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 제43장. 여로(旅路)
12. 대운(大運)의 허상(虛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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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현령의 사주에서 대운은 빼고 간지만 적었다. 이 노학자를 위해서는 차근차근 설명해야만 고민을 해결해 줄 수가 있을 것으로 보여서였다.
우창이 쓴 것을 본 현령이 말했다.
“이것은 내 팔자가 아니오? 대운과 같이 적어놓고서 살피다가 간지만 적혀 있으니 왠지 허전한 감도 있기는 하구려. 허허허~!”
현령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우창을 보며 계면쩍게 웃었다. 그러자 우창도 마주보며 웃고는 말했다.
“습관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적어놓고 살펴보게 되면 나중에는 대운이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하하~!”
현령을 위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밖에서 관원의 말소리가 들렸다.
“현령께 고할 말씀이 있습니다.”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 말을 듣고서 현령이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실은 죄인을 심문할 시간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할지 말씀이 없으셔서 여쭙습니다.”
“아, 그렇구나. 오늘은 심문이 없으니 다음날 시행토록 하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공부하는 자세에서 나오던 말이 갑자기 기세가 등등한 자세와 위엄이 가득 서린 말로 바뀌어서 말하자 관원은 길게 대답하고는 얼른 물러가는 듯했다. 잠시 분위기가 바뀌기를 기다려서 우창이 말했다.
“혹 풀이하면서 무례한 말씀을 드리더라도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주의 용신은 금수(金水)에 있는 것으로 봐야만 하겠으니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은 사주만 앞에 놓으면 사람은 잊어버리고 간지의 풀이에 몰입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관리나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에는 행여나 함부로 말해서 듣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양해를 구하고는 풀이를 시작했다.
“편하게 선생이 보이는 대로 풀이해 주시오. 그래야 나도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받을 수가 있을 테니 말이오. 전혀 개의치 않소. 허허~!”
과연 현령은 도량이 넓었다. 얼만큼은 허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으니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체면이 아니라 깨달음이고 배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선생은 기본적으로 관료(官僚)의 천성을 부여받았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그 정도는 자신도 안다는 듯이 월간(月干)의 무토(戊土)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이 정관(正官)으로 인해서 그리 말하는 것인가 싶소.”
“맞습니다. 다만, 겉으로는 그와 같으면서도 내심으로는 남들이 몰라주는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숨어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우창의 말에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것은 상관(傷官)이 있을 적에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계수(癸水)는 일간(日干)이면서도 상관의 본성을 내면에 품고 있는 까닭입니다.”
현령은 우창의 말에 충격을 받은듯했다.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되지 않소이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일간에게도 십성을 적용시킨단 말이오? 그런 말은 삼명통회에도 연해자평에도 본 적이 없는 말인데 어느 고인으로부터 비법을 받은 것이오?”
“예,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충 스승님의 역작(力作)을 만난 인연으로 알게 된 것이니 고서(古書)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겠습니다.”
“그렇다면, 흠..... 계수(癸水)가 상관의 성향을 갖는다면 임수(壬水)는 식신의 성향이 있겠구려. 이렇게 보는 것이 맞소?”
과연 현령의 추론(推論)은 탁월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안다지만 현령의 추론은 단박에 열을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과연~! 탁월하십니다. 하하하~!”
우창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창의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생각에 여념이 없던 현령이 다시 말했다.
“선생의 그 말인즉 갑목(甲木)은 편재의 작용이 있다는 말이겠고?”
“맞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오행을 안다면 이러한 것을 연구해야지 되지도 않고 영험도 없는 대운 나부랭이나 들고 앉아서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것이야말로 헛된 공론(空論)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오호~!”
현령은 말을 잊지 못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정리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천천히 설명했다.
“일지(日支)가 묘목(卯木)이니 이것에 대해서는 선생이 풀이해 보시겠습니까? 능히 가능하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우창의 말에 현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혹 어설프더라도 비웃지는 마시오. 계묘(癸卯)는 상관인 일간이 식신인 묘중을목(卯中乙木)을 만난 것이오. 그러니 묘목은 본질이 정재(正財)에 해당하므로 식신이 궁리하고 물고 들어가는 능력으로 우물을 파게 되는데 그것은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마는 끈기를 갖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식신이 정재식신(正財食神)인 까닭이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하충이라는 분의 논리란 말이오?”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그렇게 적용하면 대운을 대입하지 못하여 낭패를 당할까봐서 걱정하는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현령은 우창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시주(時柱)를 짚으면 말했다.
“그렇다면 이 편재는 무엇이오?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될 조짐이라고 해석하면 되는 것이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화(丁火)의 본질은 정관(正官)이기 때문에 합당하지 않은 재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청관(淸官)인지는 몰라고 탐관(貪官)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 예전에 어느 명리가를 만났더니 재물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들려준 말이 머릿속에 항상 남아있어서 문득 생각해 본 것이오. 그런데 원래 분수에 맞지 않는 재물을 탐해 본 적이 없기에 그 선생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석이 되지 않았더란 말이오.”
“맞습니다. 올해 학문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로 인해서 그간 알고 있던 학력(學力)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왜 그렇다고 여기십니까?”
“음..... 그렇다면 올해의 세운(歲運)이 계유(癸酉)라서가 아닐까 싶소이다. 편인(偏印)이 들어오는데 겁재편인(劫財偏印)인지라 남의 학문을 가져다 내 집에 쌓아놓는 형국이 아니오? 그러고 보니 오늘 우창 선생을 만난 것이야말로 계유의 공덕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소?”
우창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이 정도의 이해력이라면 더 말하지 않아도 나머지의 옥석은 스스로 판별(判別)할 수가 있을 것이고, 더구나 현재의 대운이 해석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말끔히 사라졌을 것으로 봐도 되지 싶었다.
잠시 깨달음의 희열을 맛보는 듯한 표정을 읽으면서 우창은 찻잔을 들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자원과 삼진은 미소를 머금고 우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명쾌한 가르침에 생각할 점이 많았다는 표정이었다. 여정만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따름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비로소 의미를 알았소. 대운은 실체(實體)가 아니었단 말이잖소? 나는 겨우 이해했으나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동도(同道)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것이 또 난제로구려. 허허허~!”
“그러실 만도 합니다. 혹은 알려줘도 듣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는 경우라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을 것이니 괜히 마음을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여깁니다. 다만 그 이치를 알고자 하는 인연이라고 한다면 비로소 대운의 허상(虛像)을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그렇게 고집스러운 사람들조차도 알아듣기 쉽겠소?”
“남녀(男女)가 같이 태어났어도 순역(順逆)의 이치를 적용한다면 하나는 동으로 가면 또 하나는 서로 가는 것이니 이것이 얼마나 허황한 주장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일입니다.”
“그야 남녀유별(男女有別)이지 않소?”
“그것은 유가의 지침일 따름입니다. 불가에서는 남녀평등이라고 하니 말이지요. 그러니 이념(理念)은 저마다 다르므로 자연의 이치로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오호~! 과연 맞는 말이외다. 허허허~!”
현령은 감탄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실은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이오. 습관이란 참으로 그런가 보오. 그런데 남자가 순행하면 여자는 역행한다는 이치는 오행으로 본다면 어떻다고 하겠소?”
“그 또한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따름입니다. 우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상리(常理)입니다. 그런데 남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상반되는 방향으로 간지가 흘러간다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일 따름이지요. 그러므로 대운(大運)의 순역(順逆)은 논리적으로나 자연적으로나 허술한 글 장난에 불과하니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할 따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일말(一抹)의 여지(餘地)조차도 없겠소?”
“만약에 그 말이 타당하려면 역운으로 태어난 음남양녀(陰男陽女)는 태어나면서부터 80세의 노인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점점 운이 흘러가면서 젊어지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창의 말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음인지 의아한 표정으로 우창을 보면서 물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미 선생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간지가 거꾸로 흐른다는 것은 생각해서도 안 되고 논리적으로도 부합하는 이치는 없다고 여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우창은 이렇게 일장의 연설을 마치고는 가볍게 웃었다. 여기에 대해서 현령이 토를 달고 싶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도도함까지 느껴졌다. 현령도 그것을 알고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창의 조리정연(條理整然)한 주장에 대해서 반발할 이치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과문(寡聞)해서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창 선생의 논리에 대해서 수긍할 뿐이고 반박(反駁)할 만한 논거(論據)는 찾을 방법이 없구려. 허허허~!”
현령은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논리들이 마치 얇은 얼음이 발바닥에 밟히면서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다시 판을 짜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조차 들어서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인지가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씩 풀어가다가 보면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않겠느냐는 희망은 있었다. 그래서 우선 생각이 나는 대로 포태법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물었다.
“우창 선생에게 묻고 싶은 것이 또 있소.”
“예, 무엇이든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지요. 부족하더라도 알고 있는 것이라면 안다고 말씀을 드릴 것이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다른 것이 아니고 포태법 말이외다. 오행의 생극으로 대입한다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론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도 왜 아직도 그 이론을 자평법에서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것인지 명쾌한 설명을 듣고 싶소이다.”
“아,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우창의 소견으로는 뭐든 있는 것을 없앤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포태법(胞胎法)은 다른 말로 십이운성(十二運星)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들은 바로는 두수법(斗數法)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창의 말에 현령도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아, 두수라면 자미두수(紫微斗數)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소이다.”
“그렇습니다. 두수는 자평과 많이 다른 적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수에서 사용하는 십이궁(十二宮)과 십이운성이 서로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다만 우창도 두수를 깊이 연구한 바가 없어서 정확한 것인지는 단언할 수가 없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대답하자 현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도 어디에선가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소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자평에서 파생되어서 서로 각자 자신의 문파에 맞춰서 활용하고 있다고만 생각하지 않았겠소? 이렇게 쓸데없는 것인 줄을 생각할 줄은 모르고서 말이오. 허허허~!”
우창이 말을 들으면서 아마도 현령이 조금은 허탈했나 싶었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후부터라도 헛된 길에서 정처도 없이 방황하는 것을 줄일 수가 있으리라고 확신하고서 더욱 열심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실로 출처가 어딘지를 밝히는 것이 사소하다고는 못할지라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처의 독전유(毒箭喩)도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독전(毒箭)이라면 독화살을 말하는 것이오? 독화살 비유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소?”
현령이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묻자, 우창은 여정을 위해서라도 설명한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예전에 어느 왕이 전쟁터에서 적의 독화살을 맞아서 그 환부가 독이 올라서 시퍼렇게 죽으면서 부어올랐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의(御醫)가 서둘러서 칼로 환부를 찢고서 독을 빨아내고 약을 발라야 한다고 서둘렀으나 왕은 태연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다.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어디에서 나는 무슨 독을 사용해서 화살촉에 그 독을 발랐는지 화살의 촉은 어디에서 나는 쇠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독은 어떻게 하면 해독이 되는지를 모두 알아내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현령이 웃으며 말했다.
“잘 알겠소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인생은 점차로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데 한가롭게 대운의 원류가 어디인지 포태법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를 따져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지 않소? 늙은이가 아직도 분별심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소이다. 허허허~!”
“학문을 탐구하는 마음이 강하신 것이야 능히 헤아리겠습니다. 간단하게 요약(要約)하면, ‘토(土)는 화(火)에 기생(寄生)하여 동생동사(同生同死)한다’는 의미는 알고 계시는지요?”
“알다마다요. 그래서 정(丁)이 인(寅)에 사(死)하면 기(己)도 따라서 사하고, 정이 유(酉)에서 생(生)하면 기(己)도 유에서 생하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예전부터 기유(己酉)는 식신(食神)으로 토생금(土生金)을 하는 이치가 있는데 유금(酉金)에서 생한다고 하기에 그것은 특별한 이치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겼을 따름이오. 허허허~!”
현령의 빠른 판단을 보며 우창도 애쓴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현령이 다시 물었다.
“우창 선생, 기왕 적천수를 한 수 가르쳐 주셨으니 다음의 구절도 좀 살펴봐 주시겠소? 천천히 공부는 하겠소만 우선 궁금한 마음에 「간지총론(干支總論)」에 대한 설명을 조금만 더 들었으면 하오.”
우창은 그 마음을 능히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창이라도 그러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치고 다음 대목을 살펴서 읽었다.
천지순수이정수자창(天地順遂而精粹者昌)
천지괴패이혼란자망(天地乖悖而混亂者亡)
우창이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보던 현령이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 읽고 나자, 자기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면서 물었다.
“우창 선생이 읽은 글이 어렵지는 않는 것 같소. 먼저 천지(天地)는 간지(干支)를 말하는 것이니 달리 풀이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고, 순수(順遂)란 구절은 처음 보는 것이오만, 의미로 봐서는 수순(隨順)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니 흐름에 따르게 되어 정신(精神)이 순수(順粹)할 테니 번창(繁昌)하게 되는 의미가 아니겠소?”
현령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우창도 동의했다.
“틀림없이 그런 뜻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유행(流行)이라고도 합니다. 연주상생(聯珠相生)과 같은 형태의 사주라면 번창하게 된다는 말이니 의미하는 바는 알겠으나 실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말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적천수의 군더더기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령도 잠시 생각하고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소이다. 비록 막상 글을 봐서는 그리 큰 뜻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크게 다가올 단초(端初)를 얻을 수도 있는 까닭이오. 그러니까 사주의 간지가 잘 흐르게 된다면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다울 것은 당연하다는 가르침이야 헛되다고 할 것이 없겠소이다. 더구나 십이운성이나 음양순역에 비한다면 말이오.”
듣고 보니 현령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반드시 중요한 말만 모아놓은 것이야 이해의 정도가 깊은 사람에게는 군더더기일지라도 초학자에게는 그 한마디로 인해서 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웠다. 은연중에 스스로 잘난 체를 한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들으니 부끄럽습니다. 많은 사람의 능력이 같지 않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하하하~!”
“아,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학문만을 파고드는 우창 선생이 부러울 따름이오. 아무래도 나는 나라의 명을 받아서 수행하는 관리가 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생긴 탓이려니 해 주시오. 허허허~!”
“그러실 법도 합니다. 그러시면 다음 구절도 살펴보시겠습니까?”
현령은 우창의 말을 듣고서 다시 글을 들여보면서 풀이했다.
“다음 구절을 보면, ‘천지괴패라 간지(干支)가 괴패(乖悖)하여 충극이 심하여 혼란(昏亂)이 발생하게 되면 패망(敗亡)하게 된다’는 말로 해석하면 되지 싶소이다. 이것은 앞의 구절과 대구(對句)가 되어서 간지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오. 상생(相生)으로 이어지면 유정하고 순수하나 구조가 상극(相剋)으로 구성이 된 사주라면 혼란스럽고 성공하기 어려운 것을 의미하는 것을 말하지 싶소.”
이렇게 해석한 현령은 우창을 보면서 동의하는지 묻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창도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 풀이라고 생각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령이 문득 생각이 난다는 듯이 물었다.
“간지의 조합이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왜 삼명통회에는 이와는 무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는지 모르겠구려. 과연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오? 온갖 기이(奇異)한 격국(格局)의 이야기는 많으나 이렇게 간지가 조화(調和)를 이뤘는지 혹은 편중(偏重)이 되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했더라면 참으로 간단할 텐데 말이오.”
“그렇기는 합니다만 여기에서 책을 탓하신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래도 이제나마 적천수의 핵심적(核心的)인 이치를 접하셔서 혼란의 동굴로부터 탈출할 수가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그렇게 헛다리를 짚어가면서 공부하여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참으로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소중한 내용이구려. 그야말로 청탁(淸濁)의 핵심(核心)을 잘 드러냈다고 해도 되지 않겠소?”
우창이 보기에 현령은 이러한 구절에서 감동한 것으로 보여서 흐뭇했다. 비록 우창이 보기에는 하나 마나 한 내용으로 보였더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내용에서 간지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존재해야 할 의미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현령의 말이 이어졌다.
“다음 구절도 살펴보고자 하오만, 어떻겠소?”
“예, 좋습니다. 살펴보시지요.”
현령이 책을 보고는 다시 원문을 읽었다.
불론유근무근(不論有根無根)
구요천복지재(俱要天覆地載)
“뿌리가 있고 없음을 논하지 말아야 할지니, 갖춰야 할 중요한 것은 천간에서 덮어주고 지지에서 실어주는 것이니라.”
이렇게 풀이하고는 잘했는지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여서 잘했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자 현령이 말했다.
“그러니까 뿌리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오? 억부용신(抑扶用神)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단 말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오?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하오만.....”
“그렇습니다. 당연히 유근무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뿌리가 있고 없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면 지지에 있는 글자는 천간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고, 천간에 드러난 글자는 또 지지에서 뿌리가 되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이니 결국은 유근무근의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생각해 보니 결국은 같은 말이라는 의미가 이해되었다. 다시 생각해 보던 현령은 비로소 정리되었는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오호~! 그러니까 간지총론(干支總論)의 요지(要旨)는 바로 ‘간지(干支)의 조화(調和)에 있다’는 것이잖소?”
“그렇습니다.”
“자요사격(子遙巳格)이니, 시상일귀격(時上一貴格)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의미가 없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왜 그러한 말이 생겨났는지도 혹 설명해 줄 수가 있겠소?”
현령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우창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내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파고들면 며칠을 머물면서 토론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현령의 물음에 답했다.
“우창의 좁은 소견으로는 아마도 어쩌면 당시 풀이하는 입장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왕의 앞에 불려가서 태자의 사주를 보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면 사주가 많이 미흡하더라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자식의 팔자가 괴패(乖悖)하여 고통(苦痛)으로 살다가 단명(短命)하겠다는 말을 왕에게 하기는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딴은......”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시상일귀도 말하고, 연주상생도 팔아서 위기를 모면하고 왕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해 봅니다. 마치 토끼가 용궁으로 끌려가서 간을 꺼내야 하게 되었을 적에 스스로 거짓으로 ‘간을 그늘에 말려놓았다’는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위기를 면한 것과도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미뤄서 생각해 볼 따름이지요.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현령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런 의미도 있었을 수가 있겠구료. 그래서 책에 있는 것을 모두 다 믿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었구려. 허허허~!”
현령도 그러한 정황을 상상해보자 능히 짐작을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웃으며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