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제23장. 전생록(前生錄)/ 3. 전생(前生)의 기억(記憶)

작성일
2020-08-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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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제23장. 전생록(前生錄)


3. 전생(前生)의 기억(記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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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낭자는 전생이 있겠다는 확신은 한 것이오?”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게 사실이라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소이다. 믿고 말고는 스스로 알아서 판단할 일이니까 빈승이 간여할 일이 아니오. 다만 있다고 하는 것을 믿게 된다면 비로소 다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것이지만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시간의 낭비가 될 따름이지 않겠소?”

“아, 아니에요~! 믿어요. 믿고 말고요.”

어느 사이에 춘매의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처음 모습에서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는 우창이었다. 자신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이미 그 존재를 신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까닭이었다. 우창도 화상이 설명해 주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낭자만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오. 대부분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태어나서 살다가 죽기를 반복하는 것이고, 비록 어려서 전생을 기억했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그냥 흘려버리게 되기도 하고, 또 5세가 넘어가면서 점차로 잊어버리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되기도 하므로 그렇게 넘어가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오.”

화상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우창이 물었다.

“대사님의 말씀대로 전생에 대해서는 신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생각했던 대로 전생이 없다면 팔자(八字)의 존재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인과(因果)의 고리가 과거세에서부터 이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의 한쪽에 쌓여있던 의문이 풀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전생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의 전생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이치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결국 숙명통(宿命通)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과연 우창 선생은 천생(天生) 학자시구료. 허허허~!”

“아닙니다.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만 항상 깨닫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하~!”

“그럼 내가 물으리다. 우창 선생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시오?”

“예? 그건 무슨 뜻입니까? 당연히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오.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수행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에 우리는 같은 나무에서 벋어나온 다른 가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오.”

“그렇다면 애초에 하나의 존재였다는 말씀입니까?”

“그야 누가 알겠소이까. 그렇게 느껴지면서 초목과 산천도 모두 원래는 하나의 같은 뿌리였다는 것에 까지도 생각이 미치면서 처음에는 주화입마라도 당했다고 생각했었소이다. 그런데 점차로 의식이 맑아지면서 우주도 하나이고, 세상도 하나이고, 그대와 나도 하나라는 것이 맞겠다는 확신이 들었소이다.”

“오호~!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전생을 볼 수가 있다면, 남의 전생도 볼 수가 있게 되는 이치가 이해됩니다. 물론 아직 모두가 하나라는 말에는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또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죽이거나 서로를 아끼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우창이 너무 부족한 까닭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괜찮소이다. 믿지 않아도 그만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오. 허허허~!”

“그렇다면, 숙명통으로 과거세의 삶을 알아낼 수가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세월의 어딘가에는 기록(記錄)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흔적이 남아있다는 뜻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러한 것이 가능할 것이며, 과연 그러한 기록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들여볼 수가 있는 권한을 얻는 것이 숙명통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것은 타당하겠습니까?”

“물론이오. 이제 보니 우창 선생의 비유법은 탁월한 그 무엇인가가 있소이다. 그것을 설득력이라고 하지 않겠소이까? 허허허~!”

“어디에 그러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습니까?”

“창고(倉庫)~!”

“예? 창고라고요? 그게 무슨....?”

“달리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우리 주변에서 볼 수가 있는 것으로 비유를 들었을 따름이오. 창고에는 무엇이 들어있소?”

“음... 창고에는 사용했던 물건들이 들어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창고에는 자신이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도 있을 수가 있겠소?”

“그건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물건이 창고에 있을 까닭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썼던 물건을 창고에 보관했다가 다음에 필요하면 꺼내 쓸 것이지만, 그 물건이 있는 것을 잊었다면 꺼내 쓸 수가 있겠소?”

“막상 쓸 일이 있어서 찾다가 없으면 다시 구입하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이잖습니까?”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다고 봐도 될 것이오. 어떤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될 것이오. 그리고 그 창고는 어쩌면 바로 앞에 있거나, 먼 우주(宇宙)에 있을 수도 있소이다. 다만 위치는 몰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하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오? 아니면 그것이 어디에 있던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오?”

“그야 당연히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바로 그것이오. 전생의 기록이 어딘가에 있다면 신족통(神足通)을 발휘하든, 천안통이나 천이통을 발휘하든, 혹은 타심통을 발휘해서라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다면 아무리 눈이 밝고 귀가 밝다고 한들 어찌 찾을 수가 있겠소이까.”

“대사님의 말씀으로는 그 창고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숙명통을 얻은 사람은 그 창고를 자유롭게 들락이면서 누구의 전생이든 저장된 것을 볼 수가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믿는다면 매우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하겠소이다.”

“자신의 전생에 대한 기록을 볼 수가 있다면, 이미 기억의 도서관에 접속한 것이므로 그 안에 있는 남의 기록도 볼 수가 있으니까 자신이 본 것을 본인에게 전해 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소이다.”

“만약에 숙명통을 이룬 다섯 명의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의 전생을 본다면 같은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소이다.”

“예? 그건 왜입니까?”

“전생의 기록창고에 들어있는 자료를 본다고 했을 적에, 그것이 연대별로 정리가 되어 있다면 물론 그렇게 될 수가 있을 것이외다. 만약에 그렇게만 된다면, 전생(前生)의 기억과, 전전생(前前生)의 기억이 순서대로 나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같은 결과를 말할 수가 있겠으나, 실은 그렇지가 못한 것으로 보이오. 그러므로 같은 사람을 놓고 전생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되오.”

“음.... 순서대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루에 모두 들어 있는 것처럼 되어서 손끝에 닫는 것을 집어서 읽어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마도 그게 더 타당할 것이오. 그리고 같은 한 생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생전에 60년을 살았다면 그 자료인들 오죽이나 방대하겠소? 그러니 설령 같은 생을 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제각기 보는 것은 같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이오. 하물며 10생, 100생의 쌓인 자료이겠소이까?”

우창은 화상의 진정성이 가득한 말에 감동했다. 진실로 최대한의 노력으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해서 알아듣게 설명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시니 우창은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기억창고라는 말씀은 충격적이기조차 합니다. 과연 어떤 형식으로 생전의 행위가 저장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 주신 말씀이 공감되었습니다. 그 정도로만 이해한다고 해도 전생의 구조에 대해서는 달리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창의 전생 창고에는 어떤 것이 들어있을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이에 대해서 여쭤보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도 이제 이해가 되어서 말씀을 꺼내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우창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화상도 알아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춘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전히 직접적으로 말을 하기에는 아직도 선결(先決)해야 할 문제가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소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붓을 달라고 해서는 시(詩)를 하나 썼다.

 

 

춘매가 화상이 쓴 글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우창을 빤히 바라봤다. 어서 풀이해 달라는 표정이었다. 우창도 글귀를 들여다봤다.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

今生受者是(금상수자시)

欲知來生事(욕지래생사)

今生作者是(금생작자시)

 

우창이 글귀를 읽어보고는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과거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이번 생에서 받는 것이 그것이며

다음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이번 생에서 행위하는 것이 그것이니라.

 

뜻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이렇게 해석하고는 화상에게 물었다.

“대사님,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틀림없소이다. 이것이 전생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법문이라오. 너무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오.”

“그러니까 일부러 숙명통을 할 것도 없이 인과법(因果法)에 따라서 거래(去來)가 되므로 지금 어떤 형태로 살아가는지를 보고 미뤄서 전생의 일을 짐작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매우 편리한 해결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 이러한 뜻을 명리학자의 관점으로 바꿀 수도 있겠소이까?”

“예? 아하~! 그렇다면 어디 말이 안 되더라도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하던 우창이 글을 썼다.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

觀年月日時(관연월일시)

欲知來生事(욕지래생사)

知今日行爲(지금일행위)

 

“대사님, 이렇게 썼는데 말이 되는지요?”

“오호 멋진 말이오. 낭자를 위해서 풀이해 주시구려.”

대사의 부탁에 우창이 다시 춘매에게 풀이해서 들려줬다.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연월일시를 볼 것이며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오늘 행위하는 것임을.

 

춘매가 우창이 풀이해주는 이야기를 듣고서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호~! 아니, 오빠, 남의 시를 날로 먹었잖아. 호호호~!”

우창이 빙그레 웃자 화상이 말했다.

“금생에 받는 것이 사주팔자에 나와 있다고 한다면 결국은 같은 말이라고 봐서 전혀 문제가 없는 「팔자전생록(八字前生錄)」이라고 하겠소이다. 재치가 넘치는 개시(改詩)로소이다. 허허허~!”

“그렇다면, 다시 대사님께 여쭙습니다. 팔자에 나온 암시는 직전의 전생에 대한 기록으로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타당한 말이오.”

“팔자의 해석을 잘하고 못하고는 숙명통의 수준이 저마다 다를 수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는 생각이겠소.”

“어쩌면 팔자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전생에 지어놓은 업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겠습니까?”

“물론이오. 가능한 대입이외다.”

“만약에 그렇다면, 명학을 공부하는 것도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해도 되겠습니다. 오늘 대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모든 이치는 하나에서 나왔다는 말에 대해서도 공감이 됩니다. 그것을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는 거입니까?”

“맞소이다. 모든 이치는 하나에서 출발했고, 다시 하나로 모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과법의 무한반복(無限反覆)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오.”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을 듣고 있던 춘매가 끼어들었다.

“스님의 말씀을 들어봐서는 전생에 대해서 구태여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잖아요?”

춘매가 기대했던 전생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자 시무룩해졌다. 그 마음을 짐작한 우창이 다시 화상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대사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이는 또 자신이 기대했던 내용이 있었던가 봅니다. 아무래도 누이는 이론적인 것보다는 실질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가 봅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춘매의 과거 생에서 한가지의 실마리라도 찾아서 들려주신다면 또한 매우 고마워하지 싶습니다. 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화상은 춘매를 지그시 바라보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을 꺼냈다.

“남해안의 바닷가가 보이는데, 혹 낭자는 가끔 부지불식간에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가 떠오른 적이 종종 있지 않았소?”

“맞아요~! 왜 가보지도 않았던 풍경이 문득 떠오를까 싶었는데 그냥 상상인 줄만 알았죠. 그것이 전생의 기억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요?”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오. 시대는..... 대략 200여 년 전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오. 이것은 당시의 복장(服裝)을 참작해서 판단해 보는 것이니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소이다.”

우창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대화에 개입했다.

“대사님, 그렇다면 그 중간의 시간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화상은 우창을 보고 물음에 답했다.

“나도 아직은 숙명통이 완성되지 않아서 시간조절까지는 불가능하니 어쩔 수가 없소이다.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할 뿐이고, 원하는 대로 몇 년 전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까지 알아내는 것은 역부족이니 헤아려 주시오. 허허허~!”

“아, 그렇습니까. 우창이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으니 우둔한 질문을 드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하~!”

춘매는 이야기 중에 우창이 끼어들자. 잠시 기다렸다가 궁금한 것을 말했다.

“스님께서 보시기에 저의 몰골이 어떤가요?”

“중년의 남자 모습이구려. 글을 읽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손이 희고 곱기 때문이오. 다만 움직이는 모습이나 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흡사 그림 속의 한 장면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오.”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또 다른 그림이 보이면 말씀해 주세요. 혼자 사는 것으로 보이나요?”

“혼자는 아니오, 또 다른 모습에서는 노파가 보이는데 얼굴을 봐하니 우창선생인 듯싶소이다.”

화상의 말을 듣자 춘매가 깜짝 놀라면서 반문했다.

“그럼 전생에서 이미 만났었다는 말씀이세요?”

“아마도 그랬나 보오. 노파는 모친인 모양이오. 밭에서 먹을거리를 키우고 있는 그림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아들이 공부하는 것을 뒷바라지하는 모습인 것 같소이다.”

다시 궁금해진 우창이 끼어들었다.

“그러시면, 대사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림과 같은 단편(斷片)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는지요? 그리고 숙명통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면 일상의 대화하는 장면처럼 볼 수도 있는 것입니까?”

“물론이오. 여기에다가 타심통까지 한다면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볼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하오.”

“정말 놀랍습니다. 그림으로만 보는 것도 신기한데,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것은 미쳐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대사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장면들만으로도 이미 많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음을 짐작하겠습니다.”

“빈승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소. 단지 낭자의 질문이 씨앗이 되어서 그 질문과 연결이 되어 있는 단편을 찾아서 서로 부합이 되는 장면이 보이면 그것을 말로 전해 줄 따름이오. 그러므로 질문이 잘못되면 전혀 엉뚱한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소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전생관법은 펼치지 않는 것이오. 자칫하면 오류가 생기고, 전생에 대해서도 착각을 할 수가 있는 까닭이오.”

우창은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림은 붓으로 그린 듯이 명료하게 보이는 것인지요? 묵화(墨畫)처럼 보이는지, 아니면 채색화(彩色畵)처럼 울긋불긋하게 보이는지도 궁금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지만, 이번에 보이는 것은 현실적인 장면을 그린 듯이 보이오, 실제의 장면을 그린 선명한 채색화라고 생각하면 되겠소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으로 연상을 할 수가 있겠소. 때로는 실제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흐리멍덩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 까닭이다. 그 이유를 싱각해 보면 아무래도 기억의 심천(深淺)과 시간의 경과(經過)에 의해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소이다.”

“자상하신 말씀을 통해서 잘 이해했습니다. 비록 한 장의 그림이지만 많은 내용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 한 장이 아니라, 대략 열 장 정도는 되는 까닭이오. 이러한 것을 종합해서 해석하는 것이오.”

“그러시다면 대사님의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그러한 편린(片鱗)을 모아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또한 수행의 내공이 필요하겠습니다.”

“빈승이 본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조합해 보겠소이다. 비록 실제의 상황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해석하는 관점에는 현재의 모습도 개입할 수가 있는 까닭이오. 말하자면 선입견(先入見)이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오.”

우창은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에 관심을 보였고, 춘매는 당연히 자기의 일이라서 화상의 해석에 집중했다. 두 사람이 말이 없이 자기만 바라보고 있자 화상은 자신이 본 그림을 조합해서 해석했다.

“바닷가에 모자(母子)가 살고 있소이다. 모친은 대략 60세가 넘었고, 부친은 안 보이는 것으로 봐서 어쩌면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겠는데, 아들은 20대 중반으로 매우 총명해 보이는구려. 봐하니 과거를 준비하는 모양이오. 논어(論語)의 구절(句節)을 따로 써서 벽에 붙여놓은 그림이 보이는 까닭이오. 그런데 공부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벼슬하여 말을 타는 장면은 보이지 않아서 그다음의 일은 나도 알 수가 없소. 이로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은, 전생에 낭자는 글을 읽은 사람이었고, 우창 선생은 그 아들을 위해서 뒷바라지를 했던 것으로 보면 되지 싶소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조각들이오.”

이야기를 들으면서 춘매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화상에게 물었다.

“지금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에 오빠를 만났을 적에 느꼈던 감정이 떠올라요. 마치 멀리 떠난 어머니를 오랜만에 만난듯한 포근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손님도 많이 만났지만 참으로 이상한 감정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공자묘를 안내해 줄 수가 있겠느냐고 말을 했을 적어 내심으로 너무나 기뻤어요. 이대로 잠시 보고 헤어지기에는 너무 아쉬운 묘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전생에 제게 밥을 해 먹였던 어머니의 감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스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

춘매가 단숨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줄은 우창도 몰랐다. 더구나 얼굴은 이미 흥분으로 인해서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기조차 했다. 우창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