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 제43장. 여로(旅路)
6. 점기(占機)의 묘용(妙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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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써 주신 것에 대해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동생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살펴주신 것을 거듭 감사드려요. 제가 며칠은 귀객(貴客)으로 대접하고 싶으니, 여정이 바쁘지 않으시다면 쉬시면서 풍광을 즐기시기를 희망해요.”
진심으로 하는 말을 들으니 급하게 서두를 일도 없는 우창이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호의를 봐서라도 며칠 더 묵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점술에 관심을 보이는데 혹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면 삼진이 소상하게 설명해 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간단한 괘를 통해서 이렇게 깊은 이치를 알아낸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 도사님들을 그냥 보내드리기가 아쉬웠는데 흔쾌히 받아 주시니 감사드려요. 말씀을 듣다가 보니 점심을 드실 시간이네요. 얼른 마련할 테니 말씀 나누고 계세요.”
이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한 주인이 자리를 뜨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여정이 비로소 말미를 얻어서 삼진에게 물었다.
“형님께서 득괘를 하신 것과 풀이하는 조짐에 대해서는 감동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두 자매를 곤괘로 놓은 것은 어떤 이치로 인해서입니까? 아니면 그 순간에 떠오르는 느낌으로 인해서입니까? 만약에 느낌으로 인해서라면 그것을 따라서 배우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지만 혹 정해진 이치가 있어서라고 한다면 그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삼진은 여정이 진지하게 물어 보자 조용히 미소 짓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과연 학구열(學究熱)이 넘치는구나. 그러한 자세야말로 상달(上達)의 시간을 앞당기고 시야가 확장될 것은 틀림없네. 점기의 절반은 직관(直觀)이고 또 절반은 논리(論理)라네 처음에 보이는 것이거나 느껴지는 것으로 괘상을 떠올리게 되지. 그다음에는 그 괘상이 이 사안에 부합하는지 무관한지를 살펴보게 되는데 이것은 이론적인 영역이라고 하겠네. 그러니까 아우가 궁금해서 묻는 것은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두 가지가 모두 작용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군.”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영감(靈感)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은 조짐을 읽을 능력이 되지 못할 테니 이론적인 관점으로 득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팔괘(八卦)의 이치를 익히고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괘상(卦象)이 떠오르더란 말이네. 그리고 그 괘상이 당면한 일과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생각하면 바로 해석하면 되네. 물론 어긋날 경우도 있지. 그러한 때는 버려두고 이론적인 관점으로 괘상을 찾으면 되는 것이라네. 여기에는 선후가 없으니 정황을 접한 다음에 사안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네.”
여정은 그제야 희망이 보인다는 듯이 말했다.
“참으로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십니다. 바로 그 점이 실로 궁금했었거든요. 영감이 없는데 아무리 배워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이것은 괜한 걱정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다시 희망이 샘솟습니다. 하하~!”
여정의 말에 삼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봐. 스승님께서 애초에 뭐라고 하셨나?”
“아, 여인이 물었을 적에 그것은 점괘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서 여정도 무슨 까닭으로 점괘에 나오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여태 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절대로 그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으니까요.”
“그것 보게. 약간의 재주가 있어서 발휘해 봤으나 결과는 어떤가? 애초에 점괘를 보지 않으니만 못한 꼴이 되지 않았느냔 말이네. 그래서 스승님의 깊은 사유를 따라가려면 발 벗고 죽자고 따라가도 미치기 어렵다는 것만 깨달을 따름이잖은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가만히 있었더라면 괜한 생각으로 심사를 어지럽힐 필요도 없지 않았겠느냔 말이지. 이렇게 실수하면서 스승님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되는 것이라네. 하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점심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모두 식탁에 앉아서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즐겼다. 어지간히 먹고 났을 때 삼진이 말했다.
“스승님, 오행원에서 공부하던 것을 조금씩이라도 익히고 싶습니다. 삼진이 생각했던 것이 타당한지, 혹은 이치를 벗어났는지도 여쭙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동의하면서 말했다.
“맞아요. 싸부와 다니는 길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설명을 듣다가 보면 바라보는 관점이 점점 깊어지고 또 넓어지지 않겠어요? 자원은 환영이에요. 호호~!”
자원도 이에 동의하는 것을 보며 우창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영감이 번득이는 삼진의 설명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신시(申時)에 같이 앉아서 토론하기로 했다.
여정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서는 말들도 잘 챙겨주기 위해서 둘러보고 말들에게 먹일 것들을 주방에 부탁해서 넉넉하게 갖다줬다. 말이 기운을 차려서 힘차게 마차를 끌어주면 마부는 그보다 신나는 일도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말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신시(申時)가 되었다.
창문을 열어놓은 넓은 객방으로 능소화의 향이 날아와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줬다. 우창이 나오기도 전에 자원과 삼진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인이 마련해준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적천수에 대한 분석(分析)에 자원은 감탄했잖아요. 참으로 예리한 칼날로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파내는 것이 흡사 포정(庖丁)의 칼춤을 보는 듯이 통쾌했거든요. 호호~!”
“포정이라면 『장자(莊子)』를 말하는가 보군. 어디 그럴 수준이야 어림도 없지. 스승님이라면 또 몰라도 말이네. 하하~!”
“「천간편(天干篇)」에 대한 견해를 들으면서 감탄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어서 지지(地支)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면 되겠죠?”
“그런데, 실은 지지편이라고 할 것도 없지. 천간에 비해서 너무도 간단하게 정리했으니 말이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창이 책을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이 일어나서 잠시 기다렸다가 우창이 자리에 앉자 같이 앉아서는 우창에게도 차를 따라서 앞에 놓아주자 먼저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을 보면서 자원이 말했다.
“싸부, 여행하면서 적천수를 공부할 시간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조금은 섭섭했는데 이렇게 공부할 자리가 마련되고 보니까 너무 좋아요. 이것은 삼진 오라버니의 점괘의 공덕이라고 해도 되겠죠? 호호호~!”
“그렇군. 만사는 일희일비(一喜一悲)라더니 과연 점괘의 안 좋은 점이 있으면 또 반대로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로구나. 하하~!”
우창이 자원의 말에 동조하면서 웃었다. 그 사이에 책을 펼친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지지편(地支篇)」에 대해서 살펴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어디 자원이 읽어보고 풀이해 볼까?”
자원은 우창의 말에 웃음기를 빼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글을 읽으려는데 어느 사이에 주인이 저만치 떨어져 앉아서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귀를 기울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자원이 손짓으로 가까이 와서 앉아도 된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다가와서는 빈자리에 앉아서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고는 다시 자원이 글을 읽는 것을 기다렸다.
양지동차강 속달현재상(陽支動且強 速達顯災祥)
음지정차전 비태매경년(陰支靜且專 否泰每經年)
이렇게 원문을 읽는데 말을 돌보러 갔던 여정도 들어와서는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내용의 의미는 잘 모르더라도 자꾸 듣다가 보면 그것도 공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창이 눈짓으로 잘 들어보라는 듯이 하고는 다시 자원에게 말했다.
“그래, 잘 읽었네. 적천수는 우리가 노산에서 공부할 적에 이미 한 번 살펴봤으니 생소하지는 않을 테니까 생각이 나는 대로 풀이를 해도 되겠지?”
“예, 싸부.”
이렇게 대답한 자원이 의미를 풀이하면서 말했다.
양지(陽支)인 자인진오신술(子寅辰午申戌)은
좋고 나쁜 것이 매우 빠르게 나타나지만
음지(陰支)인 축묘사미유해(丑卯巳未酉亥)는
길흉이 언제나 뒤늦게서야 천천히 드러난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풀이로구나. 잘했어. 하하하~!”
우창이 흡족한 듯이 말하면서 삼진을 바라봤다. 아마도 어느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낼 것인지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삼진이 말했다.
“사매의 풀이는 이 대목의 기장 기본적인 이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러니까 세 가지로 살펴볼 수가 있는데 그 세 가지 중의 하나라는 의미가 되겠구나. 그 셋이란 다음과 같이 나누는 것이라네.”
첫째, 사매가 풀이한 대로 그렇게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고
둘째, 절기의 양둔(陽遁)과 음둔(陰遁)에 따라서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고
셋째, 지장간(支藏干)의 본기(本氣)에 따라서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원은 삼진의 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과연 삼진 오라버니의 견해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요.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주세요~!”
삼진은 자원의 너스레에 싫지 않은 미소를 짓고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선, 첫째로 살펴보는 것이 모든 음양학(陰陽學)에서 보는 견해라네. 주역을 위시하여 풍수지리에서도 모두 이와 같은 관점으로 지지(地支)의 음양을 보고 있으니까 말이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네.”
“맞아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는 양지와 음지에 대해서 풀이해 봤어요.”
“다음으로 살펴보는 것은 기후(氣候)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인데 이것은 특히 구성(九星)과 기문(奇門)의 영역에서 양둔(陽遁)과 음둔(陰遁)을 사용하는 학파(學派)에서는 동지(冬至)부터 하지(夏至)까지를 양지(陽支)라고 하고 하지부터 동지까지를 음지(陰支)라고 하기에 자축인묘진사(子丑寅卯辰巳)를 양지로 보고, 오미신유술해(午未申酉戌亥)를 음지로 보는 견해도 있지.”
삼진의 말에 자원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나, 그렇게도 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역시 널리 보지 않으면 깊은 이해를 하기 어려운 것이 맞네요. 그런데 듣고 보니까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요.”
“맞아, 경도(京圖) 선생이 자신이 생각한 음지와 양지의 기준점을 밝혔더라면 이렇게 다양한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겠으나 그냥 무턱대고 양지와 음지로만 표시했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펴봤을 따름이라네.”
“그러니까 자원이 알고 있는 지장간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 중에 하나라는 말씀이네요?”
“맞아, 여타(餘他)의 학문은 지지의 체(體)를 쓰고 자평(子平)은 용(用)을 쓰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인데 적천수는 누가 봐도 자평의 핵심을 논하는 학문임을 감안하고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절기에 따른 지지(地支)나 지체(支體)에 따른 음양관(陰陽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바로 알아보지 않겠나?”
삼진의 진지한 말을 들으면서 자원이 감탄했다.
“어쩜, 오라버니의 가르침을 들으니 뭔가 안개가 한 겹 벗겨진 느낌이 들어요. 왜 그러한 주장들이 있는지도 생각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그러한 설명을 듣고 보니까 과연 많이 알아야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오라버니의 적천수에 대한 자유로운 발상(發想)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네요. 참으로 통쾌해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도 한마디 거들었다.
“과연 삼진의 사유는 일반적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섰구나. 나도 음둔과 양둔까지 생각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네. 참으로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 나게 느꼈네. 하하~!”
우창까지 이렇게 말하자 삼진은 다소 멋쩍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깨달았던 것이니 또한 스승님의 덕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약간의 참고가 되셨다니 제자도 기쁩니다.”
우창에게 합장하자 우창도 합장으로 받았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삼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인신사해(寅申巳亥)는 길흉(吉凶)이 빠르게 나타난다는 말이고, 자오묘유(子午卯酉)는 길흉이 더디게 나타난다는 말이잖아요? 이것은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비태(否泰)는 천지비(天地否)와 지천태(地天泰)의 괘명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겠죠?”
“그렇지. 길흉의 다른 말로 곧잘 쓰니까 그렇게 봐도 될 것이네.”
“원문에서 특별히 살펴봐야 할 것은 없을까요?”
자원은 혹시라도 신기한 설명이 있을까 싶어서 삼진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삼진이 잠시 생각하고는 자원에게 말했다.
“음, 기본적인 지지의 특성을 음양관(陰陽觀)으로 말을 한 것은 알겠으나 실제로 사주를 대한다면 이러한 논리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을까?”
“예? 그럼 이렇게 풀이하는 말도 실제로는 너무 깊게 생각할 것이 없다는 뜻인가요?”
“생각을 해보면 알 일이지 않은가? 음지(陰支)라도 결과가 빨리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양지(陽支)라도 오히려 결과는 늦게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러한 말만 열심히 외워서 어디에 쓰겠느냔 말이네. 결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구절이 그 자리에 앉아서 지지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봐줄 따름이라네.”
“정말로요?”
자원은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적천수의 원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처음 듣는지라 의아해서 다시 확인하려고 물었다. 그러자 삼진이 또 설명을 이어갔다.
“자평(子平)은 음양(陰陽)인가? 아니면 오행(五行)인가?”
“그야 오행의 핵심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오행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양지니 음지니 하고 논하는 것이야말로 허언(虛言)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생각을 해보는 것이라네. 목화(木火)가 양이고 금수(金水)가 음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인묘(寅卯)나 사오(巳午)는 양이고, 신유(申酉)나 해자(亥子)는 음이라고 해야 할 테니 이렇게 논하기로 든다면 네 번째의 지지음양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것을 익히느라고 허비(虛費)한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겠느냔 말이네.”
자원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과연 조리정연(條理整然)한 삼진의 설명에 대해서 조금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이렇게 명쾌한 설명이 없었다면 언제까지라도 계속해서 ‘양지동차강’을 외우고 다녔을 것이잖아요. 싸부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셨어요?”
이번에는 우창에게 확인하듯이 물었는데 그 어투에는 따지는 듯한 느낌도 묻어났다. 그 말을 듣고서 우창도 미소를 짓고서 자원에게 말했다.
“과연 내가 잘못한 것이 맞지? 하하하~!”
이렇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했다.
“과연 삼진과 이번 여행길에 동행한 이유이기도 하다네. 그리고 그 판단을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명백하고 보여주고 있으니 내심 감탄을 할 따름이지. 나도 삼진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냥 그렇겠거니....’했더란 말이네. 이제 확실하게 구분하고 보니까 과연 단순하고 간단하다고 여겼던 적천수의 핵심에도 도처에 하자(瑕疵)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겠네. 그래서 내심으로 오늘도 삼진의 가르침으로 개안(開眼)을 한다네.”
우창은 명쾌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생각지 못했던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으며,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니 자원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마주 바라보며 웃었다.
“에구~ 정말 싸부는 너무 솔직하셔서 뭐라고 하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잖아요. 알았어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는데 여정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해서 나중을 위해서 들어두면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쪽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을 보면서 자원이 말했다.
“그러면 그건 되었으니 이제 다음 구절도 살펴보겠어요. 우선 원문을 읽어볼게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책을 짚어가면서 내용을 읽었다.
생방파통고의개(生方怕動庫宜開)
패지봉충자세추(敗地逢衝仔細推)
생방(生方)은 충동(衝動)이 두렵고
고지(庫支)는 열려야 마땅하며
패지(敗支)가 충을 만나게 되면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렇게 간단히 풀이한 자원이 삼진에게 물었다.
“이번 대목은 자평법에 어울리게 써 놓은 것으로 보여요. 생지(生支)는 인신사해(寅申巳亥)를 말하고 고지(庫支)는 진술축미(辰戌丑未)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겠고 패지(敗地)는 자오묘유(子午卯酉)를 말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죠.”
“그렇겠지. 내용을 생각해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삼진도 자원에게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말했다.
“자원이 생각하기로는 생방이든 왕방이든 충동을 만나면 당연히 조심해서 잘 살펴야 할 테지만, 유독 ‘고지(庫支)가 열려야 마땅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고지는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는 말인가요?”
“아, 그 말은 ‘봉충개고(逢沖開庫)’라는 의미인데 이치를 논한다면 또한 허언(虛言)일 뿐이라네.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만 충을 만나면 손상(損傷)이 될 텐데 충을 해야 열린다는 말이야말로 정체불명의 낭설(浪說)일 뿐이라네.”
이렇게 말한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삼진의 생각이 타당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고서에는 진술축미는 충을 만나야 개고(開庫)가 되어서 사용하게 된다는 말이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그렇게 생긴 지지(地支)일 따름인데 이것을 외부적인 충격을 줘서 열어야 쓴다는 말은 아마도 고장지(庫藏支)라고 하는 선입견이 작용한 까닭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창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다가 삼진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과연, 이심전심(以心傳心)이로군. 하하하~!”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연하지. 인신(寅申)이 있으면 충(沖)이 아니라 금극목(金剋木)일 따름이고, 사해(巳亥)가 만나더라도 또한 수극화(水剋火)일 따름이니 이러한 것을 충돌했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고서(古書)에는 ‘극(剋)한다’고 하지 않고 ‘충(冲)한다’고 했을까요?”
“그야 나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풍수(風水)의 나경(羅經)에서 언급하던 ‘대충론(對沖論)’을 그대로 끌어다가 대입한 까닭이 아닌가 싶네. 풍수는 원형(圓形)의 나경(羅經)을 보면서 풀이하는 학문인지라 그것을 보면 인(寅)과 신(申)은 항상 마주 보고 있으니까 대충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자평에서야 나선형(螺旋形)인지라 언제든 다시 만날 일이 없는 간지(干支)이므로 충돌(衝突)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오직 생극(生剋)으로만 살피는 것이 옳다고 보는 까닭이기도 하네.”
“혹, 지지(地支)와 천간(天干)은 서로 다른 것이라서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경갑(庚甲)이 천간에 있으면 금극목(金剋木)이 분명하나 인신(寅申)이 나란히 있으면 이것은 극만으로 논하지 못할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가? 이를테면?”
우창이 삼진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되물었다. 그러자 삼진이 생각했던 것을 설명했다.
“온갖 종류의 신살(神殺)이 모두 지지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 혹 천간과 서로 다른 것이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치는 모르겠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잠시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