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 제37장. 유람(遊覽)
10. 상승효과(上乘效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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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茶館)의 주인 황연수가 현지의 풀이에 감탄하면서 말하자 현지가 다시 사주를 보면서 말했다.
“창고마다 온갖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을 줄만 알고 꺼낼 줄은 몰랐겠죠. 이것은 천성이기 때문에 실제로 필요하고 말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죠. 아마도 금은보화(金銀寶貨)가 방마다 가득할 것이고, 아랫사람들에게는 혹독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인데 그가 하는 말은 항상 기름을 바른 듯이 번드레할 거예요. 아랫사람들도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서 모두 감동하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자신의 축재(蓄財)를 위해서 말하는 속임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고요. 참 안타까운 운명이에요.”
이렇게 말한 현지가 우창을 바라봤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미였다.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인성(印星)이 재성(財星)에 묻히는 바람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군. 그렇게 되면 탐욕만 가득한 것으로 보이기도 할 테니까. 남편을 대하는 것도 머슴처럼 대할 테니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네. 알고 보면 부사(府使)도 참 딱한 운명이로군.”
다들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주의 암시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며 또 깨닫게 되었다. 아내의 사주를 통해서 남편의 마음도 들여다보면서 짐작을 할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찰력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우창이 다시 설명을 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 좀 안 되었기는 하지만 또한 저마다의 운명이려니 싶군. 다만 생사(生死)는 명식(命式)과 무관하다고 하겠으니 모쪼록 생전에 어떻게 살았느냐는 결과만 스스로 짊어지고 저승으로 떠나는 것이야말로 피할 수가 없으니 곰곰 생각해 볼 점이 있다고 하겠네.”
이렇게 말하자 현지가 우창에게 말했다.
“정말 그렇네요. 인과(因果)라고는 하지만 때론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스승님의 말씀에서 결론이 나왔네요. 살아서 최대한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걸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잖아요? 현지도 그 말씀에 동감이에요.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말고 스스로 즐기면서 삶을 영위(營爲)하는 것이 맞지 싶어요.”
이렇게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들으면서 유하가 살짝 방향을 틀었다.
“잘 알겠어요. 완전히 공감하고도 남겠어요.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황 언니가 정실부인의 자리로 들어갈 일만 남았나요? 언니 지금 축하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차피 인연법이 그렇다면 원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그렇게 되겠죠? 호호호~!”
유하의 말을 들으면서 황연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짓고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중에 다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람의 소리가 들리더니 빗속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누군가하고 보니까 금광을 하는 오응빈과 주종건이었다. 진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살펴봤다. 혹시라도 예측한 것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스쳐 갔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 사람의 표정은 희희낙락이었다. 아마도 예측(豫測)을 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되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언(豫言)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이런 것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그래서 우창이 항상 하던 말이 예언보다는 항상 조언(助言)하라는 의미조차도 공감으로 다가왔다. 우창 등을 본 오응빈이 먼저 밝은 소리고 인사를 했다.
“아, 도사님과 제자분들이 마침 여기에 계셨습니까? 비가 쏟아지는데도 급히 찾아뵙고자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주인장~! 우리도 뜨거운 차 좀 주시오~!”
날씨가 차가워서인지 말을 달리느라고 추웠던 모양이다. 주인이 큼지막한 잔에 차를 가득 따라줬다. 그것을 후후 불어가면서 절반이나 마시고는 동행한 주종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주종건이 묵직한 상자를 하나 내놨다. 그것을 보면서 오응빈이 말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게 찾아도 없는 금맥이 가르쳐주신 곳으로 1장(丈)도 채 파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누렇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동했습니다. 광부들도 모두 감탄하면서 혀를 내둘렀지요. 그래서 여기에 추가로 사례금을 가져왔습니다.”
상자를 열어서 보여주는데 가지런한 은자가 100개였다. 이러한 거금을 선뜻 가져온 것으로 봐서 금맥이 상당했던 것으로 짐작해도 되지 싶었다. 그러나 우창은 그것을 받지 않고 도로 밀쳐주면서 물었다.
“사례금은 이미 먼저 주인에게 맡겨놓은 은자로 충분합니다. 그것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니 받지 않겠습니다. 마음으로라도 성의를 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업이 번창하셔서 즐거운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우창이 받지 않겠다고 하자, 주종건도 말했다.
“아닙니다. 단지 성의만이 아니고 그러한 자리를 두어 군데 더 짚어 주시기를 바라는 부탁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파고 있는 자리는 그대로 이어가면 되겠습니다만, 도사님의 놀라운 신통력을 알고서 그냥 그곳에 있는 황금만 파고 말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지 싶어서 도저히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날이 개는 대로 다시 한번 산을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행여라도 그사이에 떠나버리셨으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으로 달려왔으니 성의를 봐서라도 꼭 좀 간청(懇請)합니다.”
우창은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다. 실없는 사람이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핵범전(核凡錢)과 관지술(觀地術)의 상승효과(上昇效果)가 있었던 것이 신기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명을 보면서 이 부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진명이 눈을 감았다. 그것은 부탁은 거절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두 사람에게 조용하지만 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그날 제단에서 산신령님께 물었습니다. 기왕 하는 일이니 두어 군데 더 찾아주시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우창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환해졌다.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이미 산에서 산신령에게 부탁했다는 말이 감격스러워서였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산신령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나마도 안 주려던 것을 이렇게까지 간구(懇求)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니 그것으로 만족할 줄을 모른다면 그것조차도 다 빼앗아버릴 수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산신령님께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가 봅니다. 이것은 소생이 들어드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산신령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이어서 다시 가서 부탁한다고 해도 주실 가능성은 없고 오히려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을 테니 오늘 고마운 성의는 받아들이고 이것은 그대로 갖고 가셔서 좋은 곳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우창이 말을 맺고는 말이 없자 두 사람도 더는 바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오응빈이 말했다.
“도사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재앙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모골이 송연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에 금을 캐던 지인이 있었는데 큰 금맥을 찾아서 너무나 좋아했다가 강도를 만나서 목숨을 잃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어진 금맥이나 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왕에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러니 부담을 갖지 말고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귀한 곳에 사용해 주신다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두 사람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인이시니 이것도 약소할 따름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제자들과 번창하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말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떠나가는 말발굽 소리만 점점 작아졌다. 이제는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가 우창에게 남겨졌다. 그것을 본 현지가 우창의 걱정을 해소할 묘안(妙案)을 제시했다.
“스승님께서 원하지 않았던 재물을 받고서 걱정되시지요? 그것을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어요.”
우창이 반가운 표정으로 현지를 바라봤다. 어서 말을 해 보라는 뜻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현지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러자 현지가 조용히 말했다.
“간단한 일이 있어요. 주인께 물어보죠. 혹시 걸인청(乞人廳)이 있나요?”
난데없이 현지가 황연수에게 걸인청이 있는지를 묻자 주인도 당황했다. 웬 걸인청을 찾나 싶어서였다.
“그야 당연히 있습니다만 웬 걸인청을요?”
그러나 진명은 그 의도를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오호~! 언니, 그러니까 이 은자를 걸인에게 나눠줘서 몇 끼의 따뜻한 밥이라도 먹게 하자는 말씀이죠? 정말 어쩌면 그런 생각을 다 하셨을까요? 정말 언니야말로 현지보살 마하살이시라니까요. 호호호~!”
“예전에 어느 대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내가 베풀고 싶어도 재물이 없으면 베풀 수가 없는 것이 부처님의 스무 가지 어려움 중에 하나라고 하셨는데 마침 망외소득(望外所得)이 생겼으니 이런 기회에 그런 보시행도 좋지 싶어서 드린 말씀이야. 물론 스승님께서도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하실 것으로 믿고 드린 말씀이기도 하고 말이야.”
현지의 말에 우창도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라고 하고는 진명과 염재에게 말했다.
“지리는 유하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같이 가서 직접 나눠주고 오겠나?”
그러자 염재가 말했다.
“스승님, 직접 나눠주는 것보다도 걸인청에 맡기는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어떻겠습니까?”
“아, 그렇게 해도 되겠지. 그런데 관리가 혹 사심을 품게 된다면 그에게도 본의 아니게 죄업을 짓게 만드는 일이 될까 싶은 걱정이 들어서 말이네.”
우창의 깊은 뜻을 알아챈 염재가 얼른 말했다.
“아, 맞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진명 누나와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아마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인사를 하고는 은자를 담은 상자를 들고서 밖으로 나갔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잠시 주춤하고 구름만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게 떠나고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염재가 돌아와서 우창에게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실행했습니다. 모으기는 어려워도 나누기는 쉽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모으는 데는 번뇌가 따르지만 나누는 데는 기쁨이 따른다는 것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래 애썼네. 이제 좀 출출하구나. 점심을 먹도록 하지.”
염재가 돌아오면 점심을 먹으려도 준비하던 주인이 식탁에 푸짐한 요리를 가져다 올려놓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요리들이 저마다 자신의 맛을 뽐내는 듯했다. 염재에게 애썼다고 말을 하면서도 홀가분해져서 마음이 가벼웠다. 밥을 먹으면서 유하가 말했다.
“스승님 오후에는 하늘이 갤 것으로 보여요. 어디로 구경하러 가봐야죠?”
“그러지. 내일쯤은 우리도 길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주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벌써 떠나시려고요? 개봉을 한 번 찾아오기도 쉽지 않으실 테니 느긋하게 머물면서 유람하시고 가도 되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저도 도사님 덕분으로 요즘 너무 재미있거든요. 호호호~!”
“그만하면 대략 둘러본 것도 같소이다만.”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주인을 바라보자 주인이 기회라는 듯이 말했다.
“아참, 공부하는 학자들은 「한원비림(翰園碑林)」은 꼭 가봐야 한다고들 하던데 그곳에 한 번 가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거리도 가까워요. 그리고 「천파양부(天波楊府)」도 빼놓을 수가 없죠. 충신으로 유명한 양가장의 후예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이거든요. 이 호수의 이름이 양가호(楊家湖)인 연유도 여기에서 나온 것인데요. 이런저런 명소들만 둘러보신다고 해도 열흘로는 부족할 거예요. 호호호~!”
주인은 우창의 일행이 더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점괘가 너무 신기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기품(氣稟)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유하도 거들었다.
“맞아요. 스승님께서 이제 곡부로 돌아가면 또 개봉 나들이를 쉽사리 하시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내친김에 더 놀다가 가도 되겠어요. 더구나 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아직은 떠날 인연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할 것도 같고 말이에요. 호호호~!”
우창은 유하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더 머무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차관의 주인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편히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인장께서 이렇게나 말씀하시는데 그냥 간다면 그것도 나중에 후회하게 될 듯싶습니다. 그럼 고맙게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왠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어서 더 머무르시기를 원했는데 들어주셨으니 즐겁게 머무르시도록 소홀함이 없게 하겠습니다.”
정성으로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유하가 안내하는 대로 개봉의 명소들을 둘러보는데 그로부터 딱 열흘이 걸렸다. 내친김에 황하의 풍경까지도 두루두루 살펴보고서야 비로소 개봉을 떠날 수가 있었다. 주인 이제는 더 잡아 둘 이유가 없었던지 아쉬운 표정으로 전송했다.
좋은 인연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떠나기 전에 주인에게 핵범전을 써주고는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매일 한 장씩 태우라고 가르쳐줬다. 왜냐면 부사의 아내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그 안에는 또 어떤 암투(暗鬪)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뭔가 작은 보탬이라도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 작성하는 방법과 태우는 법을 모두 알려주고서야 가벼운 마음으로 개봉을 떠날 수가 있었다.
염재가 그 사이에 개봉부에서 역마(驛馬)를 한 필 더 끌고 왔다. 아무래도 먼 길에 한 필의 말로는 말이 너무 힘들어할 것으로 보여서였다. 사람이 즐거운 것도 중요하지만 말도 너무 힘들면 보는 사람이 미안한 까닭이다. 염재의 백마(白馬)와 빌려 온 오추마(烏騅馬)를 나란히 마차에 묶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듬직했다. 말은 소주에 가서 역참(驛站)에 돌려주면 되는 것으로 염재가 말하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일행들이 출발하려니까 청명차관(淸明茶館)의 주인과는 그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특히 유하는 포옹하고는 작별을 나누면서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전해줬다. 염재가 말없이 마차를 몰다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소주(蘇州)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무한(武漢)을 거쳐서 동정호(洞庭湖)를 유람한 다음에 그대로 장강(長江)의 배를 타고 소주로 가시는 것은 또 어떻겠습니까?”
염재가 무한에서 배를 타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 진명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와우~!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운치가 있겠는걸요. 스승님,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진명은 대찬성이에요. 호호호~!”
진명의 말을 듣고서 우창은 말이 없었다. 무한을 거쳐서 장강을 타고 가는 여정도 참 좋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서 겨울이 다가올 것이 마음 쓰였다. 또 하나는 이미 소주에서 우창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오행원의 식구들도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에 잠기자 염재가 말했다.
“진명 누나의 말씀대로 무한으로 가는 것도 좋기는 하겠으나 생각해 보니까 응천부(應天府)를 거쳐서 가게 되면 그곳에도 장강이 흐르고 있으니까 배를 타고 싶은 누나의 원하는 바도 이룰 수가 있지 싶습니다. 만약에 무한을 거쳐서 놀다가 간다면 시간은 대략 한 달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소주로 직행하는 것이 좋겠는데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염재의 생각도 우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비로소 방향을 잡았다.
“그래, 개봉에서 많이 놀았으니 이번엔 소주로 가는 것이 좋겠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소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도 볼 것들이 많이 있을 테니 중간중간에서 쉬어가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남송(南宋)의 도읍(都邑)이었던 응천부를 둘러보고 가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북송(北宋)의 수도여서 동경(東京)이라고도 했던 개봉을 둘러봤으니 이번에는 남경을 유람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염재의 말에 진명도 반기면서 말했다.
“아하~! 그렇구나. 남경도 말만 들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기대가 되네. 그런데 응천부라고도 하고, 남경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늘 바뀌었던가 보네.”
진명의 말에 염재가 설명했다.
“당대(唐代)에는 금릉(金陵)이라고 했다가 남송 때는 건강부(建康府)라고도 했습니다. 명(明)에 들어와서 응천부라고도 하다가 또 남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편한 대로 말하면 되리라고 봅니다. 이름은 항상 바뀌어도 그 자리는 언제나 유구(悠久)하니까요. 하하~!”
“그랬어? 왜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지 염재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깨닫게 된다니까. 이미 지나버린 세월의 역사는 알아봐야 뭐하겠느냐고 생각했다가도 이렇게 조목조목 필요한 것을 찾아서 채워줄 적에는 공부하지 않으면 생각도 할 수가 없지 싶다니까. 호호~!”
쌍두마차(雙斗馬車)는 응천부로 통하는 대로(大路)를 순탄하게 달리고 승차한 일행도 마차의 흔들림에 맡기고 담소하면서 화창한 날씨와 함께 즐거운 여행길이 되고 있었다. 마차가 달리는 앞을 보던 유하가 염재에게 말했다.
“응천부를 남경이라고 하는 것은 북경(北京)이 있기 때문인가? 그리고 개봉을 동경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서경(西京)도 있다는 걸까?”
마차를 몰기에 여념이 없던 염재가 유하의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장안(長安)을 서경(西京)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실제로 위치와 동남서북의 관계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서 위치가 정해졌기 때문인 걸로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때로는 사소한 이야기도 하고, 또 때로는 거대담론(巨大談論)도 하면서 쉬엄쉬엄 열흘이 지나자 마침내 응천부의 입구를 만날 수가 있었다. 진명이 먼저 소리쳤다.
“와~ 마침내 장강(長江)을 만났어요~!”
며칠을 산과 들만 바라보면서 달리다가 도도(滔滔)히 흘러가는 장강을 보자 마음부터 시원해져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앞서 달리던 말이 놀랐던지 소리를 높였다. 염재가 얼른 말을 진정시키고는 이미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강변에서 머물 숙소부터 찾았다. 마침 강변(江邊)에 깨끗해 보이는 객잔(客棧)이 보여서 그곳으로 말을 몰았다. 상호는 「판교객잔(板橋客棧)」이라고 되어 있었다.
“자, 진명 누나가 올라가 봐요. 숙소가 깨끗한지 살펴보고 맘에 들면 마차를 대고 오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얼른 가보고 올게.”
이렇게 말하고는 객잔 앞으로 다가가자 문이 열리면서 15~6세쯤 되어 보이는 여아가 진명을 맞이했다.
“잘 오셨어요. 깨끗한 방이 있어요.”
진명은 우선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맘에 들었으나 방으로 안내해 보라고 하자 앞장을 서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진명이 창문으로 손을 흔들었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우창의 일행이 모두 내리고 마차를 댔다.
우창이 안으로 올라가자 내부는 의외로 넓었다. 앞에서 보기보다 안쪽으로 꽤 깊숙한 건물이었다. 진명에게 맡기고서 탁자에 앉아서 장강의 물결을 보면서 흔들렸던 마차의 여운을 털었다. 그러자 현지가 말했다.
“장강이라더니 과연 강이 참으로 넓어요. 오가는 배도 많고요. 도회지의 풍경이 개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번화(繁華)하네요.”
“그렇지? 나도 장강은 처음 보는걸.”
이렇게 담소하는 사이에 유하가 숙소를 결정하고는 여장(旅裝)을 안으로 옮겼다. 염재도 올라와서 거들었다. 이미 사방은 어둑어둑해졌고, 강변을 따라서 밝은 등불이 밝혀졌다. 주인과 대화를 한 듯이 유하가 일행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객잔 주인의 말이 오늘 저녁의 음식은 마련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미안하답니다. 오늘 저녁은 밖으로 나가도록 간편하게 입으세요. 며칠 쌓인 먼지도 털어 낼 겸으로 맛있는 집으로 안내할게요. 호호~!”
며칠을 마차에만 앉아있어서 걷는 것도 좋았다. 일행이 응천부의 풍경을 보면서 즐겁게 걸었다.
“아, 이 찬관(餐館)이 좋겠어요. 맛있는 향이 코를 찌르잖아요?”
유하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자 점원이 넓은 자리로 안내했다. 유하가 물었다.
“이 집에서 잘하는 요리는 뭐가 있어?”
어린 점원은 얼른 말했다.
“예, 동파육(東坡肉)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리고 불도장(佛跳墻)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고 합니다. 드셔 보시면 감탄하실 겁니다. 헤헤~!”
“또?”
유하가 그것만으로는 맘에 드는 요리라고 생각되지 않았던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소년도 눈치가 빠른지 다시 다른 식단을 추천했다.
“가장 맛있는 요리는 역시 장강에서 잡은 잉어를 통으로 튀겨서 만든 홍소잉어(紅燒鯉魚)지요. 물론 장어구이도 일품입니다만, 원하시는 것은 뭐든 가능합니다. 말씀만 하십쇼. 헤헤~!”
그러자 배가 고팠던 우창이 더 물을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들을 다 준비해 주게. 죽엽주(竹葉酒)도 한 병~!”
“스승님께서 많이 시장하셨나 봐요. 호호호~!”
주문하다가 말고 우창이 결정해 버리자 유하가 웃으며 말했다. 소년은 주문을 안으로 전하고는 차를 가져왔다. 향기로운 차향이 정신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차관(茶罐)의 차가 떨어지기 전에 요리가 나왔다. 커다란 잉어를 통으로 튀겨서 내어 온 쟁반에 양념을 부어서는 가운데 놓았다. 죽엽주의 향과 함께 행복한 저녁을 누렸다. 요리를 다 먹어가자 우창이 유하에게 물었다.
“응천부에서는 어떤 구경을 하면 좋을까?”
“당연히 볼 것은 많지만, 스승님의 마음이 소주에 가서 있으신 것을 잘 알아요. 얼른 가서 오행원의 식구들을 보고 싶은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에서 많이 머무르지 않아도 되겠어요. 내일 아침에 바로 소주를 향해서 출발하죠. 호호~!”
우창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말하는 유하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식구들의 생각이 어떨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진명이 말했다.
“사실은 진명도 어서 소주로 가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배를 타고 가면 되는 거죠? 와우~! 전 그게 더 기대되는데요. 호호~!”
그렇게 잘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는 푹 자고 아침부터 또 서둘러서 여정(旅程)을 재촉했다. 배를 이용하게 되자 마차는 염재가 응천부에서 소주까지 마부를 사서 먼저 보냈다. 여객선은 호화로웠다. 편안하게 앉거나 누울 수도 있는 배였는데 장강을 따라서 진강(鎭江)까지 간 다음에 경항운하(京杭運河)를 타고서 다시 단양(丹陽)과 상주(常州)를 지나고 상당히 번화한 무석(無錫)을 지나자 비로소 소주의 영역에 접근할 수가 있었다. 진명도 처음에는 배를 타고서 좋아하더니 그것도 이레나 계속 이어지자 오히려 재미가 없어졌다는 듯이 배가 부두에 닿을 때마다 소주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곤 했다. 그 마음을 이해한 유하가 진명에게 말했다.
“이제 오늘 밤만 지내면 소주에 닿겠어. 긴 여행에는 배를 타는 것도 힘들기만 하지?”
“맞아요. 이제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려고 했는데 다 왔다니까 오히려 시원섭섭한걸요. 호호호~!”
날이 밝아올 무렵에 물안개와 함께 소주에 도달했다. 배에서 내리자 마차가 미리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염재가 마부에게 잔금을 마저 치르고는 일행을 모두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