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제27장. 춘하추동/ 9.오가다 만남도 인연(因緣)

작성일
2021-02-15 06:17
조회
2555

[286] 제27장. 춘하추동(春夏秋冬) 


9. 오가다 만남도 인연(因緣)


========================

염재는 잠시 관청(官廳)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다녀온다고 하고 가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하고 있는데, 중년의 남자가 우창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마도 오가면서 만나는 사이에 얼굴을 익혔던 모양이다. 원래 우창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이 유난히 떨어져서 가끔은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지금도 딱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기억에는 없었으나 우창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무척이나 덥네요.”

“아직은 복중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바람쐬러 나오셨습니까?”

“예,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서 나와 봤습니다만, 여전히 덥네요. 하하~!”

“저.... 도사님, 언제 한 번 뵈어야 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선뜻 뵈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머리를 슬슬 긁었다. 수줍음이 많은 남자인듯했다. 궁금하면 찾아와서 물으면 될 텐데 그것조차도 망설였던가 싶었다.

“혹 무슨 말씀이라도 계셨는지요? 괜찮으시면 점술관으로 같이 가서 차라도 나누시고요.”

우창이 이렇게 인사치레로 초청의 말을 하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 받는다.

“아~!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실은 꼭 좀 뵙고 싶었습니다.”

“물론이지요. 같이 가시지요.”

그렇게 해서 산책길에 생각지도 못한 손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다만 내심 걸리는 것은 춘매가 이 손님 몫까지 줄 밥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나눠 먹으면 되는 일이니 일단 가서 생각하자는 마음이었다. 춘매의 집으로 가니까 마침 식탁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여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누이, 손님을 모시고 왔어. 젓가락 하나 준비해 줘.”

“그래? 잘했네. 마침 무슨 생각으로 넉넉하게 만들어지기에 왜인가 했더니 이렇게 손님을 모시고 오려고 그랬구나. 함께 해도 되겠어.”

우창을 따라서 쭈뼛쭈뼛하고 들어오는 남자에게 춘매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소찬(素饌)이지만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남자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말없이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낯선 손님으로 인해서 분위기는 다소 서먹했으나 우창은 춘매와 유월(酉月)에 대한 뒷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우창의 점술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자, 이리 앉으시지요. 누추합니다.”

남자는 순순히 우창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자 우창이 비로소 남자에게 무슨 일로 와보고 싶었는지 물을 수가 있었다.

“어쩐 일로 소생을 뵙고자 하셨는지요?”

“예, 실은 곡부에서 혼자 산지가 3년여가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왔으나, 생각대로 공부가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뚜렷하게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목표가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더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지 판단하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막상 도사님께 여쭙고자 하고 보니 뭘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해서 우물거리고 있던 차에 오늘 길에서 뵙게 되자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 어느 학당에서 공부하고 계십니까?”

“예, 명륜당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남자의 입에서 명륜당이라는 말이 나오자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그래서 춘매를 바라보자 춘매가 얼른 말했다.

“오빠, 공할아버지 댁이잖아~!”

“아 참, 그렇구나~! 그러니까 손헌 선생님 댁에 인연하여 공부 중이셨나 봅니다. 훌륭하신 가르침을 많이 받으셨을 텐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여쭤보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여쭤봐도 스승님께서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니 내게 묻지 말라고만 하십니다. 그래서 더 말씀을 드리기도 뭣하고....”

“하하하~! 그러실 어른이시지요. 하하하~!”

우창은 남자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 객잔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우창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자 남자는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었던지 우창을 바라봤다.

“아, 실례했습니다. 예전에 손헌 선생님과의 일이 생각나서 그만. 하하하~!”

“스승님과 재미있는 일이 있으셨던가 봅니다.”

“그 어르신이니까 능히 답변을 그렇게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문의 길이 끝이 없을 텐데 3년의 공부로 방향을 전환코자 하셨습니까? 혹 그러한 생각을 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실로 예리한 질문이십니다. 제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소생도 도사님처럼 역학(易學)과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보니 재미가 좀 없어진 것도 있습니다.”

“그럼 『역경(易經)』을 공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역학이 역경인데 또 다른 곳에서 무엇을 구한다는 말씀입니까?”

우창도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은 되었지만 그래도 짐짓 모르는체하고서 넌지시 떠봤다. 우창의 생각대로라면 자신은 그쪽이 아니라 간지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가 말했다.

“그런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실은 명륜당의 주 낭자가 들려준 말이 떠올라서입니다. 낭자의 말로는 연승점술관의 주인이 젊은 사람인데 학문이 깊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구나 스승님께서도 아는 것이 많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꼭 뵙고 싶었으나 명색이 유학(儒學)을 배우고 있는 자가 점술관을 들어가기가 멋쩍어서 가끔 배회하다가 그냥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은 길에서 마주친 김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주 낭자와 손헌 선생님은 잘 계시는지요? 요즘은 통 나들이를 하지 않으시니 뵈었던지가 한참 되었습니다.”

“예, 여전히 잘 계십니다. 여름에는 땡볕에 나다니는 것이 손해라고 하시면서 바람 소리를 벗 삼아서 시를 읊으면서 지내시지요.”

그러자 춘매가 아는 체를 했다.

“잘 오셨어요. 어쩌면 먼발치에서라도 뵈었을지 모르겠네요. 오빠에게 뭐든 궁금하신 말씀이 있으면 하셔도 돼요.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 나가볼께요.”

이렇게 말하고는 춘매가 일어났다. 아무래도 자신이 있으면 말하는 것이 거북할 것도 같아서였다.

“예,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셔도 괜찮습니다. 함께 담소하면 더 좋은 말씀을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함께 말씀해주시지요. 제가 궁금한 것은, 제가 학문을 해서 사도(師道)의 길로 갈 인연인지, 간지오행(干支五行)을 배워서 오행도(五行道)의 길로 갈 인연인지를 꼭 듣고 싶습니다. 어느 것이나 모두 좋지만 그래도 지금 방향을 잡지 않으면 또 10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다음에 후회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솔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춘매도 상담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눈치껏 피해주려고 했으나 그냥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일어났다가는 다시 앉아서 차를 마련했다. 남자의 간절한 말에 우창도 사주를 봐주기로 하고 『천세력(千歲曆)』을 펼치면서 말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태어나신 생년 생시를 부탁합니다.”

우창은 남자가 말해 준 생일을 바탕으로 사주를 작성했다. 그리고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286 안산사주

그렇게 잠시 사주를 들여다보던 우창이 한 마디 물었다.

“선생께서는 출생(出生)하실 때의 시(時)에 대해서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혹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었는지 아니면 아직은 밝은 시간이었는지 들으신 대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자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느낌이 들자 다시 생각을 해 보고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부모님께 듣기로는 해가 질 무렵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신시(申時)로 보겠습니다. 그리고 궁금하신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훈장님보다는 상담가의 일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소리를 백번 천번 해도 재미있어야 하는데 신시에 태어났다면 한 말을 또 하는 것이 지루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다면 항상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 또 신선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3년이나 명륜당에서 인내하셨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십니다. 혹 의술에 대해서 흥미가 있지 않으셨습니까?”

“아, 어쩐지 제가 느낀 것이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과연 주 낭자의 말이 옳았습니다. 의술에 관심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회중시계를 꺼내서 흘낏 보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면서 춘매가 말했다.

“주 낭자가 뭐라고 했기에 그러세요?”

남자가 춘매를 보면서 답했다.

“지난봄에 차를 마시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안산(安山) 선생은 이 공부보다는 술수(術數)를 연구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서 곰곰 생각해 보니 과연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배우고 싶어도 인연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얼마 전에 말하기를 ‘아직도 술수에 관심이 있다면 가볼 만한 곳이 있어요.’라고 하면서 이곳을 말하기에 귀에 담아 두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인연이 있으면 공부를 하셔도 좋겠네요.”

우창이 다시 사주를 보면서 말했다.

“아호(雅號)가 안산 선생이시군요. 안산 선생께서는 이미 한학(漢學)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공이 깊으시기 때문에 술수를 배우신다면 깊은 이치까지도 통찰(洞察)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변변치 못합니다만, 그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우창이 암암리에 찾은 오주괘를 생각해 봤는데 관심을 보이자 비로소 점괘를 적었다.

286 안산점괘

안산은 우창이 적어놓은 간지를 보고는 의아해서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팔자입니까? 처음 봅니다만....”

“예, 소생이 가끔 활용하는 점괘입니다. 문득 안산 선생의 점괘를 보고서 학문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점괘는 미래의 길흉을 암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의 공부가 깊은지 얕은지도 보여준단 말입니까?”

“그야 임기응변(臨機應變)입니다. 점괘는 운용하기에 따라서 무엇이든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하하하~!”

마침, 관아(官衙)에 일이 있어서 갔다 온다던 염재가 급히 돌아왔다. 그러자 춘매가 들어오라고 하면서 공부하는 제자임을 소개했다. 염재가 사주와 오주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였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 안산도 개의치 않았다.

우창의 말에 안산은 급히 관심을 보이면서 다시 물었다.

“초면에 무례한 말씀이오나, 그 연유를 조금만 설명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대로 돌아가면 오늘 밤에는 필시 한잠도 이루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신기하기는 염재 춘매도 마찬가지였다. 점괘로 어디까지 알 수가 있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본인이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이미 절기의 공부는 잊은 지 오래였다. 우창이 궁금해하는 안산에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약간의 잔재주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염재와 춘매도 귀담이 들어보면 해롭지는 않을 것이네. 하하하~!”

그러자 춘매가 반색을 했다.

“와~! 오늘 안산 선생님 덕분에 견문이 넓어지겠네. 호호호~!”

우창이 설명하기에 앞서서 잠시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이 한마디에 이 사람은 내 공부를 측량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가르치고 싶으면 잘 해석해서 풀어주면 되고, 가르치기 싫으면 대충 풀어주면 실망하고 얼른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사주를 봐서 자신의 앞가림을 할 도구로 잘 사용할 것으로 보이니 쓸모가 있는 연장이 되지 싶다. 그러니까 가르쳐도 되겠다.’

우창이 이렇게 가르쳐도 되겠다는 마음으로 결정을 하고는 점괘의 일간(日干)을 가리켰다.

“이게 무슨 자입니까?”

“그건 경(庚)입니다.”

“혹 간지의 오행과 생극은 알고 계시지요?”

“그렇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러시다면 좋습니다. 일진(日辰)이 경진(庚辰)이니 일지(日支)에 편인(偏印)을 깔고 앉아서 알뜰하게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을경합(乙庚合)으로 인해서 낭비가 없는 공부를 했을 것으로 판단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다시 미(未)를 월지(月支)에 만났으니 공부는 사서삼경 이외에도 천문과 지리에도 상당히 깊은 수준을 연마하셨다고 판단이 됩니다.”

“그건 무슨 이치에서 하는 말씀이신지요?”

“미(未)는 정인(正印)이라고 해서 사서삼경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자 이번에는 그 주변에 있는 공부도 하셨을 것으로 보는 것은 진(辰)이 편인(偏印)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웬만한 약초는 보는 것만으로도 어디로 들어가서 어느 경락에 약효를 보이게 될 것인지 정도는 모두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신안(神眼)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틀림없습니다. 근래에는 건강에 관심이 생겨서 『금궤요략(金匱要略)』과 『상한론(傷寒論)』을 읽으면서 질병의 원인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점괘가 그렇게도 신묘(神妙)합니까? 듣느니 처음이고 놀라서 기절할 지경입니다.”

남자는 진심으로 놀랐던 모양이다.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크게 빗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여 다행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술수를 연구할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행의 변화를 터득하게 되면 여태까지 배운 의술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서 의술(醫術)로 세상을 편안하게 할 공덕을 지을 수가 있으실 것이니 세간에서는 화타(華陀)가 재림(再臨)했다고 할 것입니다.”

“감히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의술을 하게 되면 술수는 활용을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두 가지를 모두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술수(術數)에는 그 모두가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학문의 길을 권하게 될 적에는 이미 연마한 것을 활용할 방법까지도 고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권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물론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누군가 아프다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점괘를 운용하면 원인과 앞으로의 경과는 물론이고, 며칠 후가 되면 쾌유할 것인지, 아니면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삶을 유지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인지를 알 수가 있으니 어찌 술수를 활용하지 못할까 염려한단 말입니까?”

“과연~!”

남자는 감동을 한 표정으로 한마디만 하고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서 공수했다.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태도였다.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더구나 살을 도려내고 뼈를 갈라내는 기술을 크게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기술은 뱃심도 있어야 하고, 조심성도 있어야 하는데, 그 둘을 다 갖춘 사주를 갖게 태어나셨으니 능히 독보적(獨步的)인 영역을 갖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무슨 뜻인지 모두 다 이해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학문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 이것 말입니까? 이것은 오주괘라고 합니다. 다만 이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오행의 이치 닷 푼과 음양의 이치 서푼에 직관이 두 푼 들어가면 됩니다. 하하하~!”

그러자 춘매가 물었다.

“아니, 오빠~! 그건 무슨 말이야?”

“그냥 우스갯말이야. 하하하~!”

“잘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입문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학비(學費)는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우창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제일 난감했다. 그냥 알아서 주면 받겠는데, 얼마를 줘야 하느냐고 물으면 얼마를 달라고 해야 할 것인지 난감해서이다. 그러나 우창의 마음을 잘도 헤아린 춘매가 바로 우창을 도와줬다.

“은자(銀子) 30냥이에요.”

춘매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내심 놀랐다. 그러나 세상의 물정은 춘매가 훨씬 밝았다. 공부할 사람은 이나 저나 할 것이고, 하지 않을 사람은 많이 불러도 비싸다고 안 하고, 조금 부르면 싸다고 안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혹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무슨 말이 나올 것이니까 미리부터 상대방의 주머니 속을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춘매의 말에 남자는 순순히 응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공부하러 오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인연이 되시면 또 힘써 안내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두 사람에게도 실례가 많았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나자 춘매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우휴~! 너무 비싸다고 하면 어쩌나 했잖아. 다행이다~! 나도 그렇게 큰돈은 만져 본 적이 없는데 오빠의 학문을 배우려면 그 정도는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 뭐야. 호호호~!”

그러자 우창도 내심으로 안도를 하면서 춘매에게 물었다.

“은자 30냥의 근거는 있어? 근거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하려고 했던 거야?”

“에구 참 오빠도, 오빠의 내공을 전수하는데 근거가 있어? 그만큼 학비를 내고 잘 배워서 멋지게 쓰면 잘 배운 것이고, 단돈 은자 1냥을 들여서 배웠더라도 사용하지 못하면 비싼 것이지 뭘. 안 그래?”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하잖아?”

“오빠도 참 따지기는 뭘 따져, 그렇지만 물으니까 생각은 해 보자. 요즘 백미 한 섬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모르지. 그나저나 얼마야?”

“당연히 모르지? 하긴 알 필요도 없겠네. 쌀 한 석(石:약95kg)의 금액은 은자 반 냥이니까 은자 한 냥이면 쌀 두 섬을 살 수가 있어. 그러니까 30냥이면 백미로 쳐서 60석(石)을 살 수가 있겠네. 와우~! 생각보다 엄청나구나. 그렇지만, 이미 염재가 수업료로 가져온 것도 그 정도가 되니까 없는 계산법은 아니야. 호호호~!”

실로 염재가 갖고 왔던 은자도 그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춘매도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냥 불렀는데 그것이 먹혀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춘매가 좋아하면 우창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누이가 다 알아서 하니 내가 편해서 좋구나. 하하하~!”

아까부터 사주와 오주를 바라보고 있던 염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저의 말씀이 옳습니다. 학문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삶을 벌어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혼자서 공부하려면 자칫 10년이 걸려도 깨닫지 못할 것을 전수(傳授)받는 것인데 비용이 얼마가 들든 형편이 된다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염재의 응원에 춘매도 신이 나서 말했다.

“그렇지? 염재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다니깐. 호호호~!”

이번엔 염재가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참으로 간지의 조화(造化)가 오묘(奧妙)하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자도 관헌의 일을 그만두고 공부만 하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직 관운이 있으니 서두르지 말게 오늘까지 계절의 공부를 하고는 또 잘 정리한 다음에 쉬엄쉬엄하면 된다네. 공부란 자로고 꾸준히 하는 것이지 폭풍처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네. 하하하~!”

“제자가 깊은 오행의 이치를 아직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안산 선생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공부에 몰입할 수가 있는 것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직 갈 길이 창창한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하하하~!”

“제자가 다른 욕심은 없는데 공부를 다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반드시 그 이치를 깨달아 보고야 말겠습니다.”

“아무렴, 그러셔야지. 그렇게 될 것이네. 하하~!”

춘매가 안산의 사주를 들여다 보다가 말했다.

“오빠, 이 사주는 용신이 토금(土金)이야? 정화(丁火)가 강한 것은 틀림없지? 그렇다면 흐름을 타는 것이 좋겠으니 관운은 인연이 없는 것이잖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서 벼슬보다는 술객(術客)으로 가는 것을 권했구나. 의술(醫術)도 물론 좋은 기술이 되니까 말이야.”

“맞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주에서도 정편인(正偏印)이 일간(日干)을 생하고 있는데 점괘에서도 월일(月日)에서 정편인이 일간을 생하고 있어. 참 신기하네. 이것도 하나의 조짐이라고 해도 되는 거지?”

“물론이지. 그래서 나도 더욱 확신을 갖고서 말을 할 수가 있었던 거야. 앞으로 안산 선생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가르치면 좋을까?”

“오빠도 참~! 내가 그것을 알면 왜 안마소를 하겠어. 바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

“그래? 무슨 간판으로?”

“그야 당연히 연성점술관이지 뭐야~!”

“연승점술관도 아니고 연성점술관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야?”

“사람들이 찾아오다가 연승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연성이던가? 하면서 혼란스러워서 찾아오게 만들려는 속셈이지 뭐긴 뭐야. 호호호~!”

“뭐라고? 하하하~!”

춘매의 농담에 우창도 웃고는 공부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자, 다시 우리의 공부를 해야지? 술월(戌月)에 대해서 어떻게 궁리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그러자 춘매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네. 방문자로 인해서 공부는 손해를 입었잖아. 이제부터 다시 공부하면 되지. 술월에 대해서 염재의 설명부터 들어봐야지?”

그러면서 춘매가 염재를 바라봤다. 염재는 아까부터 우창과 춘매의 대화에 넋을 놓고 빠져있다가 춘매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서 말했다.

“술월은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절기(節氣)는 한로가 되고, 중기(中氣)는 상강이 됩니다. 한로는 이슬이 차가워진다는 뜻이니 조석으로 기온이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름을 지내던 철새는 떠나가고, 겨울 철새가 찾아오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한로를 생각해 보면, 초후는 홍안래빈(鴻雁來賓)이라고 하여, 고니와 기러기가 찾아오고, 중기에는 작입대수위합(爵入大水爲蛤)이라고 하여, 참새들도 점점 줄어들고, 바다에 조개가 점점 많아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개는 점점 살이 오르고 맛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후에는 국유황화(菊有黃華)라고 하여, 여름 내내 자라던 국화가 비로소 찬 이슬을 맞으면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로의 삼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염재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마쳤다는 듯이 우창을 바라다봤다. 물론 춘매도 우창이 무슨 말을 해 주려나 싶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봤다. 우창은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곰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