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8.활로(活路)

작성일
2022-11-15 04:40
조회
907

[412]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8. 활로(活路)


========================

하 초시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이 염려하는 것이 있었다. 자고(自古)로 노름꾼은 그 짜릿한 맛을 언제까지라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인해서였다. 골패(骨牌)를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는 증표로 손목을 스스로 자르고서도 발가락으로 한다는 말도 들어봤었기에 그 중독성(中毒性)을 말한다면 스스로 힘으로 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마홍이 이 사람에게 가르칠 적에는 그렇게 되라고 했을 리는 없겠지만, 허약한 팔자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식신의 호기심으로 인해서 점점 빠져들어서 헤어 나올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끊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식신이 안고 있는 최악의 부정적인 작용이었기 때문이다.

“하 선생이 비록 벗어나고자 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말(一抹)의 가능성은 있어 보여서 다행입니다. 말씀으로 봐서는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수백 번도 더 다짐했을 듯싶습니다만?”

우창의 물음에 하 초시는 다시 허공을 바라봤다. 아마도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창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 것은 시간(時干)의 임수(壬水)로 인해서였다. 그래서 이것을 잘 건드려준다면 무시무시한 마작판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시간(時干)의 임수(壬水)를 가리켰다.

411-1

“선생에게 묻습니다. 만약에 불이 물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하 초시가 얼른 답했다.

“그야 당연히 꺼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불이 잘 타고 있을 적에는 물을 끼얹으면 안 됩니다. 다만 그 불이 산으로 번지고자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야 밖으로 나가는 불은 꺼야만 하는 것이잖습니까? 그 말씀은 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꺼릴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이 남의 재산을 탕진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식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술과 요리를 사면서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자책(自責)하고 있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우창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것을 일반 사람들은 양심(良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서는 죄책감(罪責感)이라고 하고, 사주에서는 편관(偏官)이라고 부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성분인데 이것은 월간(月干)의 무토(戊土)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어서 무한정(無限定)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들어오면 펑펑 쓰면서도 내심은 또 불안감을 지울 수도 없지요.”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과연 그와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만 될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서야 지혜로운 산명선생을 만났으니 부디 명쾌한 답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이 사람의 표정을 봐하니 일단은 이 정도로 말이 나왔다면 8할은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고 해도 되지 싶었다. 다음에는 점괘를 살펴봤다.

411-2

점괘를 살펴보던 우창이 깜짝 놀랐다. 우창의 표정만 살피고 있던 염재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점괘를 살펴보고는 역시 놀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스승님, 점괘가 이러할진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얼른 도망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화급한 상황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창이 염재의 말을 듣고서도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 초시가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하 초시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미 그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는 것으로 봐도 되지 싶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속 시원하게 해 주시오. 내가 죽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답답하기 짝이 없소이다.”

후끈 달아오른 하 초시의 표정을 보고서야 우창이 천천히 말했다.

“소생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점괘의 조짐이 너무나 참혹하여 염려됩니다. 왜 그 사람을 건드렸습니까? 겉으로 보기에 어수룩하게 보고서 거금을 취득하셨습니까? 그 사람의 뒤에는 막강한 권력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러시진 않았을 텐데요?”

“아니, 선생은 이미 다 알고 계셨소? 과연 그로 인해서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사태가 피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내달리고 있나 싶기는 합니다만 이미 엎은 물그릇이니 어쩌겠습니까?”

우창은 짐작이 되는 바가 있었으나, 염재를 위해서 약간의 설명을 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알겠습니다. 대략 어떻게 된 경위인지 말이나 들어봅시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하 초시가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실은 지난봄에 남경(南京)에서 큰 판을 벌여서 십만 금을 벌었습니다. 그중에 재주가 없는 마작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뒤에는 흠차대신(欽差大臣:임금의 명령만 받는 고급관원)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들었지요. 그 사람은 재산을 탕진하고 처자를 팔았으니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나 도박(賭博)도 사업인지라 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후에 지인으로부터 연락받고서야 그 문제로 원한을 품고 자신이 알고 있던 흠차대신에게 하소연하였고, 나를 잡기 위해서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피신하였고 별일이 없을 것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문득 그 일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아, 원래 그렇게 되었던 것이군요. 도박의 세계에서는 항상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디로 가더라도 불안감까지 해소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번 재물을 모두 돌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만큼의 거금이 모이지를 않아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조그만 마을에서는 그렇게 큰 판을 벌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지내는데 오늘 선생의 말씀을 듣자 그 장면이 다시 떠올라서 후회스럽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해결책은 귀인을 찾아야 하는데 귀인은 신중임수(申中壬水)가 아닙니까? 이것을 찾아서 의탁(依託)하게 된다면 오히려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지 여쭙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재가 우창의 의사를 파악하고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제자가 보기에는 신금(申金)은 암석(巖石)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본다면 저잣거리가 아니라 깊은 산중(山中)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우창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간단하게 답을 했다. 그러자 염재가 신명이 났다. 어서 말을 계속해 보라는 경우에 하는 어투였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바위가 많은 곳의 산으로 들어가서 숨으라고 조언할 수도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해서 이렇게 망설이시는 것은 아닌지요?”

“과연 염재의 공부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구나. 하하하~!”

염재와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하 초시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졌다. 뭔가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에서 우창과 염재도 희망을 읽었다. 염재가 다시 말했다.

“스승님께서 보시기에 이 난관을 타개할 귀인이 월지(月支)에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과거에 그러한 곳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네.”

“그곳은 불사(佛寺)이거나 도관(道觀)일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신중임수(申中壬水)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편인(偏印)이니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출가(出家)하는 것으로 해답을 삼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

그제야 하 초시는 어떤 이야기인지를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두려워만 하고 있었을 뿐 이렇게 피할 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우스웠다.

“아니, 선생의 말씀에 이미 답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구려. 수년 전에 몸이 안 좋아서 머물렀던 절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언제라도 삶이 힘들면 찾아오라고 주지화상이 말씀하셨다는 것이 지금에야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 싶은데 어떻소?”

“실로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우창은 간단히 말했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불이 붙게 생긴 상황에서도 삶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조상님이 돕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아.”

염재에게 이렇게 답을 한 우창이 다시 하 초시에게 말했다.

“만약에 소생의 말을 듣고서 입산하실 요량이라면 마작에는 절대로 손을 대면 안 됩니다. 소문은 발이 없어서 바람을 타고 다니는 까닭입니다. 만약에 흠차대신이 기를 쓰고 수소문(搜所聞)하면 반드시 찾아내고 말 것이니 말입니다.”

“그야 두번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말씀이오. 하하하~!”

우창은 그가 이미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놓였다. 어느 사이에 여유를 얻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손재주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산에 들어가시거든 나무를 얻으면 큰 나무는 목탁(木鐸)을 깎고 작은 나무로는 백팔염주(百八念珠)만 만드십시오. 이것은 과거에 손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정성으로 참회하는 마음과 함께 만들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입니다. 화상이 찾아오면 목탁을 선물하고 불자가 찾아오면 염주를 나눠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목탁 소리가 불전에서 울릴 때마다 선생의 업장도 녹을 것이고, 염주는 사람들의 손에서 굴러갈 때마다 공덕이 쌓일 것입니다. 이렇게만 한다면 호법신장(護法神將)이 절대로 내치지 않을 것이니 설사 선생을 잡으려는 사람이 선생의 옆을 스쳐 지나가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창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하 초시의 표정은 완전히 밝아져서 아무런 근심도 없는 사람과 같아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함께 밝아졌다. 모두 자신이 겪고 있는 일처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마치 자신의 일이 해결된 것처럼 기뻐서 크게 손뼉을 쳤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모든 사람이 힘차게 박수(拍手)를 치자 하 초시는 마음의 짐을 모두 털어버린 듯이 포권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조상님이 귀인을 불러서 길을 찾으라고 배려하셨나 보오. 호수가 보이는 바위산에 있는 절로 가기로 마음을 결정했소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배운 손기술이 오히려 번뇌가 될 줄을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이제 선생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라도 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우선 오늘 점심을 대접하는 것으로 하겠소이다. 따끈한 요리를 더 주문해서 드시면서 귀한 가르침을 청하고자 하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우창도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호의로 받아들였다. 다시 이야기에 팔려서 식어버린 요리는 물려가고 새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리구이와 도미찜이 차려졌다. 그리고 다른 손님들의 상에도 요리가 차려졌다. 맛있는 술과 함께 모두 그의 새로운 길에 대해서 축배를 들었다. 자리에 앉자 진명이 우창을 향해서 말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니 얼마나 홀가분하실지 모르겠어요. 옆에서 스승님을 모시고 오늘처럼 보람이 있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하 어르신에게는 명학이나 역학을 공부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혹 여기에도 무슨 깊은 이치가 있는지 궁금해요.”

진명의 궁금한 것은 염재도 마찬가지였다. 사주를 보면 병인(丙寅) 일주는 일지(日支)에 편인(偏印)을 깔고 있어서 종교도 좋겠지만 명학(命學)도 좋을 텐데 그것을 권하지 않는 것이 궁금하던 차에 진명이 물어주자 염재의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서 우창을 보면서 설명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하던 우창이 초시를 보면서 말했다.

“제자들은 그 점이 궁금한 모양인데, 어떻습니까? 선생에게 명학을 공부하라고 했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없소이다. 오히려 마음부터 비우고 도를 닦고 싶을 따름이오. 만약에 오행을 공부하라고 했더라면 남의 다리를 긁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오.”

하 초시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염재와 진명을 향해서 말했다.

“이것 보게나. 이것은 무슨 뜻인가?”

우창이 이렇게 묻자 진명이 생각을 말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공부도 때와 순서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에 이처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공부하라고 권하셨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의 상황이 매우 급한 연고로 공부보다는 안정이 우선한다고 봐서 권하지 않으셨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제자의 판단이 어떤가요?”

“옳지! 잘 생각했네. 진명의 말도 일리가 있지.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염재가 말을 해 보려나?”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를 바라봤다. 그러자 염재도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스승님의 의도를 제자가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만 혹 짐작이나마 해 본다면, 이미 식신(食神)이 월주(月柱)에 튼실하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만 안정이 된다면 오늘 접한 신기한 기억이 떠올라서 저절로 공부의 인연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옳지~!”

우창이 짧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점점 깊은 곳으로 향해서 파고 들어가는 염재의 공부가 기특했다. 의미가 클수록 긴말은 필요 없는 법이다. 간명하게 한마디로 모두를 담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하고는 따뜻한 음식과 술로 하 초시의 미래를 축하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나려고 하자 하 초시가 목합(木盒)을 하나 염재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기 전에 염재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작은 성의이기도 하고 오늘 신수를 본 복채이기도 하다오. 이제 출발하면 바로 산으로 들어갈 테니 더 이상의 노름밑천은 필요가 없으므로 여비만 빼고서 사례하고자 하니 받아 주시기 바라겠소.”

염재는 그것을 받기 전에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은 받아도 되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염재가 그제야 목합을 정중히 받으며 말했다.

“성의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니 고맙게 받아서 노자(路資)에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시는 길에 장애가 없이 순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구려. 산명선생과 여러분의 여정도 순탄하시기 바라오.”

하 초시는 그렇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휘적휘적 떠나갔다. 그러자 식당에서 공짜로 음식을 얻어먹은 사람들이 우창에게 고맙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우창도 손을 흔들어서 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차로 향했다.

염재가 배를 타러 가면서 마차를 맡겨놨던 객잔에서는 말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객잔의 이름은 동평객잔(東平客棧)이었다. 겉모습만 봐도 깨끗해서 편히 머물 곳으로 보였다. 그래서 말을 관리해 준 것도 인연이려니 하고는 방을 얻어서 하루 묵기로 했다.

우창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작은 마을에서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던 모양인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아는 척을 하면서 반겼다.

“도사님, 어서 오세요.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영광이에요. 낮에는 주루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셔서 이미 유명 인사가 되셨답니다. 호호호~!”

우창은 미리 알아보는 것이 약간 쑥스럽긴 했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더 깨끗하고 전망이 좋은 방을 받아서는 여장을 풀고 의자에 앉아서 동평호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참으로 좋았다. 특히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호수의 일몰 풍경도 기대가 되는 장면이어서 저절로 미소가 배어 나왔다.

간편한 복장으로 대청에 나가서 차를 청하자 녹차를 가져와서는 우려서 따라주는 여주인이 우창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자신도 답답한 일이 있어서 우창의 일행을 보고서 더 반가워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바라보고 말했다.

“차가 향기롭습니다. 어디에서 나는 차입니까?”

“동평호의 주변에서 안개를 머금고 자란 차나무에서 딴 차에요. 지난봄에 틈나는 대로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따가지고 만든 차인데 깊은 맛은 몰라도 신선한 향이 좋아서 귀한 손님이 오시면 이따금 내어 드리는 것이에요. 호호~!”

“아, 그러니까 동평객잔의 주인께서 직접 만든 것이니 동평녹차인 셈이군요. 참 향기롭습니다. 귀한 차를 내어 주셨는데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차향(茶香)이 좋았다면 제 답답한 하소연이나 들어주시면 되죠. 호호~!”

우창은 내심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산수풍광(山水風光)이 좋은 곳에다 한가롭게 객잔(客棧)을 운영하면서도 답답한 일이 있으십니까?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지만 들어드리지야 못하겠습니까?”

“그럼 염치 불고하고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실은 남편이 젊어서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가 되어서 객잔을 운영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삶에 자신이 없어지네요.”

“아무래도 혼자서 큰일을 꾸려가시려면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지 뭐예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황씨(黃氏)의 성을 쓰는 부자(富者)가 있어요. 그도 상처(喪妻)하고는 살림이 여유롭다 보니까 첩실도 들였는데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헤어지고는 외롭게 지내던 차에 우연히 객잔에서 몇 달을 머물면서 인연이 되었어요. 그 사람이 저를 잘 봤는지 같이 살자고 자꾸만 청혼하는데 과연 그것이 잘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어요.”

“아니, 형편도 여유롭고 사람도 괜찮다고 느끼셨다면 함께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피차에 외로운 인연이라면 서로 만난서 위로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우창은 이렇게 대꾸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엔 드는데 자칫하면 또 하나의 속박이 될까 봐서 마음에 불안감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와 살아도 될 것인지 궁합을 보고 싶은데 몇 군데에서 물어봤지만 어떤 곳에서는 팔자를 좋게 고치는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타고난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주루에서 도사님이 출현하여 사기꾼을 교화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서 혹시라도 우리 객잔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말을 부탁했던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 기뻤어요. 이것도 인연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호호호~!”

우창은 이 정도의 예의를 갖춰서 말하는 여인이라면 얼마든지 조언해 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끓여서 따라주는 차를 마시는데 마침 진명이 씻고서 대청으로 나오다가 우창을 보고는 다가와서 말했다.

“스승님은 벌써 나와 계셨어요? 오늘 가르침을 주신 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느라고 혼자 있다가 바람이라도 쐬자고 나왔어요. 호호호~!”

“아 진명이구나. 이리 와서 같이 차를 마시면서 주인의 이야기나 들어볼까? 나도 조금 전에 나왔지. 하하하~!”

진명을 본 여주인이 반기면서 말했다.

“젊은 낭자가 인물도 곱게 생긴 데다가 이렇게나 지혜로운 스승님과 산천경계(山川境界)를 찾아 유람하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참으로 부럽답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렇게 일이 발목을 잡고 있으니 마음뿐이네요. 호호~!”

진명도 주인의 말에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 말했다.

“그건 맞아요.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것은 또 좋은 일이기도 하잖아요? 실은 떠돌아다니기는 해도 가끔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럴 때는 이렇게 자리를 잡고 지내시는 것일 보면 부럽기도 하답니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