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제41장. 유유자적(悠悠自適)
12. 대동소이(大同小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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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되자 서옥이 아들을 낳았다는 전갈을 받은 소주자사(蘇州刺史) 최도융(崔道融)이 아기의 선물을 가득 싣고서 오행원에 왔는데 희색(喜色)이 만면(滿面)이었다. 서옥이 옥동자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서둘러서 축하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는 우창이 반겨 맞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이렇게도 서둘러서 나들이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축하하네. 내가 희보(喜報)를 접하고 보니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날이 밝기를 기다리느라고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지 뭔가. 하하~!”
“들어가서 못난 녀석을 만나보시지요.”
“그래야지. 어디~!”
최도융이 서둘러서 서옥과 아기를 보러 갔다. 서옥도 웃으며 일어나서 모처럼 찾아온 백부(伯父)를 반겨 맞았다.
“어머, 백부님은 무심하고 계시다가 손자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달음에 달려오셨나요? 너무 하신 거 아녜요?”
“하하~! 그럴 리가 있나. 어디 보자~! 오호, 녀석 제 밥은 잘 타고났구나. 나를 닮은 것이 훤칠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하하하~!”
“앞으로 많이 가르쳐서 남에게 빠지지는 않도록 백부께서 책임져 주셔야 해요. 서옥은 제 이름이나 바로 쓸 때까지만 책임을 질게요.”
“그래라. 그 점은 걱정하지 말고 모자가 모두 건강하기만을 바랄 따름이니라. 언제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고. 나는 또 공무(公務)가 분주하여 이만 가보마. 바람이 차가우니 나오지 말아라.”
바삐 왔다가 돌아가는 채도윤을 배웅한 우창이 서재로 돌아오자 염재가 와 있다가 우창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나?”
“현담 스승님께서 조금 전에 오셔서 여여실(如如室)로 모셨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럼 가 뵈어야지. 같이 가세.”
여여실로 가는 사이에 지나가던 고월을 발견하고는 우창이 불렀다.
“여, 고월~!”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건가?”
“아, 그렇지 않아도 고월과 같이 가려고 하던 참에 잘 만났네. 마침 현담 스승님께서 귀가하셨다기에 인사하러 가는 중이니 같이 뵙지 않겠나?”
“그래? 그야 당연히 그래야지.”
세 사람이 여여실로 향했다.
“스승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우창입니다.”
어느 사이에 와서 현담의 수발을 들던 오광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하면서 일어났다. 시자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오광은 단양을 모시던 뒤끝이라서인지 자연스럽게 시자가 되었다. 우창도 오광이 대견해서 눈으로만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우창과 고월입니다.”
현담은 앉은 채로 합장하고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떻겠나? 모두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현담의 말에 자리를 백차방으로 옮기자 이미 연화가 물을 끓여놓고 누군가 오면 차를 마련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가 우창이 들어오자 반겨 맞으면서 차를 만들었다. 우창이 차를 권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오시기를 많이 기다렸습니다. 먼 길에 고단하셨을 테니 편히 쉬시면서 여독을 풀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우창을 지그시 바라보던 현담이 말했다.
“괜찮네. 그런데 얼굴에 길조(吉兆)의 변화가 보이는걸. 무슨 일이 있었나?”
“예, 실은 처가 득남(得男)했습니다. 혹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인가 싶습니다.”
“오호~! 그랬군. 축하하네. 이것은 참 좋은 조짐인걸. 하하하~!”
현담은 이렇게 덕담하고는 고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름이 뭐랬더라.....”
“예, 임원보(林元甫)입니다. 고월(古越)로 불러 주셔도 됩니다. 여행은 즐거우셨는지요?”
“아, 그랬지. 고월은 아호를 봐서 고향이 강남이었던가 보구나. 옛날의 월(越)은 소항(蘇杭)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백월(百越)이라고도 했던 몇 월국(越國)을 모두 모아서 고월(古越)이라고 했다더군요. 따뜻한 남쪽의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좋아서 이렇게 아호를 지었습니다.”
“의미심장(意味深長)하군. 그런데 혹 또 다른 의미도 있지 않은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고월이 짐짓 현담의 풀이를 듣고 싶어서 되물었다. 그러자 현담이 고월을 보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시치미를 떼나? 고법(古法)을 초월(超越)하겠다는 다부진 의미가 그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하하~!”
고월은 현담의 예리한 풀이를 듣자 움찔했다. 그렇게 깊은 혜안으로 자신의 심사(心思)를 꿰뚫어 보는 점에 대해서 놀랐기 때문이었다.
“놀랍습니다. 그런 의미도 있었는데 그것을 살펴준 것은 스승님이 최초이신가 싶습니다. 하하~!”
“멋지네~! 그 정도의 열정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냔 말이지. 그러한 영향으로 제자들이 오행원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고, 그러한 메아리가 현담에게도 전달이 되지 않았겠나? 하하~!”
“고월이 바라는 것은 숙명(宿命)의 이치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에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희열(喜悅)과 좌절(挫折)을 반복하면서 흘러가다가 우창(友暢)을 만나는 바람에 비로소 희망의 끝을 보게 되었던 것인가 싶습니다.”
“그랬군. 아마도 철리(哲理)에 대한 각종의 분야(分野)는 모두 섭렵(涉獵)해 봤을 텐데 그중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말을 해보려나?”
“좁은 안목으로 맛이나 봤던 것이야 감히 스승님 앞에서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만 말을 하라고 하시니까 부족한 견해나마 피력(披瀝)한다면, 천리(天理)와 지리(地理)가 변화무쌍(變化無雙)하므로 그 중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人間)의 삶도 무상(無常)하여 짐작조차도 안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무슨 마음으로 무상하여 짐작조차도 안 되는 것을 부여잡고 떠나지 못할까?”
현담도 이번에는 참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의미는 그간의 수행을 통해서 얻은 바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기도 했다. 고월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만약에 고인(古人)의 학문(學問)이 유상(有常)한 것이었다면 진즉에 접고서 관가(官家)의 부근에서 백성의 삶에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파고 들어가 봐도 뚜렷한 해답(解答)이 없으면서도 무시(無視)를 할 수가 없는 현상(現象)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월의 말을 듣고 있던 현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고월을 놔주지 않았을까?”
“제자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진리(眞理)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된 이치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으나 막상 손끝을 떠나서 존재할 수가 없고, 눈으로 볼 수가 없으나 눈에 보이는 모두가 자연의 실체(實體)라고 여기게 되면서 육감(六感)이 느끼는 밖에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존재를 항상 바라보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손끝에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밝은 가르침을 주시기를 고대(苦待)하고 있었습니다.”
고월이 다시 현담의 물음에 답을 하자 이번에는 눈길을 우창에게 두면서 다시 물었다.
“우창은 고월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창은 고월의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말을 들으면서 잠시 머릿속이 어지럽던 차에 갑자기 현담이 우창에게 묻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답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현담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우창을 놀라게 했나 보군. 다시 말하지, 우창은 명학을 붙잡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냔 말이네. 하하하~!”
재차 현담이 말하자 비로소 우창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는지 말했다.
“실로 우창은 여태까지 오행에 푹 빠져서 이 공부의 끝이 어디인지, 아니면 끝이 있기나 한 것이며, 이것으로 인해서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조차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 싶습니다. 그래서 고월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도대체 여태까지 무엇을 목표로 공부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월의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파고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확실한 경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놓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창도 그러한 느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되기는 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서 현담을 바라봤다. 자기의 말에 대해서 어떤 풀이를 해 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자 현담이 말했다.
“저 우주(宇宙)의 허공(虛空)은 끝이 있겠나?”
“그런데 허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천자문(千字文)』에도 나오기는 합니다만 읽기는 했어도 우주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런가? 밤하늘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야 달이며 별들이 아닙니까?”
“맞아, 달과 별을 포함해서 별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을 모두 포함해서 그것을 ‘큰 집’이라고 하고 우주(宇宙)라고 쓰지.”
“아, 그런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눈이 미치는 곳까지가 우주의 끝이 아니겠습니까? 우주는 끝이 없으나 사람의 눈은 한계가 있으므로 시력(視力)이 우주의 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고정(固定)인가? 아니면 가변(可變)인가?”
“허공의 풍경이란 사람의 눈에 따라서도 달라지니 어찌 고정일 수가 있겠습니까? 눈이 안 보이는 장님의 우주는 깜깜할 것이고, 눈이 밝은 소년의 우주는 찬란한 세상이겠습니다.”
“오호~! 적절한 비유로군. 그렇다면 간지(干支)는 어떤가? 우주의 이치는 가변이라고 하는데 간지의 이치도 가변인가? 아니면 정해진 범위가 있는 것인가 말이네.”
우창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자칫하다가는 현담의 말재간에 판단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던 제자들의 눈에서도 빛이 반짝였다. 모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스승님, 간지와 우주가 서로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님의 우주와 동자의 우주가 다르듯이 우창의 간지와 스승님의 간지도 같을 수가 없겠습니다. 하물며 어제의 간지와 오늘이 간지도 같지 않을 테니 내일의 간지를 어찌 논하랴 싶기도 합니다.”
“아니, 역경(易經)이야 본괘(本卦)도 있고, 변괘(變卦)도 있으니 그렇다고 하거니와 간지(干支)의 이치야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의 조합(組合)인 육십갑자(六十甲子)가 전부인데 어떻게 공부했기에 그렇게 막연한 말을 하는지 설명해 줄 텐가?”
우창은 이마에 땀이 솟는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간지를 궁리했지만 이러한 관점으로 생각해 봤던 적이 없어서인지 무척이나 생소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알고 있는 글자들의 조합인데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뭔가 답은 해야 하겠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가 떠오르지 않아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현담이 다시 물었다.
“아니, 이렇게 간단한 물음에도 답이 궁하면서 어떻게 제자들을 데리고 밤길을 가는 건가?”
이것은 마치 ‘장님이 길을 안내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호된 일갈(一喝)이었다. 이렇게 다그치는 말을 들으면서 우창이 어떤 답을 하게 될 것인지를 기다리는 제자들의 손에는 땀이 났다. 칭찬과 격려를 들으면 없던 생각도 나겠지만 이렇게 거침없이 공격당하자 있던 생각도 연기처럼 흩어지고 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고월은 미소를 짓고 우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에 답을 못할 우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잠시 생각해 봤으나 과연 뚜렷한 간지의 이치를 말씀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아마도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것만 절감하게 됩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을 한 우창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자 갑자기 현담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호~! 과연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았군. 물고기는 평생을 물속에 살면서도 물에 대해서 모르듯이 사주를 평생 공부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자연이라네. 무엇이든 단정(斷定)하고 단언(斷言)하고 결론(結論)을 명백(明白)하게 내릴 수가 있다면 아직 그 이치를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우창은 현담이 유쾌하게 웃는 것을 보면서도 칭찬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현담이 다시 정색하고서 말했다.
“고월과 우창의 공부가 능히 제자들을 이끌고 갈 정도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네. 목수가 나무를 깎아서 집을 짓더라도 정해진 공식(公式)이 없다는 것을 알겠는가? 나무가 겉으로 보기에는 다 같아서 길이는 얼마에 넓이는 얼마라고 되어있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네. 그러나 노련한 목수는 그러한 공식을 믿지 못하는 것이지.”
현담의 말에 오히려 우창이 의아했다. 간지는 보이지 않는 이치로 보이는 현실에 적용해야 하니까 당연히 애매하다고 하겠거니와 나무나 돌을 다듬어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명백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담에게 물었다.
“스승님,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정확한 기준이 있으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는 까닭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제자들의 입장까지 고려해서였다. 어렴풋이나마 이해는 되었으나 말이 나온 김에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여겨서 다시 물었다.
“우창에게 다시 묻겠네. 이 탁자는 살아있나?”
“예, 탁자의 원래 나무는 산천에서 살아있었겠습니다만, 이렇게 목수의 손에서 탁자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살아있다고는 하기 어렵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지은 현담이 이번에는 고월에게 물었다.
“고월의 생각은 어떤가?”
고월은 현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답했다.
“스승님께서 물으셨으나 고월이 생각하기에는 살았다고도 못하고 죽었다고도 못하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답인가? 고월도 우창처럼 바보가 되었나?”
“아무래도 그런가 싶습니다. 살았다고 답을 하려니 이 탁자는 성장(成長)하지 않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살았다고는 감히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죽었느냐고 한다면 또한 그것도 명료하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비가 내리면 물기를 머금어서 생동감이 느껴지고 건조한 날에는 촉감도 달라져서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죽었다고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되니 과연 이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고월을 지그시 바라보던 현담이 다시 우창을 향해서 물었다.
“우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승님, 고월의 통찰력이 항상 놀랍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더 탁월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감탄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고월을 바라보자 고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말 말게. 우창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고월은 사물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할 따름이야. 결국은 세상에 고정(固定)되어 불변(不變)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말이네. 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한마디 했다.
“모두 그만하면 훌륭하이~!”
현담의 말에 우창과 고월이 합장했다. 그러자 현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예전에 어느 고승(高僧)이 이런 말을 했다더군. ‘단지불회(但知不會)하니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라고 말이지. 간지(干支)를 공부할 적에도 처음에는 명료해서 여기에서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도 이것이 점점 깊어지게 되면서 자신이 어제까지 알았다고 생각한 것이 오늘 다시 생각해 보면 정작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현담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물었다.
“아니, 스승님. 고승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믿기지 않습니다. 단지불회라는 말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만 알 뿐’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고 시즉견성이라니까 그 의미는 ‘이것이 바로 본성을 본 것이다.’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 맞습니까?”
“맞아~!”
현담의 말을 듣고서 우창과 고월은 물론이고 모든 제자도 어리둥절했다. 고승이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이러한 표정을 본 현담이 다시 풀이했다.
“안다고 하면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도덕경(道德經)』의 ‘지자무언(知者無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안다는 것은 말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네. 하하하~!”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멋진 말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공감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우창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심 일말의 염려조차도 바람에 구름이 흩어지듯이 말끔히 사라졌다. 웃음을 거둔 현담이 물었다.
“세상의 이치는 하나로 통한다는 말은 들어 봤겠지?”
그러자 우창이 명쾌하게 답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靈魂)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했던가?”
“맞습니다. 불타(佛陀)의 가르침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온갖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나?”
“그렇습니다.”
“잘 이해하고 있군. 그렇다면 다시 묻지 이 탁자는 살았나 죽었나?”
“아하~! 이제 알겠습니다. 이 탁자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답을 드리는 것이 이치에 부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맞아, 왜 그런가?”
“죽었다고 하면 만물(萬物)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고월의 설명을 들어서 알겠습니다만, 고정불변이 아니고 항상 주변의 상황과 긴밀하게 교감(交感)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이치로만 그렇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실제로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흡사 사람이 살던 집을 한동안 비워놓으면 급속하게 망가지는 것을 봤는데 이것도 같은 이치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와 닿습니다.”
“그렇다네. 그런데 어떤가? 제자에게 간지를 가르칠 적에는 무슨 말을 하게 되는가?”
“제자에게는 갑(甲)은 동물(動物)이요, 을(乙)은 식물(植物)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야말로 명명백백하게 알아듣도록 가르치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만약에 처음에 입문한 제자에게 ‘음(陰)도 아니고 양(陽)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제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귀를 막고 십만 리 밖으로 달아나지 않겠나?”
“그렇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하지 싶습니다.”
“맞아, 그래서 수기설법(隨機說法)이라고 하는 것이라네. 흡사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아기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한다면 황새가 물어다 줬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까닭이지.”
“처음에는 그렇게 가르치다가 나중에 근기(根機)가 숙성(熟成)한 것을 알고서는 다시 ‘안다고 하면 실은 제대로 안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게 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것이 모순(矛盾)으로 보이지는 않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만약에 그 말을 들은 제자가 그것을 모순이라고 여기면 너무 빨리 천기(天機)를 들려준 것이 허물이라고 하겠네. 하하하~!”
“아하~! 역시 스승님의 가르침이 심금(心琴)을 울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개운한 듯이 웃자 현담이 다시 물었다.
“우창은 대동소이(大同小異)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현담의 물음에 우창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예? 그야 대체로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것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대동소이라네. 하하하~!”
“보통 사람의 생각이라면 스승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말씀이시군요. 무슨 뜻인지 듣고 싶습니다.”
“보통 사람의 대동소이는 비슷비슷하다고 여기지만 도인의 대동소이는 지척천리(咫尺千里)라고 여긴다네. 호리지차(毫釐之差)가 천리지격(千里之隔)이라고 하는 말은 알고 있는가?”
“아니, 그 호리지차가 대동소이의 소이(小異)와 통하는 것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그렇지. 하수(下手)는 대들보를 봐야 나무인 줄을 알지만, 고수(高手)는 나무의 씨앗만 보고서도 거기에서 대들보를 볼 수가 있는 것이라네.”
“과연 놀랍습니다. 큰 가르침에 감동합니다.”
우창이 합장하고 말하자 현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책을 좀 들여다볼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제라도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다만, 우창의 욕심으로는 모든 제자가 참여(參與)한 가운데서 토론(討論)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우창은 현담의 의중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물었다. 그러자 현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하는 것이 전혀 나쁠 이유가 없으니 말이네.”
이렇게 답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자 채운과 진명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환영합니다~!”
채운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제자들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손뼉을 쳤다. 그 소리가 꽤 넓은 백차방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서 밖으로 울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