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 제43장. 여로(旅路)
13. 뱃놀이의 여유(餘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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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현령과 토론하는 사이에 시종이 다가와서 말했다.
“나리, 오찬(午餐)이 준비되었습니다.”
열띤 토론을 하느라고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우창도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졌다. 현령이 얼른 일행을 데리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푸짐하게 차린 성찬(盛饌)을 먹었다. 자원도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으로도 공부에 도움이 되어서 서두를 마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밥을 먹고 난 현령이 다가와서 말했다.
“오늘 내가 하늘에서 내려 준 귀인을 만났으니 이대로 보내드릴 수가 없소이다. 그러니 여정이 특별히 바쁘지 않다면 부디 나를 위해서 며칠만 시간을 좀 주실 수 없겠소? 이제야 막혔던 도랑이 물길을 만난 듯하여 심신이 얼마나 쾌락한지 모를 지경이니 말이오.”
우창이 삼진과 자원을 보자 모두 그래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서 모두 좋다는 뜻을 보이자,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찌 내 길을 재촉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과분하게 대접받으니 부담스러울 따름입니다. 바쁜 길도 아닌지라 이곳에서 며칠 묵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늙은이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니 말이오. 오후에는 경치 좋은 곳으로 안내하도록 일러뒀으니 바람을 쐬고 오도록 하시오. 그러면 나는 배운 것을 우선 정리하고서 다시 여쭙도록 하리다.”
시종의 안내를 따라서 마차를 타고 반 시진 정도 가니까 우창 일행을 위해서 놀이 배를 준비했다. 맑은 물이 출렁이는 강변의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물이 하도 맑아서 헤엄치고 다니는 팔뚝만큼 큰 잉어들도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싸부, 이렇게 멋진 풍경을 즐길 수가 있으니 글덕이 참 대단하네요. 호호호~!”
자원이 즐거워하면서 말하자 삼진이 자원에게 물었다.
“멋진 곳에서 뱃놀이하며 즐기는 것이야 좋다만 ‘글덕’이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군.”
삼진이 이렇게 묻자, 자원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오라버니는 글 덕도 모른단 말이에요? 호호~!”
“공덕(功德)은 알겠네만 글덕이라니.... 금시초문이라서 말이지.”
“덕을 보면 모두가 덕이죠. 싸부의 학문으로 인해서 현령의 초대를 받고 이렇게 멋진 곳에서 유람할 수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글덕이 아니고 무었이겠어요? 호호호~!”
삼진도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고서 말했다.
“아, 그런 뜻이었군. 과연 듣고 보니 글덕이로구나. 스승님 덕분에 호사를 누립니다. 하하~!”
우창은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삼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현령의 말을 들으며 또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삼진이 하룻강아지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삼진이 진지하게 말하자 우창도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삼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행원에서 말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내용 중에서 군더더기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현령의 말을 들으니 또 다른 학인에게는 그러한 내용도 미로를 헤매는 것을 막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건대, 내용에 오류만 없다면 중언부언하더라도 얼마든지 용납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줍짢은 식견으로 건방을 떨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웠습니다.”
우창은 삼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그런가? 무슨 말을 했기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난 모르겠군.”
“스승님은 벌써 잊으셨나 봅니다. 일전에 「신금(辛金)」편을 공부할 적에 외토지첩(畏土之疊)이니 하는 내용은 군더더기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그때 태사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셔서 내심으로 약간은 우쭐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도자월성숙 두저득월저(稻子越成熟 头低得越低)’라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서야 그것이 무슨 말이었는지 생각났다. 삼진이 이어서 말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외토지첩의 의미가 비록 깊은 의미는 없더라도,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로 말미암아 인성과다(印星過多)의 폐해(弊害)에 대해서 이해하는 방법도 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고서의 가르침에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해야 하겠다는 것을 알고서 부끄러웠습니다.”
삼진은 현령과의 대화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깨달음은 항상 불시에 찾아온다는 것도 이해했다.
“과연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 맞는구나. 쓸데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면서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은 장자(莊子)가 들었다면 또 한 대 맞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네. 그런 점에서 나도 깨닫는 바가 있네. 이치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그것도 필요하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겠구나. 하하~!”
우창은 삼진의 솔직한 말에 내심 감동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학문을 대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얻은 것이 고마웠다.
“맞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데 삼진은 얕은 깨달음으로 우쭐댔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삼진이 거듭 말하자 이번에는 자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오라버니의 말씀에 자원도 반성합니다. 공부가 좀 되었다고 생각이 되는 순간에 그 틈을 비집고 교만심(驕慢心)이 들어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나는 비록 하찮은 이야기라고 생각되거나 당연한 말을 또 한다고 여겨지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을 주는 보석같은 가르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궁리해야 하겠어요. 호호~!”
“누이가 그렇게 말하니 별것도 아닌 것을 갖고 칭찬을 들은 것 같아서 부끄럽긴 하네만 여하튼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일세. 하하~!”
자원의 말에 삼진이 대답하고는 다시 우창을 향해서 말했다.
“스승님, 좀 전에 설명해 주신 음양(陰陽)의 순역(順逆)에 대한 가르침은 감동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야말로 적천수의 백미(白眉)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온갖 고서(古書)에서 소중하게 취급한 것을 모두 무시해 버리고 단호하게 ‘불가(不可)!’라고 하신 경도 선생의 힘찬 외침이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러한 매력에 흠뻑 빠져서 열심히 읽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현령에게 설명하면서 우리도 다시 공부하게 되는 셈이니 또한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니냔 말이지. 그래서 며칠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네. 적어도 「간지총론(干支總論)」편에 대해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나머지는 혼자서 공부하시라고 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이네.”
“참 좋은 생각입니다. 삼진도 오붓하게 가르침을 받게 되어서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배는 강물의 중간에 있는 돌산으로 향하더니 한쪽에 대어 놓은 사공이 우창 일행에게 말했다.
“이 돌산에는 멋진 정원이 있는데 현령께서 일이 있으실 적에 사용하고 일반인들은 사용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마침 간단하게 먹을 것도 마련되어 있으므로 편히 담소하시면서 쉬었다가 내려오시면 됩니다. 소인은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사공은 편히 내릴 수가 있도록 배를 바위가 있는 곳에다 조심스럽게 붙이자, 여정이 재빠르게 일어나서 자원을 부축해서 안전하게 돌산에 내려서는 조금 올라가자 과연 예쁜 정자가 있고, 미리 연락받았다는 듯이 음식을 만들고 있던 중년의 두 여인이 반갑게 나와서 인사를 했다.
“귀인을 뵙습니다. 이쪽으로 오르세요.”
태도로 봐서 아마도 현령이 미리 언질을 줘 놨던 모양이다. 네 사람은 이미 마련해 둔 자리에 앉아서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따뜻한 요리와 술을 마시면서 담소했다.
자원이 술을 한모금 마시더니 여인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술이 이렇게 빛깔도 고운데다가 맛도 달달한데 독하지도 않아요? 이렇게 맛있는 술은 처음 맛봤어요.”
그러자 나이가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여인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 부인께서 입맛에 맞으시나 봐요. 다행입니다. 이 술은 고량주에다 대나무 이슬과 약재를 넣은 다음에 감초와 약수를 섞어서 만든 비주(秘酒)랍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바로 알아주시네요. 호호~!”
“아하, 그렇군요. 술이 이렇게 맛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이 붉그레한 색은 어떻게 한 거죠? 한 잔 더 주세요. 호호~!”
“이 술의 이름은 ‘감로홍(甘露紅)’이예요. 붉은색이 도는 것은 자초(紫草)를 약탕에서 오랜 시간 다려서 배합한 거예요. 불면증에 좋다고 하던데 소인도 자세히는 몰라요. 한 잔 더 드세요.”
이렇게 설명하면서 또 한 잔을 따라줬다. 자원이 그것을 맛보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싸부, 현령의 마음 써주심이 참으로 예쁘지 않아요? 어쩜 이렇게 세세하게 챙겨주셨는지 감동인걸요. 호호호~!”
“그렇군. 과분한 대접을 받는구나. 나도 이렇게 맛있는 미주(美酒)가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과연 세상의 맛을 다 안다고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하하~!”
우창이 문득 삼진을 바라보니까 삼진도 술잔을 들고서 맛을 음미하면서 풍경을 바라보다가 우창의 시선을 느꼈는지 우창과 눈이 마주쳤다.
“삼진은 이런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나? 술은 고량주만 알고 있어서 모두 독주(毒酒)로만 여겼는데 이제 알고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잖나?”
“그렇습니다. 삼진이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술에도 여러 단계의 농도(濃度)가 있는 것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물처럼 마실 수가 있는 저농도의 미미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입에 들어가는 순간 불이 붙는 듯하고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의 불덩어리와도 같은 고농도의 술도 있습니다. 오늘의 이 감로홍은 술의 농도를 아홉 단계로 나눈다면 세 번째 단계 정도의 술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가령 이과두주(二鍋頭酒)는 증류하면서 두 번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순도(純度)가 높고 그만큼 고농도여서 대략 일곱 단계쯤 되는 것도 있습니다.”
우창은 상식이 풍부한 삼진의 말을 듣는 것이 즐거웠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여정도 재미있는지 귀를 기울이면서 한 잔 마셨다. 곁에서 시중을 들던 두 여인도 음식이 식었다고 생각되자 다시 따뜻하게 해서 내오고는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삼진에게 물었다.
“그렇구나. 술은 단순하게 기분이 좋은 음료라고 생각했는데 그 변화도 무궁무진하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도(酒道)라고 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지요. 적당히 마시면 음식을 잘 소화되게 하여 식욕도 좋고 정신을 밝게 하는 묘약(妙藥)이 됩니다만, 이것을 넘어서 과하게 되면 오히려 독약(毒藥)이 되어서 심신(心身)을 황폐하게 만들어서 폐인이 되게 하니까요.”
“그래 삼진의 말을 듣고 보니 ‘술에도 도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것 같구나. 그렇지만 그것은 술꾼들이 핑계를 대느라고 만들어 놓은 말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모처럼 분위기도 좋은 곳에서 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네. 하하~!”
우창이 관심을 보이면서 말하자 삼진도 기뻐하면서 말하자 두 여인도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을 본 자원이 말했다.
“두분도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잖아요. 격식은 필요없으니 같이 마시면서 담소하면 좋겠어요. 호호호~!”
“예, 그럼 예의는 내려놓고 옆에서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고마워요.”
여인들이 자리에 앉기를 잠시 기다렸던 삼진이 말을 이었다.
“실로 이렇게 풍경이 멋진 곳에서 정겨운 벗들과 함께 주도를 논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연히 몇 말씀 정도는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삼진은 자원이 따라 준 술을 마시고는 말했다.
“세상 만물에는 모두 신령(神靈)이 있듯이 술에도 주신(酒神)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선(酒仙)과 주귀(酒鬼)도 있지요.”
“오호~! 그것참 재미있는 이름인걸. 그러고 보니 이백(李白)은 주선(酒仙)이잖은가?”
“그렇습니다. 차성(茶聖)은 육우(陸羽)이고 주성(酒聖)은 두강(杜康)입니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술은 정신을 밝게 하여 육우와 두강은 세상에서 성인으로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두강? 그것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육우는 차경(茶經)을 쓴 사람이라고 들어봤지만 말이지.”
“그렇습니다. 육우는 당대(唐代)의 사람이고 두강은 고대(古代)의 황제(黃帝)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에 재상을 지낸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천지신명에게 기원할 적에 반드시 두강이 빚은 술로 제주(祭酒)를 삼았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 차는 나중의 일이고 처음에는 술이 있었단 말이로군.”
“원래 술은 신전(神殿)에서 신에게 올리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만드는 것은 신과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여겼지요.”
“그럴법한 설명인걸. 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그 궤(軌)를 같이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신전에서 제주(祭酒)로 사용했다니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습니다. 특히 두강이 술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나중에야 이런저런 실험을 통해서 발효(醱酵)하는 과정을 거쳐서 술이 되고, 이것을 증류(蒸溜)해서 이과두주나 고량주(高梁酒)를 만들게 되었으니 비로소 주류천하(酒類天下)가 전개되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과연 삼진의 말을 듣고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군.”
우창이 삼진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하고 다른 일행도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며 삼진은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지금은 술이 여흥(餘興)을 돋구는 것으로 보통 생각합니다만, 예전에는 신효(神效)한 약이었습니다. 산삼(山蔘)이나 녹용(鹿茸)을 고도(高度)의 술에 침출(浸出)시켜서 몸에 흡수가 잘되도록 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약으로 삼았으니까 말입니다.”
“오호~ 그것까지는 몰랐는걸? 어떤 질환에 사용했단 말인가?”
“보통은 환부에 소독(消毒)하는 용도로도 사용했습니다. 기력이 쇠한 사람에게 약을 쓸 적에도 체내(體內)의 흡수(吸收)를 도와주는 도구로 훌륭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매우 신비한 약으로 취급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술이 너무 독해서 자칫하면 몸에 해롭게 작용할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런 것은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적당히 끓이면 독한 성분이 증발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조절할 수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또 술에 물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불과 물로 술의 도수(度數)를 조절한다는 것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과연 그렇구나. 참 신기하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앞에 있던 감로홍을 들어서 보이며 말했다.
“이 감로홍으로 말한다면 약재도 있지만 여기에 물을 적당히 섞어서 마시는데도 부담이 없어서 주독(酒毒)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담소하면서 즐기는 용도로 딱 좋다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자원이 말했다.
“오라버니의 말도 일리는 있는데 술에 물을 탄다는 것은 원래의 고유한 맛이나 향을 희석(稀釋)시켜 버리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삼진이 자원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그야 누이의 생각도 맞지. 다만 원래 술은 물이지 않은가? 액체라는 말이네. 술의 농도(濃度)가 고농도여서 마시기에 부담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 문제인가? 물도 타고 다른 것도 섞어서 마시기 편하면 그것이 상책이지 않겠느냔 말이네. 여기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섞어서 풍미(豐味)를 더하니 이것을 함께 즐기는 것에는 남녀가 없다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나?”
“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술에 물을 탄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주모(酒母)가 떠올랐어요. 분량을 늘여서 돈을 벌고자 해서 물을 섞어서 파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호호호~!”
“그래서 술장사는 물장사라고도 하지. 그렇지만 그것이 또한 술의 묘수(妙手)라고 봐야지. 사람을 봐가면서 어떤 사람은 고도(高度)의 술을 줘서 찬사를 듣고 또 여인이 와서 술을 청할 적에는 중도(中度)나 저도(低度)의 술을 제공해서 또한 모두가 즐겁게 한다면 이것을 단순히 물장사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네, 어떤가? 하하~!”
“그건 알겠는데, 술보다 물이 적게 들어갔으면 술값을 깎아줘야 한단 말이에요. 술은 적게 넣고 물은 많이 넣어서 술값은 같이 받으면 되겠어요?”
“여러 사람이 술을 팔다가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기 마련이긴 하지 않겠나? 주도(酒道)를 알고서 장사하는 사람은 마시는 사람의 주량(酒量)에 따라서 적당히 배합해서 팔고 가격도 조정하겠지만 가끔은 돈에 눈이 먼 사람도 있긴 하겠지. 하하하~!”
삼진이 자원의 말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우창이 삼진에게 말했다.
“자원의 말도 일리가 있는걸. 그렇다면 주량이 적은 사람은 술을 한 근 사더라도 여기에 물을 청해서 섞어 마신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겠나? 하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웃는 사이에 석양이 되어 오자 배에서 기다렸던 뱃사공이 올라와서 귀가하기를 청했다.
“아마도 현령 나리께서 음식을 마련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다가오지 싶습니다. 즐거운 담소를 나누시는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송구합니다만 자리를 거두시는 것은 어떠실지요?”
예의를 갖춰서 말하니 아무도 거역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창이 두 여인에게 말했다.
“오늘 덕분에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와서 감로홍을 마시고 싶습니다.”
“예, 저희도 재미있는 말씀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다음에 또 놀러 와주세요. 고맙습니다.”
귀로에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자원이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술에는 주도(酒道)라고 해서 도(道)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야 저마다의 주량(酒量)에 맞춰서 마시고 놀면 도에 부합(符合)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초과해서 마신다면 주귀(酒鬼)가 되어서 추(醜)한 모습만 드러낼 뿐이지 않겠어?”
“아니, 그러고 보니까 추할 추(醜)에는 술을 나타내는 주(酒)와 귀신 귀(鬼)가 같이 붙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술을 먹고 취하면 추하다는 의미가 저절로 드러나네요. 호호호~!”
“술에 대한 호칭이 또 없어요?”
“무슨 호칭을 말하는 거지?”
삼진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묻자, 자원이 말했다.
“주성(酒聖)도 있고 주선(酒仙)도 있는데 혹 또 다른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나 싶어서 말이죠.”
“그다음은 주귀(酒鬼)가 있지. 술만 보면 그 항아리 곁을 못 떠나는 사람 말이네. 주야불문(晝夜不問)하고 술만 보면 마시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와~ 참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술 귀신’이라니, 그렇게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도연명(陶淵明)이지.”
“도연명은 누구죠? 처음 들어봐요.”
“당대(唐代)의 시인(詩人)이지. 벼슬을 버리고 초야(草野)로 돌아가면서 읊은 「귀거래사(歸去來辭)」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지.”
“귀거래사라니, 그 뜻은 ‘돌아가면서 쓰는 글’이라는 말이잖아요? 내용이 궁금해요. 알려주세요.”
“내용은 길어서 외우지 못해서 유감이군. 제목에서 느끼는 그대로라고 보면 될 것이네. 하하~!”
“그중에는 주귀(酒鬼)가 가장 맘에 들어요. 물론 자원이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말이죠. 호호호~!”
“원래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이것이 과하게 되면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도 있다더군. 하하하~!”
“참으로 맞는 말이에요. 술에 중독(中毒)이 되면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도 계속해서 퍼마시다가 목숨을 잃고 말기도 하고 패가망신을 당하기도 하니까 참으로 잘 다스려야 하기에 도(道)라고 했나 보네요. 호호호~!”
“왜 아니겠나. 모든 이치에는 저마다의 일정한 중심이 있는데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과도(過度)한 것이 되고, 이것은 이미 중도(中道)를 벗어난 것이니 도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 하하~!”
“오라버니도 참 많은 것을 알고 계시네요. 문득 생각났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탈이 날 것 같지 않은 차(茶)에도 차도(茶道)라는 말을 할까요?”
“어? 그런 말도 있나? 하기야 세상 만물에 도 아님이 없으니 당연히 차도가 있다고 해도 그만이겠지. 다만 차예(茶藝)라는 말은 들어봤지. 그런데 차에 무슨 도가 있단 말인지 모르겠는걸.”
“아, 착각했나 봐요. 그런데 차예는 뭐죠?”
“그야 항주(杭州)에 가면 만나게 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봐. 하하하~!”
“참,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이 항주였었죠? 재미있게 노느라고 그것도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호호~!”
“이렇게 매 순간이 공부하는 것과 함께 즐기니 어디에서나 재미있을 따름이지 않은가? 하하~!”
“맞아요. 오늘 마신 감로홍의 향이 아직도 입안을 맴돌아요. 과연 술의 세상에 대해서도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겠어요. 독한 술을 찡그리면서 마시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이렇게 뭔가를 배합해서 미주(美酒)로 변화하는 오묘함이란 도(道)라고 할 만하겠네요. 호호~!”
“오늘 자원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으니까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구나. 나도 그랬는데 앞으로는 더욱 맛있는 술과 함께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하하~!”
“술과 차는 모두 마시는 것이잖아요? 음식(飮食)이라는 말에서 음(飮)은 마시고 식(食)은 먹으니 결국 음식이란 먹고 마시는 것이었어요.”
자원의 말에 우창이 갑자기 무슨 뜻인가 싶어서 멀뚱했다. 그러자 자원이 웃으며 설명했다.
“아이, 싸부도 참 너무 깊이 생각하실 것은 없어요. 그냥 마시는 것에는 차와 술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다 해 본 말인걸요. 그런데 차와 술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그게 궁금하네요.”
“그래? 궁금하다면 오늘 저녁에 당장에 마셔 보면 되겠구나. 술에 차를 타거나 차에 술을 타거나 비율(比率)이 중요할 따름일 테니 말이지.”
“맞아~!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을까요.”
“그야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한 만큼 깨닫고 경험한 만큼 응용하게 되는 법이니까 당연하다네. 하하하~!”
“정말 명언(名言)이에요. 호호호~!”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동헌(東軒)에 도착하자 벌써 현령이 밖에 나와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반기며 말했다.
“해가 기울어도 귀가하지 않으셔서 다른 곳으로 떠나셨나 했소이다. 허허허~!”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문귀 선생의 매력을 그냥 두고 어찌 떠날 수가 있겠어요? 오늘 저녁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될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에요.”
“그렇다면 참 고마운 말씀이외다. 허허허~!”
“참, 오늘 강에서 뱃놀이하다가 돌산의 정자에서 너무 맛있는 술을 마셨어요. 감로홍(甘露紅)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것을 한 병 얻어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요. 호호~!”
자원의 말에 현령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셨소? 참으로 다행이외다. 감로홍은 여기에도 많이 있으니 얼마든지 마시고 즐겨주시오. 허허허~!”
일행은 식당으로 가서 푸짐한 산해진미로 만찬을 즐기고는 다시 현령과 함께 서재(書齋)에서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모두 찻잔을 앞에 놓았으나 특별히 자원에게는 큼직한 술잔에 감로홍을 한가득 채워서 갖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