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제34장. 인연처(因緣處)/ 4.늘어나는 길동무

작성일
2022-07-15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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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제34장. 인연처(因緣處) 


4. 늘어나는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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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자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그제야 소녀의 부친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는 말했다.

“소생의 이름은 채경(蔡京)이라고 합니다. 자손이라고는 여식 하나뿐인데, 어려서부터 우연히 시름시름 앓기에 병에 좋다는 약과 유명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다녔으나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더니 근래에는 자꾸 귀신들이 보인다고 해서 무녀에게 의뢰한 결과 신을 받아야 할 운명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승사자가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채경의 말을 들으면서 모두 그 말에 공감할 수가 있어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채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식의 미래가 그렇다고 하는데 부모가 된 마음으로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 부부가 의논해서 굿판을 벌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선생님들께서 나타나셔서 굿판을 멈추게 했고, 딸애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은 듯이 보여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어디로 데려가시든 지혜롭게 살아갈 수가 있도록 키워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더구나 인품을 뵈었을 적에 결코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채경이라는 소녀의 부친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참으로 그간의 고뇌가 느껴지는 듯한 모습이어서 일행도 모두 가슴이 짠했다. 그 말을 듣고서 지광이 물었다.

“채 선생에게 묻겠습니다. 선생은 인연법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개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딸의 안색이 밝아졌습니다. 더구나 선생님들을 뵙고서 급속하게 정신이 맑아진 것으로 보여서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창이 채경의 말을 들으면서 글은 좀 읽어 본 사람으로 생각이 되어서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채 선생은 어떤 일에 종사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우창이 묻자 채경은 다소 멋쩍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지금은 맹자 학당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치를 깊이 연구해도 딸애의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어서 무기력감이 가득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올바른 인연을 만나지 못했던가 봅니다. 자칫했으면 무녀의 길로 보낼 뻔한 딸을 이렇게 잡아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과연 듣고 보니 그도 또한 학자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소녀와 그 모친이 굿상에 차렸던 음식으로 저녁상을 마련해서 가져왔다. 그리고 술도 가져와서 한 잔 가득 부어 올렸다.

“여기 반주도 한 잔 드시고요. 차린 것은 없지만 맛있게 드셔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마르던 김에 시원하게 술을 한 사발씩 마셨다. 진명도 술을 잘 마셨다. 모두 사양하지 않고 가득 차려진 저녁으로 배를 채웠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는 다시 둘러앉아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우창이 먼저 지광에게 물었다.

“형님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우제는 뭔가 정신도 없이 돌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하하하~!”

우창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은 지광이 소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소녀의 이름은 채소연(蔡昭娟)이에요.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소연을 지그시 바라보던 지광이 다시 물었다.

“왜 아까는 우창에게 할아버지라고 했지?”

지광이 이렇게 묻자 소연이 수줍게 말했다.

“연아도 그것이 신기했어요. 눈으로 보이는 모습은 젊은 서생이신데 입에서는 할아버지라고 나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지광이 다시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아, 그랬구나. 그 순간에는 이미 혼령이 강신(降神)해서 마음대로 언어를 쓸 수가 없었던 것이네. 그래서 눈으로 보는 것과 입으로 말하는 것이 다를 수가 있었던 것이라네. 그 순간에 나도 깜짝 놀라서 우창을 보니까 수호신(守護神)으로 왕림하신 우창의 조부께서 잡귀들이 날뛰지 못하게 막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연아의 신이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었네.”

지광의 말에 우창도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형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이겠는가? 아우님의 수호신께서 동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지. 하하~!”

“아, 그렇습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과연 그렇다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들겠습니다. 그런데, 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굿판에서 연아가 우제의 손을 잡아서 같이 뛰게 되었는데 이때는 마치 구름을 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은 혹 우창에게도 귀신이 쓰여서 그렇게 된 것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그야 그동안 연아를 괴롭히던 영혼이 같이 놀아주기를 부탁했기에 아우님의 수호신께서도 잠시 응해 준 것이라네. 물론 잠시 그렇게 놀아주었기 때문에 연아의 영혼도 마음을 열고 순순히 아우님을 받아들인 것이라네.”

지광의 말을 듣고 있던 채경이 궁금했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딸애의 몸에 붙어서 괴롭히던 영혼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왜 그렇게도 아이를 괴롭혔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나날들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제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신 선생님을 뵈었으니 이에 대한 해답을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그동안 너무도 궁금했던 것을 여쭤봅니다.”

우창이 봐도 그가 겪었던 고뇌의 나날들에 대해서는 능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고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서 지광을 바라봤다. 지광이 주변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고서 말했다.

“내가 언뜻 보기로는 선생의 누이동생 정도로 되어 보이던데 여인이 자신이가고자 하는 길을 채 선생이 막았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 한을 풀지 못해서 어린 조카에게 복수했던 모양입니다. 왜 여동생이 한을 품고 세상을 등지게 하셨습니까? 인연은 억지로 말린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지요. 그래서 좀 전에 인연을 믿으시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인연을 믿는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믿게 된 인연을 그때 믿었더라면 연아의 고통은 겪지 않았어도 될 것이었습니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채경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우창 등도 나름대로 짐작되는 점이 있었다. 잠시 후에 채경이 정황을 설명했다.

“선생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과연 그랬었군요. 여동생이 자꾸만 혼인하겠다고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항상 관아의 감옥을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는 몹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하니 어떻게 그러라고 하겠습니까? 물론 지금이라면 그것도 인연이려니 하겠습니다만, 그 당시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놈의 내심으로는 제가 그래도 추성에서는 상당한 명망을 얻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배경으로 삼으려는 것이 불을 보듯 빤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동생을 잃는 것에 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러한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소연이 말했다.

“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것도 인연이 아니겠어요? 그 바람에 연아도 어린 나이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니 앞으로는 웬만한 어려움은 모두 견딜 수가 있어요. 호호호~!”

소연이 밝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침울하던 분위기가 다소 밝아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창이 궁금해서 지광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연아 고모의 혼령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두면 재발(再發)하지는 않겠습니까?”

“재발할 것 같았으면 이렇게 굿판이 끝나지도 않았겠지. 하하하~!”

“형님께서 알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좀 설명해 주셔야 궁금증이 해결되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겠나? 아우님이 다 해결했지. 하하하~!”

지광은 유쾌하다는 듯이 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지만 우창의 궁금증은 전혀 해소(解消)되지 않아서 더욱 궁금하기만 했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더니 우창에게 물었다.

“아우님은 왜 연아에게 따라가자고 했나?”

우창이 문득 잊고 있었다는 듯이 새삼스럽게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점괘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를 따라가자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이 나왔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형님. 우제가 잠시 무엇에 씐 것이었을까요? 그렇제 않고서야 왜 평소의 우창같지 않은 언행을 하게 된 것일까요?”

“그 순간 점괘와 아우님의 수호신과 연아의 고모 혼령이 일전(一戰)을 치르게 되었던 것이라네. 하하하~!”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령은 오행이 뭐라고 보면 되겠나?”

이야기하던 지광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우창에게 뜬금없이 혼령의 오행을 물었다. 우창은 그 물음을 듣고서야 문득 생각해 봤다. 혼령의 오행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령도 혼령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그렇다면 이렇게 묻겠네. 원한에 사로잡힌 혼령이 굿판을 벌여서 맺힌 한을 풀게 되었을 적에 그 영혼의 마음은 어떤 오행이겠나?”

“그렇다면 아마도 화기(火氣)가 넘쳐 나지 싶습니다. 아, 그래서 접신이 된 상태에서는 펄펄 뛰게 되는 것입니까? 그 무녀도 그렇고,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작두의 칼날 위에서 뛰던 모습은 흡사 불꽃처럼 생각이 되기조차 합니다.”

“그렇다네. 그런 상황에서의 영혼은 불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말씀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우창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묻자 지광이 물었다.

“불을 제압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지?”

“그야 또한 자세히 본다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간단하게는 수극화(水剋火)의 이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은 수극화의 상황과는 무관해 보입니다.”

우창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자 지광이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화극화(火剋火)의 이치도 있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놓고 대입을 해보는 것도 좋겠는데 말이네.”

“그야 당연히 있습니다. 불로써 불을 제어하는 방법이지요. 말하자면 맞불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작은 불은 큰불을 만나면 흡수되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연유로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갑자기 얼빠진 사람이 되었나?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우창을 놀리는 소리에 비로소 느낌이 확 살아났다.

“아하~! 혹시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작은 영혼의 원한을 큰 영혼의 힘으로 덮어버렸다는 뜻입니까? 그렇지만 우제는 아무런 일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야 아우의 수호신과 내가 연합했다네. 하하하~!”

“예? 자세히 설명해 주셔야지요. 갑갑합니다.”

“간단하다네. 연아가 신이 내렸을 적에 아우님을 보고 할아버지라고 하면서 굴복하지 않았나? 자신의 작은 원한이 녹는 과정이었다네. 여기에 내가 옆에서 기름을 부었지. 그래서 상황이 빨리 종료가 되었던 것이라네. 어차피 원한을 풀 수는 없지. 다만 앞으로 연아가 공부하게 되면 저절로 방어막이 형성될 것이므로 전혀 걱정할 일이 없다네. 하하하~!”

그제야 우창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 순간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소연에게 빙의한 영혼을 제압하기 위해서 지광의 힘까지 협력했다는 말을 들으니까 충분히 이해될 만도 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성으로 차려놓은 굿판을 망치게 되었나 싶어서 신경이 쓰였지요.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하~!”

비로소 우창이 이해하자 이번에는 지광이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의 궁금증은 아직 그대로이니 아우님이 좀 풀어줘야 하겠네. 다름이 아니라 점괘가 어떻게 나왔길래 그렇게 추상같은 호령(號令)을 했는지가 궁금했단 말이네.”

지광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점괘가 생각나서 필묵을 달래서 아까 얻었던 점괘를 다시 적었다.

387 소녀의 점괘

“점괘는 이러했습니다. 만약에 일주(日柱)가 계유(癸酉)였더라면 굿판으로 연아의 삶이 풀렸을 것으로 해석했겠습니다만, 계미(癸未)인 것으로 봐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고, 앞으로 계속 굿판을 벌여서 가정이 더욱 피폐(疲弊)하게 될 것이 보였습니다.”

우창이 지광이 이해할 수가 있도록 풀어서 점괘를 해석하자 지광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호~! 과연~! 놀랍군. 항상 들어도 저절로 감탄하게 되네. 그러니까 이러한 점괘를 보는 순간 사로(思路)가 끊기게 되었단 말이지? 그래서 전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굿판을 엎으라고 했었군.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인데 참으로 대단하네. 하하하~!”

“형님의 말씀을 듣고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그건 또 뭔가?”

“만약에 우제의 눈에 혼령들이 보였다면 그렇게까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냉정하게 판단을 할 수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맞아~!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아우님만의 특권이라고 해야지. 하하하~!”

다시 점괘를 보던 지광이 말했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마지막의 신축(辛丑)에서 답을 본 것은 아닌가? 일간(日干)의 계수(癸水)가 바싹 가물었는데 마지막에 신축을 보니까 뭔가 생동감(生動感)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말이네.”

지광의 말에 우창도 웃으면서 답했다.

“형님도 이미 오행의 궁리가 화경(化境)에 진입하고 계십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지광의 판단을 칭찬하자 지광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면서 말했다.

“내가 본 것이 맞았단 말이지? 역시 학문은 스승의 아래에서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 맞는군. 보이지 않는 힘이 계속해서 주입(注入)된단 말이지. 혼자서 백날을 연구하는 것보다 옆에서 한마디 듣는 것이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증진(增進)하는 것과 같다네.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진명과 염재의 표정은 웃다가 놀라기를 반복하면서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거산도 모두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략 분위기는 파악을 할 수가 있어서 재미있었다. 대략 이야기를 나눴다고 생각이 되었던 지광이 소연의 부모에게 말했다.

“내일 진시(辰時) 초에 연아를 저 앞의 사융객잔으로 데려다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와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오늘 밤은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편히 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작별하고 일어나자 일행도 같이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배웅받으면서 일행은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객잔의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행을 환영했다. 벌써 굿판에서 있었던 일들이 파다하게 퍼졌던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오. 귀한 손님들이신 줄을 몰라뵈었습니다. 특별히 주안상(酒案床)을 마련했으니 작은 성의로 알고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한 상 푸짐하게 차려서 가져왔다. 그래서 또 생각지도 못한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제야 이야기만 듣고 있었던 염재도 궁금했던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물어볼 수가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영혼에 대해서 새롭게 공부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생생하게 굿판의 현장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녀의 모습에서 과연 혼령의 작용이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그냥 막연히 그런가 하고 생각만 했는데 옆에서 직접 목격하게 되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연의 고모라는 혼령이 불쌍하기는 합니다. 어떻게 구제할 방법은 없습니까?”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지광을 바라봤다. 답을 해 주라는 뜻이었다. 영혼에 대해서는 우창과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밝은 지광이었기 때문이었고, 우창도 그러한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이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지광이 설명했다.

“그야 당연히 해원(解寃)을 해줘야지. 다만 지금 당장은 별일이 없을 것이네. 왜냐면 오늘은 혼이 났기 때문이지. 아마도 다음에는 스스로 부탁하게 될 것이니 그때를 기다려서 우리가 해결해 주면 될 일이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될걸세. 하하하~!”

“그렇다면 한번 품은 원한은 쉽사리 잊을 수는 없는 것이란 말씀이지요?”

염재가 재차 물었다.

“당연하지. 여인이 한을 품으면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네. 인연이란 한치도 허투루 되는 것이 없다네. 그래서 좋은 인연은 만들고 나쁜 인연은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네. 하하~!”

설명을 듣고서 모두 이해했다. 특히 진명은 이미 그러한 고통을 충분히 겪고 났기 때문에 오늘의 경험은 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모두 말이 없자 진명도 소감을 말했다.

“오늘 진명도 큰 공부를 했어요. 혼령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도 새삼 깨달았고요. 과연 스승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비록 소연이 나이는 어려도 전생의 선근(善根)이 있었던가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순간에 두 스승님의 법력(法力)을 만났을 수가 없었을 테니 말이지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다네. 진명이 겪은 것도 그렇고, 한평생을 살아가노라면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경계(境界)에서 한순간에 천 길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무지개를 타고 천상으로 오르기도 하는 것이지. 이렇게 멋진 인연과 함께한다면 소연도 앞으로 험난한 고통은 만나지 않을 것이네. 또한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그렇고 말고요. 소연도 소연이지만 제자도 기쁨이 가득하게 넘쳐나고 있어요. 제자가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고, 또 남들에게 작은 공(功)이라도 베풀면서 살아갈 수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행복했어요. 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 이렇게 담소하면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는 자시(子時)가 다 되어 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염재는 일찍 일어나서 마차를 끌고 어디론가 나가더니 큼직한 마차로 바꿔서 돌아왔다. 식구가 늘어나자 기존의 마치는 좁아서 불편할 것이 염려되어서 관아(官衙)를 찾아가서 역마차(驛馬車)를 바꿔온 것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자 소연의 부모가 함께 객잔으로 찾아왔다. 은자(銀子)를 두둑하게 가져와서는 염재에게 맡기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이제 철없는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귀찮게 해드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부디 많이 꾸짖어서 지혜로운 아이로 만들어 주시기만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여기 약간의 은자는 필요할 적에 요긴하게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 같아서는 뭐든 해드리고 싶으나 형편이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말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학문을 연마하시는 채 선생님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보살피겠습니다. 마음 놓으시고 학문에 정진하셔서 큰 성공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 여가에 곡부(曲阜)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오행원(五行院)으로 찾아가서 쉬셔도 됩니다. 그곳은 우리의 우거(寓居)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들려서 안부를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곡부는 한 달에 한 번은 가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 연아도 그곳에서 머물 수가 있겠습니까? 오행원이라니 이름도 명쾌합니다. 하하~!”

비로소 웃음을 웃는 채경을 보니 우창도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작별을 하고는 새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 마부석에는 염재와 거산이 앉아서 말을 몰았고, 내실에는 우창과 지광, 그리고 진명과 소연이 편안하게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서북(西北)으로 향해서 점점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