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3-④ 먹바우와 하선대
포항3-④ 먹바우와 하선대(下仙臺)
(여행일▶2024년 11월 5일)
흥환리 해변에서 나와 마산항 방파제에서 다시 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 거리는 마을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가는 것이 전부다.
0.5km의 거리에 1분이 소요된다. 차에서 내라면서 연지님에게는 선바우로 이동해서 차를 대고 해변 데크로 마주 와보라고 했다. 여기는 경치도 상당히 볼만할 것으로 봐서다. 그래서 차는 떠나고 홀로 남아서 먹바우로 향했다.
먹바우(검둥바위)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정유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부부로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조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한 바위가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
를 보고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그래서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그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괴이히 여겨 가서 찾다가, 남편의 벗어놓은 신이 있음을
보고 또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또한 그 전처럼 세오를 싣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놀라서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이 없어지니, 일관이 말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있엇던 것이 지금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런괴변
이 일어났습니다」 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을 찾았다. 연오는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요」 이에 그 바단을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이뢰었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냈더니 그런 후에 해와 달이 그 전과 같아
졌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
(貴妃庫)라 하며,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
라 했다. 이 이야기는 「산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신화이다. 이 검둥바위
가 연오랑 세오녀를 싣고 간 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돌 배라는 말이로구나. 뭐 전설이니까 그렇겠거니 하면 되지만 이 바위를 배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지 않은가 싶고, 삼국유사에 기록까지 한 것으로 봐서 이 바위는 아니라도 뭔가 그럴싸 한 연유는 있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다만 연오(延烏)와 세오(細烏)의 부부 설화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위를 살펴보니 의외로 재미있게 생겨서 그것이 흥미를 돋군다.
퇴적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포항에서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서다. 형태로 봐서 사암(沙巖)과 역암(礫巖)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림이 예쁘다. 그리고 이 주변은 원래 이러한 지질로 가득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보면 모두 풍화에 부서지고 이렇게 남아 시스텍이 되어서는 설화도 붙고 상상력도 붙어서 또 이야기의 한 쪽을 장식하고 있구나.
신생대 신진기~고진기
제3기 장기층군 눌태리 조면암질 응회암
흥환리 해안의 설명과 같은 지질이로구나. 어딘가 닮은 듯 안 닮은 풍경이기도 하다.
응회암도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쌓이면 퇴적암이 되는 것은 당연하므로 반드시 물에 의해서만 퇴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알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세로로 바위가 쪼개진 것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단층이라고 하기에는 어긋나는 층이 안 보여서 애매하고, 그냥 절리라고 하면 되는 것인지 그것도 궁금하구나. 그래서 지광 선생님 블로그에 질문을 드려 봤더니 절리라고 가르쳐 주시는구나. 그래서 확실하게 쓸 수가 있어서 또 다행이다.
절리가 바닥에까지 이어져 있구나. 아마도 이로 인해서 두 쪽으로 갈라져서 해변에 나뒹굴게 될 날도 오겠거니 싶다.
아무래도 응회암 층리라서 경계선이 뚜렷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로 옆에 건물이 있어서 사진을 찍기에는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뭐 어쩔 수가 없지.
그런데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드러난 노두의 모양도 재미있게 생겨서 눈길을 끈다.
분위기가 앞쪽의 먹바우와는 또 다르다. 역의 크기가 엄청 커서 분출한 힘이 가늠되기도 한다.
위쪽은 먹바우와 비슷한데 아래쪽이 다르구나. 아마도 여러 차례 분출했을 테니까 처음에는 힘이 엄청나서 큰 돌들을 날랐고, 나중에는 힘이 떨어져서 작은 자갈들을 날라다 쌓았나 싶기도 하다.
제대로 각력응회암이다. 그리고 역들도 암력을 받아서인지 많이 부서졌구나.
대략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사진이 필요하고, 그 바위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행인이 협조를 해 주면 고마운데 딱 그 순간에 지나가는 두 사람의 협찬이 고마울 따름이다.
분출한 화산의 힘이 느껴지는 풍경이 좋다.
엇? 이건 일종의 해안단구(海岸段丘)? 이렇게 쌓여있다가 융기되어서 위로 올라가면 단구가 되겠구나. 위에 쌓여 있는 축대가 어떻게든 개입을 했겠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건물을 지탱하는 축대도 위험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 보완공사를 해야 할 듯.....
이렇게 지나가는 길에 남의 집 걱정도 해 가면서. ㅎㅎ
몇 걸음 더 옮기면 하선대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 옆에도 노두가 드러나 있어서 살펴본다.
돌개구멍처럼 파도가 깎아 먹은 해식와가 보인다. 그 앞의 맨질맨질한 자갈들이 예쁘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바위를 연마시키겠지.
거센 파도와 자갈이 연합해서 암벽을 갈아내고 있다.
아니, 바다 한 가운데가 하선대(下仙臺)였다니. 한자는 못 찾았지만 선녀들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것으로 봐서 대략 이렇게 쓰면 되지 싶어서 뚜드려 맞춰 봤다. ㅋㅋ
개요
동해면 입암리와 마산리 경계지점인 황옥포(黃玉浦), 속칭 한미끼에 있는 작은 바위에 선녀가 내려와서 놀었다 하여 하선대 또는 하잇돌이라고도 한다. 옛날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이곳에 초청하여 춤과 노래를 즐기곤 하였는데 용왕은 그 선녀들 중에서 얼굴이 빼어나고 마음씨 착한 한 선녀에게 마음이 끌리어 왕비로 삼고 싶었으나 옥황상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왕은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다를 고요하게 하고 태풍을 없애는 등 인간을 위하는 일을 하자 황제가 감복하여 선녀와의 혼인을 허락하게 되었다고 하며 용왕과 선녀는 자주 이곳으로 내려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영일군사)
[네이버 지식백과] 하선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모진 파도에도 잘 견디고 있구나. 어느 달 밝고 물 잔잔한 밤에 선녀들이 놀러 오는 풍경도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