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 제43장. 여로(旅路)
5. 점하지 말아야 할 이유(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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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묻는 말에 잠시 망설이던 여인은 결심한 듯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예, 말씀을 들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그간 그런대로 먹고 살 만해서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패물(貝物)을 사 두었거든요. 그런데 보름 전쯤에 그것들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고는 황망(慌忙)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래도 의논할 곳이라고는 언니밖에 없어서 의논했더니 우선 관청(官廳)에 도난신고를 하라고 했어요. 그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는데 이게 차일피일(此日彼日)하면서 시간만 흘러가고 도무지 해결될 조짐이 안 보여요. 관리들은 마음이 바쁘지 않은지 다른 일들로 인해서 시간을 낼 수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마음만 답답해서 속을 끓이다가 도사님들이 묵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서 한달음에 달려왔어요. 제 일을 해결해 주시려고 이렇게나 용하신 도사님들이 오셨나 봐요. 사례는 넉넉히 드릴 테니 꼭 좀 찾게 해 주세요. 누가 가져간 것이 분명한데 그게 누구인지를 알아야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이 꽤 지나갔는데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지 가슴을 쓸어내렸고, 주인도 그 정황을 이해한다는 듯이 동생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참 괴이하네요. 여태 살면서 이러한 일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죠? 용하신 도사님들이시니까 반드시 찾아주실 거예요. 누가 훔쳐 갔을까요? 그리고 찾을 수는 있겠지요? 꼭 찾아야만 해요. 그게 동생의 전 재산이니 말이에요.”
우창은 이야기를 듣고 보니 대략 정황이 그려졌다. 관청에서야 사람이라도 살해당하면 긴급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겠지만 도난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만 애가 탈 따름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서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정황을 듣고 보니 참 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도둑은 관청에서 잡아야 하는 것인지라 점괘로 범인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알려준다고 해도 결행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며 정중히 거절하자 두 여인은 애가 타는지 서로 마주 보면서 낙심천만(落心千萬)이었다. 그 모습을 본 자원이 우창에게 말했다.
“그렇긴 한데 스승님께서 점괘를 돌려보고 범인이 드러난다면 주인이 직접 관청에 가서 그 사람을 지목해서 조사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창은 자원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러한 일에 점괘를 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연루(連累)되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무슨 걱정을 하겠나. 점괘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점신이 허락하지 않는단 말이네. 사정은 딱하지만 내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삼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은 잘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생겨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그냥 모른다고 하기도 참 난처합니다. 혹 스승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팔괘(八卦)로 답을 구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삼진도 이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보고서 우창도 더 말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서 말했다.
“삼진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아마도 이 또한 하늘의 조짐인가 싶군. 그렇다면 어디 나는 지켜보도록 하겠네.”
우창이 뒤로 물러나자 삼진이 조심스럽게 득괘했다. 그리고 삼진의 행동에 대해서 가장 관심 깊게 보는 사람은 여정이었다. 여정은 매화역수(梅花易數)의 신기한 장면을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잠시 생각하던 삼진이 두 여인이 앞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중지곤(重地坤)을 떠올렸다.
“스승님, 본괘(本卦)는 곤괘(坤卦)로 삼겠습니다. 자매간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으로 인해서 유추한 괘입니다.”
“오~ 그럴싸하군.”
우창이 득괘에 대해서 동의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설명을 계속했다.
“곤괘는 상토(上土)에 하토(下土)이니 모두가 땅과 연관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패물(佩物)은 땅에 묻혀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울타리 안의 땅인지 울타리 밖의 땅인지를 판단하면 되겠습니다.”
삼진의 말에 우창도 내심 감탄했다. 혹시라도 어떤 사람을 거론하게 된다면 괜한 일로 분란(紛亂)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묻혀있는 곳에 가서 파내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삼진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동효(動爻)는 내괘(內卦)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곳은 집안입니다. 지금의 시간은 사시(巳時)가 되는데 이것은 밝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괘(下卦)는 리괘(離卦)가 됩니다. 리괘는.....”
삼진이 청산유수(靑山流水)로 설명하다가 갑자기 입을 닫았다. 다른 사람은 삼진이 왜 말을 하다가 말았는지 의아했으나 우창은 그 의미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었다. 그래도 삼진의 설명을 듣고 싶어서 조용히 기다렸다. 우창의 표정을 살피던 삼진이 여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쭙겠습니다. 둘째 따님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삼진이 갑자기 이렇게 묻자, 여인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왜요? 그건 무슨 뜻이죠? 혹시 둘째 딸이 저지른 일인가요?”
“아직은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같이 집에서 살고 있다면 혐의를 갖게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
“예, 아직 출가 전이어서 집에 있어요. 그렇지만 그 아이는 그런 못된 짓을 해서 어미를 걱정시킬 정도로 어리석은 아이는 아니에요.”
여인은 삼진의 말을 듣고는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자 삼진이 다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옆에서 지켜보아 온 어머니의 판단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어서였다. 그러나 점괘의 조짐은 점점 의혹이 딸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스승님, 하괘(下卦)가 리괘(離卦)로 변하게 되니 지화명이(地火明夷)가 되었습니다. 명이(明夷)는 원래 밝았는데 어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밝음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반짝이던 패물이 빛을 잃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서 처음에는 부정하던 여인이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삼진도 잠시 기다렸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생각하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모두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이건 그냥 혹시나 하는 생각인데 딸애가 요즘 사귀는 사람이 생긴 것으로 보여요. 자주 외출하기에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혹 이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을까요?”
여인의 말을 듣고서 삼진이 다시 점괘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남자가 개입하게 되면 점괘는 다시 변화하게 된다. 밖의 남자이니 이번에는 상괘(上卦)의 변화를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 하괘(下卦)의 이효(二爻)에게 남자가 밖에 생겼으니 상괘(上卦)의 오효(五爻)가 변해서 감괘(坎卦)가 되었습니다. 하괘(下卦)는 리괘(離卦)로 변했으니 이렇게 되면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되었습니다.”
삼진의 말에 우창도 들은 바가 있어서 말했다.
“아니, 수화기제라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 아닌가? 일이 잘 풀린다는 의미로 보면 되는 것이지?”
우창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깊은 생각이 잠긴 삼진이 점괘를 적은 종이를 뒤집어버렸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을 보고 의아한 여인이 삼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삼진이 우창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스승님, 역시 제자는 우둔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 득괘를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점은 보지 않은 것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삼진이 여인에게 간단히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삼진의 말에 이해되지 않은 사람은 우창이었다. 수화기제는 누가 들어도 만사형통의 괘인데 왜 갑자기 이러한 말을 하는지 도무지 납득(納得)되지 않았는데 뭔가 말하기 곤란한 조짐을 봤을 것이라는 짐작은 들었으나 그것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설명하라고 다그칠 수도 없어서 가만히 엎어진 점괘의 종이만 바라볼 뿐이었다. 비록 종이는 엎어졌으나 먹물이 번져서 뒤집어놔도 점괘는 그대로 보였다. 기제괘(旣濟卦)는 뒤집어봐도 또한 기제였다.
“아~!”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던 우창이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그러한 표정을 본 삼진이 긴장하는 표정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우창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를 확인해 봐야 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고는 삼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기제(旣濟)가 기제가 아니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스승님.”
이렇게 대답하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우창은 비로소 삼진이 점괘를 덮은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여정과 자원은 안개 속과 같은 두 사람의 대화에 궁금증만 치솟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덮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인이 그대로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이 애가 바짝 탔는지 삼진에게 애걸하듯이 말했다.
“잃어버린 패물을 찾을 방법을 분명히 알고 계신 거지요? 말하지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이 여인의 청을 뿌리치지 마시고 패물을 찾아주세요. 무슨 말씀이든 다 들을 것이고, 어떤 보답이라도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삼진은 여인의 표정을 바로 보지 못했다. 그 정경을 살펴보던 자원이 점괘의 내용을 속속들이 이해하지는 못해도 분위기는 대략 이해가 될 듯해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주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점신께도 전달이 되었나 봐요. 그런데 만약에 잃어버린 패물을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조짐이 같이 보였다는 것이 문제네요. 지금 삼진 도사께서 말을 더하지 못하신 것은 이러한 의미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찾겠다고 한다면 그보다 수십 배의 댓가를 치뤄야 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찾지 말고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신 거죠. 그래도 찾아야만 하겠어요?”
자원이 ‘그래도 찾아야만 하겠어요?’라는 말에 더욱 힘을 줘서 전달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으면 아마도 더욱 불길한 조짐이 있겠다는 삼진의 심경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했기 때문이었는데 여인은 여전히 집요했다.
“아니에요. 그것을 잃으면 저는 모든 것을 다 잃는 것과 같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라도 모두 감당할 수가 있으니까 부디 가르침을 베풀어 주세요. 제발~!”
“으...음....”
여인의 애걸에 가까운 말을 들으면서 삼진이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우창이 처음에 말한 대로 ‘점괘에서 볼 수가 없다’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줄 곳 후회하는 마음이 앞섰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조짐이고,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조짐을 해석해 주기로 했다. 이대로 물러날 여인으로 보이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어쩌면 모든 정황을 뚫어보는 점괘가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여인에게 직접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워서 우창에게 빗대서 말했다.
“스승님, 재물이 중요할까요? 자식이 중요할까요?”
삼진의 말에 우창도 맞장구를 치면서 생각을 말했다.
“그야 더 말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자식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재물 따위가 어찌 자식보다 중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에 이 점괘의 조짐대로라면 재물은 찾겠지만 소중한 자녀를 잃게 될 수도 있다면 이것은 권해야 할까요? 아니면 말리는 것이 옳을까요?”
“참으로 답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알겠지 않은가? 당연히 재물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식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 하지 않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이 조짐은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발동한다면 재물을 잃은 아쉬움보다 더 큰 아픔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여인이 막무가내로 찾아달라고 하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아무래도 그다음의 일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그제야 들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언니의 표정을 한 번 살펴보고는 말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아마도 그것을 찾게 되면 딸에게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로군요. 당연히 자식보다 중요한 재물은 없어요. 그렇게 판단된다면 당연히 재물을 포기해야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마음에 남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라도 듣고 싶습니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귀찮으시겠으나 그 경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어요? 부탁합니다.”
삼진은 그제야 여인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미련은 미련을 부르고 그 미련은 또 아쉬움을 남기게 되면 결국은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조차도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는데 더 이상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는 재물이 생기면 마음대로 쓰시고 또 남는 것이 있으면 주변에 적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여인도 처음에 강경하던 표정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서는 말했다.
“잘 알았어요. 과연 심려(深慮)가 제 좁은 소견으로는 미치지 못할 경지라는 것을 알겠어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참으로 죄송해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미련을 갖는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이 되겠다는 것으로 잘 알아들었어요. 정말로 애초에 제 물건이 아니었다는 생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조금 전까지 안달하던 여인은 순식간에 마음을 정했다는 듯이 조용한 표정이 되어서는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어서 탁자에 놓고는 돌아갔다. 주인도 함께 나가서 배웅하고는 얼른 돌아와서 말했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궁금하니 어떡해요? 저도 그 연유를 알면 안 될까요? 물론 동생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을 맹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너무나 신기한 조짐을 듣고 보니까 저도 그렇게나 신기한 진리를 공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네요. 이것은 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호호호~!”
주인이 다소 과장된 웃음을 웃으며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보며 삼진은 생각했다. 아마도 여정과 자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린 삼진이 주인을 향해서 말했다.
“그렇게나 궁금하시다니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우선 동효(動爻)를 내괘(內卦)로 삼아서 화(火)가 되었을 적에는 쉽게 찾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화명이(地火明夷)의 조짐은 잃어버린 패물이 땅속에 고이 잠자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남자가 생기는 바람에 점괘에 폭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 있던 우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이야기 중에 미안하네만, 남자가 생겼는데 왜 감괘(坎卦)가 되었다는 것인가? 그 연유가 궁금하군.”
우창이 이렇게 묻자, 자원도 동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오라버니, 제 마음을 싸부가 그대로 전해 주셨네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요.”
우창의 물음에 자원까지 가세하자 삼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실 만도 하겠습니다. 하괘가 화(火)가 된 이상 그 딸이 만나는 남자는 밖에 있으니 외괘(外卦)가 될 것은 당연한데 외괘를 수(水)로 삼은 것은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의미와 함께 여인은 남자를 관살(官殺)로 삼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삼진의 설명에 우창이 진즉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러니까 말이네. 수화기제인데 어떻게 그런 해석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치를 알지 못해서 답답했네. 하하~!”
“겉으로 보이는 것은 수화기제가 맞습니다. 만약에 두 사람의 궁합을 물었다고 하면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의 내용은 잃어버린 재물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제는 해석할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삼진의 말에 우창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아뜩함이 느껴졌다. 과연 삼진의 주역에 대한 통찰력은 우창보다 깊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네. 어떤 방법으로 풀이하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간단합니다. 흉사(凶事)에는 흉한 조짐으로 대입하고, 길사(吉事)에는 길한 조짐으로 대입할 따름이지요.”
“그렇다면.......”
“맞습니다. 여기에서는 수극화(水剋火)의 조짐으로 대입하는 것이 올바른 이치라고 판단했습니다.”
우창은 삼진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의혹이 말끔히 사라졌다.
“오호~! 그런 뜻이 있었구나.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걸. 그러니까 얌전하고 예쁜 딸이 남자에게 정신이 팔리면서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는 어머니의 패물에 손을 댔고 그것을 마당의 어딘가에 묻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마도 마당의 남쪽 담장 아래에 묻었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조용해지고 나면 남자에게 전해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그러한 짓을 한 적이 없어서 딸의 마음도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로 인해서 얼굴도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이러한 것까지도 모두 느끼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접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주인이 짐작된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평소에는 밝고 솔직한 조카였는데 근래에는 무슨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말도 줄어들고 자주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어디 아픈가보다 싶었는데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런데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신기하게도 아귀가 딱딱 맞아요.”
주인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면서 감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원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만약에 패물을 찾아내고 딸의 소행임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죠? 그것만으로는 그렇게까지 입을 다물어야 할 이유가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요.”
자원의 물음을 듣고서 우창이 짐작한 것이 이치에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삼진이 대답하기 전에 얼른 말을 꺼냈다.
“잠깐, 그 연유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풀이해 보겠네. 말이 된다면 좋고 안 되더라도 먼저 말을 해보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 테니 밀이네.”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뒤집어 놨던 종이를 다시 되돌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기제괘(旣濟卦)를 뒤집으면 미제괘(未濟卦)가 되는데 이렇게 보는 것을 도전괘(倒顚卦)라고 한다던가?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네만, 숨겨져 있던 딸의 소행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괘가 뒤바뀌게 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네. 그렇게 되면 이것은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되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며, 이것으로 인해서 여러 사람의 번뇌만 일어날 조짐이라고 생각했는데 타당한 추론인가?”
“스승님께서도 이미 활용(活用)의 단계에서 사유하고 계십니다. 더구나 결과까지도 예상하셨는데 제자도 그와 같이 풀이했습니다.”
“그러니까 패물도 찾지 못하고 딸은 어머니를 볼 낯이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혹시라도 나쁜 생각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악(最惡)의 결과라고 봤을 적에 오히려 모르고 있는 것이 더 낫겠다고 본 것인데 삼진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참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할밖에.”
우창과 삼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인이 말했다.
“어머나, 그렇게나 심오한 이야기가 그 안에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어요. 여태까지 뭘 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동생에게는 평생토록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 생겼어요. 조카의 심성을 봤을 적에 자기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목숨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한 조짐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에 감탄했어요. 보통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드날리기 위해서라도 참지 못하고 자랑하듯이 말할 텐데 말이에요.”
주인은 이렇게 말하는데 감격이 밀려오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