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 제43장. 여로(旅路)/ 9.간절(懇切)함

작성일
2024-08-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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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43. 여로(旅路)

 

9. 간절(懇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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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주막이 있는 앞으로 좀 넓은 마당의 옆에 그늘진 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행인이 쉬어갈 수가 있도록 평상과 의자가 있는 곳에 일행을 내려준 여정이 마차를 한적한 곳에 옮겨놓고 말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앞쪽에서 관원으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말을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와서는 방금 말에서 내린 우창 일행을 향해서 한 남자가 말했다.

말 좀 물읍시다. 이 부근으로 수상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담하는 자원이 앉으려다가 일어나서는 대답했다.

사람을 찾으시는가 봅니다만, 우리도 방금 도착해서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조금 전에 말했던 사람이 다시 물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의 구레나룻이 있는데 등에는 검을 지고 있는 사람이오. 그리고 얼굴에는 자세히 보면 왼쪽 뺨으로 칼자국이 있소이다 마는.”

그 남자가 재차 묻자, 이번에는 자원도 대접 상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말했다.

나리께서 말씀한 것만으로도 한 번 보면 바로 알아볼 수가 있겠는데 아직은 보지 못했어요.”

자원이 전혀 못 봤다고 말하자 그들도 포기를 했는지 서로 쳐다보더니 한 관원이 쉬어가자고 이야기했는지 말에서 내려서 나무에 매어놓고는 우창의 주변에 있는 평상에 털썩 주저앉더니 벌렁 드러누웠다. 아마도 장시간을 그렇게 그 사람을 추격했던 모양인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우창도 그들과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강물에서 아이들이 천렵(川獵)하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고기가 잡히는지 아이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자원에게 물었던 관원이 우창을 세세하게 뜯어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창도 그를 정색하고 바라봤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지나자, 그가 말을 걸어왔다.

선생은 어디로 가시는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소이까?”

표정만 봐도 성격이 괄괄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한 사람과는 어울려 봐야 별 소득이 없을 것으로 짐작하고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대답했다.

항주(杭州)로 가는 길입니다. 서호(西湖)의 풍광이 좋다기로 나들이를 나왔지요. 봐하니 수고가 많으십니다.”

, 그러시오? 우리는 열흘 전에 서호에 있었소이다. 살인범을 추적하느라고 바삐 이동하다가 마침 소주(蘇州)를 향해서 달아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렇게 뒤를 쫓는 길이외다. 껄껄껄~!”

다른 네 사람은 여전히 평상에 드러누워서 쉬다가 그사이에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관원은 다섯 명이었다. 잠든 일행을 보던 그 사람은 바로 일어나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우창에게로 다가왔다. 심심한데 말동무라도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선생의 집은 어디요?”

, 소주의 한산사 부근입니다.”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고인의 서책이나 뒤지고 있는 서생입니다. 하하~!”

자원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행여라도 우창에게 불편한 언행을 한다면 한마디 하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그런 분위기는 아닌지라 무심한 표정으로 나무 위에서 두 마리의 새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인이 참 미인이시구려. 처복이 많소이다. 껄껄껄~!”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자원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앞에서 나섰던 것으로 인해서 우창의 부인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말하는 것에는 거침이 없었다. 자원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우창이 눈짓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하하~!”

우창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그렇게 얼버무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간단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 관원은 무슨 일이든 관심이 생기면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성품이었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우창에게 또 물었다.

차려입은 모습으로 봐서는 도사이신 듯한데 도관(道觀)은 소주에 있소이까? 제자들도 많겠소이다.”

우창도 봐하니 이 관원이 자꾸만 캐묻고 있는 것이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리어 역공했다.

나리께서는 어느 관청의 소속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관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 난 항주자사의 명을 받는 관원이오. 그러니 항주포청에서 일을 하는 셈이라오. 껄껄껄~!”

아마도 이야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한 마디를 물으면 열 마디를 대답하는데 우창도 마침 쉬면서 말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 그러시군요. 그런데 그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리도 바삐 찾고 있으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살인범이라고 하셨습니까?”

맞소이다~! 그놈은 사람을 열두 명이나 살해하고 교묘하게 피해 다니면서도 잡히지 않고 있어서 현상금도 오백 냥이 붙었소. 만약에 그놈을 보는 대로 내게 알려준다면 앉아서 오백 냥을 버는 것이오. 껄껄껄~!”

저런! 참 애석한 일입니다. 하하~!”

사람을 그렇게나 많이 죽였다면 상금이 그만큼 붙을 만도 하겠으나 겉으로 듣기보다는 그 속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우창이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그 이야기나 더 들어볼 심산으로 또 물었다.

참으로 끔찍한 중죄인이로군요. 왜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우창이 자기가 넋두리 삼아서 하는 말을 고분고분 받아주자, 신이 났는지 관원은 언성을 높여서 길가에서 간단한 술과 음식을 팔고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말에 우창도 말없이 따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급하게 움직여야 할 일도 없던 터에 또 사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될지 궁금하던 차에 말없이 따라 움직였다.

주인장! 여기에서 가장 좋은 술과 음식을 좀 주시오. 값은 내가 내리다. 껄껄껄~!”

주인은 중년의 남자와 여인인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부부인 듯 보였다. 우창도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눈인사만 하고는 관원을 바라봤다.

아참, 나는 홍()가요. 지위가 통판(通判)이니 홍 통판이라고 불러주시오.”

우창은 문득 통판이라는 직책을 듣고서야 염재보다 나이는 두 배나 많아 보이는데 아직 통판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듣고서 염재가 총명하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 원래 통판 나리셨습니까? 참으로 노고가 많으십니다.”

이렇게 받아주고는 그가 권하는 술잔을 받아서 한 잔 마셨다. 얼큰한 농주를 마시자 이내 취기가 돌았다.

그 살인범의 사정을 듣고 보면 참으로 기구해서 내 손으로 잡아넣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정도라오. 그래도 어쩌겠소? 인정은 인정이지만 또 지은 죄는 죄이니 말이오. 껄껄껄~!”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놈이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관원이 기회를 틈타서 야밤에 겁탈하고는 반항하자 목숨까지 끊어버린 놈을 죽였잖겠소. 문제는 그놈이 관아의 아전이었다는 것이오. 탐욕이 넘치는 놈이니 응당 죽어서 마땅한 놈이었소이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그래도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잖소.”

이렇게 말하면서도 조금도 죽은 사람을 동정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살인범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이 통판의 심성은 보기보다 올곧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서 오히려 호감이 갔다.

그것참 딱하게 되었습니다. 오죽이나 상심이 컸으면 억울한 마음에 그러한 일을 저질렀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하필이면 죽인 사람은 항주 자사의 조카란 말이오. 그놈이 실로 자사의 권력을 믿고서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는데 숙부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들에게는 거만한 놈이라서 평소에 그를 곱게 보지 않고 있었던 터에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포졸들도 내심으로는 고소하다고 할 지경이지 않겠소? 껄껄껄~!”

우창이 보기에 홍 통판은 죄인을 잡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직책상 자사의 명을 받아서 나섰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가던 길도 재촉하지 않고서 이렇게 우창에게 술을 핑계 삼아서 푸념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둘러보니 그사이에 다른 관원들도 나무 그늘에 말을 매어놓고는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그러나 국법은 법인지라 안 잡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죄는 지은 대로 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국록을 받는 통판 나리께서는 명을 받았으니, 싫든 좋든 법대로 시행할 따름이지 싶습니다만, 때로는 내키지 않은 일이 있기도 하겠습니다. 하하하~!”

홍 통판은 이야기하면서도 목이 말랐던지 연거푸 석 잔의 술을 마시고는 또 잡으러 가야 한다면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말을 타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혹 항주에 들렸다가 술이 고프시걸랑 나를 찾아오시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리다. 껄껄껄~!”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을 몰아서 북쪽으로 내달렸다. 그가 먼지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관리의 고단함을 생각해 봤다.

스승님, 그 범인이 잡히겠습니까?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홍 통판이 큰 소리로 이야기했으므로 삼진도 내용을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심으로 잡을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그가 떠나고 나자, 궁금했던 것을 우창에게 물었다.

아니, 그가 잡히면 어떻고 안 잡히면 또 뭘 하겠나? 그들의 일일 뿐인데 그러한 것으로 괜히 점괘를 찾을 필요가 있겠나? 하하하~!”

우창의 말에 삼진도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또 쓸데없이 점괘를 찾느라고 헛된 궁리를 했습니다. 도둑을 잡는 점괘부터 스승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하하~!”

무엇이었든지 열심히 파고들 때가 또 재미있는 시절이기도 하지. 아마 여정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좀 풀이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여정을 바라보자, 여정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을 찾을 수가 있다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저 관리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또 깨달았습니다. 괜한 일로 아무것에나 연루되는 것도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다네. 세상에는 온갖 기괴한 일들도 많이 생기고 또 사라지지. 이러한 것을 모두 다 알아보겠다고 한다면 영원히 휴식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까 내게 당면한 일에는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는 일언반구(一言半句)조차도 허비할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단 말이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여정이 알았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만약에 점괘가 기가 막히게 적중해서 그 살인자가 저 술을 파는 집 뒤뜰의 나뭇단 뒤에 숨었다고 알려준다면 이것은 자신이 사모하던 여인의 죽음으로 억울해서 범행을 한 사람을 돕는 것일까? 한 사람을 돕는다고 해서 또 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것은 또한 옳은 것일까?”

역시 여정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술을 파는 집이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혹시 스승님께서는 그것을 보셨나 싶어서 얼른 바라봤습니다.”

여정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술집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허름하게 거적으로 가려진 뒤쪽에서 한 남자가 몸을 털면서 나왔다. 그것을 본 삼진과 여정이 깜짝 놀라며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이리 와서 앉으라는 듯이 손짓했다. 남자가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다가와서 우창의 옆에 앉았다.

피신하느라고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관원들은 멀리 떠나서 잠시 안전해 보이니 술이라도 한잔 들고 갈증을 달래시지요.”

그러자 그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처음에 도사님과 눈길을 마주쳤을 때부터 관리가 떠날 때까지 조마조마했습니다. 혹시라도 숨어있는 것이 발각이라도 될까봐서 말이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싸부도 보셨구나. 어찌나 빠르게 숨으시는지 자원만 그것을 봤나 싶었는데 주인 부부가 그것을 감싸주는 것을 보면서 아직 잡힐 때가 안 되었나보다 했죠.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만약에 홍 통판의 말을 들어봐서 흉악한 일에 연루되었더라면 말해주려고 했지. 그런데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통판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잡아야 하겠다는 마음도 없어서 잠자코 있었지 뭘. 하하~!”

그래도 그 관리가 주막(酒幕) 앞으로 다가와서 술을 달라고 할 적에는 철렁했습니다. 주인 부부가 눈짓만 한 번 했더라도 영락없이 묶여서 끌려갈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이렇게 말한 남자는 주인을 향해서 공수하고 감사를 표시했다. 주인 부부는 그냥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 표정으로 봐서 이러한 일은 그리 드물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듯했다. 우창이 남자에게 물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 분함을 참지 못한 것은 이해됩니다만, 그래도 국법이 있으니, 앞으로 평생을 숨어서 다닐 수도 없고 어쩔 셈입니까?”

우창의 말에 남자는 낙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분함을 참지 못하겠는지 다시 술잔을 들어서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정황이 참으로 딱합니다. 어떻게라도 도와드리고는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좋은 방도가 없겠습니까?”

삼진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도 곰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줘서 억울함도 풀고 끝없이 도망 다니는 것도 면할 수가 있을지 그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가 남자에게 물었다.

아까 통판으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나뿐인 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죽이기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도사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놈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손에 죽어 마땅했지요.”

그 정황은 이해됩니다만, 그로 인해서 국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재판을 받게 되면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놈의 숙부가 항주 자사였습니다. 도리어 저를 감옥에 가두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러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길로 도주했던 것입니다.”

그래, 이제는 어떻게 할 참입니까?”

이대로 도망자로 살아갈 수는 없는데 막상 방법을 생각해 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저도 답답합니다. 관리들이 억울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려고 하지를 않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울분이 솟구치는지 다시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창이 육갑패를 꺼냈다. 비로소 점괘의 판단을 참작할 요량이었다. 그것을 본 삼진도 눈빛을 반짝이면서 지켜봤다. 과연 이 남자를 살려낼 묘안이 육갑패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손이 가는 대로 다섯 장의 패를 뽑아보십시오. 그 결과에 따라서 좋은 방법이 나올지 아니면 없을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창의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었다. 얼른 일어나더니 옆에서 흐르는 물에 낯을 씻고 손도 씻으면서 이 억울함을 해결할 방법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염원했다. 그것을 보자 우창의 일행도 모두 숙연했다. 주막의 주인 부부도 무슨 일이 생기려나 싶어서 잔뜩 목을 빼고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다 마친 남자는 마침내 떨리는 손을 뻗어서는 육갑패를 뽑아서 우창의 앞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해놓고서 아직은 뒤집혀 있는 육갑패를 바라보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럼, 어디 천지신명의 암시가 어떠한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천천히 오른쪽의 육갑패부터 하나씩 뒤집었다. 그렇게 해서 다섯 장을 뒤집어 놓자, 삼진과 자원도 잘 될 길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패를 살폈다. 육갑패에서는 어떤 조짐을 보여주는지 과연 일이 잘 해결될 조짐이 나왔는지 걱정되는 마음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창이 패를 들여다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경오(庚午)가 보이자 관재(官災)가 끼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겠고, 그 관재인 오화(午火)는 자수(子水)로 인해서 일어난 것으로 봐서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점도 생각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경금(庚金)이 갑목(甲木)을 친 것으로 인해서인데 그 뿌리는 자수(子水)에 닿아있고, 자수(子水)는 상관(傷官)이니 스스로 일을 벌인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시주(時柱)의 기사(己巳)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또 생각에 잠기자, 바라보고 있다가 답답해진 자원이 먼저 나섰다.

싸부, 경오(庚午)패를 보니 점기(占機)는 동한 것으로 봐도 되겠죠?”

이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가운데 경오를 짚었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긴장하는 표정으로 자원과 우창을 번갈아 보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우창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렇군. 누군가 도움을 주기는 하겠는데 그게 누구일지를 생각하는데 자원이 사로(思路)를 터주는 바람에 갑자기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네. 하하하~!”

우창이 잘 해결된다는 듯이 말하며 웃자, 남자도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도하는 듯이 긴장을 풀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은 종이를 꺼내서 먹을 갈았다. 그것을 본 여정이 얼른 먹을 받아서 대신 갈아 놓고는 우창에게 붓을 쥐어줬다.

아니, 갑자기 무슨 글을 쓰시려고요?”

자원이 의외라는 듯이 우창을 보며 말하자 붓을 놓고는 설명했다.

지금 이 문제는 이귀제사라고 봐야 한단 말이지.”

? ‘이귀제사라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듣느니 처음이네요.”

, 이귀제사는 귀인으로 사악함을 제어한다는 이귀제사(以貴制邪)’라는 말이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삼진이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스승님께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쓰시고자 하는 것이지요? 적어도 항주 자사의 횡포를 제어할 정도의 벼슬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서신을 보내시려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잘 생각하셨네. 적어도 항주 자사보다 지위가 높거나 같아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고 여차하면 흠차대신(欽差大臣)에게까지 전갈(傳喝)할 수준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다행히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었네. 하하~!”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는 것이 단지 점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우창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소주 자사에게 서간(書簡)을 보내시려는 거죠?”

옳지! 현재로 봐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이 되었지. 그리고 최 자사라면 이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지.”

과연, 쓸 수가 있는 패는 모두 동원하시는군요. 호호호~!”

자원도 우창의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웃었다. 그러나 삼진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남아있는 듯하더니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의문입니다. 같은 자사의 지위인데 항주 자사가 소주 자사의 말에 과연 움직일지요? 오히려 비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 드는데 어떻게 해결이 될지 염려되는 바도 없지 않습니다.”

삼진의 말에 자원은 다시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그렇네요. 오라버니 말씀을 듣고 보니까 같은 자사의 지위라면 그 말을 듣고서 아무리 죄가 중하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혈육인데 과연 온당한 처벌을 할 것인지 걱정되네요.”

두 사람의 말을 듣고서도 우창은 미소를 짓기만 했다. 자원이 걱정하는 것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자원의 말도 일리가 있는걸. 하하하~!”

우창의 말에 남자는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해결책이 나오려나 보다 싶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을 테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를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다만, 문서의 말미에다가 만약에 제대로 수사해서 죄가 있는 사람을 처벌하지 않으면 흠차대신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으며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하는 내용이 추가된다면 아마 자기 마음대로 위험한 조작은 못 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모두가 마음을 놓았다. 우창이 편지를 다 쓴 다음에 수결(手決)을 하고는 봉한 다음에 겉에는 우창(友暢) 진하경(陳河鏡) 올림이라고 쓴 다음에 남자에게 전해주고 소주 자사를 찾아가서 전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해 줬다.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겠습니까? 마음으로 골수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은인이시니 여행길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시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보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남자가 총총히 사라지고 나자,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육갑패에서 만약에 분주(分柱)의 무진(戊辰)이 병오(丙午)가 되었더라도 서찰(書札)을 보내셨겠습니까?”

삼진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그랬을 리가 있겠나. 점신이 해결된다고 하셨기에 이러한 일도 할 수가 있는 것인데, 전혀 불가능한 조짐이 되어버린다면 저 사람을 구명(救命)할 길은 없다고 봐야겠지?”

과연 그렇겠습니다. 아까부터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단순하게 도움을 청할 곳이 있어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해결이 잘 될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또 깨달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랬군. 우리도 푹 쉬었으니 또 길을 재촉해 볼까?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머물만한 객잔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