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 지식(知識)과 지혜(智慧)

작성일
2015-03-21 10:12
조회
4744

[667] 지식(知識)과 지혜(智慧)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계룡산 자락에서도 새 봄의 풍경이 나날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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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마당가 모습입니다. 샛노란 수선화가 다소곳하게 해를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참 곱습니다. 꽃이 핀 자리는 작년의 그 자리임에 틀림 없지만, 꽃은 작년의 꽃이 아닌 것도 확실하네요. 그래서 같은 공간과 다른 시간이 서로 만나서 어우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1. 지(知)의 의미


문득 지식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식은 습득하는 것이고, 쌓이는 것이고 힘이고, 그래서 재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백과사전이라고도 하잖아요. 뭐든 물으면 답이 나오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부럽기도 하네요. 어쩜 그렇게도 기억력이 좋은지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모조리 기억창고에 차곡차곡 쟁여놓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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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력하면 쌓이는 것이 지식이라고 하겠습니다. 글자를 보면 왼쪽에는 화살을 나타내는 살시(矢)가 있고 오른쪽에는 입을 나타내는 입구(口)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살과 입에 대한 연관성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둔한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않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원래의 모양을 비틀어서 해답을쥐어 짜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입구(口)는 입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궁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자칫하면 공화(空畵)가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꼴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하~


화살과 입은 아무리 연결을 시키려고 해도 길이 보이지 않아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입이 아니라 과녁으로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지요. 화살과 짝을 이루는 것은 과녁이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서 다시 짝을 맞춰 봅니다. 화살과 과녁, 그렇군요. 비로소 그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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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림이 되네요. 화살이 과녁으로 날아가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 명중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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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과녁에 꽂힌 화살이 바로 지(知)자로 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무슨 의미로 해석이 되어야 할까요? 과녁에 화살이 날아가서 꽂히는 것을 명중(命中)이라고 합니다. 그 용어에 목숨명(命)이 붙어있다는 것이 참 묘하지요? 화살이 과녁에 가서 맞았는데 왜 명중이라고 할까요.....?


더구나 한 가운데의 10점짜리에 맞아야 명중이라고 합니다. 그 옆으로 조금 벗어나면 맞기는 했지만 명중이라고는 하지 않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명중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命은 왕이 분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中은 한 가운데를 말하는 군요. 그렇다면 한 가운데 맞추라고 왕이 명을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 맞았다는 것으로 인해서 명중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명중을 풀이하면 어떻게 되나요?


『명령(命令)대로 적중(的中)했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안다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낭월의 소견으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을 일러서 知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상황에서 그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만 가장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이치를 아는 것이야말로 지가 된다는 이야기지요. 대충 맞는 말도 있고, 비슷하지만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앎도 많으니까 말이지요.


그러한 것을 담아놓은 책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백과사전일 것입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에서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면 개정판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한 것을 본다면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은 비교적 지식분자들이 검증을 하여 확인된 내용들을 담은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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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많은 지식들을 쌓아놓은 것이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지식이 쌓이는 것이겠지요. 아, 知를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식(識)이튀어나왔네요. 그렇지만 이 둘은 항상 붙어다니고 있으니까 거부감 없이 수용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지(知)가 쌓이면 식(識)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될 것으로 정리합니다. 지식인은 그런 의미에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知)는 알알이 존재하는 구슬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 식(識)은 그것을 적절하게 용도에 맞게 정리해 놓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구슬은 낱개로 굴러다닐 수가 있습니다만, 이것을 갖고서 가방도 만들고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그리고 기왕이면 명중한 지식이기를 바라게 되기도 합니다. 혹여 잘못 된 지식, 즉 빗나간 지식을 모아놓게 된다면 그 결과는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할 쓰레기를 담아 놓는 셈이므로 악취만 풍기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까닭입니다. 또 어제까지는 쓸만한 지식이었던 것이 오늘은 쓸모가 없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간통죄라는 것이 한 예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2. 배워서 아는 것 - 지식(知識)


정확하게 아는 것이 지(知)가 되고 그것이 쌓이면 식(識)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식이라는 의미 속에는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겠네요. 많은 식(識) 중에서 제대로 된 것을 지식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결국은 제대로 배워서 알게 된 것을 지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식(識)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사전을 본다면, 판별하고, 자세히 하고,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글자의 생김새를 본다면 말[言]과 찰진흙[戠]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찰지게 하는 것이 식(識)이로군요. 재미있습니다.


식자분석


識자를 분석해 봤더니 이렇게 네 글자의 조합이로군요. 가운데의 설립(立)과 날일(日)을 붙여서 소리음(音)이 되기도 하는데 말과 소리로 본다면 音이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 글자의 의미로 봐야 하겠군요. 그런데 창과(戈)가 오른쪽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音과 戈를 붙여놓은 것이 찰진흙 시(戠)가 되었네요. 소리와 창에서 찰진 흙을 유추해 내다니..... 이것은 무슨 기적을 보는 것 같습니다. 놀라울 따름이지요. 퍼즐 조각이 맞질 않아서 고민하고 있는 낭월입니다. 하하~


시


소리와 창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것이 왜 찰진흙, 그러니까 찰흙이 되는지 알 방법이 없지 싶은데 그 코드를 찾을 수가 없으니 항상 지식이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낭월입니다. 배워야 할 것은 많은데 시간은 너무 짧고 그것을 흡수하는 능력은 더욱 우둔하니 항상 자탄을 할 뿐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 해결이 될 것 같지가 않아서 일단 다음 기회로 미룬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도망을 치는 것이 상책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영감이 퍼뜩~! 와준다면 수정하겠습니다.


이제, 말과 찱흙에 대해서만 분석을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말과 찰흙이 알식(識)이라는 말이로군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말을 찰지게 한다는 건가요?" 합니다. 뭐 말이 안 될 것도 없지만 낭월보다도 더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에 위안을... ㅋㅋㅋㅋ


지식의 두 글자 속에서 화살[矢]과 창[戈]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과거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기를 동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처음에는 활로 쏘아서 지식을 얻고, 다음에는 창을 써서 지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멀리 있는 것을 활로 쏘아서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 내가 확보한 것은 창으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 봅니다.


원래 활은 공격용이고, 창은 수비용이잖아요. 그러니까 지는 공격적인 의미가 있고 식은 수비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봐서 지(知)는 양(陽)이고, 식(識)은 음(陰)이 된다고 봐도 가능하겠네요. 이것이 지식의 음양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지식이란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를 해 봅니다.



3. 휘발성인 말은 찰흙에 새겨야 한다.


말은 흘러가버리면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누군가에게 전해 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하셨을 고인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그것을 적어놔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없었던 것은 라면 만이 아니지요. 종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흙에다가 새겨야만 오래 가도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도 매우 찰진 흙이라야 하겠군요. 그렇지 않으면 세월이 흘러가서 수분이 증발하고 나면 부슬부슬 부스러져 버릴테니 말이지요. 그래서 말씀[言]과 찰흙[戠]이 모여서 알다[識]이 된 것으로 보면 되지 싶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찰흙에 새겼다가 점차로 발전하면서 그것을 불에 구워서 도자기가 되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부서지고 깨어지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뼈나 거북의 등에다가 새겼겠습니다. 그러나가 그것조차도 오래 보관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봐서, 다시 동판에 새기고, 또 그 다음에는 주석에 새겼겠네요. 고인의 정확한 지식을 후손에게 전달해 주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이렇게 지식(知識)의 의미를 헤아려 봤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선현들께서는 지식이 부족해서 그것을 하나 얻으려고 천리 만리를 방황했을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니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도 뒷목이 땡겨서 그럴 수가 없기도 하네요. 모쪼록 지식을 많이 쌓아서 무식(無識)함을 면해야 하겠습니다. 지식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유식(有識)이라고 본다면 그것이 없다면 무식이 되는 것이겠기에 해 본 생각입니다.


다시 식(識)을 분해하면, 말씀[言] + 소리[音] + 지킴[戈]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창과(戈)의 글자에 지킨다는 의미만 있으면 이러한 해석은 유효하다고 하겠구먼요. 다시 사전을 뒤지러 갑니다. 휘리릭~~ (뒤적뒤적....) 아무리 뒤져봐도 지킨다[守]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았던가 봅니다. 다만 의미로만 봐서 창을 들고 도서관을 지키는 것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문득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생각나네요. 전 세계를 누비면서 지(知)를 화살로 공격하여 빼앗았지요. 그리고는 모조리 자기 나라로 싣고 가서 차곡차곡 쌓아놓고 아무도 손을 못 대도록 지키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지식은 그렇게 빼앗아다가 쌓아놓고 활용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는 해석도 해 보게 됩니다.


말씀은 소리고 전해지고 그 소리는 지킴으로써 자손만대에 유전(流傳)되는 것이니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에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이렇게 지식의 의미를 정리해 보기도 합니다.


5. 지(智)의 의미


지식의 지(知)와 지혜의 지(智)가 서로 다릅니다. 그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서 또 안달이 난 낭월입니다. 알지(知)와 지혜지(智)로 보통 부르기는 합니다. 사전에서는 슬기지(智)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글자의 차이는 실제로 무슨 의미가 다른지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 봐야 하겠네요. 안다는 것과 슬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글자를 분해하면 이미 앞서 의미를 생각해 봤던 지(知)에다가 날일(日), 혹은 가로왈(曰)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사전에서는 날일로 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보면 되겠습니다만, 의미에서는 가로왈이 더 제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曰]으로 이해하는 것이 날[日]로 보는 것보다 의미 전달이 더 잘 될 것 같아서 말이지요. 어쩌면 고대에는 그런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어거지를 써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하~


그럼 뜻이 어떻게 됩니까? 아는 것[知]을 말한다[曰]가 되네요. 멋집니다. 알고 있는 것을 말 해야지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지혜[智]라고 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날일보다 가로왈로 보는 것이 편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단 사전을 뒤져봐야 하겠네요. 이번에는 전각(篆刻) 사전입니다.


전각사전


책을 본 김에 욕심이 생겨서 사오긴 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또 몰랐네요. 여하튼 사전은 많을 수록 좋다는 주의가 이런 경우에는 먹히는 것 같습니다. 해당 항목을 찾아 봅니다.


사전1


그렇군요. 옛날에 금석문에서는 지(智)를 어떻게 썼는지 일목요연하게 나타나는 구먼요. 그리고 역시~! 생각한 대로입니다. 날일이라기 보다는 가로왈의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니까 말이지요. 한 부분을 발췌해 보면 더 명료해 지겠습니다.


사전2


이렇게 보니까 분명하게 나타나는군요. 가로왈도 아닌, 아예 그냥 입구(口)로 썼다는 것까지 보여줍니다. 역시 지식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전의 자료가 없으면 왜 알지 아래에 날일이 붙어있는지를 납득할 방법이 없었을테니 말이지요. 그래서 또 억측을 하고 그것을 적어놓으면 또 그대로 전해 주고 전해 받으면서 결과적으로는 십만팔천리가 되겠네요. 분명히 확인할 수가 있으니 이제 지혜지(智)는 알지(知) 아래에 원래는 가로왈(曰)을 썼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아는 것을 말한다는 의미가 바로 지혜지(智)가 되는 셈이네요. 물론 《도덕경(道德經)》에서는 이 두 의미를 모두 지(知)로 사용한다는 것도 참고로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고대에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구분을 하지 않고 사용했다는 의미도 되겠기 때문에 너무 글자에만 집착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만 현대에서는 이렇게 구분을 할 수가 있겠다는 의미로 정리를 하면 되겠네요.



6. 지혜혜(慧)의 의미


다음은 혜(慧)자..... 이것은 참.... 접근하기가 여간 껄꺼럽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참에 분석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선 비혜(彗)부터 의미를 찾아봐야 하겠네요. 마음심(心)은 그 다음에 해결을 보도록 하면 되겠지 싶습니다.


비혜


비혜(彗)는 청소도구인 빗자루를 말합니다. 위의 예쁠봉(丰)이 두 개로 겹쳐있고, 그 아래에 고슴도치계(彐)자로 포개어 진 글자로군요. 아마도 고슴도치계는 손[手]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빗자루를 손으로 잡아야 할테니 말이지요.


비질을 한다는 글자는 이외에도 또 있습니다. 쓸소(掃)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청소한다고 할 적에 사용하는 글자로군요. 오히려 빗자루를 들고서 청소를 하는 것은 이 글자가 제격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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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에는 이 글자를 달리 썼던 모양입니다. 다음과 같이 생긴 글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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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같은데 더 간단했군요. 그렇다면 간단한 글자가 왜 더 복잡해 졌을까요? 그것은 청소의 도구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여하튼 여기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꼭 붙어다니는 것이 고슴도치계(彐)자입니다. 아마도 청소하는 도구가 고슴도치 머리처럼 생겼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물질적인 티끌을 제거할 적에는 쓸소(掃)를 쓴다고 한다면, 비혜(彗)는 마음에 낀 때를 청소한다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깨끗하게 청소하여 마음이 맑아짐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지혜의 한 자리에 떡하니 차지하고 있을 자격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슴도치[彐]라고는 하지만, 그 위에 있는 것이 예쁜 사슴의 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혹 지혜로운 사슴을 본뜬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슴의 뿔이 귀중한 대접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면, 새 봄을 맞아서 솟아오르는 사슴의 뿔보다 예쁜 것이 또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니까 예쁜 이유가 녹용이라서 그렇다는 의미도 가능할 듯 싶습니다.


예쁠봉(丰)이 둘로 겹쳐져 있으니 많이 예쁘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그리고 생긴 것으로 봐서 왜 예쁘다는 것인지는 퍽 와 닿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 아래의 고슴도치머리 혹은 돼지머리[彐]가 많이 예쁘다는 의미로 풀이를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그렇게 되면 터진가로왈의 의미가 이어지게 됩니다. 말을 막힘없이 해서 툭 터졌다고 한다면 도를 깨달았다는 의미로 확대해석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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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자를 보면, 반드시 예쁠봉(丰)으로만 썼던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주인주(主)를 겹쳐놓은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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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료를 보면 반드시 예쁠봉이 아니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주(主)가 둘 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주인이 둘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면, 주체(主體)라는 의미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지혜는 내면에 존재하는 주인 즉 주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터진가로왈의 의미도 생각해 봅니다. 그 말은 왈(曰)에서 왼쪽의 막힌 것이 없어서 터졌다는 말이라고 하겠는데,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막힘없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혜의 지(智)는 올바르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적에, 혜(慧)는 천지인의 이치를 꿰뚫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 마치 빗자루로 쓰레기를 없애버리듯이 하는데 그것의 의미는 마음을 나타낸다고 해석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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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지혜혜(慧)를 대략 정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하튼 지와 혜의 의미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맑고 밝은 명석함으로 모든 잡다간 것을 쓸어버리고[彗], 그 자리에 마음이 자리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지고무상(至高無上)의 대지(大智)가 되는 것으로 해석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문수보살(文殊菩薩) 정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지(智)의 의미로 지혜에 대한 설명을 다 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혜(慧)는 괜히 붙어있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좋은 뜻으로 붙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실상은 없어도 이해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들어서 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한담을 쓴지가 며칠 되었는데 어느 독자께서 메일을 보내 오셨습니다. 慧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상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실은 감상이 아니라 한 수 거들어 주는 내용이어서 여기에 덧붙여놓겠습니다. 벗님의 생각에 약간이나마 기름을 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의견을 주신 독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독자의 보충 의견]===============


knowledge_experience_creativity


여기서 지식은 그야말로 지식이고 지혜는 두가지의 의미가 추가되는데 한가지는 경험을 통해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그것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궁리하여 새로운 맥락을 그려내는 것이 되겠습니다. 慧라는 글자가 彗와 心으로 되었으니 마음을 쓸어낸다(영어로는 파괴하다라는 뜻의 disrupt라는 표현을 innovation관련해서 가장 많이 쓰고 있습니다)는 의미가 되고, 이는 경험을 할때 가진 맥락을 지워야, 즉 두번째 그림의 선들을 지워야, 새로운 맥락을 연결할 수가 있기에 혜자에 그런 의미를 넣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智慧와 創意는 같은 의미인 것 같고 창의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智慧라는 글자속에 모든 방법론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때 이루어진다는 쌩땍쥐베리의 이야기가 智慧의 彗자의 의미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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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내 준 내용을 보면서 지혜의 의미를 잘 이해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7.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


정리를 해야 하겠네요. 간단하게 해도 될 것을 괜히 집적거렸더가 사전을 뒤지느라고 고생 좀 했습니다. ㅋㅋ


그래도 애매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명료하게 정리가 되어서 그만큼의 소득은 있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지식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빛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처음에는 지식을 쌓아서 상식을 높인 다음에 스스로 그 지식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궁리하여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는 밝은 지혜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한편, 음양(陰陽)의 관점으로 지식과 지혜를 살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지식은 음과 같아서 계속해서 흡수하고 저장하는 성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색으로 본다면 검은색이지요. 빛조차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 아이큐가 높다고 하나요? 이와 같이 잘 빨아들이는 사람은 흡수력(吸收力)이 좋다고도 합니다.


시시콜콜명리학시리즈의 《음양》편을 본 독자라면, 지식과 지혜는 음양의 분류에서 어디에 해당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알 수가 있겠지만 체는 변하지 않고 용만 변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겠네요. 그러니까 지식은 陰에 해당하므로 체(體)가 되고, 지혜는 陽에 해당하므로 용(用)이 되어서 짝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지식만 있고 쓸 줄을 모르는 것은 체만 있고 용이 없는 셈이니 아마도 죽은 지식이라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하하~


그렇다면 지혜는 당연히 밖으로내 뿜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지식과 지혜는 제대로 한 세트가 완성 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저장만 된 지식은 지혜가 아니라는 것도 명백해 지는 군요. 지식이 속에서 곰삭아서 새로운 깨달음이 이뤄진 다음에, 마치 쌀과 누룩이 항아리에서 적당한 열을 받아서 분해가 된 다음에 전혀 다른 물질인 술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술과 누룩을 담아놓는 것은 지식이고, 그것이 술로 변한 것은 지혜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지식에서 지혜가 되는 과정에서는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었군요. 그것은 바로 열(熱)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는 열정(熱情)이 되겠군요. 따지고 보면 세상 만물을 변화시키는데 열정이 없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노래 한 곡을 외우는데에도 열정이 없이는 될 턱이 없을테니 말이지요. 이러한 힌트는 앞에서 독자의 메일을 보고 문득 느낌이 든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열정이 만나서 점점 지혜로움으로 재생산이 되는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벗님의 마음도 지식과 지혜의 사이에서 오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해 봅니다. 그렇게 오가면서 점차로 마음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과정 속에서 세상의 이치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보면 타당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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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시작한 이야기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점에서야 마무리가 되었으니, 낭월한담 사상 최장시간의 글이었다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모쪼록 약간의 상식에 도움이 되셨기만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3월 2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