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기다리며......
작성일
2022-02-1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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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기다리며......
약간은 풀린 듯한 저녁 무렵에 글을 쓰다가 산책 길을 나섰다. 저녁을 준비하는 연지님을 보면서 그 시간에 운동이라는 핑계로 길을 나서 본다. 예전에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갔지만 언제부턴가 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 준비 끝이다. 놀이의 상황이 바뀌었음을 문득 잊고 있었나 보다.
산책길 가의 덤불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관계가 되었다. 석양빛을 받으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는 박주가리 엄마였구나.
겨우내 꽁꽁 묶어뒀던 자식들을 모두 불러낸다.
"아이들아! 이제 길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엄마의 주머니 속에서 겨울을 포근하게 난 박주가리 씨방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봄이 오는 것을 알고는 품고 있던 자식들에게 길 떠나기를 재촉하는 엄마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여전히 엄마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아무리 그래봐도 다음 바람이 불어오면 정처없는 길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길이라고 해야 몇 백리 몇 천리도 아니다. 그냥 이웃에 있는 어느 땅바닥에 내려 앉으면 된다.
하늘하늘 실낱같은 날개를 달고 준비하는 씨앗들의 모습이 희망차 보인다. 어디론가 달려가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보여줄 수가 있음이다. 항상 감탄한다. 민들레든, 박주가리든, 또 무엇이든.... 최상의 설계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습이기에.....
일을 마친 엄마는 한가롭다. 아니, 허전할랑강? 텅 비워낸 그 마음자리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채워졌을 게다. 또 싹을 틔워서 새로운 봄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그래 홀가분 한 것이 맞을 게다.
바람을 기다린다. 봄바람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봄바람이 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책 길에 걸음을 멈추고 박주가리를 바라본다.
태양이 노성산 자락으로 넘어갈 무렵에 천천히 걸음을 되돌린다. 기쁨에 가득했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그리고 다시 알찬 내일을 꿈꾼다. 바람이 불어와서 저마다 명당자리를 찾아가기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