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나의 행위[業]가 어떻게 다음 생으로 연결 될까?

작성일
2014-02-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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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나의 행위[業]가 어떻게 다음 생으로 연결 될까?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작업하던 백수점단의 제목 유래에 대한 것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 약간의 여유를 얻었습니다. 《運勢》편의 원고를 손봐야 하는데 잠시 숨 좀 돌리려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부터 어떻게 이해를 해야 좋을지를 생각해왔던 업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맘을 일으킵니다. 아마도 벗님의 생각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낭월의 생각을 따라가시면서 나름대로 단서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1.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
 
  업연(業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위에 의한 고리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고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행위는 존재 할 수가 없다고 보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끝은 태아의 탯줄처럼 우주비행사의 산소호스처럼 그렇게 끊어질 수가 없고 끊어져서도 안 되는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업이 선업이건 악업이건 구분하지 않고 모두 같은 인과법(因果法)이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선인과 악인이지요. 물론 세 가지로 구분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불선불악인(不善不惡人)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를 흑백의 이분법으로 생각하려는 습관으로 인해서 선악으로만 나눠놨을 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불선불악인에 해당할 것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 악인이 된 사람도 있도, 원래 불량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종교인이 되어서 신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러한 상태의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맹자와 순자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사람은 선하다고 생각한 철학자도 있었지만, 또 반대로 사람은 악하다고 생각한 철학자도 있었던 것은 뭘 의미할까요? 그것은 모두 한 면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즉 맹자가 본 것도 맞고 순자가 본 것도 맞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불선불악설을 하나 추구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물이 든다는 부처의 이야기입니다.
 
  부처가 제자들과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부처는 항상 길을 걸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시장 주변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끈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아난에게 그 끈을 주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서 사원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천 조각을 하나 주웠습니다. 또 아난에게 그것을 주워오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아난은 부처의 비서라고 할 수 있는 제자입니다.
 
  조금 더 걸어서 조용한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다달았습니다. 제자들과 부처는 더위에 지친 몸을 쉬기 위해서 그늘을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들 휴식을 취한 다음에 부처가 말했습니다.
"아난아, 아까 주워온 끈은 뭘 했던 것이더냐?"
"예, 세존이시여, 이 끈은 아마도 생선을 묶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찌 아느냐?"
"예, 그것은 끈에서 생선의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 조각은 뭘 했던 것이더냐?"
"예, 세존이시여, 그것은 아마도 향을 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또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예, 그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은 아직도 천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냐? 우리의 업도 그와 같으니라. 당장은 같아 보이지만 각기 어떤 것과 인연을 했느냐에 다라서 그러한 습(習)이 배여들기 마련이니라. 그러므로 선인을 친근하고 악인을 멀리하며 자신의 지혜를 닦는자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고아한 향기를 풍길 것이지만, 악인과 친하고 남을 속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아무리 비단으로 장식하고 얼굴 모양을 꾸며도 결국 그의 몸에서는 고약한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느니라"
 
  이것이 부처의 심성론(心性論)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성품(性品)이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물론 저마다의 생각이 있겠습니다만 낭월의 소견으로는 부처의 견해가 그래도 두 걸음 정도의 수준에서 격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보는데 이것은 유독 부처를 편애해서만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왜냐하면 음양을 생각했을 적에는 맹자가 순자가 명쾌하다고 생각했는데 음양의 중간을 생각하고 나서는 부처의 생각이 더 깊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까닭입니다. 그리고 맹자도 바탕이 선하므로 악에 물들지 않게 닦아야 한다고 한 것이나 순자의 말대로 바탕이 악하므로 수련하여 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결국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생선 끈과 향의 천과 같이 언제라도 상황에 따라서 변화할 수가 있는 것이라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선행과 악행을 누가 알지?
 
  그렇다면 말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해 치운 일들이 어떻게 저승의 명부에 기록이 되어서 선과를 받고 악과를 받게 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니까 괜찮아~!"라고 하는 말이나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지요. "그런 소리 마소, 내가 알고 당신이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소~!" 참 멋진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영혼을 갖고 사는 사람은 새새생생 수억만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맘 하나는 참 편안할 듯 싶습니다.
 
  어려서는 이러한 행위를 염라대왕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에 가면 업경대(業鏡臺)라는 커다란 거울이 있어서 자신이 뭐라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거울에 모두 다 보이기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자신의 죄를 실토하게 되어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염라대왕은 지옥의 대왕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열 명의 대왕 중에 한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것도 알고 보니까 지옥도 천국도 아닌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공포정치를 하려고 의도된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해 봤던 적이 있습니다. 하하~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기록하는 염라대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즈음에 갑자기 사후의 상황이 궁금해 졌습니다. 나에게도 필시 다가오게 될 것은 틀림이 없는데 그 후의 모습은 어떨까? 누구라도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벗님도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과연 그 모습은 어떨까요? 생각해 보면 참으로 궁금하고도 흥미진진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세계는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말과 글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더러는 소설 같고 드러는 자신만의 경험 같아서 말이지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임사체험자(臨死體驗者)라고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그 모두를 다 믿기에는 신빙성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왜 한결같이 생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실체라고 한다면 달리 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자신의 상념 속의 잠재의식애 저장되어 있는 환상을 보고 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특히 돌아가신 할어버지 할머니 혹은 부모를 만나고 왔다는 말들을 할 적에는 저승의 모습이 도대체 이승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구심도 가져보지 안을 수가 없었지요. 지금의 생각으로는 대부분은 잠재의식에서 잠시 환영을 본 것일 가능성이 많겠다는 생각으로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군가 멋진 이야기를, 아니 확실한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선악의 행위를 기록하는 자는 누구란 말입니까? 업경대는 있는 것입니까? 또 과연 악인이 온갖 못된 일을 다 하고서도 잘 살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며,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악인들의노리개가 되어서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여기에 대해서 무슨 인과관계가 있기는 한 것입니까? 이렇게 답없는 답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이 되지 않은 채로 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릎을 쳤습니다.
 
 
3. 우주백업센터
 
  요즘은 각 포털에서 일정량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는 엔드라이브를 회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통신에서는 유클라우드를 제공합니다. 구글에서는 스카이드라이브를 주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드라이브를 제공합니다. 특히 네이버를 사용하면서 N드라이브를 이용하다가 문득 하나의 발상이 떠올랐습니다. "맞아~~! 바로 이 원리겠군~!!"
 
                                
 
  없다고 생각했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업경대가 실제로 존재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요즘 어떤 세상입니까? 비밀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감시카메라에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항상 보고 있습니다. 은행을 털든 빈 집을 털든 간에 모두 감시카메라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래서 범죄자는 일단 감시카메라부터 조사를 한다잖아요. 그만큼 생활의 보편화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업경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사람이 태어나면 감시관도 동시에 태어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생을 그렇게 붙어있으면서 살아가면서 쌓은 모든 행위를 기록해서는 저승에 갈 적에 따라가서 염라대왕에게 보고를 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60일에 한 번씩은 중간 보고도 한답니다. 그것이 간지로 경신일(庚申日)이라나요? 그래서 그 날짜에 잠을 자지 않으면 된다는 기가 막힌 방법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육경신(六庚申)'이지요. 그것은 붙어다니다가 잠시 저승으로 가서 보고를 하고 오는데 그 순간에 사람은 다른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잠을 재우는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잠을 자지 않으면 사자는 몸을 떠날 수가 없게 되고 그렇게 해서 여섯 번만 직무유기를 하도록 하면 그는 염라대왕에게 벌을 받아서 다시는 하늘로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 말을 모조리 들어줘야 하는 협상이 이뤄지게 되고 그로부터는 세상의 모든 일을 무불통지(無不通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노력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사자를 속여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교묘한 술수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편물로 날아오는 도사의 광고를 보면 육경신을 열 번 했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서 혼자 웃습니다. 육경신이 뭔지나 알고 하는 말인가 싶어서 말이지요.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한 번 정도는 실행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1경신도 하지 못하고 포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업무를 못하게 방해해서 뭘 얻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 결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서 핑계를 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하~ 여하튼 그러한 이야기는 황당하다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황당하지 않을 뿐더러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모골이 송연하지 않으세요?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지나간 기록을 지울 수는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려 놓는다면 나중에 상쇄하고 남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하~
 
  이러한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었던 것은 바로 저장센타를 빌려주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실제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이 바로 N드라이브에 저장이 되는 것을 보면서 혼자 수십년 묵은 의문이 풀려버렸습니다. "이것이야~!"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행위도 이와 같은 시스템에 의해서 진행이 되고 있었을 것이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업경대는 자신의 행위가 백업된 것을 염라대왕 앞에서 다시 재생해 보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을 촌놈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업경대식 화법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감시카메라에 찍힌 자료를 범인에게 보여주지만 실은 범인은 이미 그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일 뿐이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업경대라고 하는 거울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여하튼 꼼짝 할 수 없는 자료들은 고스란히 보관이 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 나의 행위가 다음 생의 업을 결정하는 이치는 I.D.
 
  이제 우주저장센터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해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기술로 만든 공간에도 스마트폰에 찍힌 정보가 바로 저장이 되어서 언제라도 다른 공간에서 컴퓨터를 통해서 보고 저장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디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이디는 누가 부여하는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하튼 내가 존재한다면 나의 아이디도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로 나의 모든 행위는 어딘가에 저장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주백업센터라고 했습니다만 바로 내 옆에 그 저장소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는 해발 400키로미터 밖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시공의 구조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면 바로 옆에 아니면 바로 그 자리가 또한 백업센터일 수도 있을테니 말이지요.
 
  자, 결론은 이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행위는 속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정의 실력을 가진 해커는 자신의 아이디는 물론이고 남의 아이디도 바꾸거나 훔칠 수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인간이 부여해준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운명의 아이디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경도 불가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오늘 현재의 낭월이 생각하는 업연론의 설명법입니다.
 
  휴대폰을 나의 삶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물에 빠뜨려서 잃어버리면 익사한 것이고 망치에 맞아서 망가지면 사고사인 것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휴대폰은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끝 난 것일까요? 옛날의 2G폰은 적어도 그렇게 이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주저장소에 저장이 된 자료들은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지요.
 
  스마트폰이 망가졌다고 해서 다시 구입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구입을 한 다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이디인 주민번호입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기는 예전의 그 일을 계속 할 수가 있고 유클라우드에 저장이 된 데이터를 바로 다운로드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전생의 기억과 행위를 모두 가져 오는 것의 이치를 생각해 봅니다.
 
  언제 그러한 일이 일어날까요? 그야 고고의 성을 울릴 그 시간이지요. 태어난 아기가 쪼글쪼글한 상태에서 울음을 터뜨리게 되면 팽팽해 집니다. 그 팽팽해 지는 과정에서 유클라우드에 저장이 된 데이터도 동시에 백업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명리학자는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명리학은 전생의 행위를 옅보는 해킹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놀랍지요? 하하~
 
                                     
 
  물론 해킹 프로그램은 많습니다. 자미두수, 기문둔갑, 하락이수, 점성술 등등 수두룩 합니다. 물론 저마다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고 떠벌리기는 합니다만 낭월이 소견으로는 그 모두는 불완전한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자평명리학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왜 불완전한가? 그것은 당연하지요. 자연이 만든 것을 재연할 기술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간단한 인간의 침샘에 들어있는 타액도 완전하게 같이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보면 나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비슷하기만 해도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인조 손가락과 발을 보면서 우린 감탄하고 있잖아요. 아무리 감탄을 해도 그것이 천연산에 비할까요?
 
  그리고 낭월의 전공인 자평명리학 해킹프로그램도 어쩔 수가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어날 당시의 전생 백업본 밖에 해킹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태어난 이후에 60일마다 업데이트가 되는 최신의 정보는 전혀 손도 못 대고 구닥다리 정보에 의지해서 그 사람의 행로를 추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약점 중에서도 엄청난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 약점을 보완할 프로그램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긴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최신의 해킹프로그램이지요. 물론 그것이 오주괘(五柱卦)라는 것을 바로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을 얻고 나서 낭월은 혼자 좋아서 펄펄 뛰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필요했었거든요. 해커는 항상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올바른 정보를 얻어서 보다 멋진 삶이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답니다. 이른바 잘 하면 화이트해커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악용하는 블랙해커도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그또한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5. 모두가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책임 집니다.
 
  결론입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혹은 불선불악업이든 간에 그것은 100% 행위자의 소유물입니다. 떼어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가 없고, 펀드에 넣어서 뻥튀기를 하고 싶어도 그러한 것을 받아주는 펀드는 없습니다. 그냥 '1=1'일 뿐입니다. 이것을 부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대해서 타당성이 많다고 생각하는 낭월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글로나마 누군가에게 지혜를 줄 수가 있다면 그것은 작은 공덕이 되어서 우주백업센터에 기록이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그 결과의 보응으로는 글복으로 주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글을 쓰는 재주에 눈꼽만큼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
 
  정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고 지지리도 못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도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 근저에는 이러한 이치가 들어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러니까 남의 글에 악플을 달아도 그 결과는 자신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우주저장센터에 그대로 기록이 되어서는 부메랑 효과로 되돌아 가겠지요. 그것이 아마도 자연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잠시나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다음에는 더욱 좋은 정보가 가득한 자신의 백업파일이 쌓이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4년 2월 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