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기토(己土)의 일주(日柱)

작성일
2007-08-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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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토(己土)의 기본형은 정인(正印)이다. 정인의 이미지는‘인자(仁慈)한 어머니’즉 자모(慈母)가 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대지(大地)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땅은 어머니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연결에서도 이견(異見)이 없겠다.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품과 같고, 고향(故鄕)이 되며 육신(肉身)을 활동시키는 바탕이 되기도 하는 곳이 땅이다.

기토(己土)는 자애심(自愛心)이다. 무한정(無限定)의 사랑을 베풀어 주는 형태로 이해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해타산(利害打算)이 없고, 논리적(論理的)인 공식(公式)도 없다. 그저 원하면 원하는 만큼의 베풀음만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이미지를‘하해(河海)와 같은 모정(母情)’이라고도 하는데, 그와 비교해서 다르지 않다. 그래서 고향과 같은 마음으로 의지하고 싶게 되는 성분(成分)이다.

기토(己土)는 무심(無心)이다. 토양(土壤)에는 마음이 없다. 즉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없으므로 흡사 마음이 없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된다. 속담에‘열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놓고 말하는 것이다.

대지(大地)의 마음은 무형이다.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필요한 생명체는 언제라도 있는 그대로를 이용하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다. 그가 철학자(哲學者)거나 과학자(科學者)거나, 혹은 도둑이나 사람을 죽이고 피신을 한 강도라고 하더라도 또한 개의치 않으니 이러한 형태를 놓고 무심이라고 하게 된다.

기토(己土)는 식원(息原)이다. 근원에 돌아가 휴식(休息)한다는 의미가 된다. 편안하게 쉬는 단계이므로 무엇인가 이루겠다는 생각이나 남을 위한다는 생각도 없고, 자신에게 불리한 행위를 한 사람을 원망하거나, 혹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무한정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식원(息原)은 생원(生原)으로 시작하여 윤회(輪回)의 한 바퀴를 돌아서 마무리로 귀결(歸結)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큰 공사가 마무리 되는 것이며 완성(完成)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더 진행을 할 것도 없고 해야 할 이유도 없는 상태가 된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삼매(三昧)가 되기도 한다.‘원인(原因)의 휴식(休息)’이란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 긴장이 없이 완벽한 쉼이 되는 것이다.

기토(己土)는 자신의 색채가 없다. 환경에 따라서 응하는 것으로 본색(本色)을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상대적(相對的)이 된다. 결과적으로 기토는 능동적(能動的)이 아니며 선동적(煽動的)도 아니다. 오로지 수동적(受動的)인 형태가 되어서 조건에 따라서 반응을 하게 되므로 항상 늦게 움직이는 성분이 된다. 그러므로 경쟁심(競爭心)이 없고, 승부심(勝負心)도 없다. 또한 왜 그러한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과 흡사하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은 무위(無爲)가 된다. 철저한 무위가 되어야만 유위(有爲)의 자식이 원하는 바를 따라서 채워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보이지 않는 성분이 된다. 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색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것이 없는 고로 잘 보이지 않는 모습이 된다. 어머니의 사랑을 살아 계실 적에는 몰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생각하면 된다.

기토(己土)는 휴식(休息)이다. 그래서 세상사(世上事)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게으르고 경쟁에서도 뒤지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살아가는 방법에서는 난감한 형태가 되기도 하니, 결국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형태로 발생한다. 누군가 나를 밟고 지나가려 하면 그대로 지나가라고 길을 비켜주게 되고, 경쟁에서 자신이 얻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은 본질이 이렇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으므로 남들은 무시하게 되며 하천(下賤)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적천수(滴天髓)》에서도‘비습(卑濕)’이라고 했으니 이것이 그를 두고 한 말이다. 이러한 형태로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