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음양의 순환법칙

작성일
2007-09-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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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돌고 도는 것을 일러서 음양이라고 한다. 낮과 밤이 서로 교차되듯이, 달이 차서는 기울고 하는 순환을 되풀이 하듯이, 또 1년의 사계절이 항상 규칙적으로 순환을 하듯이 그렇게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











형상




󰁋




상황


純陰


陰中之陽


陰陽中和


陽中之陰


純陽


오행













위의 표에서 보듯이 음양의 비율을 그림으로 나타내 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가운데의 음양균형을 가장 이상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사람의 사주에는 그렇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대개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인간의 사주이고 또 그에 부합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삼라만상이 모두 이렇게 뭔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정진(精進)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느 한가지에 대해서 형상을 본다면 그 이면에는 보이는 것과는 반대가 되는 어떤 형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즉 순양(純陽)의 형태가 겉으로 보인다면 그 이면에는 순음의 성분이 잠자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순양에는 순양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   󰁋




이 그림이 음양이 이상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즉 우리는 이 그림을 태극(太極)이라고 부른다. 음과 양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태극이라고 부르지, 만약에 음양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아무도 태극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태극은 그래서 매우 신성한 음양의 균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기에서 이렇게 심오한 도형인 태극을 사용하게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일설에는 음양오행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한반도의 고대사로 접어들게 된다는 글을 읽어보면서 아마도 원래의 태극 사상을 찾아낸 인간도 바로 우리 동이족이라서 그 주인의 자손들이 국기에다가 음양의 상징을 넣어서 사용한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면서도 정작 태극의 국민들은 음양의 참 이치를 모르고 그냥 주역에서 쓰는 팔괘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나보다 하는 정도만 인식하고 있는 것도 참 묘하다면 묘한 일이다.




陰極卽陽生 陽極卽陰生

음극적양생 양극즉음생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하면 양의 기운이 생기고

양의 기운이 극에 달하면 음의 기운이 생긴다.




이러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음양의 순환법칙을 음미한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긴다는 말은 기쁨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도 된다. 웃음이 너무가 벅차오르면 눈물이 생기는 경우를 접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슬픔이 극에 달하면 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겪어 봤을 것이다. 이러한 인생살이를 통해서 옛어르신의 말씀을 되새기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공부라고 본다.

주역에서 표시하는 64괘는 항상 나쁘기만한 괘도 없고, 항상 좋기만 한 괘도 없다고 한다. 오늘 나쁜 의미의 괘상은 내일은 또 좋은 괘상으로 변한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면서 근신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의 좋은 괘는 내일도 좋다는 보장이 없다. 이미 한 방면의 극에 달한 기운은 기울 준비를 한다는 말씀이다. 차면 기우는 법칙은 균형을 이루는 음양의 법칙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공자도 만년에 역경(易經)의 심오한 이치에 젖어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옛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공을 이룬 후에는 물러갈 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자연의 법칙이랄지 조화랄지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항상 자신의 일을 한 후에는 조용히 물러가고 다음의 타자에게 일을 전해주는 모습이 느껴지는군요. 음양의 이치도 바로 이와 같은데, 그렇게 서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 아마도 자연이라는 말에 어울릴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사람도 자신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고서 과욕을 부리고 있을 적에는 자연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