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제42장. 적천수(滴天髓)
12. 병화맹렬(丙火猛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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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거니는 새벽의 산책을 나섰다. 혼자서 걷는 맛은 또 다르다. 약간은 축축한 느낌의 공기가 상쾌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밝아오는 동녘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풍경은 언제 봐도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한 풍경이었다. 곳곳에서는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어우러져서 안개와 하나가 되는 풍경을 보면서 임계(壬癸)의 조화도 떠올려 봤다. 연기(煙氣)는 화(火)일까? 운무(雲霧)는 수(水)겠지? 그렇다면 또한 수화조화라고 해도 될까?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오행천지(五行天地)였다. 어디를 봐도 오행의 변화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으로도 참 좋았다. 그렇게 반시진(半時辰)을 거닐다가 옷자락이 이슬에 축축해진 것을 느끼면서 돌아오니 목탁소리가 울렸다. 여러 사람의 수고로움으로 아침밥이 마련되었다는 것이 항상 감사했다. 새벽에 산책하고 나면 밥은 유난히 더 달았다. 모두 반갑게 인사하면서 즐거운 밥을 먹고는 아침 공부를 준비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서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태사님께 문안드립니다~!”
언제나처럼 모두 강당에 모여서 아침 인사를 올렸다. 현담도 등단하여 앉았고 제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어느 사이에 강당의 입구에서 연화가 마련한 따끈한 차를 한 잔씩 들고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자, 다시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으니 모두 축하하네. 오늘도 밝은 마음으로 신나는 시간을 누리길 바라네. 허허허~!”
모두 고개를 숙였다. 현담의 덕담에 감사하는 표현이었다.
“오늘은 병화(丙火)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이렇게 말하면서 대중을 둘러보고는 가운데에 앉아 있는 임천(林泉)을 가리켰다. 임천이 일어나서 말했다.
“제자는 임천입니다. 병화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임천이 우렁찬 음성으로 글을 읽자 다른 대중들은 조용히 눈으로 따라 읽었다.
병화맹렬 기상모설(丙火猛烈 欺霜侮雪)
능단경금 봉신반겁(能鍛庚金 逢辛反怯)
토중생자 수창현절(土衆生慈 水猖顯節)
호마견향 갑래분멸(虎馬犬鄉 甲來焚滅)
현담은 임천이 읽는 소리를 듣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음성이 좋구나. 어디 풀이해 볼까? 처음 구절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 스승님 부족하지만 풀이해 보겠습니다. 병(丙)은 화(火)입니다. 그 특성(特性)은 맹렬(猛烈)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리는 물론이고 눈조차도 업신여기는 형상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말을 마친 임천이 자리에 앉았다. 대체로 무난한 풀이라는 생각은 다른 제자들도 비슷했다. 이번에는 수경(水鏡)을 가리켰다. 수경이 일어나서 합장하고 말했다.
“제자는 수경입니다.”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현담에게 인사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어디 수경도 이 글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 보려나?”
“예! 태사님. 병화(丙火)의 의미는 예전에는 태양(太陽)이라고 했고 지금은 광선(光線)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것은 태양은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구름에 가리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빛은 완전히 깜깜한 그믐밤이 아니라면 항상 사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자를 보면 일(一)의 아래에 안 내(內)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일(一)은 천(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니까 하늘 아래를 비추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외(外)가 될 텐데 그 반대인 것을 생각해 보면 병(丙)은 안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었어요. 그렇다면 정(丁)은 밖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현담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자 현담이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경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맹렬(猛烈)의 뜻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의미를 택한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태양이 맹렬하다는 것인지 빛이 맹렬하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맹렬한 것은 난폭(亂暴)한 것과도 유사한데 포근하고 화사한 봄날의 햇살을 봐서는 아무리 맹렬함을 느끼려고 해도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한여름의 폭염(暴炎)을 생각한다면 그래도 일리는 있다고 하겠는데 이렇게 소중한 자리에 그 두 자를 심어놓은 의미는 어렵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그 자리에는 어떤 글자를 넣고 싶은가?”
“글자를 바꾼다면 ‘맹렬’보다는 ‘화창(和暢)’을 넣고 싶습니다. 매우 밝은 느낌으로는 이편이 훨씬 나아 보여서 말이에요.”
수경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이 두어 번 소리를 내어서 외웠다.
“병화화창.... 병화화창.... 그것도 나쁘지 않군. 허허허~!”
이렇게 한바탕 웃음을 웃은 현담이 이번에는 안산(安山)에게 물었다.
“안산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안산이 일어나자 수경은 합장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산의 소견을 태사님께 말씀드립니다. 맹렬하다는 것은 병화(丙火)의 기능에 대해서 언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병화가 사나운 것은 왜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경금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병화가 갑을(甲乙)을 보면 힘을 받을 뿐이지 사나울 이유가 없습니다. 무기(戊己)를 만나도 화생토(火生土)를 할 뿐이지 사나울 이유는 없다고 보겠고, 임계(壬癸)를 만나서 수극화(水剋火)인데 어찌 사나울 수가 있겠는지를 생각해 보면 경신(庚辛)인데, 신(辛)은 또 봉신반겁(逢辛反怯)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난해(難解)하기는 하나 맹렬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으니 오직 하나 남은 것은 경(庚)이기 때문입니다.”
“오호~ 그럴싸한걸. 계속해 보게.”
“그래서 경금(庚金)편을 찾아서 읽어봤습니다. 경금대살(庚金帶殺)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경금(庚金)은 대살(帶殺)이라고 하는 의미도 실은 무척 어렵습니다. 경금은 정신(精神)이라고 했는데 대살이라는 글자를 만나는 순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담이 안산에게 풀이해 보도록 한 것은 견문(見聞)이 넓기 때문이었는데 역시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보여줬다. 현담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의미를 찾았는가?”
“백방(百方)으로 살펴봤으나 간지학(干支學)에서는 그에 대한 뚜렷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딘가에 흔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은 되는데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산의 말을 듣고 있던 현담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렇게 찾아다녔다면서 기문둔갑(奇門遁甲)은 들여다보지 않았던가 보군. 경도는 기문(奇門)에 대해서도 능통했을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해 봤나?”
안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기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태사님의 말씀은 병화맹렬(丙火猛烈)이 기문에서 나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담은 차를 마셨고 안산은 기문의 미로를 뒤졌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안산의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아니, 태사님! 삼기(三奇)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경금대살(庚金帶殺)을 생각하면서 혹 기문(奇門)에도 깊은 깨달음이 있었던가 싶은 생각은 했습니다만, 병에서까지 그러한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지극한 이치가 그 안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산은 박문(博聞)이어서 웬만한 분야는 기본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었으나 다른 제자들은 그러한 것까지 살필 여력이 되지 못했다. 안산의 옆에 앉아 있던 채운이 조용히 물었다.
“그게 뭐예요? 설명부터 해 주시면 좋겠어요.”
다른 제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이야기에 동참할 수가 없기에 모두 안산을 바라봤다. 그러자 안산이 도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했다.
“아, 기문둔갑(奇門遁甲)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이름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보면 간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선 둔갑(遁甲)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갑목(甲木)을 숨긴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조용히 물었던 채운이 이번에는 대중이 듣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는 삽시간에 안산과 채운의 대화가 되었다.
“둔갑은 사람이 도술(道術)을 부려서 호랑이나 나무로 변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렇게 들었었는데 갑목을 숨기다니 무슨 말씀인지 궁금해요. 호호~!”
채운은 벌써 신이 나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덩어리였기 때문이었다. 둔갑이라는 말에 문득 알고 있었던 것과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러자 안산도 흥이 나서 다소 높아진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것도 둔갑이기는 합니다. 다만 장신술(藏身術)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입니다. 기문둔갑에는 장신술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는 안산도 모릅니다. 이야기로는 손오공이 둔갑을 한다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등장하는 요괴(妖怪)들도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기도 하지요.”
“그니깐요. 그런데 갑을 숨긴다니 무슨 말이에요?”
“기문(奇門)은 제왕학(帝王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왕이 등장(登場)합니다. 그 제왕을 갑(甲)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하! 그렇다면 제왕을 숨긴단 말인가요? 제왕은 천하에 드러나서 억조(億兆)의 창생(蒼生)을 다스려야 하거늘 숨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맞습니다. 그렇게 소중하기에 겉으로는 백성을 다스리고 속으로는 잘 숨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적도(賊徒)가 왕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까요.”
채운은 다시 깜짝 놀랐다. 그런 뜻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둔갑이 그런 뜻이었어요? 참으로 놀랍네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왕은 숨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보니 처량한 신세라는 생각이 들기조차 하네요.”
“원래 보물은 지장간(支藏干)에 숨겨두지 않습니까? 진중계수(辰中癸水)나 술중정화(戌中丁火)도 그런 의미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하~!”
“아, 그렇네요. 역시 모르면 배워야 하는 것이 맞아요. 둔갑의 뜻은 알겠어요. 그렇다면 기문(奇門)은 또 무슨 문(門)이기에 기이하다는 기(奇)의 문일까요? 보통 대문(大門)이나 정문(正門)이나 하다못해 뒷문도 있지만 기이한 문이라니 이름부터가 기이하네요. 호호~!”
“기(奇)의 뜻에는 기이(奇異)하다는 의미도 있고 대부분 그렇게 사용합니다만, 실은 뛰어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뛰어난 문’이 되는 셈입니다. 이제 의미가 좀 현실적으로 되었습니까?”
“그건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풀이하면 ‘뛰어난 문에 갑을 숨긴다’는 말인가요? 다시 말하면 뛰어난 문에 제왕을 숨긴다는 의미네요? 오호! 이제 뭔가 의미를 알듯도 하네요. 그런데 뛰어난 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문제가 또 남네요.”
안산도 채운의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공부가 버거웠던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절반은 되었습니다. 하하~!”
“어머! 채운이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린 것은 아닌가요? 죄송해요. 호호!”
“아닙니다. 뛰어난 문은 세 개가 있습니다. 그 세 문만 만나면 갑(甲)의 제왕은 목숨을 안락(安樂)하게 보존할 수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와~! 궁금해요. 세 개의 문에 핵심이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삼기(三奇)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 개의 뛰어난 문이란 말이죠?”
“잘 이해하셨습니다. 세 개의 문은 바로 을병정(乙丙丁)이지요.”
“아하! 결국은 천간(天干)의 이야기잖아요? 관심이 커졌어요. 마침 우리가 천간을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을(乙)은 이미 배웠지만 그런 말이 없었잖아요? 이제 병에 와서야 기문을 언급한 경도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말씀드리려면 또 경금대살(庚金帶殺)을 끌고 와야 합니다. 갑(甲)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경(庚)이 아니겠습니까?”
“아, 대살(帶殺)이라고 하니까 느낌이 확~ 다가오네요. 경(庚)은 주체(主體)인데 왜 대살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여기에서 모두가 다 풀리려나 봐요. 정말 재미있어요.”
“이해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갑(甲)이 무서워하는 경(庚)이고 경이 무서워하는 것은 유일(唯一)하게도 병(丙)이지 않습니까? 이러한 관계를 참작한다면 경금대살(庚金帶殺)이므로 이것을 제압하기 위해서 병화맹렬(丙火猛烈)이 큰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짐작해 봤습니다.”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병(丙)의 속에다 갑(甲)과 경(庚)을 포함해서 선택한 두 글자가 맹렬(猛烈)이라니 말이에요. 경도의 안목이 이 정도였나 싶을 만큼 놀라움이네요. 그런데 왜 을병정이 삼기(三奇)인지에 대해서는 도움이 필요하겠어요. 조금만 더 설명해 주세요.”
“갑(甲)을 경(庚)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가장 든든한 호위무사는 누가 적합하겠습니까?”
안산의 말에 채운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경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병화니까 호위무사로 제격이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난폭한 경금을 제압하는데는 병화가 필요하고 병화에게 그 일을 맡기려면 이름조차도 그에 걸맞아야 하니까 대살(帶殺)을 제압하려면 맹렬(猛烈)해야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병화맹렬이 된 것으로 이해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삼기(三奇)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냥 병문(丙門)이라고 해도 될 것이 아닐까요? 왜 을정(乙丁)도 삼기에 포함되었는지가 궁금해요.”
“모든 일에는 항상 최선(最善)이 있고, 차선(次善)도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차선이 안 되면 차차선(次次善)도 있기 마련이지요. 여기에서 차선은 정(丁)이고 차차선은 을(乙)입니다. 병화(丙火)가 버티고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병(丙)이 없을 적에는 정(丁)도 그 역할을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丁)조차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부득이(不得已) 을(乙)을 보내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하하~!”
안산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을(乙)은 경에게 공격당할 텐데 무슨 호위병이 된단 말인가요?”
“적어도 차차선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궁여지책(窮餘之策)이 아니겠습니까? 읍참마속(泣斬馬謖)과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하하~!”
“아, 느낌이 오네요.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갑(甲)을 보호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명리서(命理書)에 보면 살인상정(殺印相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볼모로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이니 하책(下策) 중에 하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갑(甲)을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니 흡사 왕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누이동생이나 딸을 적국으로 혼인시키는 이치이니 말입니다.”
“그 말씀은, 을경합(乙庚合)을 이용해서 갑목의 목숨을 보전한단 말인가요?”
“바로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을병정(乙丙丁)을 삼기(三奇)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깊은 것을 물으시면 안산은 할 말이 없을 테니 이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하하~!”
“아니에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병화맹렬에 대해서도 이해가 잘 되었어요. 정말 자상한 설명에 감사드려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해되셨으니 안산은 이 정도로 줄여도 되겠습니다. 태사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욱 유익할 테니 말입니다. 하하~!”
안산이 이렇게 말하고는 현담을 향해서 말했다.
“태사님의 명철(明哲)함으로 우둔한 제자가 그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병화는 오로지 경금에게만 맹렬하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되겠고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해서 극심한 가뭄을 떠올려도 되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이번에는 현담이 안산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산도 자기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소상하게 설명했다.
“경금(庚金)이 주체(主體)임을 감안하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가뭄이 심한 것은 비가 내리지 않는 것도 있겠으나 폭염(暴炎)의 역할도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온 대지가 말라서 타들어 간다면 결국은 초목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몸을 의지해야만 생존할 수가 있는 경(庚)인들 어찌 태양이 두렵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본다고 해도 맹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경도는 기문의 삼기(三奇)를 빌려왔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현상까지도 그 안에 포함을 시켰음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글귀를 선택했던 것은 아마도 당시 천하의 대법(大法)을 기문(奇門)으로 삼는 학파들이 드세다 보니까 그들을 향해서 간지학에서도 이러한 이치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잘 이해하셨군. 그렇다면 병화는 맹렬해서 고난(苦難)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잘 설명되었을 것이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지 이번에는 우창이 설명해 보겠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우창에게 현담이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일어나서는 합장하고 나서 말했다.
“경(庚)이 정신이고 을(乙)은 육신(肉身)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경은 시련(試鍊)을 먹고 자라고 을은 음식을 먹고 자랍니다. 몸은 시련을 주면 시들어 가지만 정신은 시련을 받을수록 더욱 강하게 성장을 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초년고생은 사다가도 시켜라’고 하는 말조차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한 의미는 어려서부터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아쉬운 것도 모르고 부모의 울타리에서 고충(苦衷)도 모르고 성장을 한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고 남의 입장에 대해서는 헤아릴 수가 없기에 나중에 세상을 살아가려면 오히려 어려움이 많음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경을 다스리는 것은 병(丙)이라야 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이것이 과도하게 되면 오히려 좌절(挫折)을 안겨주게 되고 재기불능(再起不能)이 될 수도 있으니 이렇게 되면 기문에서 말한 대로 병화맹렬이 되어서 주체성을 소멸시켜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던 대중들은 내심으로 탄복(歎服)했다. 간지의 이치가 깊은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상세한 의미가 그 안에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다시 현담이 물었다.
“오호! 일리가 있군. 적당(的當)하면 시련이고 과중(過重)하면 좌절이란 말이지. 사중경금(巳中庚金)은 생지(生支)이니 적당하다고 봐도 되겠는가?”
“당연합니다. 만약에 경금(庚金)이 병화(丙火)를 좌우에서 만났다면 이미 과중하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감당할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정도(程度)의 문제는 전체적인 상황에 따른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병(丙)은 양중양(陽中陽)이므로 그런 의미로 본다면 충분히 이해됩니다. 기상모설(欺霜侮雪)의 의미는 극양(極陽)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庚)도 동원하고 을(乙)도 끌어왔던 셈입니다.”
“그래 잘했네. 허허허~!”
현담이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우창도 합장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다시 차를 마신 현담이 이번에는 염재에게 물었다.
“어디, 그다음의 구절은 염재가 풀이해 보겠나?”
염재도 기문과 연관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다가 갑작스럽게 현담이 묻자 화들짝 놀랐다. 그래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음 구절을 살폈다. ‘능단경금(能煅庚金)하고 봉신반겁(逢辛反怯)이라’고 한 구절이었다. 아무래도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기는 하지만 현담은 그렇게 마냥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즉문즉답(卽問卽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이 나는 대로 얼른 말했다.
“태사님께 말씀드립니다. 앞에서 기문(奇門)에 대해서 들었던 내용이 여기에 바로 나옵니다. 능히 경금을 단련(煅煉)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소식임을 명백하게 알겠습니다. 병화(丙火)의 가장 큰 일은 경금을 길들여서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경금을 정신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승의 호된 가르침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하더라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신(辛)을 만나면 도리어 겁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병신합(丙辛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천하무적(天下無敵)의 병화(丙火)지만 신금(辛金)을 만나면 정의로움에 굴복하는 의미가 됩니다. 위엄(威嚴)을 갖출 수가 없으니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현담이 고개를 끄덕이자 염재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월에게 다시 물었다.
“고월은 어떻게 이 대목을 이해했는가?”
“예, 스승님께 말씀드립니다. 봉신반겁(逢辛反怯)은 기문(奇門)으로 말한다면 천하의 맹장(猛將)인 여포(呂布)와 같은 모습입니다. 초선(貂蟬)에게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본분인 동탁(董卓)을 배반하게 되는 것이 떠올라서입니다. 그러니까 병화(丙火)의 옆에 신금(辛金)이 있어서 병신합(丙辛合)이 된다면 병화(丙火)는 두려워하지 않겠으나 병화를 바라보던 주변에서 도리어 겁을 내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갑(甲)은 물론이고 다른 천간도 병화의 본분을 잊어버리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니 이것은 태양이 구름 속으로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으로도 생각해 봅니다.”
“그렇군. 경(庚)이 주체라고 했으면 신(辛)은 무엇이라고 하나?”
“예, 신은 탐욕(貪慾)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을 비견(比肩)으로 놓고 신은 겁재(劫財)로 대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겁재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남의 재물을 겁탈(劫奪)하는 존재인데. 이 겁재는 권력으로 막강한 장군(將軍)을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미인계(美人計)를 쓰는 것과 같은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병(丙)이 신(辛)을 두려워한다고 해석하지 않는가?”
“합을 하는데 두려워할 이치는 없다고 생각되어서 고월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이 됩니다. 혹 스승님께서 밝은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월의 발상(發想)이 참신(斬新)해서 내가 배울 지경이니 무슨 말을 해 주겠는가? 그래서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하지 않느냔 말이네. 항상 반겁(反怯)은 병화의 입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월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과연 스스로 좋아서 병신합(丙辛合)을 했는데 겁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네. 허허허~!”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월의 생각이 일리가 있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경(庚)을 단련하는 것은 반가우나 신(辛)에게 정신이 팔리는 것은 두렵다는 것이니 이것은 온 천지의 만물이 모두 그렇게 여기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마치 하공에서 빛을 주던 태양이 갑자기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과 같을테니 말입니다. 흡사 개기일식(皆旣日蝕)이 일어나면 온 나라의 백성이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고월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연! 비유도 매우 적절하군.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으로 정리해도 되겠네. 잘했어.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