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 제43장. 여로(旅路)/ 8.어차피 일어날 일

작성일
2024-08-1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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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43. 여로(旅路)

 

8. 어차피 일어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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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층의 식당에서는 손님들의 소리가 꽤 소란스럽게 들려왔으나 위층은 투숙객들을 위한 공간이어서 크게 방해받을 일은 없었다. 손님들이 올라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심스럽게 말하는 주인의 표정이 아침에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은 염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말하기를 기다렸다.

도사님들께서 걱정하시던 일이 현실이 되었어요. 어쩌면 좋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목이 타는지 다 식은 차를 두 잔이나 들이마시고는 삼진을 바라보고 애원하듯이 말했다.

점괘가 걱정스럽다고 하셨잖아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일이 기어이 터졌답니다. 울고불고하는 동생을 겨우 진정시켜 놓고 아무래도 도사님은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보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우창과 삼진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격이 급한 자원이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무슨 일이 생겼기에 그렇게 낙심천만(落心千萬)인 표정을 짓고 계신 거예요? 혹 조카딸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자원의 말에 주인은 거의 울먹이는 듯한 말로 정황을 설명했다.

조카딸이 죽어버리겠다면서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답니다. 온갖 말로 위로를 하면서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울부짖는 바람에 동생도 겁이 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문득 도사님들은 어떤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한달음에 왔어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자원은 우선 패물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순간에 육갑패가 떠올랐다. 일단 점괘를 뽑아놓고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반은 나간 듯한 주인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러니까 조카딸을 진정시켜서 더 큰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하겠네요. 일단 동생을 이리 데리고 오세요. 같이 답을 찾아봐야 하니까요.”

주인이 동생을 데리러 간 사이에 자원이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주인이 더 쉬었다 가라고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꼴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것도 아마 하늘의 뜻이겠죠? 어떻게 하겠어요. 사람은 살리고 봐야죠.”

자원의 말에 우창이 곰곰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이것도 인연인가 싶군. 해답을 육갑패에서 찾을까 싶은데 자원은 어떻게 생각되나?”

어머, 싸부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동생이 오면 직접 패를 뽑아보라고 할 참이었어요. 이렇게 통한 것을 보니 점신께서 해결책을 찾아주시려나 봅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네요.”

자원의 말에 삼진도 호기심이 생겨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육갑패의 영험이 궁금합니다. 오늘 그 진면목(眞面目)을 보게 되겠네요. 과연 어떤 괘와 해석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잠시 후, 여인이 초췌해진 동생을 데리고 나타났다. 어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딸로 인해서 밤새도록 잠 한숨도 못 잤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여인이 자리를 잡았고 주인도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동생을 부축하면서 말했다.

도사님들께서 염려하시든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아마 어쩌면 그것도 팔자소관인가 싶어요. 그런데 질녀(姪女)가 죽네 사네 하고 방에서 나오지를 않고 울고만 있어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기에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뵙자고 했어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안정시킬 수가 있을지 지혜로운 답을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조아리자, 동생도 언니를 따라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애절한 표정으로 우창과 삼진을 번갈아 봤다. 우창이 그것을 보니 상황이 매우 안 좋다는 것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지 싶었다. 다소 침중한 어조로 여인에게 말했다.

행여라도 조심하면 잘 넘어갈 수도 있으려나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유감입니다. 안타깝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래 어떤 일이 생겼는지 이야기나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도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반은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딸이 아무래도 사기를 당했나 봐요. 엄마가 아끼는 패물을 다 빼앗겼다고 하면서 어떻게 살아서 엄마를 보느냐고 하면서 통곡하고 있는데 밤새도록 잠도 한숨 못 자고 아이 옆에서 그 꼴을 지켜보자니 억장이 무너지네요. 패물은 고사하고 이러다가 소중한 딸까지 잃을까 두렵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딸을 구해 주시기만 바라겠어요. 보답은 원하시는 대로 다 하겠어요. 흐흐흑~!”

겨우 말을 마치고는 울음이 복받치는지 흐느꼈다. 그 모습을 보니 딱해서 차마 바로보기가 어려웠다. 모두 할 말을 잊고 있는데 삼진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지금이 육갑패에 답을 물어볼 때인가 싶습니다. 그냥 말로만 해서는 길을 찾기 어렵겠습니다.”

우창이 여인의 이야기에 잠시 점괘를 뽑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는데 삼진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제야 품에서 육갑패를 꺼내어서 앞에 펼쳐놓고는 여인에게 말했다.

, 앞으로 부인의 딸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패를 다섯 장 뽑아보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뽑는다면 점신께서도 현명한 가르침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은 벌떡 일어나서 우창에게 절을 일곱 번이나 하면서 흐느끼는데 그것을 말릴 겨를도 없어서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었다. 잠시 그렇게 하고서 자리에 앉은 여인이 육갑패를 뽑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구할 생각을 하면서 손을 움직이니 그러한 마음이 그대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여인도 글은 알고 있어서 뒤집은 패에서 간지(干支)가 등장하자 눈여겨보는 것 같았다. 다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도리가 없는지라 우창과 삼진을 번갈아 보면서 어서 빨리 풀이해 주기 바란다는 애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자원도 점괘가 궁금해서 패를 보면서 궁리에 들어갔다. 병술(丙戌) 갑자(甲子) 무인(戊寅) 병자(丙子) 정묘(丁卯)였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 봐서 섣부르게 풀이하기도 조심스러워서 우창이 말을 꺼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또 다른 무게의 침묵이 흘렀다. 여인의 한숨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 소리를 그치도록 우창이 갑자기 손뼉을 !’ 소리 나게 치면서 말했다.

오호~! 참으로 다행이로다~! 하하하~!”

우창의 돌발적인 행동에 모두 깜짝 놀라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은 당연히 분위기를 환기(喚起)시키려고 다소 과장된 행동을 했으나 자원을 제외하고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자원은 그러한 마음을 헤아리고서 내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분명히 무인(戊寅)의 인중병화(寅中丙火)를 봤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하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점신께서 무심하지 않으셔서 귀댁의 조상신께 도움을 요청하셔서 서로 통하셨습니다. 이제 걱정은 접어두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서 말씀해 주세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어느 사이에 여인의 표정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이 반짝이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우창에게 매달리듯이 말했다. 그 모습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우창이 조용하면서도 힘찬 음성으로 설명을 시작하자 모든 사람의 귀는 우창의 말을 들으려고 집중했다. 우창이 연주(年柱)인 병술(丙戌)을 짚으며 말했다.

이것은 금지옥엽(金枝玉葉)인 따님입니다. 항상 밝고 올곧은 품성을 기르면서 부모에게 아무런 걱정도 끼치지 않고 잘 지냈다는 것을 이 병술(丙戌)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은 것도 지금 어머니가 감당되지 않는 슬픔에 한몫합니다.”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원은 내심 갸우뚱했다. 육갑패의 세 번째의 천간(天干)으로 딸을 삼아야 할 텐데 이번에는 무슨 조짐으로 연주(年柱)의 병술(丙戌)을 짚으며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지만 잠시 후에 확인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궁금한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여인을 보자 여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급하게 말했다.

예예~ 맞습니다. 맞아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딸이고 항상 사리가 분명해서 아무런 걱정도 끼치지 않았던 효녀니까요.”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월주(月柱)의 갑자(甲子)를 짚었다. 그러자 여인도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듣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 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이번에는 말없이 갑자패(甲子牌)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모습에 여인도 바짝 긴장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행여라도 무슨 말을 듣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원래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고, 다치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습니다. 그렇게도 행실이 정숙한 따님이 잠시 여우에게 홀렸던가 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불한당(不汗黨)같은 못된 사내를 만났는데 마치 준수(俊秀)하기가 제갈량을 만난듯해서 한순간에 정신을 빼앗겼으니 세상 물정을 몰랐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여인을 바라보자, 감동한 듯이 허리를 연신 굽히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참으로 족집게시네요. 도사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단정하던 아이가 한순간에 오뉴월 보리감주가 변하듯이 돌변해서는 부모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밤이 되면 어디로 갔다가 새벽에 돌아오곤 했어요. 그래도 평소의 딸을 생각해서 별일은 없겠거니 했죠. 그런데.....”

여인이 더 말을 잊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 생각할수록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고 우창이 말을 이었다.

, 진정하시고 차라도 한 잔 드시지요. 엉킨 것은 엉킨 것이고 풀어야 할 것은 어떻게든 좋은 결말이 되도록 풀어야 하니 너무 감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창의 위안에 마음이 다소 놓이는지 눈물을 닦고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것을 본 주인이 동생의 등을 토닥였다. 마음고생이 너무 많은 동생이 못내 염려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진정된 것을 본 우창이 다시 가운데 있는 무인패(戊寅牌)의 위쪽인 무()를 짚으며 말했다.

이 글자가 따님을 나타냅니다. 우측의 갑()과 하측의 인()을 봐서 그 마음에 느끼는 고통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야말로 생불여사(生不如死)라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아서 죽은 송장과 같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이번에는 주인이 한숨을 깊이 쉬었다. 우창의 말에 어떤 정경(情景)이 그려지는 듯했다.

맞아요! 정말 도사님의 영험하신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이렇게 속속들이 짚어내실 줄은 몰랐어요. 겉모습만 번듯한 사기꾼을 만난 다음에 휘둘렸을 순진한 조카의 마음이 느껴질 듯하네요. 여태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마치 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해요. 조카 일은 일이지만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겠어요. 그리고 내심 두렵기도 해요. 점괘에 앞으로는 어떤 해석이 나올 것인지를 생각해 보니까 말이에요.”

주인의 말에 동생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략 무엇을 상상하는지 옆에서 봐도 짐작이 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딸의 생명에 대한 불길한 이야기를 들었을 적에 느껴질 법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창은 다시 병자(丙子)패의 병()을 짚으며 말했다.

재물을 잃고 목숨을 건지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조상이 도우셨습니다.”

우창이 간결하게 한마디 던졌다. 이러한 말은 간결할수록 그 효과는 커지기 마련이다. 자식의 목숨과 바꿀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에 여동생의 표정이 지옥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듯이 안도하는 마음이 보였다. 두 자매가 마주 보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럼 되었어요. 더 바랄 것이 없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대로 하겠어요. 굿을 하라면 굿을 할 것이고 불공을 하라면 불공을 할 것이며 재()라도 지내라고 하시면 재도 지낼 거예요.”

이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는 듯한 표정은 어제 본 것 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애절하게 바라보면서 해결할 방법을 기다렸다. 잠시 뜸을 들인 우창이 동생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십리(十里) 밖에 절이 있는데 이름이 대광명사(大光明寺)입니다. 그곳이 따님의 목숨을 붙잡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가 있는 인연처입니다. 그곳에 가서 칠일(七日) 기도를 드리면 됩니다. 물론 모친이 동행해야 하겠습니다.”

대광명사는 말로만 들어봤어요. 당연히 가야죠. 오늘 바로 가겠어요. 딸의 목숨을 살릴 길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감동하는 것만 봐도 참으로 절박했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우창은 마지막의 정묘(丁卯)패를 가리켰다.

광풍(狂風)이 휘몰아치고 나니 가택은 두루 평안하고 화목할 조짐입니다. 이것은 조상님이 돕고 있으니 7일 기도를 마치고 조상님들을 위해서 천도재도 지내드리는 것을 권합니다.”

우창의 마지막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품에서 은자 세 개를 꺼내어 우창의 앞에 놓고서 고두백배(叩頭百拜)하고는 바삐 일어나서 서둘러 떠나갔다. 그것을 본 주인이 얼른 나가서 배웅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어쩜, 그렇게 신통한 점괘가 있을까요? 동생이 지옥에서 극락을 찾은 듯한 표정을 보면서 감동했어요. 괜히 마음을 잡으라고 위로하는 말씀이라도 좋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조짐이 있었던 거죠?”

주인은 우창의 설명을 더욱 믿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물었다. 그러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린 우창이 한마디 했다.

절처봉생(絶處逢生)입니다. 하하하~!”

우창이 긴말할 필요가 없었다. 겨우 정신이 돌아온 주인은 동생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조카가 떠돌아다니던 사기꾼을 만났던가 봐요. 무슨 수작을 부렸던지 한순간에 정신을 빼앗겨서는 동생의 패물까지도 훔쳐서 시키는 대로 마당에 묻어놓고 7일 후에 꺼내다 제자리에 놓으면 된다는 말만 듣고서 그렇게 했는데, 왜 그랬느냐니까 어머니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치게 되는데 그것을 막으려면 비방(秘方)을 써야만 한다고 했다네요. 그런데 이레가 된 다음에 묻었던 패물을 파보니까 모두 사라져 버렸고, 그것을 본 조카가 기겁하고는 그 사기꾼을 찾아갔더니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리네요.”

주인의 말을 들으니 과연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네요.”

자원의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분개하는 마음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한 말인데 그것을 듣고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만 아무리 피하고 막으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일도 있다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이 막상 일어났을 적에 허둥대다가 더 큰 불상사를 당하는 것이라네. 그래도 주인의 현명한 안내로 인해서 이렇게 수습이 되었고 동생도 더 큰 고통을 상상하는 바람에 오히려 패물을 잃었다는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으니 또한 마음에 치유가 되지 않았겠나?”

맞아요~! 정말 두 사람을 잃을 뻔했잖아요. 감사드려요. 동생 성질에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을 텐데 정황을 듣고 도사님의 가르침에 겪어야 할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일 보면서 내심으로 감동했어요. 호호~!”

주인도 비로소 웃음이 나오는지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광명사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입니까? 제자는 그냥 지나쳤는데 스승님께서는 그것도 허투로 보시지 않고 눈여겨보셨더란 말씀입니까?”

삼진이 신기하다는 듯이 오던 길가에서 봤던 대광명사를 떠올리면서 병자(丙子)와 우창을 번갈아 보면서 말하자 우창도 삼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행의 이치를 알고 나서는 귀에 들리는 소리나,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모두 조짐이라고 여기고 나서는 뭐든 보이면 기억하는 버릇이 생겼나 보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냥 흘려보고 말았을 텐데 문득 대광명사가 길가에 보이기에 왜 그런가 싶었는데 이렇게 무인(戊寅)과 병자(丙子)를 보는 순간 그것이 떠올랐을 따름이라네. 하하하~!”

그런데 부인이 갑자(甲子)와 병자(丙子)를 뽑은 것이 혹시 앵두호(鸎脰湖)와 연관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 가운데 무인(戊寅)은 바로 이 동태호객잔(東太湖客棧)이겠습니다. 동방(東方)은 인목(寅木)이니 이것조차도 참으로 현묘(玄妙)한 이치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일리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창은 삼진의 말을 듣고는 다시 점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삼진에게 설명했다.

오호~! 삼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도 해석할 수가 있겠구나. 과연 같은 점괘를 놓고서도 저마다 바라보는 곳은 다르다는 것도 새삼 느끼겠네. 그리고 보다 더 현실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드니 과연 삼진의 통찰력도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겠군. 이미 알고는 있었으나 이러한 대목에서도 그러한 것은 여지없이 드러나는걸.”

주인은 고민되는 일이 해결되자 안심하고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손님을 응대하러 갔다. 그러자 자원이 조용히 말했다.

,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연주(年柱)의 병술(丙戌)을 가리기켠서 따님이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일간 무토(戊土)를 두고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는데 이건 무슨 관법이죠?”

자원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임기응변법~!”

? 임기응변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 자원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다시 궁금하다는 듯이 설명을 해 달라고 하자 우창이 자원에게 말했다.

아니, 자원은 어찌 모든 것들을 점괘로만 풀이해야 하는 건가? 그냥 말문을 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더란 말인가? 하하~!”

예에? 아니, 그러니까 괜한 말씀을 하셨던 거예요?”

생각해 봐, 무슨 말이라도 해서 여인의 마음에 밝은 빛을 줘야 하겠는데 마침 연주가 병술(丙戌)이라서 그렇게 말했을 따름이라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말했다.

싸부, 날씨도 좋은데 다시 가던 길을 가는 것은 어떻겠어요? 복잡한 일이 생긴 곳이라서 얼른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이 삼진을 바라보자, 삼진도 그게 좋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주인은 다음에도 지나는 길에 꼭 들려달라고 하는 말로 나그네들을 환송했다. 그사이에 말들도 푹 쉬었는지 원기가 충천한 모습으로 마차를 힘차게 끌었다. 바람결에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문득 이것이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겠습니까? 혹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들어서 궁금합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자원에게 물었다.

삼진의 물음에 대해서 자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어디 의견을 들어볼까?”

자원은 객잔에서 주인의 여동생이 애원하던 모습을 떠올리다가 우창이 자신에게 의견을 묻자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자연을 따른다는 것이 뭔지 생각해 봤어요. 여인의 딸이 사기꾼을 만나서 심신이 황폐해지는 것은 이미 자연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자연이 아닌 것을 치유하는데 그 방법도 또한 자연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 삼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보면서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자연적(自然的)인 상대는 인위적(人爲的)이겠고, 말하자면 대광명사에 가서 기도하라고 한 것이 인위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렇다면 조짐이든 삶이든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서로 얽혀서 흘러가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유위(有爲)를 논한다면 무위(無爲)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것의 결과로 귀중한 인명을 상하게 된다면 이것을 그냥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유위가 되어서 사람을 살리게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을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하셨잖아요?”

자원의 말을 듣고 있던 삼진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스승님께서 직접 답을 하지 않으시고 누이에게 맡긴 이유를 알 것 같군. 애초에 질문이 이치를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 가르쳐 주니 말이네. 하하하~!”

삼진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이 말하자 자원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질문을 할 적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도 잠시 후에 다시 생각해 보면 별 의미가 없는 말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잖아요? 예전에 들었는데 부처도 석가족을 전란(戰亂)으로부터 구해보려고 두 번이나 시도하다가 마지막에는 포기했다고 하니 이것은 아마도 업보(業報)는 면할 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할 수가 있는 일만 하면 되고 그 일을 알고 시행하는 것이 공부하는 목적이려니 싶어요.”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 묵묵히 말을 몰던 여정이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누님, 그것이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들린 객잔에서 이렇게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겪기도 하니 말이지요. 경험도 공부가 된다는 것을 오늘 너무나 소중한 가르침으로 배웠습니다. 점괘를 묻더라도 사안에 따라서 답을 해야 할 것도 있고 회피해야 할 것이 반드시 있다는 가르침이 가장 컸습니다. 앞으로는 안다고 해서 모두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여행길이 점점 설렘으로 풍요로워지려나 봅니다.”

이렇게 말한 여정이 다시 말을 힘차게 몰았다.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면 그때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또 날이 저물면 객잔을 찾아서 휴식을 취하면서 항주(杭州)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을 달리다가 개울도 보이는 울창한 길가의 풍경을 만나게 되자 우창이 마차에서 졸다가 눈을 뜨고는 여정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느 고을인가?”

그러자 여정이 사람들의 사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면서 말했다.

, 스승님. 여기는 가흥부(嘉興府)로 통하는 입구 부근인가 봅니다. 이제 항주도 절반은 온 것 같습니다. 마을이 맘에 드시거나 고단하시면 오늘은 가흥에서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 시간도 신시(申時)가 넘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도 좋겠군. 알아서 하게.”

우창의 말에 자원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마침 공터도 있고 시원한 나무 그늘도 있으니까, 허리도 펼 겸 쉬어가도록 해요. 저 주막에서 요깃거리라도 있는지 알아보고 주전부리하고 가는 것도 좋아 보이고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여정이 길을 멈추고 쉴 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