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살이 있음 풀어야지 - 살풀이

작성일
2007-09-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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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이야기가 가족간에 유난히도 잘 다투면 ‘너랑 나랑은 아무래도 살이 찐 모양이야, 수수떡 한말 해가지고 어디가서 살을 풀어야 할려나봐.

라는 말을 쉽게 한다. 이 말은 살이 끼면 서로 불편하게 대한다는 점과 살을 풀기 위해서는 수수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수수떡은 일명 ‘팥단지’ 라고도 하는데, 수수를 갈아서 속으로 하고 팥을 삶아서 고물로 만든 경단이다. 이것은 어린아이 돌잔치를 할적에 빠져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품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팥단지에는 액을 소멸하자는 염원이 들어있는 것으로 미뤄서 짐작이 된다. 그리고 살도 액이므로 팥단지를 사용해서 해소를 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 팥떡을 경우에 따라서는 부처님께 올리고 불공을 드리기도 하고, 수수깡 화살에 꿰어서 쏘아버리기도 한다. 쏘아버린다는 것은 몸에 붙어있는 살을 떼어버린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하면 살을 풀었다는 의미의 ‘살풀이’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 명리를 약간 알고 있을 적에 어느 접신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사주하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스님, 아픈 사람에게는 굿을 해주면 나으니까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겠는데, 살풀이를 하는 경우에는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이게 풀렸는지 안풀렸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부탁인데, 좀 봐줄수 없겠수?”

적어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혹세무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여준 사주 속에서는 여전히 그 살에 해당하는 글자가 밖혀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주팔자에 있는 글자가 살풀이를 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색깔이 달라지나? 아니면 어디로 짐을 싸서 가버리나? 참으로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서 잠시 당황했었다. 그렇지만 참으로 진지하게 묻는 상황에서 뭐라고 가볍게 말을 할 수도 없어서, 편법을 동원했다.

우선 문제의 그 사주를 봤더니 사주에 결함이 보였고, 그 결함은 내년의 운이 바뀌면서 보완이 되는 형국이었다. 살이 풀리고 말고는 상관이 없이 일단 그 결함으로 인한 액운은 없어진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무속인에게 살이 풀렸다고 말을 해줘도 나중에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보살님10)이 살을 풀어준 사람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네요. 금년에 살을 풀지 않았더라면 내년에 찾아오는 좋은 운도 못먹을뻔 했구먼요. 살은 잘 풀렸어요. 금년에는 원체가 깊은 살이어서 약간 애로가 나타나겠지만, 내년부터는 살이 풀렸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던지 맘대로 될것으로 보이네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어머, 그럼 참 다행이구요, 근데 글로 보면 살이 풀렸는지 안풀렸는지도 알 수가 있나보네? 나도 글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글 공부를 못해서 항상 갑갑한 때가 많아요. 그리고 이 사람은 살풀이를 해줬는데도 별로 달라진 것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어디 한번 봐주세요.”

하면서 내어놓은 사람의 사주를 보니까, 이 사람은 운이 아직도 10년은 바닥을 기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살풀이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사람은 전생에 워낙이 지은 죄가 무거워서 보살님이 아니라 더 대단한 천존님이 와서 살을 풀어도 도저히 않되겠는걸... 앞으로 10년은 더 고생을 해야 되겠으니까 그 안에는 살풀려고 하지 않는게 좋겠어요. 괜히 잘못 건드리면 천지신명이 노해서 보살님에게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정말이야~!! 그사람 살 풀어주고서 효과도 없다면서 구설까지 들었잖우~! 진작에 알았더라면 일을 만들지 않는건데, 괜히 해주고 욕만 먹었지 뭐.”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살이라고 하는 것이 풀릴 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봤었다. 그리고 그 살이 있기는 한 것인지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살은 없다는 것이다. 없는 것을 풀수가 있다면 이것은 속임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드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살의 작용이 있다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또한 그 본인의 자유라고 본다. 구태어 살의 작용은 없는 것이라고 강조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다만 이 명리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볼때에는 그 살의 작용을 무시하고 연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또 한가지는 무속인들이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끌어다가 붙이는 각종 신살들은 나름대로 영적인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어느 교수님이 수십년을 무당연구로 보낸 다음에 하신 말씀이 ‘신은 없다.’는 결론임을 볼적에 낭월이가 신살을 부정하고 있더라도, 이 자연계에서는 엄연히 신살의 세계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 하고 있다.







신살의 처치법




이제 신살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시간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고방식을 오행의 생극제화 원리로써만 명리학을 풀겠다는 다짐이면 되지않을까 싶다. 이 생극제화의 이치로써 결론을 내지 못하고서 신살을 찾게 되는 것은 옆길를 배회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부디 벗님은 이러한 의미를 바로 헤아려서 스스로에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편안한 오행원리로써만 명리학에 접근을 해주시기 바란다. 아울리서 신살의 끝없는 미로에 걸려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벗님을 만난다면 일도(一刀)에 양단(兩斷)을 시켜줘서 올바른 오행공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를 해 주신다면 더욱 고맙겠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11)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살이 필요 없다면 어째서 필요 없다는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신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런지도 알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설명이라면 신살의 의미에 대해서 웬만큼은 이해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서 줄이려고 한다. 이제 앞으로는 신살에 대한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오행의 원리로써만 접근을 해야하는 본론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잠시 묵은 보따리를 뒤적여 본 정도로 이해를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