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4.객잔 주인의 고민(苦悶)

작성일
2023-03-15 06:40
조회
716

[435]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4. 객잔 주인의 고민(苦悶)


========================

우창은 모처럼 푹신하고 안락한 잠자리라서였는지 잠을 깨고 보니까 어느 사이에 날이 훤하게 밝았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세수하고는 가볍게 호반(湖畔)을 거닐면서 아침 햇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면서 여유로움을 즐겼다. 물가의 나무는 가을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아직도 녹색(綠色)의 풍경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거닐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현지가 다가와서는 인사를 했다.

“스승님, 기침(起寢)하셨네요. 아침 공기가 싸늘한 것이 상쾌해서 좋아요.”

“아, 사매도 잘 쉬셨습니까? 그런데 우창은 사매라고 하고 사매는 스승님이라고 하니 뭔가 격이 맞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창의 말에 현지가 미소를 지었다.

“현지는 스승님이라고 호칭해야 하겠어요. 스승님께서 사매라고 하시든 현지라고 하시든 그것은 스승님의 몫으로 남겨 두겠어요. 호호~!”

“그렇긴 한데.....”

“사실, 혜암 스승님을 인연했다고는 하지만 실로 동문수학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제자로 거두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스승님께서 편치 않으신가 봐요. 현지는 스승님께서 나이를 잊으실 수만 있다면 진명에게 하듯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한두 해를 먼저 태어난 것이 윤회의 길에서 본다면 무슨 대수겠어요. 호호호~!”

우창은 잠시 생각했다. 과연 현지의 말이 더 이치에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창도 세속의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진명을 대하듯이 해 주기를 원하는 현지이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도 그리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는 그 소원을 따르도록 하지.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도 약간은 멋쩍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본 현지가 재미있는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실 날만 기다렸어요. 이제 오늘에서야 그 소원이 이뤄졌으니 정식으로 오행원(五行院)에 입문한 것 같아서 너무 기뻐요. 호호호~!”

그 말을 듣고서야 우창은 진작에 이렇게 해 주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미안했다. 그래서 자질구레한 세속의 기준을 털어버리고 진명과 같이 대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보니 오히려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렇지? 우창이 고지식해서 그래. 그럼 누이같이 제자같이 그렇게 말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하하하~!”

“좋아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에요. 호호호~!”

“조반(朝飯)을 먹을 시간이 되었지 싶군. 그만 들어가지.”

“예~! 스승님~!”

객잔으로 돌아가니 주인이 곱게 단장을 하고는 우창을 맞았다.

“벌써 산책을 다녀오시네요?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아침 준비가 다 되었으니 식탁(食卓)으로 가시지요. 호호~!”

주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침부터 화색(和色)이 넘쳐나는 것을 보니 우창도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하하~!”

 

모두 둘러앉아서 맛있게 차려진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는데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여기에서 사흘은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여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꼭 그렇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야 안 될 것이 뭐가 있겠나. 오히려 공부 삼아서 연구도 할 수가 있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할 수 있겠군. 그렇게 하지.”

“잘 알겠습니다. 주인이 무척이나 좋아하겠습니다. 그리고.....”

“뭔가?”

염재가 말끝을 흐리자 뭔가 할 말이 더 있다는 것으로 짐작하고 물었다.

“이제 목적지는 오행원이지요?”

“그렇지. 그나저나 오행원의 식구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군.”

“그래서 말입니다. 어제저녁에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스승님께서는 ‘천상천당 지상소항(天上天堂 地上蘇杭)’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물론이지.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의미잖은가?”

“아,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소항의 풍경을 보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비록 길은 수천 리지만 유람(遊覽)삼아 한 달 정도 잡으면 될 것입니다. 여비(旅費)는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고, 마침 염재도 모처럼 주어진 휴가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보고 싶었던 소항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우~! 정말 멋진 생각이야. 난 무조건 환영, 환영이에요~!!”

염재가 나름대로 세심하게 궁리해 보고서 말하는 것인 줄을 알고는 우창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들어보지.”

“우성암에서 나오면서 줄 곳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말씀을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행원에서 제자들 지도하시느라고 고생하는 자원 선생님과 춘매 누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파발마(擺撥馬)를 보내서 마차로 소주(蘇州)까지 모셔 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풍광이 좋은 곳에서 함께 노닐다가 귀가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했는데 스승님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우창은 염재의 사려가 깊은 말을 들으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한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우창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이 말하는 모습이 대견하기조차 했다.

“염재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그렇게 하지.”

우창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마침 염재의 능력으로 가능한 허용범위가 있기에 동평(東平)의 향리(鄕吏)를 만나서 부탁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향리를 찾아가서 원하는 일들을 되도록 시켜 놓고는 얼른 돌아오는데 약 한 시진이 걸렸다.

“스승님, 다녀왔습니다. 곡부의 현령(縣令)께 부탁해 달라고도 했습니다. 마차를 두 달간 쓰도록 해 달라고 말했고, 그 마차에 자원 선생님과 춘매 누님을 모시고 소주의 자사(刺史)에게로 안내하도록 했습니다. 서찰(書札) 각각 전달하도록 마련했기에 소홀함이 없을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그랬나? 잘했네. 그렇다면 파발마가 달려서 곡부에 가는데 사흘은 걸릴 테니 우리도 여기에서 사흘간 머무르다가 출발하면 되겠나?”

“그렇겠습니다. 여비도 넉넉하게 주어서 보냈으니까 진행에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방문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염재가 자신의 몫을 잘하고 와서 뿌듯해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 일정이 변경되는 것을 보면서 진명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정말로 소항(蘇杭)을 구경하러 가는 건가요? 항상 어딘가로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늘 받았는데 말로만 듣고서 궁금했던 곳으로 가볼 생각을 하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더욱 신명이 나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염재가 웃으며 말했다.

“누나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신목이 되어서 1천 년이나 한 곳에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자유롭게 다니고 싶으셨겠습니다. 이제 이 동생이 어디든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하하~!”

“아, 정말이구나. 전생에 한 자리에서 온갖 사람들의 애환(哀歡)을 들어주느라고 마음의 짐이 많았다가 이번 생에서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유를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네. 염재를 만나서 더욱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또한 길연(吉緣)임에 틀림이 없구나. 정말 어디든지 발길이 닿는 대로 가보고 싶었던 것도 이유가 있었구나. 호호호~!”

이렇게 담소하는데 여주인이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웃음은 객잔의 주인이 손님을 대하는 웃음이 아니라 가족 간에 묻어나는 신뢰가 가득한 그런 미소였다. 그래서 모두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편안했다.

“조반은 맛있게 드셨어요? 저도 차 한 잔 주실래요?”

진명이 일어나서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도 좋아서 너무 잘 먹었어요.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니 과분한 것 같아서 오히려 부담스럽네요. 그런데 아직 이름을 모르고 있었네요. 저는 강정민(姜貞敏)이에요. 호호~!”

“어머, 어여쁜 도사께서 자상하기도 하셔라. 그냥 주인이라고만 하지 이름을 물어준 사람은 처음이네. 이름은 고윤화(高允和)에요. 강 낭자의 신통력이 벌써 소문을 타고 있어요. 호호~!”

“아, 고(高) 언니셨네요. 어차피 한 번 와서 빈 배처럼 떠돌다가 가는 길인데 소문도 타 보고 배도 불리게 되는 이 순간이 싫을 이유는 없죠? 호호호~!”

“객잔(客棧)을 운영한 지가 오래이나 오늘처럼 기분이 좋은 날은 며칠이 안 되었지 싶어요. 도사님을 잡아두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누군가 오면 긴장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실로 별의별 인간들이 다 오가는 곳이니까요. 항상 오늘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때 순간적으로 고윤화의 얼굴에 그늘이 스쳐 갔다. 그것을 본 염재가 말했다.

“아무래도 주인께서는 뭔가 말하지 못할 고민이 있으신가 봅니다.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보셔도 됩니다. 스승님과 누나가 이야기를 듣는다면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주실 거니까요.”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고윤화는 얼굴에 가득하던 웃음기가 사라지고 수심(愁心)에 잠긴 모습으로 바뀌었다. 조금 전에 그 모습이 있었나 싶은 정도였다. 그 표정을 보자 우창이 물었다.

“아,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도움이 될지 말지는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말이지요.”

우창의 말에 주인이 한숨을 깊이 쉬고는 말을 꺼냈다.

“말씀은 고맙지만, 도사님 일행이라고 하셔도 제 일을 해결해 주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그냥 푸념 삼아서 말씀이나 드려보고 싶기는 하네요. 실은 관아(官衙)에서 저에게 과중한 세금을 내라고 하는 바람에 마음으로는 힘이 많이 들어요.”

모두 고윤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입에서 ‘관아’라는 말이 나오자. 염재가 특히 긴장했다. 이야기가 이어졌다.

“동평현(東平縣)의 부장(部將)이 있는데 수시로 찾아와서는 요리상을 푸짐하게 내오라고 해서 막상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하고 나면 실컷 먹고 마신 다음에는 번번이 요리값을 내지 않아요. 나중에 갚겠다고 하는데 힘없고 약한 백성이 어쩌겠어요. 그래서 십여 차례나 그렇게 하다가 하루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갚으라고 했더니 다음날부터 바로 세무 관원을 데리고 와서는 트집을 잡는데 아무리 청렴하게 장사를 한다고 해도 그 모두를 다 갖출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을 한 고윤화가 다시 한숨을 깊이 쉬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략 그 정황이 파악되었다. 염재가 비록 나이는 어려도 세상의 물정은 잘 알고 있었다. 곡부현에서 겪은 경험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곰곰 생각하다가는 일어나서 말했다.

“현령(縣令)은 관민(官民)을 위해서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권력을 남용하면 직접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야 항상 백성이지요. 이제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큰 고민을 안고 있으셨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있지 싶습니다. 너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할 테니 지금부터는 근심은 내려놓으시고 다시 환하게 웃기만 하셔도 되겠습니다. 하하~!”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에게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하고는 밖으로 나가서 말을 타고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본 고윤화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말했다.

“그 관리가 성품도 포악한데. 별일이 생기면 안 될 텐데 혼자서 뭘 어쩌시려는지 걱정이네요. 괜찮을까요?”

염재가 떠난 지 두어 시진(時辰)이 지났을까? 시간은 거의 오시(午時)가 시작될 무렵인데, 염재가 몇 명의 사람들과 동행해서 돌아왔다. 주인이니 손님을 데리고 왔다면 응당 반겨 맞았는데 그중에는 그 관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누님, 오늘 이 동생이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 소홀히 대접하면 안 됩니다.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세요. 자자~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우창은 현지와 진명과 함께 호반으로 산책을 나갔기에 보이지 않았다. 염재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기를 청한 다음에 다시 고윤화를 불렀다.

“누님, 이리 좀 오세요. 인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거든요.”

염재가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 분위기를 금세 파악한 고윤화가 얼른 다가와서는 인사를 했다.

“나리님들이 오셨으니 영광이에요. 정성껏 대접할 테니 편히 즐겨 주세요.”

고윤화는 사람에 따라서 얼굴빛을 달리하는 능력이 있었다. 글줄이나 읽은 사람으로 보이자 헤프게 웃는 모습이 아닌 단아(端雅)한 품격을 갖추면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보면서 염재도 내심 혀를 내둘렀다. 우선 데리고 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 어르신은 동평 현령 어른입니다. 누님의 객잔을 이야기했더니 와보고 싶다고 하시지 뭡니까? 하하~!”

“엄머나~! 현령께서 이 누추한 곳을 나들이하셨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광이에요. 여태 그러한 적은 없었거든요. 정말~! 호호호~!”

술을 따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현령이 말했다.

“오,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 줄을 몰랐구려. 진작 알았더라면 가끔 나들이했을 것인데 말이지. 하하하~!”

“나리께서 백성을 잘 보살펴 주시는 덕택으로 이렇게 보잘것없는 객잔이지만 번성하고 있으니 항상 감사드리지요. 정말 영광입니다.”

고윤화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으로 귀한 손님에 대한 예우를 갖춰서 공경스럽게 접대했다. 그리고 이미 그 분야에서는 이골이 난 터이기도 했다. 현령이 술잔을 마시고는 말했다.

“환대를 해 주시니 고맙소. 평소에는 주민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서 출입을 늘 삼가는데 오늘 옛날의 벗인 염재를 만나서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나들이하게 되었구려. 더구나 아우님의 누님이 운영하는 객잔이라니 더욱 궁금하기도 했소이다. 하하하~!”

“말씀만으로도 이미 복이 넘치는걸요. 즐거우신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호호~!”

“행여라도 관원(官員)이 불편하게 한다면 내게 말해 주시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협력하리다. 하하~!”

그제야 고윤화는 부장의 안색을 살폈다. 아까부터 안절부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염재가 이들을 데리고 온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다른 분은 모르겠는데, 장(張) 부장 나리는 가끔 찾아주셔서 알고 있어요. 항상 어려움이 없는지 보살펴 주시고 밥이라도 들고 가시라고 해도 민폐를 끼치면 현령을 볼 낯이 없다고 하시며 입에도 대지 않으시는걸요. 그래서 과연 어떤 분이 현령이실까 궁금도 했었지요. 오늘 뵈니 과연 부하 권원들이 왜 그렇게도 존경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부장에게도 술을 따랐다. 부장은 엉거주춤하게 술을 받아 들자 현령도 잔을 들어서 건배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니, 부장은 어디가 불편하신가?”

“아닙니다. 이렇게 한 자리에 같이 앉아 본 것이 처음이라서 좀....”

“그럴 필요 없네. 오늘은 관직은 내려놓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니까 말이네. 그래, 염재는 어떻게 지냈나?”

“요즘은 재미있는 공부에 푹 빠져서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삼재(三才)의 이치가 얼마나 오묘한지 말입니다. 하하~!”

“삼재의 이치라니? 천지인(天地人)을 말하는가? 나도 그러한 공부나 하면서 이따금은 한가롭게 고기나 낚고 살았으면 싶은 것이 꿈이었는데 이미 아우는 그렇게 하고 있단 말인가? 참으로 복도 많구나. 그래 무엇을 배웠는가?”

“우제는 아직 공부가 조족지혈(鳥足之血)입니다. 스승님을 잘 만나서 앞으로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것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동문 사형이 있는데 능력이 특별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그래? 그게 무엇인지 내게도 좀 기회를 주려나?”

현령이 이렇게 말하는데 마침 우창이 들어오다가 염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염재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벌떡 일어나서 현령에게 소개했다.

“형님, 이분은 제 스승님이시고, 두 분은 사형님이십니다.”

염재의 말에 현령도 일어나서 우창과 마주 인사했다. 현령의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품격이 있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현령 나리를 뵙다니 반갑습니다. 진하경(陳河鏡)입니다.”

우창을 따라서 현지와 진명도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현령도 마주 인사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염재가 진명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이 누님은 사람의 전생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능력을 타고났지 뭡니까.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감탄합니다. 혹 형님의 일에 대해서도 해 줄 말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동행한 사람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호기심이 동하기 마련이다. 그러자 진명이 앉아서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고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후. 눈을 뜬 진명이 현령에게 조용하면서 힘이 실린 음성으로 말했다.

“소녀가 보이는 대로 말씀드릴 테니 혹 예의에 어긋나더라도 크게 탓하지 말아 주세요. 현령 나리는 전생에 왕실과 인연이 있었네요.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고귀(高貴)함을 입에 물고 오셨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승승장구(乘勝長驅)하셔서 흠차대신(欽差大臣)이 되시겠어요. 미리 축하드려요.”

“어? 그렇게까지나? 고맙소이다. 하하하~!”

“그런데.....”

이렇게 말을 흐리자 현령이 얼른 말했다.

“아,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까 기탄없이 해 주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히 말씀드리겠어요. 전생에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번 생에서 부하의 인연이 되어서 명성(名聲)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것도 보여요. 아무래도 왕실의 인연이 되다가 보면 본의 아니게 그러한 인연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오호~! 그럴 수도 있겠구료.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소이까?”

“큰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다른 관리들이 모르는 사람으로 암행관을 둔다면 현령의 위명에 해를 끼칠 휘하의 권속들을 단속하기에 큰 도움이 되겠어요. 아, 지금 여기 계신 나리들은 모두 훌륭하시므로 제외해도 되겠어요. 호호호~!”

눈치가 빠른 진명이었다. 행여라도 고윤화에게 해가 돌아갈까 봐 세심한 배려를 했다. 그렇지만 한마디 일러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사람이 오늘은 선량해도 또 내일이 되어 물욕(物慾)과 색욕(色慾)이 앞서면 또 변할 수도 있으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잘 다스린다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베개를 높이 베고 깊이 잠들 수가 있겠어요. 축하드립니다. 호호~!”

이렇게 말을 마치고서는 합장하자 현령도 매우 흡족한 듯이 말했다.

“잘 알겠소이다. 항상 등하불명(燈下不明)이니 더욱 철저하게 단속해야 하겠구려. 앞으로라도 행여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내게 직접 연통을 주시오. 이것은 염재의 인연이니 말이오. 오늘 이렇게나 좋은 말을 해 주셨는데 낭자라 술을 권하기도 그렇고 여하튼 고맙소이다. 하하하~!”

현령이 호쾌하게 웃자 진명도 합장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창은 정황을 대략 파악하고는 인사를 하고는 현지와 함께 진명에게로 가자 손님들은 염재가 알아서 잘 대접하여 보냈다.

염재가 손님을 전송하고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고윤화가 염재의 손을 덥석 잡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젊은 도사에게 어떻게 그런 인연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렇게 앓던 이를 뽑아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예요. 또 고마운 빚을 졌네요. 오늘 점심은 더욱 푸짐하게 차려야 하겠어요. 정말 고마워요. 호호호~!”

다시 식탁으로 식구들이 모였다. 그러자 우창이 진명에게 물었다.

“현령의 전생은 참 화려했었나 보군.”

“스승님, 저절로 방편법이 생기네요. 호호호~!”

“방편이라니? 무슨 말이지?”

“실은 현령에게서 너구리가 보였어요. 전생에 너구리였던가 봐요. 그래서 서당 옆에서 살다가 보니까 학동들이 글을 읽는 소리를 들어서 이번 생에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현령으로 살다가 몇 년 후에는 자사(刺史)가 될 거예요. 다만 부하 등등의 이야기는 조작했어요. 호호호~!”

“그랬어? 어쩐지. 너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지. 하하하~!”

주방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팔보채를 들고 오자 고윤화도 뒤따라오면서 신이 나서 말했다.

“세상에나~! 3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갔어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암행관을 붙이라는 말을 할 적에 부장의 얼굴을 봤더니 안절부절하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장이 잠시 나와서 부르더니 ‘말하지 않아서 고맙다, 밀린 음식값은 바로 갚으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맙다고 했어요. 내심 간이 쪼그라들었던가 봐요. 호호호~!”

주인의 말에 진명도 거들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아요. 그래도 염재와 인연이 닿았던 현령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인연이란 참으로 소중해서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참으로 인생은 좋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호호~!”

진명의 말에 모두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