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0.탁록(涿鹿)의 전투(戰鬪)

작성일
2022-08-15 05:47
조회
1930

[394]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0. 탁록(涿鹿)의 전투(戰鬪)


========================

우창은 화운룡이 생각을 정리하도록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오랜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모처럼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들을 만났으니 가능하면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진 선생에게 여쭙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몸을 쓰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머리를 쓰는 사람일까요?”

“그야 몸을 쓰는 사람은 단순하고 머리를 쓰는 사람은 복잡하니까 단순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요?”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미래를 놓고 생각하게 되면 전혀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 듯합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총명한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황제의 말로는 아무리 가르쳐도 통제가 되지 않던 치우는 항상 두통거리였을 겁니다. 그러던 차에 황제의 주변에서는 점점 치우를 없애자는 신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것이고요.”

“맞습니다. 권력이 없는 사람은 권력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권력을 얻은 사람은 권력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니까요.”

“황제가 처음에는 치우에게 남방을 다스리라고 적제대원수(赤帝大元帥)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렇게 지위를 얻게 된 치우도 타고난 성미대로 적들을 제압하고, 대항하면 죽음으로 허물을 물었고, 굴복하면 자식처럼 보살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세력이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제라는 것은 남방이 화(火)라서 그렇게 불렀나 봅니다. 그렇지만 임금제(帝)를 쓰고서 다시 대원수(大元帥)라고 하는 것도 조금은 어색합니다. 어쩌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양대 세력이 커지면 충돌을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치우의 힘이 나날이 강대(强大)하게 되자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매망량(魑魅魍魎)과 같은 도깨비들조차도 치우의 휘하에 머물기를 애원하게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치우천황이 싸움하면서 호풍환우(呼風喚雨)로 연전연승(連戰連勝)하게 되었던 것도 이들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야말로 신병(神兵)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분위기는 점점 전쟁이 일어날 조짐을 키웠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치우는 황제를 믿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신농씨 아래에서 형제나 진배없이 자랐기 때문에 서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황제는 지혜(智慧)로웠고, 치우는 용맹(勇猛)했습니다. 그래서 음양(陰陽)의 균형을 잘 맞춰서 천하를 다스리라는 신농씨의 희망은 타당했고 한동안은 그렇게 잘 유지가 되었습니다.”

“아하~ 그렇게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말씀을 들어봐서는 아마도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군요?”

“원래 양극즉음생(陽極卽陰生)의 이치가 아닙니까? 태평성대가 이어지면 반드시 부패하는 세력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 문제는 항상 내부에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천하무적(天下無敵)으로 두려워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진 선생은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처음 듣는 말입니다. ‘사자 몸의 벌레’라는 뜻입니까?”

“사자는 백수지왕(百獸之王)인지라 비록 늙어서 죽어도 아무도 감히 옆에 와서 해코지를 못 합니다.”

“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당연히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자의 몸을 뜯어먹는 것은 그 몸에서 생긴 구더기들이지요. 이것이 바로 사자신중충입니다.”

“아, 부패하는 과정을 어쩌면 그렇게도 멋진 말로 표현하십니까? 참으로 멋지십니다.”

우창이 감탄하자, 화운룡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가까이 지내는 화상이 있는데 그가 알려준 부처의 말씀이라고 해서 기억해 뒀을 따름입니다. 하하~!”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하하~!”

“사자가 죽은 다음에야 구더기가 사자를 먹어 치우겠습니다만, 사자가 비록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몸에 벌레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문득 연가시가 떠오릅니다.”

“연가시라니요? 그것은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 당랑(螳螂)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는 철선충(鐵線蟲)이라고도 하는 연가시가 있는데, 원래 연가시가 모기나 파리, 혹은 잠자리의 몸에 알을 붙여둡니다. 그러면 사마귀가 이들을 잡아먹으면 연가시의 알도 함께 먹는데, 그것이 사마귀의 몸에서 부화(孵化)합니다. 그러면 사마귀가 먹는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살아가는 기생충입니다.”

“참으로 자연의 질서는 오묘합니다. 그런 일도 있군요. 놀랍습니다.”

“그렇게 사마귀의 몸에서 자란 연가시는 번식을 할 때가 되면 사마귀의 뇌를 조종해서 원래의 고향은 물가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사마귀들이 물가에서 많이 죽어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지요.”

“아하~!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정말 신기합니다.”

“가을에 기력을 잃은 듯이 보이는 사마귀를 발견하면 지그시 밟아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철선충이 그 안에서 나온단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도 기생충이 있으니 사자라고 해서 예외가 있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더니만, 과연 이치는 하나로 통하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몸에도 신중충(身中蟲)이 생겼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벌레들이 황제의 정신세계조차도 장악하게 될 테니까요.”

화운룡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자신은 아무리 강한 신념이 있더라도 믿었던 신하들이 계속 말하면 혼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비록 천하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그도 인간이라면 내면 깊숙한 곳에 일말(一抹)의 의심조차 없었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나 봅니다. 황제는 치우를 믿고 있다가, 주변의 신하들이 계속해서 치우가 황위를 넘본다고 말을 하자 맑은 마음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남방에서 황제 격으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말은 두려움이 생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랬겠습니다. 지킨다는 것은 이미 의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혹(或)자로 인해서 울타리[囗]를 만들게 되는 것이, 나라 국(國)이기도 합니다. 의심은 결국은 경계선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내 편은 가까이 두고 적 편은 멀리하거나 죽여버리게 되는 과정을 피할 수가 없지요.”

우창이 화운룡의 말에 공감하면서 화답하자 화운룡도 흥이 올라서 신명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둘의 신뢰감은 누구도 깨트릴 수가 없을 정도로 견고했습니다. 주위의 신하들이 하도 귀가 아프게 말하자 황제는 치우를 불러서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확인까지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되면 치우의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지 않았을까요?”

“당연합니다. 누가 뭐래도 황제는 자신을 믿고 있을 것이라고 확고하게 생각했는데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충성심을 확인하려 들자.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지요. ‘이제 황제가 나를 의심하는구나’싶었지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실로 황제의 마음도 망신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둘 사이는 이만큼 확고하게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인데 항상 그렇듯이 문제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봅니다. 어쩌면 그것도 운명이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습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이었겠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치우는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황제도 신하들에게 이것을 보고서도 의심하느냐는 듯이 말했지요. 그러나 의심하기 시작한 신하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지요. 치우에게 요구하기를 ‘반역하지 않겠다’는 약조문(約條文)을 써야만 믿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의 씨앗은 그 자리에서 움트고 있었던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잘 견디고 있던 치우는 대신의 그 한마디에 분기탱천하자 차고 있던 칼을 뽑아서 그렇게 말한 신하의 목을 날려버렸습니다. 그 신하는 황제가 총애하는 사람이었으니 황제의 권세를 믿고 말을 했던 것인데 순식간에 치우의 검에 목이 땅에 떨어졌으니 대혼란이 일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았겠습니까?”

“불을 보듯 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믿음이 강하면, 그것을 잃었을 적에 상실감도 큰 법입니다. 치우는 우직하였으나 의심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서 재상(宰相)의 목을 날리고 돌아왔지만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분을 삭일 수가 없었지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이해됩니다.”

“그 후로 황제가 신하를 보내서 연회를 베풀겠다고 해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더욱 황제를 부추겼습니다. 사소한 균열(龜裂)이 세상을 갈라놓기도 하는가 봅니다.”

“급기야 황제가 직접 치우를 만나러 온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치우를 보좌하던 도깨비들도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황제가 치우에게 사과하러 오는 것이지만 실은 치우를 죽이려고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지요. 일단 한번 서운한 마음이 든 치우에게 이것은 주효(奏效)했지요. 바로 전투(戰鬪)할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으니까요.”

화운룡의 이야기는 참으로 전쟁터를 옆에서 직접 본 듯이 전개되었고 그래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황제의 마음과 치우의 마음은 물론이고, 신하들과 도깨비들의 감정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마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화운룡이 술잔을 들었는데 잔이 빈 것을 본 우창이 한 잔 가득 부어주고 자신도 술잔을 들어 마시면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우창이 말했다.

“원래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이해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후손인 제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니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만, 이렇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여겨서 생각해 봤던 것입니다.”

“아닙니다. 선생의 추론은 충분히 타당한 논리가 있어서 능히 이해됩니다. 그래서 크나큰 전쟁을 피할 방법이 없었겠습니다. 그런데 치우에게는 도깨비들조차도 협력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어떻게 맞아서 싸울 수가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치우와 싸움을 하면 연전연패(連戰連敗)할 수밖에 없었지요. 밀리고 밀리다가 황하(黃河)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싸움만 하면 처절한 패배하게 되자 황제도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연 그럴만하겠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황제가 하늘에 기도해서 천장(天將)을 얻게 되었던 것이었나요?”

“아, 그 이야기를 들으셨군요. 물론 그런 말이 있습니다만, 그 진위는 믿기 어려울 것으로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하~!”

“그렇다면 이미 화 선생의 정리가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궁금합니다.”

“도깨비는 동물의 혼령이고, 귀신은 인간의 혼령이니까 그렇다고 하겠습니다만, 하늘에서 무슨 장수가 내려오겠습니까? 그래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득한 옛날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설에는 그렇게 전해지는 정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전설에 타당한 논리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그렇게 볼 적에 하늘에서 십간(十干)의 장수가 내려와서 승전(勝戰)하게 되었다는 말은 결과에 과정을 꿰어맞춘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까 과연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전쟁에 이기게 된 것으로 생각하셨습니까?”

“우선 그 설화를 되짚어 보면 천간(天干)이 탁록지전(涿鹿之戰) 이후에 출현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이미 그 이전에 농사법을 만들면서 절기(節氣)를 사용했는데, 당연히 간지가 쓰였으니 이것부터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탁록의 전쟁을 승리고 이끈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짐작하건대 북쪽에서 맹장(猛將)을 대거 영접했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방이라면? 북적(北狄)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오호~! 이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왜 적(狄)이라고 불렀을까요?”

“이름에는 그 특성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동이(東夷)는 큰 활을 잘 쏘는 동쪽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잖습니까?”

“맞습니다. 남만(南蠻)은 독충(毒蟲)을 이용해서 싸움을 잘해서 붙은 이름이고, 서융(西戎)은 창검(槍劍)을 잘 사용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북적(北狄)은 왜 그러한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까?”

“적(狄)을 보면 개사슴 록(犭)인데, 혹은 큰 개라는 뜻도 있지요. 옆에는 불화(火)로 되어있습니다. 개사슴이란 사나운 개를 데리고 싸우는데 큰 사슴을 타고 다니면서 불같이 공격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화공(火攻)을 잘 쓴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동성을 본다면 북적이 가장 넓은 활동 영역을 활보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연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황제가 그들을 불러들여서 치우를 공격하게 했다는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역시 사람이 많은 황제에게서 나올법한 전술입니다.”

“고래(古來)로 통치자들이 위기를 맞이하면 북적을 불러들여서 위기를 극복하곤 했으니까 아마도 그랬을 가능성이 많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천장설(天將說)은 낭설로 보면 되겠습니다.”

“낭설이라기보다는 꾸민 말이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용맹한 장수들이 전쟁해서 이겨가자 그들은 더욱 위대해 보였을 것이고, 그래서 별명을 붙여서 열 명의 천장이라고 했을 것이니까요. 다만 어찌 장수가 열 명뿐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수백 수천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화운룡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과연 논리가 정연(整然)한 말씀을 듣다가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북적의 도움을 받아서 치우를 제압했다는 설을 들으니까 명료해지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탁록에서 대승(大勝)을 거두고 났는데 천장들은 일이 없어지자 심심해서 자기네들끼리 난동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황제가 그 해결책을 하늘에 물었고, 하늘은 12천녀(天女)를 내려보내 줬다고 했는데 그들이 짝이 맞지 않아서 돌아가며 함께 취한다는 이야기는 신계(神界)의 이야기로 보면 너무 유치(幼稚)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적의 사나운 장수들로 보니까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미 열두 개의 지지(地支)가 존재했기 때문에 딱 그 숫자에 맞춰서 천녀가 등장하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여인을 보내서 달랬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진 선생이 잘 이해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화운룡도 동의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의 아내가 다시 뜨거운 요리를 내왔다. 잉어를 끓여서 쌀을 넣은 잉어탕이었다. 모두 그 맛에 감동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요리를 즐겁게 먹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궁금한 것이 많은 우창이 다시 물었다.

“간지(干支)의 설화(說話)는 결국 이미 존재하는 간지에 꿰어맞춰진 것임을 알겠습니다. 이제 누가 물으면 그렇게 답을 할 수가 있는 것도 화 선생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하~!”

“앞으로 언젠가 치우천황이 다시 재조명(再照明)된다면 이곳에도 큰 왕릉으로 꾸며질 것으로 기대하고 이렇게 지키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만 지금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선조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을 뿐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화운룡의 표정에서 체념(諦念)한 듯한 표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에서 우창도 안타까움이 일었으나 딱히 뭔가 해 줄 만한 것은 없어서 말로라도 공덕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단지 치우황릉만 지키고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학문을 연마하셨으니 무슨 아쉬움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도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정황을 봐서는 방문자들에게 밥만 팔아서는 생계가 곤란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외에 하시는 일은 없으신지요?”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니 달리 먹거리를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강가에서 잉어를 잡아 오고, 밭에는 언제나 먹을 채소들이 자라고 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검소(儉素)한 나날을 수행자처럼 지내고 계시네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이야말로 자유로움의 첫째가 아니겠습니까? 몸소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네요.”

“때로는 궁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팔자려니 하면 또 견딜 만합니다. 치우천황께서 굶기지는 않으시는지 아직 큰 곤란은 겪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소리에 이야기만 듣고 있던 지광이 화운룡에게 물었다.

“소생이 풍수지리에 약간의 상식이 있는데 조언을 드려도 될지요?”

지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우창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상대가 먼저 물었다면 편안하게 말을 했을 텐데 그가 묻는 것도 아닌데 나서서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유문필답(有問必答)의 이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 항상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궁핍한 형편을 조금은 나아지게 할 수가 있겠다고 생각하고서 비록 화운룡이 묻지 않았지만 먼저 말을 꺼냈던 것인데 대중들도 이번에는 눈길을 화운룡에게 돌렸다. 그의 말이 궁금해서였다. 그러자 화운룡보다도 그 부인이 오히려 반기면서 화운룡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듯이 눈짓했다. 그것을 본 화운룡이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아니, 귀한 가르침을 주시는데 꺼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편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운룡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보고서야 지광이 망설이던 말을 꺼냈다.

“실은 집을 조금만 옮기면 형편도 나아지고 심신도 쾌적(快適)할 조짐이 보이는 자리가 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옮기기 전과 후의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가 있지 싶은데 이야기를 들어보시겠다면 주제넘은 말씀이나마 드려볼까 싶습니다.”

“여부가 있습니까? 어서 말씀해 주시기만 바랄 따름입니다. 실로 소생의 처가 남편 복이 없어서 혼인한 후로 고생만 하는 것을 보기가 가장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러한 문제만 해결된다면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지광의 말에 아내도 관심을 보이면서 옆에 다가와서 앉았다. 이렇게 분수를 지키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 지광의 마음이었다. 비록 수중에 가진 것은 별로 없으나 머리에는 광활한 대지의 이치가 들어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베풀 수가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일 아침에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몇 마디를 안내해 드릴 테니 그대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아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말했다.

“정말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동했어요. 부디 도움을 주신다면 은인으로 여기고 잊지 못할 거에요. 그럼 오늘은 밤이 깊었고 여정에 피로도 쌓이셨을 테니 이만 쉬도록 하시지요. 잠자리는 누추해도 어쩔 수가 없으니 양해해 주세요.”

치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마무리가 된 셈이었다. 아직 날씨가 더운 초가을이라서 잠은 아무렇게나 자도 되었다. 저마다 편안한 곳에서 바빴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우창이 일어나 보니까 지광은 벌써 일어나서 마당 가운데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명상에 빠져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으려는 노력인가 싶었다. 입정(入定)에서 깨어나면 물어볼 생각으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돌아오자 화운룡의 부부도 일어나서 지광과 담소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염재와 거산도 깨웠다. 그러자 잠귀가 밝은 진명도 일어났다. 젊은 사람들에게 새벽잠은 꿀맛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공부맛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잘 쉬셨습니까~!”

염재와 거산이 인사를 하고는 얼굴을 씻고 서둘러서 마당에 가서 지광의 옆에 앉았다. 마당에는 평상이 서넛이 있어서 오가는 길손이 쉬어가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할 수가 있게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 준비가 된 것을 본 지광이 입을 열었다.

“마침 모두 일어났으니 같이 풍수를 논해 보도록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