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 제38장. 소주오행원/ 10.인연(因緣)의 끈

작성일
2023-08-3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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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 38.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10. 인연(因緣)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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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아침부터 먹구름이 가득하여 이내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을 짓는 오후였다. 우창이 방문했던 손님과 상담을 마치고서 진명이 전송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명이 돌아보자 며칠 전에 떠났던 천계(泉溪)였다. 진명은 의아하면서도 반가워서 말했다.

아니, 천계 선생이 어쩐 일이세요? 혹 두고 가신 것이라도 있어서 챙기러 오셨나요?”

진명이 이렇게 묻자 천계가 무척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진명 사매님 안녕하셨습니까? 천계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스승님께 말씀 좀 올려 주시겠습니까?”

진명은 천계가 되돌아왔다는 말에 반가워하며 접객실로 데리고 들어가자 우창이 상담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가는 천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대략 짐작이 되었다. 당문약을 잊지 못해서라도 돌아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 천계가 다시 돌아오다니 내 그럴 줄 알았네. 이리 와서 차나 한잔 드시게.”

우창의 반겨주자 천계는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스승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자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간곡하게 해 주셨던 말들 하나하나가 모두 되살아나면서 저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던 걸음을 되돌렸습니다. 더욱 열심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다시 받아주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우후지견(雨後地堅)이라고 하지 않았나. 갈등(葛藤)을 겪으면서 심지(心志)는 더욱 굳어지는 법이라네. 잘 오셨네. 하하하~!”

떠난 제자를 허물치 않으시니 감동(感動)입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어디에서도 손색이 없는 학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를 마셨으면 어서 가보게. 당문약의 마음이 많이 헛헛했나 본데 많이 반가워하겠군.”

, 알겠습니다. 그럼~!”

우창에게 다시 공부하러 왔음을 알린 천계는 서둘러서 당문약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본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천계는 당문약을 두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며칠 전에 재물에 대해서 문답하면서 집착하는 것을 봐서는 이미 마음을 준 사람이 된 당문약을 잊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아온 것에는 그러한 것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겠군. 남녀의 감정이란 참으로 미묘해서 연약한 여인의 품을 못 잊어서 우직한 사내가 떠나지 못하는 것도 있을 테니 말이지. 하하~!”

맞아요. 인간의 감정(感情)에 애정(愛情)이 얽히게 되면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상황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요. 다만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잖아요? 이렇게 당문약의 인연으로 해서 천계가 돌아와서 다시 공부하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에요. 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방문자들의 고민도 들어주면서 하루를 보냈다. 방문자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것에는 한산사가 옆에 있는 영향이 자못 컸고, 혜공의 신임(信任)을 받아서인지 뭔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무조건 오행원으로 보내는 바람에 하루에도 십여 명의 남녀(男女)가 접객실을 찾아와서는 저마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 상담하다가 보면 짧은 하루해는 순식간에 서산으로 기운다.

저녁을 먹고는 우창의 이야기를 기대하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우창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슨 질문이든 함께 생각해 볼 요량으로 마음을 비우고 강단에 섰다. 질문하라는 말을 하자 잠시 고요하더니 뒤쪽에서 손을 들었으나 우창은 낯설어서 물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그러실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안 계실 동안에 곡부에서 인연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히 가르침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큰 용기를 내어서 여쭙고자 합니다. 제자는 우성삼(于省三)으로 하남(河南)에서 왔습니다. 나이는 43세이니 경인(庚寅)생으로 아호는 서평(西平)입니다. 원래는 의약(醫藥)을 연구하다가 사주팔자를 통해서 질병(疾病)을 알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연이 되었습니다.”

, 서평이셨군요. 오행원에 인연이 되셨으니 큰 뜻을 이루셨으면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우창의 능력으로는 질병과 사주의 관계를 판단할 이치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원하시는 것이 뜻과 같지 않으실 수도 있지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팔자에 타고난 질병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내고자 했습니다만, 점차로 공부하다가 보니 중요한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곡부에서 자원 선생의 열정이 넘치는 가르침의 영향이 컸습니다.”

, 그러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오늘은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는지요? 이름을 봐하니 유가(儒家)의 글을 많이 읽으신 듯합니다만.”

그러자 서평이 말했다.

맞습니다. 부친께서 항상 공문(孔門)의 학문을 좋아하셔서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성삼(省三)으로 지어주셨습니다. 일일삼성(一日三省)하라는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여 지어주신 이름인데 이름 때문인지 항상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것이 더욱 편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혼이 순수한 사람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오욕(五慾)을 스승님의 관점으로 새롭게 살펴보는 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5일 내내 그에 대한 말씀을 되새기느라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 오늘 여쭙고 싶은 것은 재물욕(財物慾)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스승님께서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 주실까 궁금했습니다. 며칠 전에 팔자를 통해서 재물을 얼마나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천계도 오늘 다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재물에 대해서 초연(超然)하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다면 큰 방향을 잡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평의 구체적인 질문을 들으면서 우창도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재물에 대해서 궁금하셨습니까?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것만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으셨던가 봅니다. 하하~!”

우창이 궁금한 것은 서평이 알고자 하는 것이 어느 방향인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어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서평이 말했다.

스승님, 팔자에 타고난 재물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명학에서 재물을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어떤 속성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창은 서평의 질문이 상당히 사려가 깊다고 생각했다.

과연, 서평의 질문에는 삶의 통찰이 깃들어 있는듯합니다. 그렇다면 만족스러운 답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창이 생각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의견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차를 마시자 제자들도 차를 마시면서 마음가짐을 집중시켰다. 고요한 채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우창의 음성이 강당을 울렸다.

재물(財物)은 사물(事物) 가운데 하나입니다. 금전(金錢)과 은전(銀錢)만을 말하는 것뿐 아니라, 가축(家畜)과 농토(農土)와 가재도구(家財道具)도 모두 재물의 영역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일체(一切)의 모든 물질(物質)도 크게 보면 재물이라고 하게 됩니다. 왜냐면 돈을 주고 구입(購入)하거나 스스로 도구(道具)를 만들어서 돈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기대됩니다. 역시 관찰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겠습니다.”

서평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이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부처가 말씀하신 재물욕(財物慾)은 재욕(財慾)과 물욕(物慾)이기도 합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편리한 것이 많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남들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지려고 애를 쓰지요. 이것도 또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니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것을 사주의 관점으로 논한다면 어떻게 연결을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가령 수면(睡眠)은 금()이면서 비겁(比劫)이라고 하셨고, 음식(飮食)은 토()이면서 인성(印星)이라고 하셨으며, 애정(愛情)은 수()이면서 식상(食傷)이라고 한 것과 비교하여 설명해 주시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주신다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는 깊은 가르침이 되겠습니다.”

과연 서평은 생각이 깊었다. 그리고 질문을 할 줄을 알고 있었다. 우창이 어떻게 방향을 잡고서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까지 은연중(隱然中)에 암시하면서 질문을 하는 세련된 모습이라니.

서평 선생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과연 우창은 설명하기가 더욱 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계(物質界)의 광활(廣闊)한 의미를 어디부터 말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갈피를 잡느라고 끙끙대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서평도 미소를 지으며 합장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을 이었다.

물질계를 오행으로 분류한다면 목()이 됩니다. 나무가 굳은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서 우뚝하게 하늘을 향해서 서듯이 목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렇게 자라는 것이 목이고 나무이며 재물입니다. 그래서 손가락같이 작은 나무를 땅에 꽂아놓으면 어느 사이에 거목이 되어서 재목으로 쓰이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란 나무로는 그릇도 만들고 마차도 만들고 배도 만들고 책도 만들고 불상도 만듭니다. 이렇게 쓸모가 많으니 어찌 재물을 마다하겠습니까?”

과연 그렇겠습니다. 마당의 감나무 한 그루는 그 집의 큰 재산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도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물욕(物慾)은 나무처럼 계속해서 자라는 것이기도 한 것일까요?”

서평의 말에 우창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면서 말했다.

정말 멋진 발상입니다. 물욕의 끝없는 욕망과 나무를 연결할 생각은 미처 못했습니다. 탁월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입니까?”

우창이 서평의 발상에 대해서 감탄하자 서평이 말했다.

아닙니다. 서평의 판단이 아니라 스승님께서 목이라고 해 주신 덕분에 유추(類推)해 봤을 뿐입니다. 과찬이시고요. 그보다도 목을 물욕(物慾)이라고 하신 말씀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하~!”

잘 이해하셨습니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서 끝없이 자라나듯이 물욕도 세상을 향해서 끝없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99냥을 가진 사람이 1냥을 가진 사람을 보면서 100냥을 채우게 빌려달라고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그리고 이 물욕을 대변(代辨)하는 것이 금전이 되는 까닭에 재물욕(財物慾)이라고 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재물욕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더구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더욱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쁜 것이라고 전하게 된 것일까요? 재물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봐야 옳은 것이 아닙니까?”

참 사유를 잘하십니다. 그것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수행자(修行者)에게는 물욕이 정신을 얽어매는 존재가 되는 까닭에 멀리하라는 것이지만, 가족을 거느리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농부(農夫)에게는 물욕이야말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테니까요.”

, 스승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또 자신과 가족이 먹고살고도 남을 만큼의 재물이 있는 부자(富者)에게도 해당하는 말이겠습니다.”

서평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대략 짐작은 되었으면서도 대중의 이해를 위해서 물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가진 사람은 더욱더 많은 것을 탐하게 됩니다. 부유(富裕)함이 위력(威力)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지요. 그래서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조차도 나오게 되고, ‘돈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말도 나오게 되는 까닭입니다.”

우창은 서평의 다양한 상식이 맘에 들었다.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는데 이러한 상식들이 마중물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이 없으면 우러나올 영양분도 없는 것과도 같은 까닭이다. 박학다식(博學多識)이야말로 지혜로 나가는 불쏘시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지요. 유전무죄(有錢無罪)라고 말입니다. 돈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왜 나온 말이겠습니까?”

그야 관리(官吏)도 돈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청렴(淸廉)하게 정사(政事)를 집행해야 하지만, 사욕(私慾)을 주체하지 못하는 탐관오리(貪官汚吏)는 뒷돈을 찔러주는 죄인에게 죄가 되지 않는 이유를 붙여서 석방해주고 오히려 죄가 없는 사람에게 누명(陋名)을 씌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무전유죄(無錢有罪)가 나오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과연 서평의 폭넓은 상식입니다. 하하하~!”

우창도 모처럼 죽이 잘 맞는 제자와의 문답에 기분이 좋아졌다. 더구나 다양한 관점으로 물욕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서평이 다시 말을 이었다.

스승님, 물욕(物慾)의 중도(中道)는 어디겠습니까? 아니, 물질적인 것에는 도가 없을까요?”

장자(莊子)가 말하기로는 세상에 도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질이든 물질이 아니든 모두 도가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도는 균형(均衡)이고 중화(中和)니까요. 물욕의 중도를 생각해 본다면.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할 만큼이 중도라고 봅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물욕이지요.”

의식주라고 하시면, 머무를 집과 몸을 가리고 보호할 옷 그리고 하루 세끼의 밥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너무 소박(素朴)하지 않습니까? 집도 단칸집부터 99칸의 집도 있고, 옷만 하더라도 삼베옷과 비단옷도 있고, 먹는 것만 보더라도 밥과 국만 있기도 하고,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을 수도 있는데 그 기준은 다시 복잡해집니다.”

역시 서평의 생각은 폭넓어서 우창의 이야기 상대로는 적격(適格)이었다.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과연 생각하는 방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일단 소박하게 생존(生存)을 지켜갈 수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물욕의 기본은 채워진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는 속인(俗人)의 희망사항(希望事項)이지요. 도인(道人)은 최소한의 의식주면 만족(滿足)하지만, 속인은 아무리 곳간을 크게 지어도 만족을 모릅니다. 마치 모기가 피를 빨다가 급기야 배가 터져서 죽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서평이 말했다.

아하~! 기준이 도인의 기준과 속인의 기준으로 나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오행원은 도를 닦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호화(豪華)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주린 배만 채우면 그것만으로 모두 만족하니까요. 정말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지 않고서도 도인인지 속인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은 바로 물욕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잠을 자는 것으로는 도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알기는 어렵지요. 인간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가 있겠지만 물욕이 되면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과 거주하는 집을 봐도 알 수가 있지요. 곤궁(困窮)하게 사는 것을 자랑할 것은 아니나 의식주가 이미 해결이 되었는데도 더 좋은 것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속인일 따름이니 수행(修行)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님, 이것은 순전히 호기심으로 여쭙는 것입니다. 부유하게 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해 주실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당연하지요. 부유한 것이 탐욕으로 남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하면서 긁어모은 것이 아니면 또한 전생(前生)의 적덕(積德)이라고 할 것이니 그것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렇게 해서 모인 재물이라면 빈병걸인(貧病乞人)에게 다시 베풀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하하하~!”

서평은 우창이 간명(簡明)하게 답을 하자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정말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습니다. 과연 스승님의 사려(思慮)가 깊은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남의 눈에 피를 흘리게 하면서 모은 재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쌓아놓고 남의 빈한(貧寒)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씀에 대한 답은 부처의 말을 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것은 전생(前生)의 복을 찾아 먹는 것이고 재물을 베푸는 것은 금생(今生)의 덕을 쌓는 것이다.’라고 하셨다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답변으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정말로 적절(適切)한 비유(譬喩)로 설명하십니다. 그러니까 재물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유연(柔軟)한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욕(物慾)의 진실(眞實)은 모으는 것과 누리는 것을 모두 포함해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어찌 부유한 사람만 해당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비록 의식주에 넉넉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것과 굶은 범처럼 기회만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추구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결국은 바탕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설명하자 서평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재물의 다과(多寡)나 의식주의 형태(形態)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행위(行爲)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는 말씀이잖습니까? 이것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으나 그가 하는 행동에 따라서 물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 지름길이라고 하는 말씀에 의문이 해결되었습니다. 정말 오늘의 가르침은 평생토록 귀감(龜鑑)으로 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서평이 합장했다. 모두 한산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자연스럽게 감사의 표현을 합장으로 표현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우창도 마주 합장하고 다시 대중을 둘러봤다. 그러자 또 누군가 손을 들어서 살펴보니 얼마 전에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천계(泉溪)였다. 우창이 질문이 있으면 말을 하라는 듯이 바라보자 천계가 일어나서 말했다.

스승님, 오늘 서평 선생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자칫했으면 이렇게 귀한 가르침을 등지고서 세속적인 물질의 풍요(豊饒)만을 추구하면서 인생을 헛보내고서 업장만 쌓을 뻔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悚然)합니다. 과연 인연이란 이렇게나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스승님께 제 욕심을 채워 주지 않으신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을 참회(懺悔)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천계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면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천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우창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노력하는 수행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언제라도 어리석음을 범할 수가 있고, 이것은 우창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의 깨달음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다행인 것이고, 내일의 허물은 또 깨달음으로 해결하면 될 일입니다. 어제의 미안함이 있다면 털어버리고 오늘 더욱 열심히 정진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뿐입니다. 잘하시리라고 여겨집니다. 하하~!”

우창도 천계가 다시 돌아오기는 했으나, 과연 우창의 뜻을 잘 이해를 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마음에 걸렸던 것인데 천계가 이렇게까지 뉘우치는 마음을 담아서 말해주자 일점(一點)의 염려조차 말끔히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마음이 유쾌해졌다. 그러자 좌중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격하고 있었던 당문약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스승님,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뼈에 새기고 싶어요. 재물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좇는 자와 마음의 안락(安樂)을 목표로 삼고 밥을 구하는 자의 마음을 너무도 명료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물욕은 필요한 만큼에서 멈추면 현명한 것이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되면 가시밭길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도 잘 이해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헛된 욕망을 없애고 지혜로운 수행자의 길로 가야만 하는 이유를 명백하게 깨달았으니 절대로 방황하지 않겠어요.”

당문약도 합장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되어서 우창도 흐뭇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혹 팔자를 타고 날 적에 빈곤하게 살다가 굶어 죽으라는 경우도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러한 팔자는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 마음을 편히 먹고 금전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재의 말에 대중들도 궁금하다는 듯이 우창에게 집중했다. 우창도 그 의도를 알고서 답했다.

그렇습니다. 태어났으면 굶어 죽으라는 이치는 없습니다. 이것은 사주팔자를 떠나서 생명은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겠는데, 가령 흉년이 들거나 전쟁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면 굶어 죽기도 합니다. 이것은 팔자의 영향이 아니라 환경이 작용한 것입니다. 물론 노력하지 않아서 먹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노력의 영향으로 보면 됩니다. 대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으면 자식을 서로 바꿔서 먹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참혹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 외에는 무엇인가 먹고 살 궁리를 한다면 굶어 죽는 것은 면하게 됩니다. 가령 산속으로 들어가서 산나물을 채취해서 삶아 먹고 살아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큰 가뭄이나 흉년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운이 좋아도 먹을 식량이 없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팔자가 무력하다고 해도 최소한의 먹을 양식(糧食)은 구할 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될진대는 물욕으로 재물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허둥대지 않는다면 지족(知足)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먹을 양식을 타고났는지를 묻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아갈 수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겠다고 하면 기뻐서 고맙다고 하고 감동하지만, 팔자를 보니 겨우 밥이나 얻으면 다행인 줄로 알고 분수를 지키라고 하면 서운해하기도 하고 때론 화를 내면서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위해서 조언(助言)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염재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이 잠시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듣자니 처음에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달은 부처가 중생들의 혼탁함을 보고서는 희망을 버리고 바로 열반(涅槃)에 들려고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러자 사천왕이 만류(挽留)하면서 말했답니다. ‘세존이시여, 비록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世)로 탐욕(貪慾)에 물들어서 수행하려는 사람은 적고 욕망을 채우려는 자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그래도 약간은 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열반은 조금만 미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들은 부처의 말을 듣고 바로 믿지는 못할지라도 조금씩 노력하려는 마음은 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등불이 되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들은 깨달은 스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염재가 다시 말했다.

과연,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소수(小數)의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세상은 오욕락(五慾樂)에 취해서 성현의 말에는 귀를 막고 마귀의 말에 정신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만 저희 제자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식량으로 삼고 감로수로 삼아서 지혜의 길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오늘의 가르침으로 목마름을 해소하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습니다. 저희 제자들이 일심으로 기뻐하고 감사히 여깁니다. 고맙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자 대중들도 모두 합장하면서 허리를 굽혀서 동조하는 의사를 표했다. 이렇게 해서 훈훈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깊어가는 밤이었지만 저마다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서 우창의 이야기를 토론(討論)하면서 가르침을 깊이 새기느라고 오랫동안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