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제22장. 연승점술관/ 2.부자팔자인데 왜 못살지?

작성일
2020-05-20 06:15
조회
97

[0233]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2. 부자팔자인데 왜 못살지?


========================



우창이 다시 춘매에게 물었다.

“내친김에 어디 음양의 공부도 복습할까?”

“음양이야 나도 잘 알지. 뭐든 물어봐.”

“그래? 그렇다면 안마를 하려면 추나(推拿)를 많이 쓰나?”

“맞아, 추나는 또 어떻게 알아?”

“추나의 음양은 어떻게 되지?”

“엥? 그것도 음양이 되나?”

“음양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했지?”

“상대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지를 봐야지. 추(推)는 밀고, 나(拿)는 당기네. 오홋~!”

“어서 말해봐. 어느 게 양이고 어느 게 음이지?”

“그야 양은 발산하는 것이니까 미는 것이 양.”

“그럼 엄지가 하는 일은 양적(陽的)인 역할인가?”

“맞아~! 바로 그거네. 오호~! 신기해라. 그럼 잡아당기는 나(拿)는 음이구나. 간단하네.”

“엄지손가락이 미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야 당연하지. 근육의 깊은 곳에 박혀있는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옳지, 응어리는 뭘까?”

“응어리는 뭐냐고? 음..... 한(恨)일까?”

“그래? 한이라면 그 상대는 또 뭘까?”

“한의 상대도 있나? 기쁨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한(恨)의 상대에는 열(悅)이 있는 거야. 한은 자꾸만 안으로 뭉쳐들어서 단단해지고, 그래서 산이 되는 거야. 간(艮)은 팔괘에서 칠간산(七艮山)이라서 산이 되거든. 번뇌가 산처럼 쌓이게 되면 그것이 응어리가 되어서 풀어지지도 않고 십 년, 이십 년씩 쌓여서 결국은 병이 되기도 하지. 반면에 열(悅)은 기쁨이 되는데, 팔괘에서는 이태택(二兌澤)으로 항상 즐거운 소녀(少女)에 해당하게 되지.”

“오빠는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구나. 놀라워~!”

“그러니까 음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양으로 풀어야지. 그래서 손에서는 양에 해당하는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고 흔들어서 풀어주는구나.”

“엄지는 양(陽)이고 사지(四指)는 음이라는 것도 설명해 줬나?”

“왜 엄지가 양이야?”

“짝이 없으면 양이고, 짝이 있으면 음이기 때문이지.”

우창의 말에 춘매가 혼란스러운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이구~! 정신이 없잖아. 다시 차근차근해야지. 그러니까 엄지는 홀로 떨어져 있어서 양이라고 보는 것이란 말이잖아? 그리고 하는 일도 그와 같다면 확실하게 고정시켜도 되는 거란 말이지?”

춘매가 자신의 일과 연관이 된 이야기가 나오자 더욱 열성을 보였다. 우창이 이어서 설명했다.

“엄지가 하는 일은 몸에서 뭉쳐진 곳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그래서 자꾸 주무르면 처음에는 아프다고 입을 딱딱 벌리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장사가 호랑이를 때려잡듯이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누르고 흔들게 되면 점점 말랑말랑해지면서 통쾌감(痛快感)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자꾸 그 맛을 보려고 하는 거지.”

“맞아~! 오빠가 정확하게 알고 있었구나. 호호호~!”

우창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양은 음을 만나서 짝을 이루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줘서 뜻을 이루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하면 되는 거야. 네 손가락으로 뭉친 곳을 풀어준다고 해봐. 엄지처럼 집중(集中)되는 느낌이 없겠지? 그 이유는 네 손가락은 음이기 때문에 상처가 난 곳을 어루만져주고 쓰다듬어 주어서 위로하고 다독이는 일을 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움켜쥐고 당겨주면 늘어졌던 근육들이 생기를 띠어서 휴식을 취하게 되는 거야. 결국은 추나(推拿)도 음양의 이치로 짝을 이룬 것이지.”

“전문가인 내가 오빠에게 이런 설명을 들으니 뭔가 뒤집어 진 것 같잖아? 호호호~!”

춘매의 말에 우창이 말했다.

“무슨 상관이야? 배우는데는 노소(老小)가 없고, 열정에는 초보와 고수가 없는 거야. 하하하~!”

“맞아, 오빠에게 배우니 또 새롭네. 계속 해봐. 호호호~!”

“안마를 손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발로해도 마찬가지야. 발은 뒷꿈치가 양이고, 발가락이 음이야. 그러니까 뒤꿈치가 엄지손가락의 역할을 하는 셈이지. 발가락은 나눌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지근지근 밟으면서 뒤꿈치로 눌러주면 손가락으로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도 파고 들어가지. 특히 허벅지나 종아리처럼 근육이 두꺼운 부분에는 그게 제격이라고 봐야지.”

“오빠가 안마사네. 오늘부터 내가 배워야 하겠어. 호호호~!”

“나는 입으로만 하고, 누이는 몸으로 하는 거니까 이론가와 실기자의 차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내가 하는 말은 오행의 이치와 음양의 원리를 빌어서 생각한 것을 말해 볼 뿐이야. 결국은 누이의 오랜 경험에 이것을 얹어서 실행을 할 적에 그 효과는 극대화로 높아지는 거야.”

“정말이구나. 내일부터는 확실히 색다른 마음으로 손님의 몸을 돌봐 줄 수가 있겠네.”

“그리고, 몸에 굳어있는 부분을 풀어줄 적에는 숨을 어떻게 쉬라고 하는 거지?”

“그야 ‘후~~’하고 내 쉬라고 하지. 그래야 딱딱한 것이 쉽게 풀리니까. 그런데 그것도 음양의 이치로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거야?”

“맞아, 음양의 이치이긴 한데, 또 다른 관점이라고 봐야지.”

“그건 무슨 관점이야?”

“이번에는 뭉친 것이 양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강유법(剛柔法)이라고 부르지. 강한 것이 양이고, 부드러운 것은 음이야. 그러니까 숨과 연결시키면 딱딱한 것은 양인데 다시 숨을 들이쉬게 되면 더욱 단단해지거든. 왜냐면 숨은 들이 쉬는 것이 양이고, 내쉬는 것이 음이기 때문이야.”

“정말 음양만으로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다 엮어낼 수가 있나보다. 참 신기하기도 하네.”

“단단한 곳에 엄지로 힘을 주게 되면 통증은 피할 수가 없거든. 그렇지만 이미 오랜 세월을 뭉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풀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호흡으로 그것을 조절하는 거야. 그래서 숨을 내쉬라고 하면서 그 순간에 다소 강한 힘을 사용해서 정작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자꾸 반복하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뭉친 것이 사라지고 가벼운 몸으로 상쾌하게 다시 자신의 일을 잘 하게 되는 것이지.”

“이치란 것이 그런 거야? 어떻게 해보지도 않고서 깊은 원리를 다 알아낼 수가 있는 거야? 그 공부 정말 제대로 배워봐야겠어. 호호호~!”

“그럼 음양만 할 것이 아니라, 오행도 해 볼까? 기왕에 손가락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가보지. 엄지손가락의 오행은 뭐가 될까?”

“엄지손가락의 오행? 처음이니까 금일까?”

“왜?”

“그야 금목수화토니까 그렇지 뭘 왜야.”

“오행으로 보면, 엄지손가락은 토가 되는 거야.”

“왜?”

“엄지가 없으면 나머지 네 손가락도 아무런 쓸모가 없거든. 마치 땅이 없으면 춘하추동도 쓸모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아, 생각났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있었는데, 취객의 폭행으로 엄지손가락을 못 쓰게 되었는데, 그 후로 이 일을 할 수가 없었어. 오빠 말이 맞네.”

“오행 공부가 전부라고 하는 말의 뜻을 알겠어?”

“정말이네. 간단한 줄로만 알았는데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심오한 오행의 이치가 있었네. 오빠가 기막혀하는 뜻을 이제 이해하겠네. 절대로 오행공부를 다 했다는 망발(妄發)을 하지 않고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네.”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음양만은 아니지?”

“맞아. 오행도 절대적인 관점과 상대적인 관점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잖아. 정말 오빠는 멋진 것 같아.”



우창이 처음에는 자원을 가르쳤던 것처럼 차근차근 순서에 따라서 지도를 했다. 그런데 춘매는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방향을 달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방향은 집을 짓는 것으로 본다면, 기초만 다진 다음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은 다음에 세월을 두고 마무리 하는 형태가 되는 셈이다.

열정은 열정적인 학구열(學究熱)은 겨울의 눈도 녹여버릴 지경이었다. 마치 마른 솜에 물이 스며들 듯이 흡수(吸收)하는 것을 보니까, 무엇을 가르쳐도 망설이는 것이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치밀하게 깊은 설명을 하면 힘들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은 다음에 다시 빈 틈을 메우면서 차근차근 빈공간을 채워나가는 형식으로 가르쳤다.

마침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간지(干支)도 가르치다, 십성(十星)도 설명했다. 그러다가는 용신(用神)에 대해서도 툭툭 치고 지나갔다. 역시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함께 한지도 대략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육갑(六甲)도 외우고 십성(十星)을 활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고, 쉬운 사주는 용신(用神)도 찾는 즐거움을 맛보자 더욱 공부에 빠져들었다. 안마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열심히 하고, 주변에서 생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주를 받아놓고 열심히 궁리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달포가 지나자 비로소 하나둘 연승점술관을 찾아오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많을 적에는 춘매가 안마소의 문을 잠그고 우창의 옆에서 사주를 뽑아주고 복채(卜債)를 받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렇게 공부의 즐거움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한바탕 손님들로 분주하다가 해가 기울어지자 비로소 둘만의 시간이 되었다. 그 틈에 차를 끓여서 우창의 앞에 내려놓고는 또 궁금한 것을 못 참고 낮에 상담하러 왔던 사람의 사주를 적어놓고는 물었다.

20200520_164901

“아까 왔던 사람 사주야, 임술(壬戌), 갑진(甲辰), 을사(乙巳), 계미(癸未)인데, 자기 팔자는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오빠가 아니라고 해서 얼굴을 붉히고 간 사람 있잖아?”

“그래, 궁금한 점이 있었나?”

“상담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왜 다른 곳에서 큰 부자(富者)가 될 사주라고 했다는 거지? 난 그게 이해가 안 되어서 말이야.”

“재물복이 많다고 봤나 보지 뭘.”

“아니, 그렇게 남의 일 말하듯이 하지 말고 잘 알려줘야지.”

“월지(月支)에는 정재(正財), 연주(年柱)도 정재, 시지(時支)에는 또 편재(偏財)까지 있으니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겠네. 하하~!”

“근데 왜 오빠는 그 사람이 돈이라고 말하자, ‘그 돈은 남의 주머니에 든 돈’이라고 말을 한 거야? 실망하는 그 사람의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호호~! 아니, 나이가 66세라면서 여태 모으지 못한 돈을 언제 모아서 부자가 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야.”

“진월(辰月)의 을사(乙巳)는 뭐가 필요할까?”

“을목(乙木)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잖아? 4토1화라면 이미 산천에는 가뭄이 들어서 초목은 모두 말라가고 있는 상황으로 본 것은 틀린 것이 아니지?”

“일간(日干) 을목은 무엇을 바라는 거야?”

“그야 오직 원하는 것은 단비네. 비가 내려야 하는데 마음은 재물을 따라가는 것이 안타까웠어. 그런데 오빠가 아무리 정신을 차리라고 암시를 줘도 들으려고 하는 것 같지가 않았어. 왜 그럴까?”

“그야 저마다 갚아야 할 업이 있기 때문이지.”

“이 사주는 무슨 업을 타고 난 거야?”

“전생에 남의 돈을 쓰고 갚지 못하고 죽었을 거야.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죽도록 노력해서 빚을 갚는 거지.”

“그런데 왜 다른 곳에서는 큰 부자가 되어서 노비도 수십 명을 거느리고 살 팔자라고 한 거야?”

“그야 내가 알 바 없지.”

“아니~ 왜 그랬을지 짐작은 할 수 있잖아. 그걸 묻는 거야.”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성향이 세 가지가 있다고 보면 될까?”

“어떤?”

“첫째로 방문자의 입 맛을 맞춰주는 형이지.”

“손님의 입맛을 맞춰주는 거야?”

“맞아,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를 잘 아는 거지. 그야말로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고, 달콤한 말로 희망고문(希望拷問)을 하는 경우가 있지.”

“그러면 나쁜 사람이잖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가니까 괜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느니 그냥 좋은 말만 해서 기분 좋게 보내주는 거지. 그것도 한 방법이라고 봐.”

“아, 꼭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란 말이지?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긴 하네. 그리고 또 다른 유형은 어떤 것이 있는 거야?”

“둘째로 공포협박형.”

“그런 사람은 손님에게 협박이라도 한단 말이야? 그런 상담이 어디 있어?”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잘 알고 있는 거지. 그래서 사주에서 안 좋게 생각하는 부분을 파고 들어가서는 두려움을 조장한 다음에 팔진(八陣)을 치거나, 굿을 하도록 유도(誘導)하기도 하는 거야.”

“참 나쁜 사람이네.”

“그것을 무슨 이치라고 할까?”

“이치는 무슨 이치. 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질이지.”

“철학자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무리 철학자라도 그렇지 이건 참을 수가 없잖아.”

“어허~! 누이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군.”

“오빠는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음양의 관점을 놓치고 있잖아.”

“음양? 상대적이라는 말? 그런 사기꾼도 상대적으로 인정을 해 줘야 하는 건가? 그러기 싫은데?”

“상대적이란 성스러운 대상에서만 찾았던 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 오빠의 이야기나 듣자.”

“공포형은 비단 점술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것도 좁은 소견이야.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기술을 발휘해서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파고 들어가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부자가 될 사주라고 한 뜻은 뭐야?”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봐야지.”

말이 자꾸 길어지자 춘매가 답답했던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왜? 답답해? 하하하~!”

“자꾸 빙빙 돌리는 것 같잖아. 난 복잡하게 설명하면 못 알아 듣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설명해 줘.”

“하나는 입맛에 맞춰서 답을 해 준 것으로 보는 거지. 부자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에게 다른 말을 해 줘봐야 좋은 소리를 듣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옛다~ 넌 부자다~!’라고 하는 것이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또 하나는 뭐야?”

“풀이를 한 선생의 공부가 다를 수도 있겠지.”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운명을 풀이하는 방법이 수십, 수백가지거든. 그 중에 어떤 학문으로 보면 가난한 팔자가 되고, 또 어떤 방법으로 보면 부자가 된다는 해석도 나올 수가 있는 거야.”

“뭐야? 그럼 안 되잖아?”

“그야 나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자평명리학으로만 본다고 해도 그래, 사주에 정재(正財)와 편재(偏財)가 많으면 부자가 된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같은 학문으로 풀이를 해도 그럴 수가 있는 거야?”

“당연하지. 용신으로 본다면 빈자의 사주인데, 용신을 모르고 십성(十星)으로만 대입하면 재성(財星)이 일곱 개면 대부(大富)이고, 재성이 하나면 소부(小富)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저마다 어떤 상담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해답을 얻게 되는 거야.”

우창이 하는 말에 잠시 생각하던 춘매가 말했다.

“맞아, 종교를 빙자해서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하고, 질병이나 심지어는 관원(官員)들도 국법을 이용해서 백성을 협박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을 본다면 다 같은 말이겠지?”

“그래서 선정(善政)이 있으면 학정(虐政)도 있는 거야.”

“오빠, 근데 선정(善政)의 상대는 악정(惡政)이잖아?”

“아직도 세상의 이치는 선악(善惡)으로만 대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서 누이의 시야가 넓어져야 할 텐데 말이다. 하하하~!”

“어? 듣고 보니 그렇게 되겠네. 그러니까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포심(恐怖心)을 조장하는 무리는 운명을 묻고 미래를 의논하러 가는 곳에서도 당연히 존재할 뿐이라는 거잖아? 그래도 그럼 안 되잖아?”

“아직도 윤리관(倫理觀)이 누이의 기억 중심에 있었구나.... 참 선량하기도 하지. 하하~!”

“윤리는 뭐야?”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을 말하지. 그것도 모범적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뒀는데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법은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기대감도 있을 것이라고 봐.”

“그럼 그것도 못 믿을 것이라는 말이야?”

“윤리관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야 성현들이 만들었겠지.”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탐욕스런 인간이 만들었을 수도 있고,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가 만들었을 수도 있는 거야. 다시 말하면 절대적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위대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그럼 오빠의 기준은 뭔데?”

“자연(自然).”

“자연? 자연이 도대체 뭐야?”

“저절로[自] 그렇게[然] 되는 것이 자연이지. 태어남, 생존함, 병듬, 늙음, 죽음, 만남, 헤어짐, 사랑함, 미워함, 날이 밝음, 날이 어둠, 봄이 됨, 가을이 됨, 바람이 붐, 구름이 낌....”

“에구, 그만하셔. 알았다구~!”

“여기에는 윤리가 발을 붙일 곳이 없어. 그로 미뤄서 생각해 보건대, 윤리는 인위적인 결과물이고 하나의 모범적인 기준은 되지만 절대적일 수는 없는 거야.”

“내가 뭘 잘 못 생각하고 있었나....?”

“옛날 수렵시대의 윤리는 적을 죽여서 간을 꺼내어서 나눠 먹는 것이었고, 지금의 윤리는 아무리 억울해도 직접 가해(加害)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정말이네. 그래서 내 가족을 죽여서 억울하더라도 원수를 갚느라고 직접 죽이지 말고 관청에 고발해서 법에 의한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옳지, 이제 이해가 좀 되는 모양이군. 다행이다. 하하~!”

“그래, 이해는 되었어. 그러니까 달콤한 말만 하는 상담가와 공포스러운 말만 하는 상담가가 있다는 거지? 또 다른경우도 있나?”

“또 하나는 조언가(助言家)의 형이 있겠지.”

“조언을 해주는 건 기본이잖아?”

“그래서 그런 형태도 있다는 말인데 뭘 발끈해?”

“조언가는 자신의 직분(職分)에 충실하는 사람이네?”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기가 꺾인 사람에게는 적당히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해서 뭐든 뜻대로 될 것처럼 나대는 사람이 찾아왔을 적에는 주의를 시켜줘서 적당(的當)히 조언하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강렬한 자극에 길이 들여져서, 이러한 상담가의 말은 시원치 않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상담을 하다가는 자칫하면 생계의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는 거야.”

“그래도 그 길이 옳으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그런 사람도 있단 말이야.”

“오호라~! 이제 알겠어. 아까 그 남자도 다른 곳에서 달콤한 말을 듣고서 기분이 좋았겠네? 그런데도 막상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니까 아무래도 그 말이 믿음이 가지 않아서 다시 오빠를 찾아왔던 거지?”

“아마도 그랬을 거야.”

“아니, 그랬으면 제대로 알려 준 것이잖아? 그러면 고맙다고 하고 감사해야 하는 거잖아? 적어도 쓸데없는 환상은 벗어나게 해 줬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화를 내는 건 참 이해가 안 되네.”

“그것을 단계적 반응이라고 하는 거야. 처음에는 화를 냈으나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해준 말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그건 아니겠지.”

“아마도 다시 생각해 볼 거야. 어느 말이 자신에게 달콤하고, 또 어느 말이 자신에게 부합이 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비로소 그동안 가능성이 없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지. 그제야 무엇이 옳은 말인지를 알게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팔자에 재물의 그릇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가 있는 거지?”

“뭐, 대충은 짐작을 할 수도 있다고 봐야지.”

“오빠, 왜 그렇게 시원찮게 말을 해?”

“아직도 내가 무슨형의 상담가인지를 모르고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 오빠는 조언가? 호호호~!”

“이제야 알았어? 참 내.”

“근데, 답이 왜 그런 거야? 남들처럼, 호언장담(豪言壯談)해도 되지 않아? 오빠의 실력이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물론, 사람이 팔자대로만 산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럼 팔자대로 사는 것이 아니야? 이건 충격인데?”

“누이의 그 충격이 어떤 건진 나도 알겠는데, 현실은 자신이 믿고 싶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거든.”

“그러니까 말이야. 왜 그렇게 팔자대로만 사는 것이 아닌 건데?”

“만약에 역병(疫病)이 돌아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면 그것은 팔자의 탓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을까?”

“그럴 수는 없겠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그 봐, 이제 누이도 나를 닮아가고 있잖아. 하하하~!”

“내가 뭘?”

“말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해지고 있으니까. 하하~!”

“어? 그랬나? 왜 그렇지? 난 원래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이니까 좋아해도 되는 거야.”

“어쨌든! 역병이 돌거나, 전쟁이 일어나서 모두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이 온전히 팔자로 인해서라고는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러면서도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은 또 뭐지?”

“실은 그 사람들의 팔자를 모두 찾아서 따져보고 나서야 비로소 팔자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는 말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맞아~! 바로 그거야. 이제 점점 철학자 티가 나기 시작하는군.”

“팔자대로 살지 않는다면, 간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 걸까?”

“그야, 팔자에서 나타난 것만큼은 알 수가 있으니까.”

“팔자를 연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나마 기본적인 암시도 모르고 허둥대면서 살다가 가겠지.”

“오빠의 말로 봐서는 팔자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꼭 알아두면 좋을 보조자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치?”

“정답이로군.”

“그러자면 그 남자의 팔자에서 암시하는 재물은 어떻게 해석하는 거야?”

“오홋~! 누이의 말이 점점 멋있어 지네. 멋져~!”

“놀리지 말아. 그런 말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았어. 그리고는 모두 떠나가 버렸지. 그러니 부디 오빠는 그런 말은 하지 마. 오빠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도 갖고 살게.”

춘매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우창도 머쓱해졌다. 농담삼아서 격려를 한다고 한 셈이었는데, 그런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 남자의 사주에서 재물의 암시는 빚문서라고 봐야지.”

“빚문서가 무슨 재물이야?”

“재물에는 두 가지가 있어. 나가야 하는 재물과 들어와야 하는 재물이지. 그 모두가 재물의 이치로 풀어야 하는 거야. 빚문서는 어디에 속하지?”

“그야 나가야 하는 재물에 속하겠네. 갚아야 하니까.”

“옳지, 잘 이해했어.”

“그럼 들어오는 재물은 뭐야?”

“팔자에 재성(財星)이 희용신(喜用神)이면 전생에 저축한 것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고, 기구신(忌仇神)이면 전생에 빚진 문서를 갖고 태어난 것으로 보면 되는 거지.”

“그럼 그 두 가지만 구분할 줄 알면 되는 거야?”

“아니, 또 하나가 있지.”

“그건 또 뭔데?”

“빚을 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저축을 한 것도 없는경우도 있으니까.”

“와~! 정말 오빠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뭔가 머릿속이 훤하게 밝아지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대단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돼. 희용신과 기구신 사이에 또 하나가 있지?”

“한신(閑神)을 말하는 것 같은데?”

“맞아, 재성이 한신이면 이에 해당하는 거야. 이런 사람은 자신이 노력하면 먹을 것이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 쌀독이 비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사흘 먹고 사는 거야.”

“뭐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그래서 다들 재물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싶은 거지.”

“근데, 재물이 있어도 누구는 천석꾼의 부자이고, 또 누구는 만석꾼의 부자인데 그런 것도 사주에 나오나?”

“아니.”

“뭐라고? 그것도 나오지 않는단 말이야?”

“재성이 기구신인 사람도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희용신인 사람도 끼니가 없을 수도 있는데 뭘.”

“그건 너무 무책임한 말이잖아?”

“책임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봐야지. 그리고 나는 그것이 궁금하지도 않아. 어떤 책에는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부유한 사람의 팔자를 연구해 봐야 별다른 점이 없어. 그냥 꿰어맞출 수는 있으나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팔자를 놓고 재물을 논하라고 하면 아마도 그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거야.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은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거지.”

“오빠의 기준에서 재물은 무슨 의미야?”

“호구지책(糊口之策).”

“그게 무슨 말이야? 먹고 사는 것이 재물이야?”

“물론.”

“쌓아놨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재물이 아니고?”

“그건 망상.”

“왜?”

“자신이 쓰지 못하면 자신의 것이 아니야. 그리고 쓴다는 것은 먹고 사는 것에서 한계를 짓는 거야. 그 이상은 불안증을 해소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욱더 많은 불안증이 생길 뿐이야. 그러니까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망상일 따름이지.”

“그래.....?”

춘매는 우창의 이야기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 진지하게 말을 하는데, 앞으로도 시간이 더 흘러가야 완전하게 이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