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질공원: 몰운대 동편

작성일
2023-12-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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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질공원(釜山地質公園): 몰운대(沒雲臺) 동편(東便) 

 

(2023년 11월 26일 탐방)

 


 

몰운대에는 몰운대가 없나? 싶었다. 경포대에는 경포대(鏡浦臺)가 있고, 의상대에는 의상대(義湘臺)가 있는데 몰운대에는 왜 몰운대가 없을까? 그래서 다시 지도를 잘 살펴본 결과로 몰운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몰운대는 동쪽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확인하고서야 몰운대 서편에서 놀다가 동행들은 주차장으로 가라고 해 놓고 혼자서 언덕을 올랐다. 기왕 몰운대를 둘러보러 왔으니까 제대로 둘러보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돌아서 가기로 했던 것이다.

 


 

몰운대 전망대에서 난간이 몇 개 떨어져 나간 틈을 통해서 언덕을 올라갔는데 정상적인 길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나름대로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봐도 될 정도로 바닥은 닳아서 반들반들하구나.

 


 

미끄러지지 말라고 괭이질을 해 놓은 것은 고맙구나. 오솔길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성의를 보인 것에 대해서는 감사해야 하겠다. 이것도 막상 괭이질을 하려면 단단하게 굳은 땅이라서 정성이 없이는 쉽지 않은 것일 테니까.

 


 

산책길이 호젓하니 꽤 괜찮구나. 

 


 

아이들이 숲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놀이에 빠져있는 모습도 보면서 스쳐 지나간다.

 


 

큰 길로 나오니까 앞으로 누각이 하나 나타났다. 안내문도 제대로 잘 되어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뭐라고 써 놓았는지.....

 


 

다대진 동헌(多大鎭 東軒)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다대진 동헌은 조선 후기 경상좌수영 산하 다대진(多大鎭)의 관아 건물로, 수군을 다스리던 무관직인 첨사가 업무를 보던 곳이다. 다대진성(多大鎭城) 안에 있던 관아 건물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다. 용맹하고 굳건하다느 뜻으로, 범에 비유하여 수호각(睡虎閣)이라고도 불렀다.

동헌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순조 25년(1825)에 수리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다대진이 없어지면서 방치되다가, 1904년 다대포사립실용학교 (현 다대초등학교)의 건물로 사용되었고, 1970년 다대초등학교 운동장 공사 때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건물 형태는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지금은 칸의 구분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왼쪽 1칸과 오른쪽 1칸은 동돌방으로, 가운데 3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으로 추정된다.

1972년 6월 26일 '다대포 객사'라는 이름으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뒤 객사가 아닌 동헌이라는 주장이 대두하였고, 2020년 7월 29일 부산시 문화재 위원회 심의에서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수호각이라고 했나? 가운데 글자는 도무지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는 걸. 아무리 봐도 호(虎)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왜 이 산날맹이에 동헌인가 싶었더니 초등학교를 만들면서 이곳으로 옮겼다는 내용을 보니까 그런가보다 싶다. 경치 좋은 곳에 누각이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름이 '호랑이가 잠자고 있는 누각'이라는 것은 좀 어색하다. 기왕 몰운대에 있으니 이름을 몰운대라고 했으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옮겼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그 현판을 사용해야 할 의미가 없다면 장소에 어울리게 이름도 바꿔 놓고 그 내역을 이렇게 적어 놓으면 될 일인데 말이지.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가 그런 생각도 해봤다는 걸로. 

 


 

자갈마당이 있는 방향이 몰운대가 있다고 표시한 방향이다. 중국식으로 난석장(卵石場)이라고 표기한 것도 재미있다. 계란돌이 모여있는 마당이라는 의미이니까 바로 이해가 되지만 자갈마당이 정겹기는 하다. 300m만 가면 되는구나. 

 


 

내리막 길로 이어진다. 올라가는 길은 돌아올 때를 생각해서 미소를 짓지만 내리막 길은 돌아올 적에 힘들 것을 생각해서 미소가 사라지기는 한다. 그래도 까이꺼 얼마 되지 않으니까 일단 가보기는 해야지. 

 


 

아래쪽에서 쇠를 자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을 내려다 보니 철계단을 수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손상이 된 길을 보수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아래는 가볼 수가 없겠구나. 봐하니 여기가 자갈마당이겠네.

 


 

한여름의 땡볕이 아니라서 작업하기에는 딱 좋은 계절이지 싶다. 어쩌면 이 계절이 되기를 기다려서 작업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자갈마당의 오른쪽 절벽은 특별할 것이 없는 안산암질(安山巖質) 화산암(火山巖)으로 보면 되지 싶다. 이제 노두 좀 보고 다녔다고 나름 말이 되던 말든 얼렁뚱땅 이름짓기는 잘 한다. 서쪽의 지질이 그러하므로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서 이렇게 뭉퉁거려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봐서다. ㅎㅎ

 


 

계단을 공사하느라고 비닐끈으로 통로를 차단시켜 놓지 않았더라면 다가가서 좀 자세히 살펴볼 의향도 있었으나 내려오지 말라고 금줄을 띄워 놨으니 작업에 방해할 수도 없어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세히 봐도 특별히 매력을 느낄 정도로 볼만한 그림이 아니어서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접근할 길도 없어서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다. 저 끝은 서편의 끝에서 바라본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특별히 볼만 한 그림이 있었다면 뭔가 하나쯤 안내하는 판이라도 세워 놓았을 텐데 그건 아닌 모양이고, 입구의 몰운대 안내판에서도 동쪽은 아예 설명에서 잘려나간 것으로 봐서 버린 곳으로 봐도 되지 싶기는 하다. 단지 몰운대가 여기에 있다고 되어 있어서 찾아왔을 따름이다.

 


 

거의 끝이 보이는데 누각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가보면 알겠지......

 


 

경고가 그냥 살아있는 것으로 봐서 착각을 했나 싶기도 하다.

 


 

이것은 서편의 입구에서도 봤던 안내판이다. 벌금이 3천만원이하란다. 무시무시하구나. 조심해야지. 사진을 찍어도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워놓은 안내판을 철거하지 않는 이유는 또 뭔지 모를 일이다. 일단 해롭지 않으니까 그냥 둬보는 걸까? 찾아온 사람들이 긴장하라는 의미라도 두고 싶었을까?

 


 

해안 경비를 담당한 군인들이 밤에 보초를 서는 곳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것도 5공 때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관리가 특별히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괜히 카메라 든 손이 쫄리게 말이지. ㅋㅋ 저 앞에 보이는 섬은 쥐섬이겠구나. 

 


 

 몰운대에 몰운대는 없었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구나.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속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 수가 없으니 바다를 보면서 한숨만 쉴 따름이다. 비록 몰운대는 없더라도 풍경만 좋았다면 모두가 용서 되었을 텐데 다른 지도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어졌다. 어딘가에게 소심한 항의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ㅋㅋ

 

 


구글지도에서는 몰운대의 위치가 다대진 동헌쯤 되는 위치에 표시해 놓았고 여기는 몰운대전망대라고 표시했구나. 정자가 있다고는 안 했으니까 그래도 좀 나은 것으로 봐도 되겠다. 물운대와 몰운대전망대는 좀 다르니까 말이지. 

  


 

 네이버지도는 아예 전망대라고도 되지 않고 정운공순의비라고 표시가 되어 있고, 몰운대의 위치는 또 다른 곳이다. 지도를 비교해 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보면서 지질도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탓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몰운대가 있다고 표시한 것은 카카오지도였구나. 속았거나 말거나 현실은 이렇게 전망대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한 위치만 확인했다.

 


 

저 뒤로 보이는 실루엣은 거제도가 아닐까 싶은데 거제도가 이렇게 가까이에 보이는 거리인가 싶어서 거리를 확인해 본다.

 

 


 

거제도까지 26km구나. 그렇다면 저 정도의 실루엣이 거제도인 것으로 봐도 되겠다. 날이 맑았더라면 대마도까지도 봤을 텐데 오늘의 해상 풍경으로 그 정도는 기대하기 어려웠지 싶다. 대마도는 56km가 떨어졌으니 거제도의 두 배정도 멀리 있구나. 기왕 여기에 와서 허탈해 해봐야 아무런 이익도 없으니 이렇게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살피면서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발동한다. ㅎㅎ

 


 

아쉬움을 바람에 흩어버리고 왼쪽을 바라보니 오호! 여기는 멋진 풍경이 나오는 걸. 비록 다가갈 길은 없지만 망원렌즈의 신세를 지는 것으로 최대한 풍경을 감상한다면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 크게 억울하지는 않겠다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퇴적층이 드러난 모습이 몰운대 서편에서 본 것과 비슷한 풍경을 보여준다. 섬의 이름이.....

 

 

 

모자섬? 이름도 참 단순하구나. 머리에 쓰는 모자(帽子)인지, 엄마와 아들의 모자(母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모자섬인데 그렇게 이름을 알고서 바라보니까 중절모가 물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 맞다! 중국어지도를 봐야지. 이런 때에 쓰려고 찾아 놓은 것인데 말이지. ㅎㅎ

 


 

재미있구나. 모도(帽島)란다. 모자섬이 맞네. 엄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어. 모자 모(帽)가 확실하니까 말이지. 

 


 

하부의 퇴적층에는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고 서서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즐거운 희망으로 한 때를 보내고 있겠군. 그 마음은 알 수가 없겠다. 낚싯대를 잡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아, 아득한 옛날에 기족들과 제주도에 놀러 갔을 적에 체험을 한답시고 뱃전에서 미끼를 꿰어주는 줄을 잡고 자리돔을 몇 마리 잡아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도시어부를 보면서 손맛 어쩌고 하는 의미는 알 수가 없지. 그렇다고 해서 또 그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어서 그냥 바위놀이의 모델로 활용하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섬의 왼쪽에는 안내판인지 경고문인지 하나 세워져 있고 위로 오르는 계단도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어? 저 뒤로 보이는 섬은 안면이 있는데? 태종대 앞에 가면 주전자섬이라고 부르는 섬이 하나 있는데 언뜻 봐서 주전자섬으로 보여서 주전자섬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맞는지도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모자섬의 왼쪽 뒤쪽으로 주전자섬이 위치한다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리하면 된다. 

  

 

직선을 그어보니까 딱 맞아 떨어진다. 이렇게 놀기로 들면 지도놀이도 지질놀이 만큼이나 재미있다. 그래서 카카오에 네이버에 구글에 감사할 따름이다. 부산의 지질놀이에 푹 빠져든다. 이런 때는 작은 보트라도 하나 샀으면 싶기도 하다. 그것을 타고 바다를 누비면서 보고 싶은 것은 다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있기는 하다. 더구나 섬이 많은 우리나라이니 얼마나 좋겠느냔 말이지. 이것도 좀 알아봐야 하겠구나. ㅋㅋ 

 


 

11km쯤 떨어진 주전자섬도 봤으니 얼마간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다고 해도 되겠다. 

 

 

다시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려 본다. 안내판은 이미 풍화로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인 모양이다. 너덜너덜한 것으로 보여서 그렇게 짐작해 볼 따름이다. 

 

 

암석이 이어지는 끝에도 멋진 노두가 드러나 있어서 재미있다. 

 

 

이건 작은 모자섬(小帽島)라고 해도 되겠다. 여인의 모자라고 할까? 다만 풀이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모자여(帽子礖)라고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조사(釣士)들은 여기에 뭔가 이름을 붙여뒀지 싶다. 그래서 그들끼리 통하는 용어로 사용하지 싶은데 뭐라고 붙였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여기에도 서너 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자신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이 있어서 좋은 점은 암석노두의 규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상당히 큰 규모의 바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인연을 생각한다. 우연처럼 저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지만 오늘 모처럼 일정을 세워서 낚시배를 타고 저 자리에 내려서 열심히 자신의 취미를 즐기고 있는 것일 테니. 엉? 뭐라카노. 몰운대전망대에서 대충 놀았으면 또 걸음을 돌려야지.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났지만 여기도 통행금지의 금줄이 처져있어서 나뭇가지 사이로 최대한 바라보려고 기웃기웃.....

 


 

특별히 볼만 한 것은 없는 평범한 해안이다. 그래도 맞은 편의 암벽은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나와라 가제트팔! 아니, 망원렌즈~!!

 


 

여기도 바다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구석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나. 바람막이로 튀어나온 바위는 여전히 안산암질이로구나. 같은 암질로 봐도 되지 싶다.

 


 

 

 


 

 

 


 

 

 


 

길이 없으니 줄이 길을 대신하는 모양이다. 끈을 보면 떠오르는 게슈탈트. ㅋㅋㅋ 그러나 이것은 게슈탈트가 아니다. 이쪽 끝에 뭔가 매달려 있어야 한단 말이지. 퇴적층이 있어서 파식대(波蝕臺)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오르내리는 길인 모양이다.

 


 

 

 


 

여기에서도 한 가닥의 밧줄이 드리워져 있구나.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있는 희망의 한 가닥이겠군.

 


 

그래 바다와 암벽 사이에 평평한 파식대가 펼쳐져 있어서 낚시꾼들을 불러 모으는 모양이다.

 


 

 

 


 

 

 


 

여기는 가족이 나들이를 한 것인가 보다. 오붓하니 즐거운 시간을 누리는구나.

 


 

저 멋진 노두가 있는 곳은 화손대(花孫臺)의 아래인가 싶다. 

 


 

지도에서 위치를 보니까 화손대가 맞다. 이것은 처음 보는 이름이구나. 뭐지? 이름의 의미는 뭔가 숨은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풀이를 한 곳이 보이지 않으니 나중에라도 발견하면 채워넣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화손대까지는 가 보지 않을 요량이다. 동행들이 기다린다는 것이 퍼뜩 떠올랐다. '배가 고픈데 어느 구석을 누비고 다니느라고 아직도 나타나지 않느냐'는 말은 하지 않지만 내심의 독백이 귀에 들리는 듯해서 걸음이 바빠진다. ㅎㅎ

 


 

 

 


 

 

 


 

 

 


 

 

 


 

여유롭게 걸으면 멋진 길이구먼시나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걷기에는 긴~ 길이로군. ㅋㅋ

 


 

아무리 바빠도 이건 그냥 지니칠 수가 없지. 문자충(文字蟲)의 습관이다. 

 


 

沒雲臺(몰운대)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常見仙人駕鶴來(상견선인가학래)

 

바람과 파도 호탕하게 천만리

흰 구름 하늘을 반쯤 가린 외로운 누대

동쪽 신선 사는 곳에 붉은 수레바퀴 아침마다 떠오르고

신선이 학을 타고 오는 것도 늘상 본다네

 

대충 마음이 이끄는 대로 풀이를 해 본다. 구완() 이춘원(李春元:1571~1634)이 쓴 시구나. 몰고대(沒孤臺)는 몰운대를 잘 못 쓴 것인가 싶기도 하다만 작자가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여기에 외로운 의미가 들어있을 필요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인데 또 생각해 보면 몰운대라고 쓰면 너무 멋이 없어서 한 글자를 살짝 비틀어서 쓰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가학(駕鶴)은 어디에서 봤는데...... 오호! 청송 주왕굴 앞에서 봤지. 가학루(駕鶴樓)라고 쓴 누각 현판이었네. 그런데 그곳에서 쓴 가학은 태자(太子)를 의미한다고 풀이했는데 여기의 가학도 태자로 풀이가 가능한가? 뜻을 살펴봐서는 전혀 그런 뜻으로는 풀이가 불가능한데? 그냥 신선이 학의 목에 끈을 매어서 잡고서 말처럼 타고 다닌다는 의미로 봐야 할 모양이니까 또 다른 용도로도 해석이 가능한 모양이다. 오히려 이것이 원형이고 태자는 변형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나.

 

이춘원()[1571~1634]은 20세 때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1596년(선조 2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 부정자에 임명되고, 이듬해 광양 현감으로 나가 남원을 포위한 왜군과 싸웠다. 1607년(선조 40) 7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서는 부산 곳곳을 돌면서 백성을 위무하고, 해운대, 태종대, 몰운대, 겸호대, 동래 온정, 정과정 등 동래 지역의 여러 명승과 고적을 둘러보았다. 이때 본 것들을 시로 써서 문풍()을 일으켰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613년(광해군 5) 좌승지일 때 인목 대비()[영창 대군()의 어머니]를 폐해야 한다는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이듬해 승지로 복관되고, 병조 참의에 이어 가선대부()로 품계가 올랐다. 1617년(광해군 9)에는 충청도 관찰사로서 권신들이 인목 대비의 존호를 폐하고 대비에 대한 의식을 없애려고 하자 또 다시 극력으로 반대하여 파직당했다.

1620년(광해군 12) 지돈령부사로 명나라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안주에 파견되었다가 갑자기 중풍에 걸려 벼슬을 내놓고 돌아왔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인조()가 구신()들을 많이 등용하면서 한직()을 주었으나 사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춘원 [李春元]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일생의 여정을 강직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동래부사를 할 적에 몰운대를 찾아서 이런 시를 남겼음직 하구나. 나이 서른 여섯에 동래부사를 했으니 일찌감치 출세의 길을 달린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화손대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보니 1200m나 되는구나. 꽤 멀군. 그것은 다음기회를 보는 것으로 하고 오늘의 몰운대 탐사는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고 마무리를 한다. 이제 점심을 먹고서 다음 일정을 생각해야 하겠구나. 동행들이 기다리다가 지쳤지 싶다. ㅋㅋ  

 


 

바쁘게 돌아보느라고 또 다른 안내판은 나오면서 보게 되었구나. 여기에는 동편에도 볼 것이 많이 있다고 되어 있었네. 어차피 내려가지 못했으니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보니까 화손대 주변의 지질을 멀리서나마 훑어본 것은 잘 한 것으로 봐도 되겠다. ㅎㅎ

 


 

특별한 것은 없어서 크게 억울해 하지는 않아도 될 듯 싶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동행이 기다리는 차로 돌아간다. 이제 알았다고 하더라도 다시 보러 갈 수도 없으니까. ㅋㅋ

 


 대충 훑어본 길을 이렇게 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