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제21장. 천하유람/ 9.파리괘가 보여주는 조짐

작성일
2020-04-30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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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9]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9. 파리괘가 보여주는 조짐(兆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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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림(孔林)은 공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이었다. 숲이 있어서 이름도 숲이기도 했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자 크고 작은 무덤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춘매에게 물었다.

“나무가 많아서 숲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보니 무덤이 많아서 숲이었던 거야?”

“이 무덤은 모두가 공자의 후손이야. 곡부에서 대대로 태어나서 살다가 죽으면 공림에 묻히기를 소원했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이렇게 무덤으로 숲을 이루게 된 거야.”

“그랬구나. 이건 생각하지 못했었네.”

몇 개의 문을 지나쳐서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자 전각이 나타났다. 향전(享殿)이었다. 공자의 무덤에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공자의 무덤이 큼지막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불교의 석가는 화장하여 전 세계로 유골을 나눴다고 하더니, 유교의 공자는 이렇게 고향의 산천에서 편히 묻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찾아 왔으니 향은 사뤄야지 싶은 생각에 형전에서 향불을 피우고 자신의 학문이 더욱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담아서 배례(拜禮)했다. 그러는 동안에 춘매는 밖에서 다른 방문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쉬었다. 우창이 예배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춘매가 물었다.

“참으로 오래 전부터 궁금하던 건데 오빠가 답을 해 줄 수 있을까 몰라.”

질문을 받기도 좋아하고 하기도 좋아하는 우창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 춘매였다.

“어? 뭔데?”

“공자님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

“무슨 뜻이지?”

“지금 이 순간에 공자님은 어디에 계시겠느냔 말이야.”

“천국에? 무덤에? 사당에? 책 속에? 마음 속에? 어디에 있을까?”

“그게 질문인 거야?”

“응, 항상 그게 궁금했는데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맘에 드는 답을 얻지 못해서 이젠 포기했는데 그래도 혹시 오빠라면 무슨 답을 해 줄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생겨서 물어보는 거야.”

참 엉뚱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창도 자신에게 항상 하던 질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에서 논할 만큼 가볍지 않은 질문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이따가 빈관에 가서 하자꾸나.”

“와~ 정말? 그럼 무슨 답을 얻을 수도 있겠네?”

“나도 생각해 보던 것이니까 지금 간단히 말을 할 수가 없군.”

“맞아. 그렇게라도 말을 해 준 사람도 오빠가 처음이야. 그럼 그 문제는 이따가 다시 논하기로 하고, 다음엔 주공(周公)을 보러 갈까?”

“주공(周公)의 묘(廟)도 있어?”

“무덤이 아니라 사당이지만 당연히 있어야지. 공자님이 생전에 항상 우러러 받든 성인이신걸. 곡부에서 주공의 사당이 없으면 되나.”

“아, 그렇군. 그래 어디든 가봐야지.”

주공의 사당은 공림과 공자 사당의 중간에 있었다.

“주공은 어떤 위인이지?”

춘매가 우창에게 물었다. 알고 묻는 것인지 몰라서 묻는 것인지는 우창도 알 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에서도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하려고 노력하는 우창에게는 그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주공(周公)은 문왕(文王)의 넷째아들이라지. 형 무왕(武王)을 도와서 전쟁에서 크게 공을 세우는 바람에 곡부에 봉해지고는 노공(魯公)이라고 불렸다고 전하는데 곡부에서 주공사당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역경에 조예가 깊었다고 들었는데, 싸움만 하러 다녔던가 보네?”

“웬걸, 백성이 잘 살아갈 수가 있는 규칙과 예악(禮樂)을 정리해서 공자님이 가장 닮고 싶었던 사람 중에 으뜸이라고 해야지. 상나라를 꺾고 주나라를 세우는데도 큰 공을 세웠으니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고 해야 하겠네.”

“대단한 사람이었던건 분명했나 보구나.”

“노나라도 주공이 봉읍으로 받아서 생긴 나라잖아. 공자님이 스스로 노나라 사람임을 자랑으로 여긴 것도 주공의 공덕을 칭송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될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주왕의 사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냥 사당이 아니라 궁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성을 들여서 가꾼 모습은 공자의 사당못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성현(聖賢)의 덕업(德業)은 길이길이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봐도 되지 싶었다.

“이제 여행자로써의 볼만한 곳은 대략 둘러 봤네.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께요. 오늘 어떠셨어요?”

갑자기 말투가 달라지자 우창이 오히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하지 다시 돌아가는 것은 또 뭐람. 그런 예의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좋으니 괜찮으면 계속 이렇게 하자고 하고 싶었다.

“계속 오누이로 대화하면 안 될까?”

“안 될거야 뭐 있어? 싫지 않으면 그렇게 해. 난 좋아. 호호호~!”

“그래 벌써 적응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자.”

“오빠, 우리 어디 가서 목이라도 좀 축일까?”

“그래 좋지.”

우창은 춘매를 따라서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비교적 조용했다. 우창이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아줌마, 파전병이랑 술도 한 근 주세요.”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해 놓고는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턱을 고이는 춘매를 보니까 이따가 말을 해 주기로 한 그 질문을 들을 때라는 자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난 그게 제일 중요하니깐. 어서 말좀 해줘봐.”

“다시 물어. 난 잊어버렸어.”

“공자님은 지금 어디에 계셔?”

“모르지.”

“엉? 왜?”

“모르니까지 왜는 뭘 왜야.”

“그럼 우리가 오늘 다니면서 본 것은 다 뭐야?”

“기념품.”

“공자묘와 주공묘가 모두 기념품이라고?”

“물론.”

“그렇다면 기념품에 불과한 것을 보려고 왜 여기까지 왔지?”

“기념품이니까.”

“응?”

“이해가 안 되지? 춘매의 부모의 부모는 어디 계실까?”

“모두 돌아가셨어. 구천(九天)에 계시지.”

“구천이 어딘데?”

“하늘 위의 또 그 위의 맨 꼭대기에 있는 하늘이지.”

“구천에 계신거야? 구천에 계실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보지는 못했으니 아마도 생각인 걸까?”

“공자님이 죽은 다음에 대해서 말을 했을까?”

“그럼 안 하셨나?”

“당연하지. 누가 물었단다. 귀신이 있느냐고?”

“그래? 공자님이 뭐라고 답하셨대?”

“모른다고.”

“아니, 대성인 공자도 모르는 것이 있단 말이야?”

“모르기도 했겠지만 말을 하기 싫었을 수도 있지. 질문을 한 사람은 천국이든 극락이든 지옥이라도 그런 세계에 대해서 진정으로 궁금해서 물어봤을텐데 그런 것이 없다고 하면 상처가 될 것이고 있다고 하면 거짓이 될 수도 있으므로 둘러댄 말이라고 봐.”

“차라리 없다고 하는 것이 더 개운하지 않아?”

“만약에 없다고 했으면 공자는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 수도 있지.”

“왜? 성현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믿기지가 않아.”

그러는 사이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춘매가 우창의 술잔에 가득 따라주고 자신은 물을 따라서는 건배를 하고 물을 마셨다. 우창도 술을 한 모금 마시니 빈속에 들어가는 불길이 목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파전을 떼어서 입에 넣으니 향긋한 냄새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누이가 생각하는 성현은 뭔데?”

“나면서부터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

“그럼 공자님도 그랬단 말이네?”

“당연하지않아? 그래야 하는 거지.”

“하루는 성격이 급한 자로가 물었더란다.”

“누구에게? 공자님께?”

“그래. ‘성인도 배우십니까?’라고.”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자로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성인은 배우지 않아도 알 것이니 얼마나 좋을까? 공부를 아무리 해도 모르겠으니 머리만 지끈지끈하고 힘들어서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온 질문이지 않을까?”

“와우~ 오빠의 남의 속마음 들여다 보는 기술은 수준급이네. 호호~!”

“그야 나도 공부하다가 백번도 더 가져 본 생각이었으니깐. 하하~!”

“아, 그래서 자로의 마음을 잘도 알고 있구나. 그래서 공자님이 뭐래?”

“이게 뭔 헛소리냐고 깜짝 놀라셨다지.”

“왜? 그럼 성인도 배운다는 말인거야?”

“당연하지.”

“의외네. 공자님은 태어나면서 모두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논어(論語)에서 공자님이 제일 먼저 한 말이 뭔지 알아?”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잖아. 그 정도야 알지.”

“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제일 먼저 나온 글자를 봐.”

“배울학이네. 그건 제자들에게 열심히 배우라는 뜻이겠지.”

“공자님이 말년에 어디에 빠져있었는지는 알까?”

“위편삼절(韋編三絶)을 말하려는 건가?”

“아니, 누이도 글공부를 제대로 했잖아? 반갑네.”

“그게 곡부사람들의 기본이란 것도 몰랐어? 호호호~!”

“아, 그렇구나. 잠시 잊었었네.”

“이제 알겠어. 공자님도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셨구나.”

“그럼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해가 되었어. ‘성인도 배운다.’라고.”

“옳지, 누이의 학습태도가 참 매력적이네.”

“오호라~! 칭찬인 거지? 난 칭찬에 약해. 호호~!”

“과거의 공자님은 어디 있었을까?”

“그야 여기에서 말년을 보내셨잖아.”

“지금 현재는 없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과거는 잡을 수가 없다는 건 알아?”

“과거는 잡을 수가 없지만 기억 속에 있잖아? 그래서 기념관을 만들어서 두고두고 잊지 말라고 기리는 것이기도 하고.”

“기억은 확실한 거야?”

“직접 겪은 일인데 확실하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우창은 자기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밝히는 춘매의 태도가 맘에 들었다.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 답답하지 않아서 좋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인한 부작용은 상대방을 답답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따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음양의 이치이다.

“기억은 현실이 아니고 구름조각 같은거야. 그래서 절대로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지. 더 예쁘게 꾸미거나 더 슬프게 만들거나 혹은 단순하게 보여주거나 더 복잡하게 보여주기도 하지. 구름처럼 수시로 변하는 기억인데 어느 것이 진짜로 자신이 겪은 것인지를 단정할 수가 있을까?”

“음, 생각보다 복잡하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될까?”

“단순하게? 그럼 단순하게 알려 주마.”

“어떻게?”

“지금만 살아.”

“엥?”

“그게 뭐야?”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다면 있는 것은 뭐야?”

“그야 오늘이잖아.”

“오늘도 너무 길어, 그냥 ‘지금’이라고 생각하란 말이야.”

“정말 간단하네. 호호호~!”

머릿속이 복잡해진 춘매가 말했다. 우창도 더 이상 파고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봐서 이 선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괜히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오빠는 주업이 뭐야?”

“나? 뭐 하는 사람으로 보여?”

“어떻게 보면 학자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떠돌이 건달도 같아서 종잡을 수가 없네. 그래도 궁리는 많이 하는 것으로 봐서 장삿꾼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 알쏭달쏭해서 짐작을 못하겠어. 더구나 벼슬길을 나가려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누이가 본 대로야. 방랑객(放浪客)이지. 천성이 매이지 못해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지.”

“생긴 것만 봐서는 서생(書生)이 맞는데 왜 과거를 볼 생각은 안 하지? 나이도 젊은데 미래를 설계해야 하잖아?”

“방랑객이라고 했잖아. 방랑객은 떠돌이기질로 인해서 한 곳에 매여있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목민관(牧民官)이 되겠어. 하하~!”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살 참이야?”

“아니, 누이가 내 미래를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그냥 오늘만 생각하면 안 되나? 난 지금 곡부에서 누이와 즐거운 이야기도 나누면서 향긋한 술과 더불어 더 아쉬울 것이 없는데 말이야. 하하~!”

“하긴, 그렇지. 남의 삶에 간여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오빠와 다니면서 관심이 생겼나보네. 이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우창이 단도직입적으로 냉정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섭섭해서. 샐쭉해졌다.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말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솔직한 것도 좋지만 좀 가려서 하면 안 되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서운했던 것이다. 그 표정을 보면서 우창도 미안했던지실토를 했다.

“실은 산명가(算命家)야.”

“우와~!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 원래 산명가는 나이가 좀 들어서 수염이 허옇게 된 할아버지들이나 하는 것인 줄로만 생각해서 오빠가 차마 그러한 방향으로 전문가일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지 뭐야. 호호호~!”

“뭘 그렇게 반가워해? 집떠난 오래비라도 살아서 돌아왔나?”

“아니야, 실은 나도 그러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스승님을 만나지 못해서 갈증만 가득하단 말이야. 이웃에 도사님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가짜같거든, 공부하고 싶어서 가끔 찾아가는데 자기와 속궁합을 맞춰야 일생을 행복하게 잘 살 수가 있다는 거야. 그 시커먼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여서 도저히 가까워지고 싶지가 않았거든. 그래도 관심은 점점 깊어져서 육갑(六甲)은 외웠지 뭐야. 그런데 그것만 외우면 뭘 하느냔 말이지 쓸 방법이 없으니, 마치 잡을 소도 없는데 칼만 사놓은 꼴이지 뭐야.”

갑자기 말문이 열렸는지 쫑알쫑알 떠드는 폼을 봐하니 보통이상의 마음은 먹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을 찾아가봤지만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았더라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초록동색(草綠同色)이랬다. 명학(命學)에 관심을 가졌다는 낭자를 만났으니 우창도 흥겨워졌다. 그래서 술을 한 주전자 더 시키고 안주도 돼지고기로 추가했다. 자릿값은 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빈관에서 이런 수다를 떤다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니 딱 제격이었다.

“그 도사영감이 귀신을 잡아내는 기술을 알려준다고 해서 안마로 번 돈을 갖다 바치고 배우긴 했는데 이게 맞는 것도 같고 안 맞는 것도 같아서 아리송하니까 내 성미에 차지 않아서 제대로 된 사부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토지공묘에 가면 꼭 기도를 하곤 했잖아. 와우~ 넘넘 좋아~!!”

우창은 돈을 갖다 바치고 배웠다는 것이 뭔지 궁금했다.

“잘 되었네. 그럼 돈들여서 배웠다는 그 비법으로 내 운명을 좀 봐줘. 그럼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가 있지.”

“그런가? 자신은 없지만 배운대로 해 볼게. 우선 생년을 알아야 하는데? 오빠의 태세가 어떻게 돼?”

“계사(癸巳)년.”

“어? 그럼 올해 서른 여덟살이야?”

“아마도.”

“나보다 열 살 위네. 난 계묘(癸卯)생이니깐.”

“그렇구나. 그래 내 운수는 어떻게 나왔어?”

“기다려봐. 육효를 보려고 해도 점괘를 뽑아야 하는데 알만한 분이 뭐가 그리 급하실까 쯧쯧~! 호호~!”

“나이를 알려주면 바로 나오는 거 아니었어? 돈을 들여서 배웠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하하하~!”

“오늘 일진을 알아야 하는데.... 뭐지?”

“을묘(乙卯).”

“우왕~! 산명가(算命家) 오빠를 두니 세상 편하네. 척척이구먼. 호호~!”

“또 뭐가 필요해? 시진(時辰). 신시(申時)네.”

“아니, 오빠는 지금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는 거지? 잉~ 그럼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잖아.”

“세상에 술법(術法)이 얼마나 많은데 단지 그것만으로 어찌 아누. 어서 법술(法術)을 펼쳐봐 나도 궁금하니깐.”

하는 폼이 보나마다 거금을 받아 챙기고는 단시점(斷時占)을 알려준 것이 분명했다. 우창이 모처럼 단시(斷時)를 따져보니 점괘는 20수(數)의 파리괘가 나올 것이 분명하겠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렇지만 시치미를 떼고 하는 폼을 보기로 했다.

“어? 파리괘네.”

“엉? 파리라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사실 단시점같이 단순한 것은 임기응변(臨機應變)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도구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통변(通辯)이 되지 않으면 점괘만 있고 해석이 없는 절벽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고, 아마도 춘매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려니 싶었다. 어디 뭐라고 해석하나 보자는 마음에 흥미가 동했다.

“파리괘는 굿을 하는 거라고 했는데... 오빠에게 굿을 하라는 것이 말이 돼요? 앙~! 이렇다니까요. 그 사기꾼같은 도사영감이 이런 것을 던져주고는 전수비용만 꿀꺽했지 뭐예요. 속상해요.”

우창은 문득 옛날에 동행했던 추연이 떠올랐다. 그가 백발도사 시절에 만났던 장면이 떠올라서 미소를 지었다. 춘매가 우창의 그 모습을 보고서는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던지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힝~! 지금 제가 하는 짓이 같잖죠? 그래서 우습고 기가 막히죠? 그래요. 그게 춘매예요. 어쩌겠어요. 이렇게 밖에 못 배웠어요.”

홧김에 동생놀이도 잊어버렸는지 갑자기 존칭어로 하소연같은 푸념을 해서 우창이 도리어 난감했다. 무엇보다도 춘매의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부터 풀어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젊은 여인이 공부하고 싶어서 이렇게도 안달을 했다는 것이 가상(嘉尙)해서였다.

“내가 볼 때 그 도사님이 제대로 비법을 전수해 주신 것같은걸.”

“예? 뭐라고요?”

갑자기 춘매의 눈망울이 화등잔만해졌다. 정말 그것이 맞다면 억울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만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우창의 입만 쳐다봤다. 어서 제대로 풀이를 해 보라는 듯이.

“파리라고 했나?”

“맞아, 틀림없이 점괘는 파리괘야. 근데 뭐가 맞는다는 거지?”

“지금 우리 앞에는 뭐가 있지?”

“뭐가 있느냐니 상위를 말하는 거야? 요리와 술이 있지 뭐가 있긴. 그게 점괘랑 무슨 상관이라고 괜히 나를 위로하려고 할 필요 없어요.”

“지금 내가 파리라는 거잖아? 그리고 앞에는 진수성찬이 있다면 이 점괘는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어? 그럼 매우 좋은 거네?”

“만약에 우리 앞에 뜨거운 차가 있거나 이글대는 화롯불이 있다면 또 파리는 어떻게 될까?”

“그럼 찻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고, 화롯불에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겠네. 그럼 나쁜 거잖아?”

“더구나 예쁜 낭자까지 옆에서 흥을 돋궈주니 팔자 좋은 파리가 분명하지 않아? 어때? 점괘에 문제가 있나?”

“전혀요~! 점괘가 문제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석을 못한 거였네. 이런~! 멍청이같으니라구~!”

“당신은 파리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다니는 사람 맞습니까? 하고 물어봐. 그럼 내가 뭐라고 대답할까?”

“그야 당연히 ‘예, 그렇습니다.’라고 하겠지. 우와~! 그런 거였어? 난 도대체 뭘 한거지?”

“가령 거미괘가 나왔다고 쳐봐. 자유롭게 다닌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어?”

“그야 말이 안 되지? 어? 근데 오빠는 내가 배운 것이 무슨 점법인지를 이미 다 알아버린거야? 내 그럴 줄 알았어. 호호~!”

우창은 춘매의 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 겨울이라고 생각해봐. 파리는 어쩔 수가 없이 얼어죽게 되지 그러면 매우 나쁜 점괘가 되는 거야. 지금 돼지고기 요리가 앞에 있으니 파리에겐 진수성찬이잖겠어?”

“정말이네. 감동감동~! 우왕~! 왜 그걸 진작에 몰랐을까요. 이게 다 그 가짜도사 영감쟁이 때문이야. 방법을 알려주려거든 끝가지 잘 알려줘야지. 이렇게 대충 알려주고는 알아서 하라니 알아서 되면 왜 못 써먹냔 말이야. 그러니까 도사가 해석하면 기가 막힌데, 내가 풀이하면 도무지 해석이 되질 않는거야. 그래서 속은 줄로만 알았지. 아니면 도사가 뭔가를 숨기고 덜 가르쳐 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수업료가 생각이 날때마다 욕이라도 해서 불만을 해소하곤 했었잖아. 오늘 오빠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 도사는 다 알려 준거였어. 내가 멍청해서 써먹지를 못한 거였네. 바보~!”

그러면서 자기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 춘매를 보면서 참으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자질이라고 생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