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굿판의 소녀

작성일
2022-07-1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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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 굿판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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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일행과 함께 승성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서자 우람한 전각이 자리하고 있고 현판에는 「아성전(亞聖殿)」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러고 보면 곡부(曲阜)의 공부(孔府)에는 「대성전(大成殿)」이었는데 성인성(聖)을 써서 대성전(大聖殿)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염재에게 물었다.

“여기 맹부(孟府)의 본전이 아성전이라면 공부의 본전은 대성전(大聖殿)이어야 하지 싶은데 왜 곡부의 공자묘는 대성전(大成殿)으로 되어있는지 그 연유를 알고 있나?”

우창의 물음에 염재도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까 제자도 생각이 났습니다. 다만 대성(大聖)과 대성(大成)의 차이는 글자만 다르고 의미는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공자의 제자들은 겸양지덕(謙讓之德)을 품고 있어서 스승인 공자를 성인(聖人)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학문을 이룩한 것으로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크게 이룬 자가 결국은 성인일 테니까요.”

염재의 풀이에 우창이 말했다.

“오호~! 그럴듯한걸. 그러니까 원래 큰 어른은 성인(聖人)이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성인이지만, 맹자는 제자들이 걱정하여 성인이라고 알아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성인이라고 하고 싶은데 공자님이 계시니까 감히 성인이라고 두 번째의 성인이라는 뜻으로 썼다는 말인가?”

“원래 후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선대를 높여야 한다는 이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더 깊은 뜻이 있는지는 헤아리지 못하겠으니 혹 오류가 있더라도 다음에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아닐세, 오류랄 것도 없지 싶네. 염재의 말을 듣고 보니까 이미 그만하면 이치에 타당한데 뭘. 하하하~!”

본전에 봉안된 맹자의 상(像)과 이름이 적힌 위패(位牌)를 향해서 향을 태우고 마음으로 저마다의 학문에 큰 발전이 있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문득 위를 보니까 또 하나의 편액이 걸려있었다. 글씨는 「도천니산(道闡尼山)」이었다. 우창이 봐하니 그 내용은 대략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나도 알 것 같네. 니산은 니구산(尼丘山)일 것이고, 천(闡)은 열었다는 의미이니까, 도(道)는 니구산으로부터 열렸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지? 예전에 춘매와 함께 니산을 둘러봤던 것이 문득 떠오르는군. 하하~!”

우창의 말에 염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묵묵히 참배하던 지광이 한쪽으로 일행을 모이게 한 다음에 조용히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맹부를 둘러봤는데, 역시 공자묘와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네. 사당의 자리조차도 생전에 연마한 학문의 깊이와 서로 통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기로 논한다면 공묘(孔廟)의 대성전은 화맥이 대단히 강렬한 것에 비해서 이곳의 힘은 그에 비해서 절반 정도에 머문다고 하겠으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그 선생들의 학문에 대한 깊이와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지광의 말에 우창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형님께서는 그사이에 지기(地氣)를 가늠하고 계셨습니까? 생전에 학문을 연구하고 깨달음을 세상에 전한 것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그를 기념하여 모신 사당까지도 격차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야 난들 알겠는가. 학문의 깊이야 내가 가늠할 수가 없겠지만, 적어도 그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대해서 감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라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과연 형님의 말씀에 일견(一見)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최초로 가르침을 열어 보인 것이 중요하니까요. 맹자가 아무리 뛰어난 노력으로 도를 펼쳤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기억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억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터에서조차도 그러한 것이 느껴진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가? 아우님이 생각해도 일리가 있다면 그것은 일단 유효한 것으로 보고 더 연구해 보도록 해도 되겠군. 하하하~!”

“형님의 말씀대로라면 대체로 명산에 있는 대찰(大刹)들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게까지 확장해서 생각해 보셨나? 참 대단하군. 하하하~!”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대로라면 어느 인물을 찾아가서 만나기 전에 그가 머무는 곳의 지기(地氣)를 살펴보면 대략 그 주인장의 내공을 파악할 수가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우제도 능력이 된다면 그러한 경지는 탐이 납니다. 하하하~!”

“행여라도 그런 생각은 말게. 선입견(先入見)에 갇히게 되면 정작 참된 스승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우창이 문득 이해되지 않아서 지광의 말에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웃으며 말했다.

“터는 훌륭하다고 해도 주인이 바뀌게 될 수가 있는 것이고, 땅의 복은 없어도 문자의 복이 있어서 학문이 심후(深厚)할 수도 있으니 어찌 그것만으로 단언을 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다만 참고를 할 수는 있겠다는 것으로만 논한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다 믿을 것은 없단 말이네. 하하하~!”

“아, 그렇겠습니다. 과연 형님의 가르침대로만 이해하면 오류에 빠져서 허우적댈 일이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하하~!”

“이제 아성(亞聖)도 뵈었으니 어디 머물 곳이나 찾아보세. 계속 가다가 밤에 머물 곳이 없으면 그것도 곤란할 테니까 아예 일찌감치 숙소를 찾아놓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지광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아침부터 마차에서 흔들리면서 오느라고 다소 피곤한 감도 있었고, 진명은 여인이라서 무리해서 강행하면 탈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염재가 앞에서 말을 몰면서 객잔을 찾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꽤 괜찮아 보이는 「사융객잔(四隆客棧)」이라고 쓴 객잔이 보였다. 조용하게 하루 휴식을 취하기에는 무척 맘에 들어서 염재가 마차를 세우자 모두 맘에 들어 했다. 염재가 마차를 세워놓는 사이에 거산과 진명이 주인에게 묵을 방이 있는지를 확인해서 깨끗한 방으로 잡고는 잠시 차를 마시면서 쉬었다. 아성전을 둘러보느라고 조금은 지쳤기 때문이었다. 저마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데 우창의 귓가에 어딘가에서 북과 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여 창가로 가서 내다보니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지광도 나와서 말했다.

“아마도 누군가 육신(肉身)에 신령(神靈)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군. 바쁘지 않으면 저녁을 먹고 재미 삼아 구경하러 가 볼까?”

“예? 저런 곳에 놀러 가도 됩니까? 잘못 갔다가 이상한 소리나 들으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꺼려지는데요?”

그러자 지광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그런 것이 두렵단 말인가? 하하하하~!”

“그야 잘 모르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님은 왜 가보려고 하십니까? 괜히 정신없이 시끌벅적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탐탁잖은 표정으로 말하자, 지광이 다시 말했다.

“여보게 아우님. 세상의 중생들과 상대하려면 이런 사람과도 만나보고, 또 저런 사람과도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 것이라네. 오늘 이것도 기회일 수가 있으니 일행들이 일어나면 헛일 삼아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네.”

아무래도 지광의 말투로 봐서 혼자라도 가볼 셈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창도 슬며시 호기심이 동했다. 실제로 무녀(巫女)가 영혼(靈魂)과 함께 행사(行事)하는 일은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을 쌓는다는 목적으로 지광을 따라나서기로 하자 다른 일행도 하나둘 일어나서는 두말없이 동행하기로 했다.

잠시 쉬었던 일행은 시장하던 차에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나자 이미 사방은 어두워지고 불빛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 술시(戌時)였다. 거리는 지척이라서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길을 즐겁게 대화하면서 걸으며 우창이 지광에게 말했다.

“형님, 참 묘한 느낌이 듭니다. 맹자의 고향인 추성(楸城)에서 무녀(巫女)가 굿을 하는 장면을 만나는 것이 말입니다. 큰 학문의 터전 옆에서는 또 무속(巫俗)이 공존하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어차피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혼합체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너무도 당연한 것을 신기하다는 아우님의 안목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하~!”

“그것이 또 그렇게 됩니까?”

“당연하지 않고. 부모님의 시신을 옆에 두고서도 상주(喪主)는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 않은가? 하하~!”

“아, 하긴 그렇습니다. 이러한 이치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야 내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아우님이 찾아야지.”

“음.... 청탁동존(淸濁同存)라고 할까요?”

“그래? 졸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은 들어봤네만, 청탁동존은 또 금시초문이로군. 그러니까 맹자의 학문은 맑은 것이고, 무녀의 굿판은 탁한 것이라는 말인가? 왠지 선뜻 동의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이유는 또 뭘까?”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우제가 잘못 짚은 것인가 싶습니다. 역시 신들의 놀이에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대로 경험해 보면 해결되겠군. 아무리 머리가 총명하여 절정에 다다랐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이 직접 겪은 경험에 비한다면 너무나 초라하여 흡사 태양 앞에 등불과 같다고 할 테니까 말이네.”

“과연 그렇겠습니다. 직접 겪어 본 것보다 명료한 것은 없는 것이 맞습니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굿을 하는 마당에 도착했을 때, 마침 신이 오른 무녀(巫女)는 거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얼굴은 붉어지고 온몸이 새털처럼 펄펄 뛰는 것이 누가 봐도 무아지경의 절정을 향해서 달리는 듯이 보였다. 이미 요란한 소리를 듣고서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도 30여 명은 되어 보였다. 사람들이 둘러서 구경에 빠져들고 있는 사이로 우창도 기왕이면 제대로 보려고 앞쪽으로 헤치고 다가갔다. 그러자 앞의 풍경이 소상하게 눈으로 들어왔다. 우창에게 이러한 풍경은 처음이어서 신기한 마음으로 둘러봤다.

무녀의 나이는 대략 50세쯤 되어 보였고, 옆에는 곱게 단장한 앳된 소녀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데, 나팔이며 북과 징을 치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외치면서 흥을 돋우고 있는 것도 보였다. 무녀를 자세히 살펴보자 휘황하게 밝혀진 등불 사이로 그녀의 한 손에는 번득이는 칼이 들려있고, 다른 한 손에는 종이로 장식한 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앞의 중앙에는 제단에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놓여있었다. 이렇게 둘러본 다음에서야 무녀의 행동에 눈길이 갔다.

무녀는 펄펄 뛰면서 허공으로 솟아오르는데 젊은 청년과도 같은 힘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는 옆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에는 서슬이 시퍼런 작두날이 겹겹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위를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작두날의 계단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사뿐사뿐 걸으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작두 칼날의 계단이었다.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는 것은 칼날이 불빛에 번득이는 것을 보니 맨발의 여인은 순식간에 발이 두 동강이 나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에서 선혈을 뿜을 것만 같은 느낌에 우창은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풍악 소리는 더욱 자지러지게 울려 퍼졌다.

우창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면서 그 장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지광이 옆에서 말했다.

“내림굿이로군.”

시끄러운 소리로 인해서 이 말의 뒤에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것은 듣지 못했다. 다만 내림굿이라는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그래서 처음 듣는 말에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물었다.

“내림굿이라니요? 무슨 뜻입니까?”

“아, 굿의 종류를 보고서 한 말이네.”

“그렇습니까? 굿은 다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크게 보면 무녀가 신을 내리는 것은 같지만 그 목적에 따라서 내림굿, 병굿, 해원굿, 재수굿 등등 다양하다네.”

“아하~! 그렇군요. 말하자면 인간이 원하는 만큼의 굿이 있다는 뜻이지요?”

“맞아. 그중에서 오늘 굿은 내림굿이라는 말이네.”

“내림굿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우창이 이렇게 묻자 다른 일행도 시끄러운 소리보다도 지광의 설명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인지 가까이 붙어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을 본 지광이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행여라도 굿판에 방해가 될까를 염려해서였다.

“내림굿은 세상에 무녀가 새로 태어나는 굿이라네.”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서 있는 여아(女兒)를 가리켰다. 나이는 대략 1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흥분된 표정으로 무녀가 작두의 칼날 위에서 뛰고 있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저렇게 어린아이에게 무슨 신이 내린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말이네. 신령은 염치도 없지?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무녀가 작두에서 내려와서는 들고 있던 대나무 막대기를 소녀에게 건넸다. 우창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가 궁금해서 앞의 풍경에 신경을 모아서 지켜봤다.

그것을 받은 소녀가 갑자기 용수철을 밟고 있는 듯이 뛰어올랐다. 그렇게 십여 차례를 펄펄 뛰더니 들고 있던 막대로 한 바퀴 쓸 듯이 했다. 그러자 신명 나게 울리던 악기들도 일제히 소리를 멈췄다. 순식간에 굿판은 조용해졌다. 그러자 소녀의 음성이 들렸다.

“훠이~! 훠이~!”

어쩌면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저것이 귀신의 소리인가 싶은 생각에 더욱 집중해서 지켜봤다. 그렇게 좌중을 둘러보던 소녀가 앞에 앉은 한 여인에게 다가가서는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아프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신령께서 원력으로 낫게 해 줄 테니~!”

이렇게 말하자 그 여인은 손바닥을 비비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 아마도 전에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에 우창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자 지광이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첫 공수가 나온 것이라네. 처음에 신이 솟으면 마치 눈으로 본 듯이 과거와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기도 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네.”

“예? 정말입니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도 알아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다네. 이러한 것이 굿판의 재미라고 할 수 있지. 하하~!”

“관념에 젖어서 와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진기한 풍경을 놓칠 뻔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직접 보고 나니 이 세계도 꼭 알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으로 가득한 곳인가 싶습니다.”

“그렇지.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으나 인연에 따라서 접해 볼 수가 있는 것은 알아둬서 해로울 것이 없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쓰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새로 신을 받는다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우창과 눈을 마주친 소녀가 손짓으로 우창을 불렀다. 우창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얼떨떨했는데 지광이 등을 떠밀면서 말했다.

“옳거니~! 오늘 아우님이 제대로 걸렸네. 어서 가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말이네. 하하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우창에게 눈길이 쏠렸다. 우창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자 소녀가 재차 불렀다. 앞에 있었으면 그냥 말을 했을 텐데 좀 떨어져 있어서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에게 하는 것이 분명한 것을 확인하고서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나를 불렀습니까? 무슨 가르침이라도 계신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서니까 소녀는 앉으라고 다시 시늉했다. 그래서 옆에 앉자 소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창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창도 깜짝 놀랐으나 소녀의 돌발행동을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엉거주춤하게 앉아있었다. 갑자기 구경꾼들이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모두 깜짝 놀랐다는 뜻이었다. 이런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구경거리였기 때문이다.

우창도 얼떨결에 당한 일이 너무나 난감해서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서 지광을 바라봤다. 어떤 조언이라도 받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우창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광도 다른 구경꾼들과 마찬가지로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지광의 행동으로 봐서 뭔가 잘못될 것은 없겠다는 안도감이 들어서 소녀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나 하자는 여유가 생겼다. 소녀가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더니 우창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렇게 찾아주셔서 영광이에요~!”

우창이 깜짝 놀랐다. 누가 봐도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닌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춤을 추던 무녀도 옆에서 미소를 짓고 앉아있었다.

“보잘 것도 없는 소녀의 굿판에 왕림해 주신 것은 용기가 백배로 솟아올라요. 같이 춤을 한 번 춰주세요. 자자~!”

우창은 갈수록 더 난감해졌으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될 대로 해보자는 의미로 소녀가 이끄는 대로 일어나서는 어떻게 하려나 보는데 소녀가 다시 예의 그 춤사위로 껑충껑충 뛰는 것이었다. 우창도 북과 징의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같이 뛰었다. 잠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지광이 나와서 우창의 손을 잡은 소녀와 손을 잡고 같이 뛰면서 우창에게 눈짓으로 빠져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광은 우창보다 더 펄쩍펄쩍 뛰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도 더욱 신명이 났고 북을 치던 사람들조차도 힘을 다해서 저마다의 손에 있는 악기를 두드렸다. 우창은 지광의 도움으로 자리를 빠져나와서 옆에 서서 손뼉을 치면서 장단을 맞췄다. 조금 전의 어색함은 이내 사라지고 오히려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뛰던 소녀가 다시 손에 든 대나무 막대기를 한 바퀴 흔들자 풍악도 소리를 멈췄다. 그러자 소녀가 지광은 본체만체하더니 우창에게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를 이제야 만났네요. 어서 제 점을 좀 봐주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무녀의 몸에 엮여있던 줄에서 돈 꾸러미를 하나 꺼내어서 우창의 손에 덥석 줬다. 그 돈은 제물의 일종으로 설치해 놓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우창은 참으로 난감했으나 옆에서 미소를 짓고 바라보는 지광이 있어서 든든했다. 이 순간에 봐야 하는 오주괘라니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회중시계를 꺼내어서 점괘를 가늠하자 눈치 빠른 소녀가 자신이 들고 있던 대나무를 우창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우창이 그 대나무로 바닥에 점괘를 썼다.

387 소녀의 점괘

점괘를 쓰면서 우창은 깜짝 놀랐다. 무슨 점괘가 이렇게 나왔나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점괘였다. 다만 지광은 신기한 듯이 점괘를 보면서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서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우창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구경꾼들도 호기심이 동해서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주변은 어느 순간에 텅 비어버린 공터처럼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굿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우창도 신이 내리는 것이야 알 바가 없었으나 점괘만큼은 땅에 적히는 순간 바로 눈에 들어왔다. 잠시 생각하고는 바로 말했다.

“굿판은 접고 나랑 같이 가자~!”

우창은 말을 해 놓고서도 스스로 이렇게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던 것인데, 이렇게 남의 굿판을 깨어버리는 소리를 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점괘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우창이 난감해서 지광을 바라보자 지광은 계속 말하라는 손짓을 했다. 이왕 내친 김이니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계속 말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소녀를 바라봤다.

일순간 굿판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창의 말을 듣던 무녀는 갑자기 얼굴빛이 붉게 변했고, 소녀는 용수철처럼 바닥에서 튀어 올라서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돌발적인 행동에 우창은 적응이 되지 않아서 멍~하게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에 소녀가 다시 진정하고는 우창의 앞에 절을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이제야 바른길을 안내해 주시는구나~! 진즉에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제라도 만났으니 끝까지 따라서 도법을 배우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예의 무녀에게로 가서는 허리를 굽히고서 말했다.

“오늘의 인연으로 평생을 섬길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네요. 이제 신명의 제자를 떠나서 할아버지의 제자가 되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선언하자 사람들은 갑자기 우레같은 소리로 환호했다. 아마도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린 소녀가 신을 받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다만 무녀만 홀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북통을 걷어차고는 말했다.

“이년이 죽을 운명을 열어주려고 했더니 이렇게도 나를 배신하는구나. 어디 얼마나 잘 되나 두고 보자. 고얀 년~!”

감히 우창에게는 뭐라고 못하고 소녀에게만 악다구니를 퍼붓고는 자리를 떠버렸다. 아마도 민망했으리라는 짐작이 되어서 우창이 뭐라고 위로를 할 말이 없어서 멍하니 있었다. 그야말로 굿판이 깨어지고 나자 구경꾼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흩어졌다. 그러자 악기를 두드리던 사람들도 떠나가고 마당에는 우창의 일행과 소녀와 소녀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스승님을 뵈었으니 차라도 대접해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일행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집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으나 소녀의 부모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잠자코 돌아가던 상황을 지켜본 지광이 나섰다.

“자, 놀라실 것이 없습니다. 천천히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도대체 저리도 어리고 어여쁜 여아가 신을 받게 되었던 연유가 궁금합니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듯 부친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말을 하자면 깁니다. 차라도 드시면서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녀는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어느 사이에 불을 피워서 찻물이 끓고 있었다. 그런데 우창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서 납득을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영계(靈界)의 정황을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에 몸에 실려서 예언까지 하던 소녀가 갑자기 돌변해서 우창에게 길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도 당황스럽거니와 한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여럿이서 머물러 있는 것이라면 또 몰라도 과연 이러한 정황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지에 대해서 생각하느라고 이마를 찌푸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던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하하~ 아우님은 또 새로운 연구를 할 거리를 얻으신 게로구나. 그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어디 무엇이 문제인지 들어볼까?”

생각에 잠겼던 우창이 지광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풀지 못하던 문제를 물었다. 그제야 지광이 우창을 바라보다가 대중들을 향해서 잘 들으라는 듯이 약간 음성을 높여서 말했다.

“그쪽 세상도 이쪽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네. 그러니까 여아의 몸을 하나 중간에 두고서 조상령으로 행세하는 귀신과 누구에게너 존재하는 수호령들이 각축전(角逐戰)을 벌인다고 생각하면 된다네. 다행히 몸에 자리를 잡고서 마음대로 휘저어 보려던 조상령을 빙자한 귀신들이 누군가의 힘에 눌려서 멈칫거리는 사이에 수호신령이 출현해서 아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이지. 그리고 처음에는 마음대로 여아를 주무르려던 신어머니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는 짐을 싸는 것을 본 것이라네. 물론 이러한 일이 생긴다는 것조차도 희귀한 일이기는 하지. 그리고 이렇게 일이 돌아가게 된 것에는 이 지광의 공덕도 약간은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군. 하하하~!”

“아니, 그렇다면 형님께서 뒤에서 모종의 기술을 발휘했단 말씀이시군요? 오호~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부족한 경험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을 듣고 보니까 조리가 정연합니다. 역시 여아의 운이 좋았던가 봅니다. 이제 의문이 풀렸습니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물이 끓자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따라주는 것을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우창도 차를 마시면서 이 어린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내막이 궁금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잠시 기다렸다. 우창뿐만 아니라 염재와 거산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진명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한쪽에 앉아서 지켜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