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제1장 화산의 노도인/ 10. 수화의 상전(相戰)과 기제(旣濟)

작성일
2017-01-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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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10. 수화(水火)의 상전(相戰)과 기제(旣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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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다네.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이 다시 목생화의 순환법칙이 바로 그것이라네. 그런데 자네가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 장백산이니 그 목의 기운이 오죽 강하겠는가? 그런데도 수화의 독소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목의 기운이 중화를 시켰기 때문이었다네.”

설명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음, 실로 끔찍하군요~!”

“그런데, 자네도 강호로 돌아다니면서 목(木)의 기운과는 멀어지고 점차로 사람이 많은 성읍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또 마음도 항상 긴장되어 있으니까 그 독소는 서서히 자네의 육신을 파먹기 시작한 것이라네. 이해가 되는가?”

“이제야 약간 그 이치가 뭔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러다가 분노를 하면 더욱 독소가 강하게 발작하고, 또 불을 가까이하거나 물을 가까이하면 그 독이 발생하는 것이라네. 그날도 동정호에서 그 강력한 물의 기운에 화의 기운이 동해서 자네에게 고통을 준 것이었지. 더구나 당시의 낙조로 인해서 화기가 반사되어 작열하는 통에 그 고통이 더욱 극심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 석굴에서 대추나무만 들고 굴을 파도록 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 물론 까닭이 있지. 그대의 몸에 깊이 침투한 수화독은 오래 묵은 나무의 기운만이 조절을 해주게 된다네. 그래서 5백 년이 묵은 대추나무가 필요했던 것이라네. 그뿐만 아니라 같은 대추나무라고 하더라도 기가 함축되어 있는 것과 그냥 일반적인 것과는 효력적인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산삼과 인삼의 정도는 될 것일세. 그래서 실은 그렇게 뜸을 들이면서 가을이 되기를 기다려서 그 나무를 잘랐던 것이었네. 이것으로 인해서 자네는 마음이 무척이나 답답했겠지만, 말로 설명을 해봐야 납득을 할 것 같지도 않아서 그대로 진행을 했던 것이었다네.”

잠시 말을 끊고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진상도, 그것은 오혜량으로 하여금 이러한 이야기들을 정리할 시간을 배려해 준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입안의 음식을 삼키고 나서 다시 먹어야 하듯이,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은 중에 뒤의 이야기가 들어오면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오혜량의 표정을 보고서 들려준 이야기가 대략 정리되었다싶자 다시 말을 이었다.

“또 목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발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가루처럼 부스러트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석벽이 적격이었네. 즉 석벽이 포함됨으로써 오행에서 빠진 금(金)의 기운이 보충되네. 아시다시피 오행은 서로를 모두 필요로 하네. 곱고 미운 것이 없이 말일세. 다만 암벽이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라네. 바위가 너무 강하거나 또 너무 무르면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데 단단하면서도 부서지는 성질이 있는 화강암(花崗巖)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가 있었다네.”

“그랬었군요.”

“자네의 몸속에 있는 태음(太陰)에 해당하는 수(水)와 태양(太陽)에 해당하는 화(火)를 완화시키면서 조화(調和)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음(少陰)에 해당하는 목(木)과 소양(少陽)에 해당하는 금(金)의 균형이 필요하거든.”

“스승님의 이야기가 마치 별천지를 여행하면서 풍경을 보고 감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또 그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토(土)가 필요하네.”

“그들이라니요?”

“목화(木火)와 금수(金水) 말일세. 그렇지만 목화금수가 있다고 해도 토가 없이는 완전한 조화가 이뤄지지 않게 되어있다네. 그런데 자네의 마음이 평정을 얻어야만 그 역할을 할 텐데, 항상 적개심(敵愾心)과 고통(苦痛)으로 일그러져 있는 그 마음으로는 쉽사리 토(土)의 역할을 할 것 같지가 않았네.”

“아마도 그 당시로서는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라네. 그런데 자네는 역시 그릇이 컸네.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잘 따라줘서 자신의 마음에 바탕을 이루는 토의 성분으로 많이 조절되었네. 그렇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지게 된 것이고 그 후로는 급속하게 건강도 좋아지게 되었던 것이라네.”

“그런 이야기라면 처음에 해 주셨어도 될 것을 괜히 궁금하게 만들었잖습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네. 도(道)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奧妙)해서 미리 분별을 일으키면 오히려 더욱 멀어진다네. 그것은 결국 자네를 위해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네. 만약에 미리 이야기했더라면 자네가 그렇게 열심히 동굴 벽을 두드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오늘의 자네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네. 허허허.”

“그러한 이치를 뭐라고 이르면 적당하겠습니까? 마음속에 담아두고자 함입니다.”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다만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자네의 고통은 수화상전(水火相戰)이라고 하겠네. 그 의미는 알아듣겠지?”

“물과 불이 서로 싸운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알아듣고말고요.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처절하게 체험을 했으니까요.”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고 난 지금의 상황을 수화기제(水火旣濟)라고 하겠네. 수화의 전쟁을 끝내고 금수목화(金水木火)의 흐름에 따라서 수(水)는 목(木)을 따라 돌고 화(火)는 금(金)을 따라 돌아서 조화(調和)를 이룬다는 의미라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으니 무리하지 말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부를 해 보도록 하시게.”

“그렇게 깊은 의미가 있었군요. 그런데 하필이면 왜 화산의 석벽이었을까요? 다른 석벽도 얼마든지 많을 텐데 말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이 늙은이의 잔꾀가 포함되었다네.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이 늙은이는 항상 화산을 좋아한다네. 그래서 기왕이면 내가 말년에 살 곳이 화산이었으면 좋다고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네. 그런데 동굴을 만들어 줄 사람을 만났으니 화산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아, 그랬군요. 하하하.”

자오검 오혜량은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진상도의 의연하고 낙천적인 풍모가 더욱 우러러 존경심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살상만 일삼아온 자신의 과거들이 모두 부질없고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칼을 버리고 조용하게 천지자연의 이치에만 여생을 바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 또 망상 피우는구먼.”

“예?”

“이 사람아 산중 생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네. 그러니 서투른 생각일랑은 아예 말고 다시 강호로 돌아가게. 그리고 여전히 애꿎은 생명들을 무참히도 살상하는 수없이 많은 악의 무리들을 상대로 사자후(獅子喉)를 토하게. 그게 자네의 길이라네.”

“아닙니다. 스승님 제가 무슨 마음으로 다시 칼을 잡겠습니까.”

“글쎄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걸세.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품(天稟)이 있으니 그것에 따르면 순응(順應)하는 것인데, 그것을 따르지 않고 불응(不應)하면 천벌이 뒤따르지. 다만 그 품성(品性)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거나 흉악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네. 나중에 또 내가 생각이 나면 이 화산에 자네가 만들어 준 석굴을 찾아오게. 내가 언제든지 반겨주겠네.”

오혜령은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자칫 세상을 등지고 산중에서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무의미함에서 벗어나서 뚜렷한 존재로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은 길을 얻은 느낌이었다.

“스승님의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옥체 보중하십시오.”

“그래, 자네도 이제는 오행의 이치를 생각하고 항상 치우친 생각을 버리고 전체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대추나무를 보고서 그 나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듯이 말일세.”

“각골명심(刻骨銘心)하겠습니다. 은혜는 언젠가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뵙기를 간청합니다.”

“은혜랄 것은 없지만, 그런 마음이 남아있는 동안이라면 억울한 생명 하나라도 더 구하도록 하시게. 그것이 나에게 공덕을 쌓는 길이기도 하다네. 허허허”

오혜량은 조용히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린 다음에 일어나서는 포권의 예를 갖춘 후에 바람처럼 하산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상도의 입가에는 조용한 미소가 번졌다.

 

“껄껄껄~!”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달마가 적막을 깨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아니, 혜암 도인~! 무얼 그렇게 깊이 생각하시는 거요? 한참을 꼼짝하지도 않으시고 생각 속에 잠겨있으니 말이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달마가 술잔을 든 채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을 앞에 모셔놓고 너무 지나간 일의 추억에 빠졌던 것인가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이런! 문득 과거의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회상해 봤습니다. 그런데 존자께서는 그동안 어찌 보내셨는지 이야기나 좀 들어보십시다. 해탈을 얻으신 표정을 보아하니 필시 큰 깨달음이 있으셨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필시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 같아 기대됩니다.”

진상도는 달마의 특이한 예지력으로 통찰하는 관상법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이번에 만나보니 그 표정은 예전의 그것과 확연히 달라져 있는지라 그가 얻은 깨침의 소식이 자못 궁금했던 차였다.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깨달음의 세계와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는 안목의 깊이는 종잡을 수가 없어서 스스로 공부가 조금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다른 고인(高人)을 만나면 뭔가 한 수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저절로 호기심이 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길을 본 달마는 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아니, 그만큼 깨달음을 이루셨으면 되었지 무엇이 또 남아서 그리도 궁금하시단 말이오? 지식욕(知識慾)도 너무 과하면 탐욕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그냥 한담(閑談)이나 나누려고 방문했을 뿐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릴 것은 없으니 어쩌면 좋단 말이오. 껄껄껄~!”

“허허, 그리 말씀하셔도 알고, 달리 말씀하셔도 빈도(貧道)는 알고 있습니다. 어서 그간의 이야기와 함께 깨달음을 얻은 소식에 대해서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난답니다. 지금 귀를 씻고 마음을 다 비웠습니다. 허허허~!”

“그럼 재미는 없겠지만 노납(老衲)의 두서없는 이야기나마 간단히 들려드릴 참이니 가볍게 들어 주시오.”

큰기침을 한 번 한 달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