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 제43장. 여로(旅路)
11. 음양의 순역(順逆)
=============================
우창은 곤하게 자고 난 새벽의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했다. 언제나처럼 새벽의 차분한 공기는 생각하기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들거리는 바람을 타고 버들가지가 출렁이는 것은 흡사 바람과 초목이 어우러져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흥겨워 보였다.
아침은 미죽(米粥)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여장을 차렸다가 다시 적천수를 챙겨 들고서 마차를 탔다. 현청까지는 대략 10여 리는 되었으나 시간도 아낄 요량으로 마차를 타기로 했다. 그래야 모두 동행하는 명분이 서기도 해서였다. 가흥현의 관청에 도착하자 벌써 관복을 갖춰 입은 현령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 맞았다.
“귀한 나그네들이여 어서 오시오~!”
현령을 앞세우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귀빈(貴賓)을 접대하는 듯이 좌우로 30여 명의 관리가 저마다 자신의 직분에 맞는 관복을 입고 서 있는데 흡사 제왕이 입궐하는 듯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어색했다. 비록 그렇더라도 쭈뼛거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어서 당연히 받을 만해서 대접받는다는 생각으로 의연하게 현령을 따라서 객사(客舍)로 안내되었다.
“갑자기 의전(儀典)을 진행하는 바람에 좀 당황하셨을 수도 있겠구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귀빈을 접대하는 마음을 보인 것이니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겠소이다. 허허허~!”
“실은 좀 그랬습니다. 그래도 성의로 알고 감사히 받았습니다. 하물며 이렇게 성대한 접대를 받으니 영광이기도 했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의 말에 현령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종(侍從)에게 차를 내오도록 하고 관복은 벗어서 걸어놓고는 편한 옷으로 우창의 일행과 마주 앉았다. 이미 책상에는 삼명통회는 물론이고 자신이 궁금해서 알고자 했던 것을 정리한 종이들이 쌓여있었다. 먼저 우창이 일행을 소개했고 모두 인사를 나누고 나자 저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찻잔을 들고 향기로운 차를 마셨다. 찻잔이 비어가는 것을 본 현령이 시종에게 다시 잔을 채우도록 하고서 말했다.
“실로 어젯밤에 『적천수(滴天髓)』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서재(書齋)를 뒤졌는데 마침 내게도 언제 구해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천수가 한 권 있었소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것을 읽어보느라고 잠도 얼마 못 잤구려. 「음양순역지설(陰陽順逆之說)」의 대목도 찾아서 읽어봤소이다. 오늘 만나면 말귀는 알아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오. 허허허~!”
현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적천수를 꺼내 놓았다. 삼명통회보다는 깨끗했다. 누군가로부터 필사(筆寫)한 다음에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창이 펼쳐보니 내용은 모두 잘 적혀있었다.
“다행입니다. 그럼 차도 마셨으니 이제 책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책을 펼쳐서 그 부분을 찾아놓고는 원문을 읽었다. 평소 같으면 자원을 시켜도 되고 삼진에게 읽어보라고 해도 되었으나 오늘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현령을 대접하는 의미에서 우창이 읽었다.
음양순역지설(陰陽順逆之說)
낙서유행지용(洛書流行之用)
기리신유지야(其理信有之也)
기법불가집일(其法不可執一)
이렇게 육언절구(六言絶句)로 된 원문만 읽고서 풀이는 하지 않았다. 풀이는 현령과 같이해야 할 것으로 여겨서이다. 현령이 잠시 그 뜻을 생각하는 동안 우창은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생각해 보고 있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을지 가늠한 것이다. 생각에 잠겼던 현령이 우창을 보며 물었다.
“우창 선생, ‘순역지설(順逆之說)’이라고 하는 것은 순행(順行)과 역행(逆行)을 말하는 것이오? 이것은 마치 대운(大運)의 양남음녀(陽男陰女)는 순행하고, 음남양녀(陰男陽女)는 역행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가 있겠구려. 그렇지만 포태법(胞胎法)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가 궁금하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소이다.”
자원은 가만히 듣고 있어도 내용이 대략 떠올랐다. 역시 노산에서 고월과 우창으로부터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특히 포태법 이야기에 대해서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창이 현령의 물음에 대답했다.
“실로 포태법이야말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군더더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행(五行)의 관점으로 본다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문귀 선생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병화(丙火)는 인(寅)에서 생하고, 정화(丁火)는 유(酉)에서 생한다는 이치가 오행의 논리에서 타당하다고 여기시는지요?”
우창이 이렇게 포태법의 핵심을 묻자 귀를 기울이던 현령도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야 목생화(木生火)의 이치는 있어도 금생화(金生火)의 이치를 논할 수는 없으므로 말이 안 된다고 여기고 있던 터요.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구조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게 적용한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치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가부(可否)를 판단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가령 죄인을 다스림에 있어서 서로 다른 기준으로 다스린다면 수긍하겠습니까? 준엄(俊嚴)한 국법이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야 공평무사(公平無私)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 말씀은 왜?”
“다시 여쭙겠습니다. 공평무사의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기준이라...... 그 기준은 만민안락(萬民安樂)에 있을 것이오만.”
“옳으신 말씀입니다. 만민이 안락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국법으로 다스려야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자평의 이치를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법칙으로 저울질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아니, 하나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오?”
“오행입니다~!”
우창의 단호한 말을 듣고서 현령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다시 우창을 보며 말했다.
“어찌 오행뿐이겠소이까? 그렇게 협소한 논리로 자평을 말할 수가 있다는 생각은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소이다. 과연 그게 가능하기나 한 것이오? 음양의 이치도 있고, 합충(合沖)의 이치도 있는데 말이오.”
현령도 인내심이 상당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바로 반박하고 싶었으나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판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답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희망이 보였다. 한 사람의 고집스러운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학자의 본분이면서 목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는 길이 얼마나 잘 못 된 길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사람의 스승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창은 이러한 마음으로 현령과 대화하고 있었다.
“우창도 처음에는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또한 그런 줄로 알았습니다. 배운 대로 적용하면서 사유하는 과정에서 점차로 모순(矛盾)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순의 의미는 알고 계시지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러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복(說服)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자평의 가장 큰 덕목은 하나의 이치로 전체를 관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왕이 하나의 이치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고, 부친이 가법(家法)으로 가정을 다스리는 것과 같지요. 오행의 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위에 또 다른 삼합(三合)이니 육합(六合)이니 하면서 추가로 오행을 벗어난 법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현령은 또 생각에 잠겼다. 우창의 말이 하나하나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자신에게 무엇인가 큰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는 정성(精誠)을 느꼈으므로 대답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만, 이 삼명통회만 하더라도 여러 법칙(法則)이 서로 얽혀서 어느 것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단 말이오. 과연 하나의 이치로 관통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소?”
현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삼명통회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 말은 무언(無言)으로 ‘감히 삼명통회의 권위에 도전을 해서 되겠어?’라는 느낌으로 우창에게 대항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창도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다시 말했다.
“문귀 선생!”
우창은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단 현령을 불렀다. 현령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느냐는 듯이 우창에게 시선을 모으자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시지요. 그렇게 두꺼운 삼명통회와 이 얄팍한 적천수를 비교해 보시란 말입니다. 만약에 그 안에 있는 내용 중에서 핵심의 핵심만 모아서 이만큼으로 담아놓는다면 이것을 취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그것을 취하시겠습니까?”
“과연 우창 선생의 말과 같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적천수가 아니겠소? 그렇지만 가볍고 쉬운 길을 택하다가 자칫하면 고인의 쌓아 올린 공(功)든 탑을 무너트릴 수도 있단 말이오.”
우창은 아무래도 강경한 어조로 말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정색하고는 약간 속도를 늦춰서 말했다.
“문귀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고인들이 쌓아 올린 탑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공든 탑은 소중하니까요. 우창이나 경도는 공든 탑이야 무너지거나 말거나 오행놀이에 푹 빠져서 즐기다가 세상을 떠날 요량이니 말입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이오? 고인의 지극한 가르침도 내팽개치겠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해탈(解脫)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태법이나 음양의 순역을 끌어안고서 답 없는 답을 하염없이 찾아서 미로(迷路)를 방황한들 누가 탓이야 하겠습니까? 단지 자신의 소중한 삶을 이미 빛을 잃어버린 탑을 지키는 것에만 힘을 소모하느라고 정작 삶을 즐길 겨를도 없이 고뇌만 하다가 삶을 마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우창이 정색하고 말하자 현령은 비로소 이것은 간단히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한 다음에 충정(忠情)으로 한다는 것을 느낌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서 잠시 숙연해졌다. 젊은 사람이 명학의 이치에 대해서 이렇게 정색하고 말하는 것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깊은 궁리를 한 다음에 깨달은 바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오. 무엇보다도 올바른 길을 안내받을 수가 있다면 이보다 더 고마울 일이 또 있겠소이까? 무슨 말씀이라도 좋으니 기탄(忌憚)없이 말해 주시오.”
나이를 떠나서 진리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창도 마음 편히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우창도 부족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깨달은 것이 조금 있다면 그것을 전해드리지 않고 가슴 속에 품어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합니다.”
“바로 그것이오~! 문귀가 원하던 바요. 어서 말해 주시오.”
현령이 흔쾌히 말하자 우창도 비로소 하고자 했던 말을 꺼냈다.
“실로 ‘음양순역지설(陰陽順逆之說)’은 비단(非但), 음양의 생사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양순음역(陽順陰逆)도 당연히 해당하는 말일 테니까요.”
“양순음역은 물론 대운의 남녀유별(男女有別)을 두고 말하는 것인 줄이야 알겠소이다. 이에 대해서 우창 선생의 가르침을 듣겠소이다.”
“적천수의 다음 구절에서 ‘낙서유행지용(洛書流行之用)’이 말하는 《낙서(洛書)》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역경에 대한 이해는 있으실 것으로 봐서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우창이 혼자서만 이야기하면 듣고 있는 자원이나 삼진은 물론이고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여정까지도 궁금한 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문답으로 풀어보려고 짐짓 물었다. 여정은 다소 위압적인 분위기에 눌려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느라고 다소 부자연스러웠지만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을 생각해서 어려운 자리지만 합석시켰다. 마부라고 해서 밖에서 마차나 지키고 있으라고 하고 싶지 않아서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자리게 앉게 되었던 것인데 현령도 신분에 대한 차별은 없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똑같은 일행으로 응대했다. 현령은 우창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더니 책을 뒤적여서 그림을 하나 찾아서 펼쳤다.
“그러니까 「낙서유행지용(洛書流行之用)」이란 말은 선천팔괘(先天八卦)인 하도(河圖)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팔괘(後天八卦)인 낙서(洛書)를 말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우창이 동의하자 현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구궁팔괘(九宮八卦)를 말하는 것이란 말이잖소? 이것을 풀이하자면, ‘음양 순역의 이야기는 낙서의 구궁팔괘에서 나왔다’는 말인데 다행히 구궁의 순역이야 기문둔갑(奇門遁甲)에서 구성(九星)의 순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쌓아놓은 책더미에서 기문둔갑을 꺼내어 펼쳐놓았다. 그곳에는 구궁도가 그려져 있었다.
모두 현령이 펼쳐놓은 책을 보자 현령이 간단히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설명했다.
“내가 이해하고 있기로는 낙서(洛書)의 표시를 숫자로 바꿔놓은 것이 기문둔갑의 구궁도(九宮圖)인데 이것을 보면 양둔(陽遁)에서 순행하게 되면 위의 순서로 움직이고, 이것을 구궁의 기본(基本)이라고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소이다.”
이렇게 말한 현령은 다음 장을 펼쳤다. 그곳에도 구궁도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음둔(陰遁)이 되어서 역행하게 되면 이번에는 흐름의 방향이 역(逆)으로 진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낙서에서 유행한 것이라고 하는 의미는 이것이 맞지 않소?”
“맞습니다. 역경에서 설명하는 바와 기문에서 말하는 이치는 모두가 여기에서 기인(起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란 말이오? ‘기리신유지야(其理信有之也)’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즉, ‘그 이치는 믿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 글을 쓴 경도 선생의 말도 그렇습니다. ‘음양의 순역에 대한 이치야 나도 알고 너도 안다. 그리고 그 순역의 이치가 그 안에 있음도 알고 있다’는 의미가 틀림없다고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혹 마지막 구절에 그 의미가 있다는 뜻이오? ‘기법불가집일(其法不可執一)’이라고 했으니 ‘그 방법에 대해서는 한가지로 집착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말이구려. 그러니까 ‘불가(不可)’라는 구절이 있으니 아마도 여기에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오만.”
현령은 글을 통해서 오행의 이치를 공부하고 있는 학자였다. 그래서인지 풀이를 하는 것에서도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바로 해석할 수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맞습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서로 다른 법이라는 뜻이오?”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뽕나무를 감나무에 접목(接木)하는 것과 같아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현령은 머릿속이 다소 혼란스러운지 말끝을 잊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말했다.
“뽕나무는 뽕나무대로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감나무도 또한 감나무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고인이 문득 생각하기를, ‘뽕나무에서 비단이 나오니 참으로 중요하고, 감나무에서는 곶감이 나와서 제사상에 올리게 되니 또한 중요한지라 두 나무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있던 현령이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오호라~! 이것이 그 뜻이오이까? 과연 명쾌한 판단이외다. 허허허~!”
“이제 이해가 되셨습니까?”
“물론이오. 이해되다마다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내가 대운의 문제를 놓고 고민했던 것은 뽕나무를 보고 홍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란 말이지 않소?”
“맞습니다. 구궁(九宮)에는 순역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간지(干支)에는 순역이 없다는 것을 간과(看過)한 어느 고인께서 헛된 수고를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후학은 감히 삭제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끌고 다녔던 것입니다. 하하~!”
“참으로 명쾌하시구려. 맞는 말인 듯싶소이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간지가 구궁에 들어가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를 일이 수두룩하니까요.”
“또 무엇이 있단 말이오?”
“혹 선생은 백호살(白虎殺)에 대해서 아시겠지요?”
“그야 잘 알고 있소이다. 사주에 갑진(甲辰), 을미(乙未), 병술(丙戌), 정축(丁丑), 무진(戊辰), 임술(壬戌), 계축(癸丑)이 있으면 백호살이 되어서 피를 뿌리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견혈광재앙사(見血光災殃死)’라고 하잖소?”
“맞습니다. 그렇다면 선생은 왜 이러한 간지가 백호살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흉작용을 한다고 했는지도 알고 계시는지요?”
우창이 다시 묻자, 이번에는 현령도 고개를 갸웃거릴 뿐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말했다.
“그러실 것입니다. 연유도 모르면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는 흉하니까 조심하라고 하는 말을 넘어서 급기야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다’는 호식팔자(虎食八字)라고까지 하며 두려움에 떨게 만들지요.”
“나도 당연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소이다. 그렇다면 그 연유를 좀 설명해 주시오. 이치가 아마도 허무맹랑(虛無孟浪)하다는 뜻이지 싶기는 하오만 그렇게 된 내막이 궁금하구려.”
“선생은 오황살(五黃殺)이라고는 들어보셨는지요?”
“그야 구궁에서 중궁(中宮)에 오(五)가 들어가면 오황살이 되어서 흉하다는 의미가 아니오? 아니, 그러니까 백호살은 오황살에서 나왔다는 것이오?”
“바로 그것입니다. 누군가 구궁에 능통했던 사람이 간지를 구궁에 억지로 욱여넣어서 탄생하게 된 기이(奇異)한 이론이지요. 아니, 기이하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괴(奇怪)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하~!”
현령은 우창의 말뜻을 알듯 말듯 싶었는지 물었다.
“뜻은 알겠으나 아직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소이다. 좀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오.”
현령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우창은 구궁도에다 간지를 써넣었다.
“아, 그만하면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이다.”
우창이 계유(癸酉)까지 쓰는 것을 본 현령이 더 쓰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우창도 쓰던 글을 멈추고 단지 중궁(中宮) 오황토(五黃土)의 자리에다 간지만 써넣었다.
그것을 보며 현령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놀랍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과연~! 참으로 놀랍소이다. 이 늙은이가 하릴없이 문자에 매달려서 허송세월하는 것이 안타까웠든지 조상님이 귀인을 보내주셨구려. 이렇게도 명쾌하게 풀이하는 것은 일찍이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소이다. 그저 감탄할 따름이외다. 허허허~!”
우창은 진심 어린 현령의 표정을 보면서 내심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학문의 미로(迷路)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밝은 등불을 만난 나그네의 그 마음을 우창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왜 ‘불가(不可)’가 불가인지를 비로소 깨달았소이다. 과연 뽕나무의 가지를 감나무에 접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소. 그러니까 대운의 순역을 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평에 들어와서 분탕질하며 주인 노릇을 하는 구궁론(九宮論)은 집착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참으로 깊은 뜻이었구려. 그러니까 구궁의 순서대로 육갑(六甲)을 배치하고 보니까 중궁에 들어가는 간지가 일곱이고 그들이 바로 백호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말이잖소?”
“그렇습니다. 우창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창의 답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던 현령이 다시 말했다.
“아하! 이제 보니까 간지(干支)가 역행(逆行)한다는 것도 여기에서 나왔다는 것으로 미뤄서 깨닫겠소이다. 간지가 구궁에 들어가서 참으로 고생이 많았소이다. 그려. 허허허~!
우창은 대답하는 대신에 빙그레 미소를 짓고 현령을 바라봤다.
“알겠소. 그렇다면 대운(大運)은 어떻게 한단 말이오? 고서에는 항상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것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듯이 해도 괜찮은 것이오?”
“아직도 헌신짝에 미련이 남으셨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대운을 무시해도 후환이 없을 것인지 염려가 되기로 하는 말이오. 허허허~!”
현령의 말을 들으며 우창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잠시 무슨 말로 이해를 도와볼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여쭙습니다. 구성(九星)의 구궁도는 시간을 나타낸 것입니까? 아니면 공간을 나타낸 것입니까?”
“엇?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 얼떨떨합니다만 아마도 공간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그 뿌리는 팔괘도(八卦圖)와 닿아 있습니다. 이또한 공간적인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풍수(風水)와 구성(九星)과 팔괘(八卦)는 모두 공간에 대한 의미를 말하는 것이 맞는구려. 그런데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뜻은.....?"
“다시 여쭙습니다. 간지의 육갑(六甲)은 시간을 나타낸 것입니까? 아니면 공간을 나타낸 것입니까?”
“그야 갑자일 다음에는 을축일이고 갑자시 다음에는 을축시이니 이것은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지 않겠소?”
“만약에 내일의 다음에 어제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간지를 구궁도에 집어 넣게 되면 오늘 다음에 어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니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창은 현령이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줬다. 그러자 자신의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과연! 명쾌한 논리로 우둔한 문귀를 깨우쳐 주시는구려. 참으로 기가 막힌 설명이외다. 허허허~!”
우창의 말을 듣고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대운의 존재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설명을 해 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