도 인간이 다 되었다고 해도 되지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칼자루에 목숨을 얹어서 방랑이나 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자원이 이렇게 말하는데 얼굴에 검은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마음에 남아있는 앙금은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이 잠시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없으시죠? 팔자가 그렇게 좋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자원같은 팔자를 부럽다고 할 수가 있단 말이냐고요. 호호~!”

아냐, 살아보니까 팔자가 전부는 아닌가 보더라. 오늘의 삶은 어제 내가 무슨 마음으로 보냈는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것도 같거든. 자원은 삶의 고단함에서 지혜의 빛을 발견하게 된 것이잖아? 일단 이 빛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는 어둠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축하할 일이잖아?”

기현주의 말에 자원도 공감하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그건 맞는 말씀이죠. 이렇게 싸부를 따라다니면서 보고 듣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오늘만 해도 그렇잖아요. 이렇게 멋진 선경(仙境)에서 선녀(仙女)같은 언니와 더불어 자연의 이치를 대화하면서 말을 섞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걸요.”

오호~ 그랬다니 나도 고마워. 여하튼 얼마가 되었든 간에 함께 있으면서 보고 들었던 강호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줘.”

알았어요. 그나저나 이제 오시가 다가오는데 관청(官廳)에 가봐야 하는 시간이잖아요? 어떻게 해결이 되는지 궁금하거든요.”

자원은 자신의 사주와 고단했던 지난날의 삶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얼른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화제(話題)를 바꿨다. 그러자 기현주도 자원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이야기에 취해서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잖아. 정오(正午)에 집행한다고 했으니까 이제 요기를 좀 하고 나가보면 되겠다.”

기현주가 시동에게 말했다.

오찬(午餐)을 준비했으면 먹도록 할까?”

, 마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시동이 얼른 나와서 대답하자 모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찐 만두와 삶은 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기현주가 대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먹을 것은 별로 없어도 든든하게 들어. 공부하면 배도 더 빨리 고파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오늘도 귀한 공부를 많이 해서인지 배가 많이 고팠잖아. 그래서인지 음식도 먹을 만하네.”

맛있습니다. 이렇게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도 실로 참 오랜만입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모두 잘 먹었다고 말로나마 사례를 하고는 기현주가 준비한 쌍두마차에 올랐다. 관청까지는 오리(五里)가량 되었다. 풍경을 보면서 마치에서 흔들리다가 보니 이내 관청의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에는 구경꾼들이 무척 많이 모여들어서 벌써 소란스러웠다.

누님 고을 사람들도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을 보면 말이지요.”

아마 그럴 거야. 워낙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가 궁금해서라도 모여들었지 싶어.”

 

잠시 후.

현령이 나팔을 부는 관원을 앞세우고 등장하자 수군대던 사람들도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러자 가운데 설치한 의자에 앉았던 현령이 손짓하자 부관(副官)이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 지금부터 송장 재판을 시작한다. 시신을 대령하라~!”

명을 받은 관졸(官卒)들이 천에 덮인 시신을 한 구 들어다가 앞에 놓인 단에 놓고는 뒤로 물러나서 섰다. 그러한 풍경을 보면서 우창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구명해야 하는 것이 현령일 텐데 오히려 죽은 이를 죄인처럼 다루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되더라도 흥미로운 일인지라 조용히 지켜봤다. 예의 현령으로부터 명을 받았던 부관이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변사자(變死者)가 있다. 어디에 살았던 누구인가?”

시신을 운반했던 관졸이 앞으로 나와서 시신을 덮어놓은 흰 천을 열고 얼굴을 확인하고서 말했다.

시신은 동광진(東光鎭)에 사는 오종만(吳鍾巒)이라는 남자입니다.”

그 군졸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부관이 군중을 향해서 외쳤다.

이 사람과 연관이 있는 자는 앞으로 나와서 과연 오종만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주시오~!”

그러자 군중의 앞쪽에 있던 한 중년의 여인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와서는 얼굴을 확인하고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인은 오종만의 처입니다. 확인해 보니 부군이 맞아요.”

이렇게 말하는데 얼굴은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다. 그 모습을 본 우창도 약간은 의아했다. 우상이 상상했던 모습은 울고불고 몸부림을 치면서 왜 죽었는지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죽인 범인이 있다면 누구인지 잡아내라는 말을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 지나가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부관이 외쳤다.

고인(故人)은 연못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소. 검시관의 소견으로는 술을 과하게 마시고 취해서 실족(失足)하여 익사(溺死)한 것으로 판명되었소. 여기에 대해서 의문이 있는 자가 있으면 나와서 말하시오~!”

이렇게 외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전에 나왔던 부인조차도 멀뚱하게 시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부관이 다시 소리쳤다.

만약에 누구라도 고인의 덕행(德行)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면 하시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자, 군중 속에서는 수군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심지어는 시신을 향해서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는 듯한 표정도 보였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자 다시 부관이 말했다.

만약에 누구라도 고인의 악행(惡行)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면 하시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저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입니다. 흉년에 양곡을 빌려다 먹고 못 갚았는데 그 대가로 십오 세의 막내딸을 끌고 가서 첩으로 삼아서 종처럼 부렸습니다. 이렇게 억울할 데가 또 있단 말입니까? 아마도 천벌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여기저기에서 한마디씩 했다.

나쁜 놈이오~!”

죽어 마땅한 자식이지~!”

저놈은 인간도 아니라니까!”

이렇게 한동안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현령이 손에 들고 있던 지휘봉을 흔들었다. 그러자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자 현령이 일어나서 말했다.

세상에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없으나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은 있습니다. 최소한의 인심(人心)도 얻지 못하고 살다가 비명횡사(非命橫死)했으니 그것도 천명(天命)인가 봅니다. 본관이 듣기로는 가족에게조차도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는 모욕과 고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부인에게 묻자. 부인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현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검시(檢屍)를 해본 결과 약간의 피멍이 보여서 혹 구타를 당한 것인가 싶은 의혹이 있소. 이에 대해서 부검을 청한다면 그렇게 할 테니 부인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그러자 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보고 현령이 다시 말했다.

본관은 이렇게 판결하겠소. 동광진에 살았던 오종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변고를 당하여 사망했으나 유가족이 부검을 원치 않으므로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주고 장사를 지내도록 하라. 아울러서 그가 남긴 재산의 절반은 가족의 순위에 따라서 공평하게 분배하되 옳지 못한 방법으로 축재(蓄財)한 것에 대한 벌로 절반은 관아(官衙)에서 압수하여 그간 억울하게 당했던 백성들에게 약간이나마 보상이 되도록 한다. 여기에 대해서 이견이 있으면 지금 말하라.”

그러나 아무도 이견을 말하지 않는 대신에 한 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과연 현명한 판결입니다~!”

옳습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잠시 현령의 처사를 칭찬하는 말들이 오가자 다시 현령이 말했다.

부인은 이 판결에 대해서 이견이 있으시오?”

그러자 부인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는 뜻으로 봐도 될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현령이 마무리했다.

, 이렇게 오늘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생전에 관련이 있었던 백성은 현청에 접수하고 정황에 따라서 보상금을 받도록 하시오~!”

현령이 이렇게 말하자 다시 부관이 큰 소리로 선언했다.

오늘 사건은 이렇게 마칩니다. 판결대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군중들 속에서 박수치며 환호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모두 흩어졌다. 이러한 풍경을 마차에서 지켜보던 기현주가 우창을 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동생이 해 준 말이 떠오르네.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천심이라는 것을 말이야. 억울하게 죽었어도 아무도 그를 위해서 변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평생을 함께 살았던 부인조차도 그것을 거부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겠어. 호의호식하고 재물로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함부로 횡포를 일삼은 결과는 이렇게 허망하게 마무리가 되니 말이야.”

그사이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부인과 그의 가족들만 남았다가 관졸(官卒)들이 시신을 옮기자, 그 뒤를 따르는데 슬피 우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것도 팔자대로 일까?”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누님, 사람이 태어나면 타고난 팔자대로 살다가 떠나는 것일까요?”

그야 당연하지 않아?”

당연하지 않습니다.”

뭐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고 난 명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잖아?”

우창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건 예상 밖인데?”

그렇습니다. 우창도 예상 밖이었으니까요. 하하~!”

아니, ?”

기현주는 의외라는 듯이 우창에게 연유를 물었다.

누님, 만약에 팔자가 대흉(大凶)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의 삶이 천신만고(千辛萬苦)의 힘겨운 삶이 이어졌겠지요?”

당연하다고 봐야 하잖아?”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참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는 어떤 삶이었을까요?”

그야 빈천(貧賤)한 삶이라고 봐야겠지.”

맞습니다. 물질적으로 본다면 그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본다면 또 어떻게 볼 수가 있겠습니까?”

정신적으로? 그의 정신을 본다면 천하지 않게 살았다고 해도 되겠네.”

맞습니다. 비루(鄙陋)하게 태어나서 천박(淺薄)하게 살다가 떠나는 것도 운명이지요. 그런데 스스로 노력해서 비록 형편은 곤궁(困窮)하더라도 마음은 물욕이 없이 안분(安分)하고 자족(自足)했다면 그를 비루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비루하다고 하면 안 되지.”

다시 또 여쭙습니다. 오종만이 비록 탐욕에 눈이 멀게 될 팔자를 타고났더라도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고서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면 오늘과 같은 결말을 얻었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어리석음을 깨우친다고 하는 것도 팔자에 있어야 가능하잖아?”

기현주는 우창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달랐다면 결과도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노력했다면 그것도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동생의 말뜻은, 팔자대로 살아가지만, 또 어떤 사람과 만나서 맺게 되는 인연에 따라서 개선(改善)은 가능하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환경을 찾느라고 명당(明堂)과 길지(吉地)를 알고자 하는 것이고, 고을에 현인(賢人)이 있느냐 탐관(貪官)이 있느냐는 것으로 인해서 그 마을에 머물고자 하거나 혹은 떠나고자 하는 것이니 어찌 환경의 영향이 팔자에 미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과연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온전히 팔자만 탓할 것은 아니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권장했나 보다.”

다시 여쭙습니다. 누님, 삶은 물질에 있습니까? 아니면 정신에 있습니까?”

오늘 동생의 가르침을 받고 보니 고인들의 가르침을 한 줄에 꿸 수가 있을 정도로 명쾌하잖아. 현인(賢人)이나 성인(聖人)들은 모두 마음을 말했을 뿐 물질을 말한 것은 아니었네. 막연했던 것이 뚜렷하게 보이네.”

기현주는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에게 미소를 지었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은 아시지요?”

그야 알지. 맹자의 모친께서 아들을 위해서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故事)를 말하는 것이잖아?”

그런데 그 네 글자에 붙는 두 글자가 있습니다.”

? 뭐지?”

우창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말하는 거지?”

맞습니다. 왜 가르칠 교()가 붙어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니, 그냥 교훈(敎訓)이라는 뜻으로만 생각했지.”

사람은 타고 난 팔자도 있으나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영향을 받으니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모쪼록 성현(聖賢)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에 특별히 지교(之敎)가 붙어있는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정말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런 것도 생각한 거야?”

기현주가 우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