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제6장 적천수 입문/ 1. 제재(帝載)와 신공(神功)의 속뜻

작성일
2017-01-0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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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 제6장 적천수(滴天髓) 입문


1. 제재(帝載)와 신공(神功)의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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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긴긴 봄날의 해가 기울어 가는지 남향의 창에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궁리하느라고 머리가 지끈거린 우창이 바람을 쐬고 싶어서 밖으로 나갔다. 고월도 같이 가자고 하니까 그는 눕고 싶다고 하여 혼자 나선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산색(山色)은 참으로 아름답다. 언제라도 봄이면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지만 보는 마음은 매양 그 의미가 다른 것은 아마도 내면의 마음이 달라진 까닭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본 태산의 봄이나 지금 보는 노산의 봄이나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으니 근본적인 것은 같은 모양이로되 구체적인 것은 또 다르다고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재와 신공이라.....’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산길을 걸었다. 문득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를 이루고 쏟아져 내렸다.

‘쏴~아~!’

그 소리를 들으니 막혔던 머릿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봄은 목이다. 폭포수는 수이고 암벽은 금이다. 길은 토이고 아지랑이는 화이다. 이렇게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는 오행이 바로 제재였다. 참으로 멋진 비유를 들어서 멋을 부린 경도선생의 풍모가 상상으로나마 그려졌다.

임금의 통치력은 천하의 구석구석에 두루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는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에는 오행이 소리 없이 오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다스려지는 것이 최상의 통치인 것이다.

그것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고,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이때에는 기문둔갑과, 태을수와 육임의 신통력을 빌어서 천하를 평정해야 하고 이러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운산과 낙안과 같은 의협지사들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들의 비술(祕術)은 천하가 안정을 이루고 있을 적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질 적에야 비로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천하는 싸우지 않고 평정이 된다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지를 생각해 봤다.

다시, 태평성대에는 오행의 이치가 상생으로 순조로운 것이고 음양의 균형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다가 난세가 되면 오행의 이치는 상극으로 변환하게 되어서 사사건건 충돌과 반목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음은 더욱 음으로 기울고 양은 또한 극양(極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을 수가 없다면 그것도 하늘의 뜻이고, 그러게 한쪽으로 몰아치던 것이 극에 달하면 다시 반전이 일어나서 균형을 이루는 것도 자연이고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음양의 이치가 이와 같고 오행의 이치가 이와 같다면 이것으로부터 만법은 일어날 것이니, 그야말로 만법종(萬法宗)을 알고자 하려면 제재와 신공을 아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가르침이야말로 다른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빛나는 가르침인 것이다.

문득, 심곡문의 참으로 다양한 학문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도 적천수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모두가 현란한 춤사위는 될지라도 진리의 핵심에서는 여전히 오행과 음양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겠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렇게 노산으로 데리고 와 준 낙안의 안내가 참으로 고마웠다.

우창은 이제야 자신의 공부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오행을 근본으로 삼고 음양을 변화로 살펴서 세상의 모든 이치에 적용한다면 그다음의 문제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치를 벗어난 것에 있는 모든 것은 일단 덮어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적천수라는 책이야말로 인생에서 큰 가름대가 된 셈이다. 단지 두 줄의 글귀를 해석했을 뿐인데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을 잡게 될 줄이야 생각도 못 했고, 이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학문을 다 배워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굶주린 이리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시간은 얼마가 걸릴는지 모르지만 우직한 고월의 도움을 받아서 탁마(琢磨)하고, 또 부족한 것은 가끔 운산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다음에는 다시 주역과 기문과 기타 모든 분야를 보게 되었을 적에 비록 처음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치가 손바닥처럼 훤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야말로 학문의 첩경(捷徑)이라는 신념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어둠이 내리는 노산을 내려다봤다. 땅거미가 서서히 산으로부터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양에서 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순환은 그야말로 신공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을 인위적으로 한다면 어느 누가 감히 시도라도 해 볼 것인지를 생각해 봤다. 참으로 위대한 신령(神靈)의 공력(功力)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가 우창이 걸음을 돌려서 처소로 걸음을 옮기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관에서 수행하는 듯한 도사였다.

“경치를 감상하십니까?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과연 노산은 절경입니다.”

“노산의 도관은 원래 진시황이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꿈꾸면서 공을 들이느라고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공부하시는 분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혹시 저를 아시는지요?”

“아닙니다. 지금 뵈었습니다만, 선생의 모습이 과연 선풍도골(仙風道骨)인지라 반드시 큰 도를 이루게 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이렇게 인연의 고리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런,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소생은 진하경으로 우창이라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저는 곽성(郭成)이라 부릅니다. 호는 경순(景純)이라 합니다. 진 선생의 상을 보니까 큰 스승이 될 상입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경순선생은 어느 분야에서 절예(絶藝)를 연마하고 계시는지요?”

“허접한 재주인지라 내어놓기도 부끄럽습니다만 이런저런 잡학(雜學)에 약간의 식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관심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천문학(天文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이 어떤 영향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원래 다른 것도 다 그렇습니다만, 그 분야는 참으로 문외한(門外漢)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자신이 길을 정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올바른 길입니다. 어차피 모두를 다 잘할 수는 없는 법이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차나 나누면서 담소를 즐기는 것으로도 즐겁지 싶습니다.”

그러자 저녁 먹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다섯 번 울렸다.

“이만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보중(保重)하십시오.”

“같이 식당으로 가시지요?”

“아, 소생은 이곳에 머물지 않고 반도봉 아래에 있습니다. 잠시 바람 쐬러 내려온 것이라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언제 지나는 길이시면 들려서 차라도 한 잔 드시기를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경순선생의 행운을 기원드립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과연 도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식견을 갖고 저마다의 비술(祕術)을 익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이제 무엇을 목표로 공부해야 할 것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감을 얻고서 처소로 귀가했다.

“저녁 먹으러 가세. 어디 나갔다가 늑대가 물어갔나 했지. 하하~!”

“내가 고월을 기다리게 했군. 미안하이. 어서 가세.”

그렇게 두 사람은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음식은 조촐해도 정갈해서 무엇이든 생각보다 맛이 있었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할 수가 있도록 영양에 대해서도 배려한 정성이 엿보이는 음식들이었다. 이러한 것을 땀을 흘리지 않고 단지 공부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밥만 먹어도 되는 건가?”

문득 미안해진 우창이 고월에게 말을 건넸다. 공밥을 먹으면 뭔가 그에 대한 대가를 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고월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럼 내일은 산에 가서 땔나무라도 해 오시던가.”

“아, 그렇게라도 해야겠네.”

“뭘 그렇게라도 하나? 우리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 농사를 짓는 셈이라네. 그러니 꿈에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도록 마음이나 쓰라고.”

“그건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말이 아닌가?”

“아닐세. 이렇게 학문을 해서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산에 가서 땔나무를 주워오고 밭에 가서 푸성귀를 뽑아오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어?”

“고월은 공부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구나.”

“당연하지. 공부는 자부심으로 하는 것이란 말도 못 들어 봤는가?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적천수 시구라도 하나 더 풀고 한 번 더 생각하자고. 하하~!”

“알았네. 마음이 불편할까 봐서 배려해 주니 또한 고마울밖에. 하하~!”

“많이 들고 건강해야 하네. 이 몸이 무너지면 공부도 도학도 다 쓸모가 없는 것이니까.”

“그도 그렇군. 알았네. 잘 먹고 또 열심히 궁구해 보세.”

우창은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밥값이라는 것이 늘 가슴 한편에 쌓여 있어서 부담스러웠는데 그러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된다는 말이 크게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맛있는 저녁을 먹고는 다시 고월의 방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다음 구절은 뭔가?”

성격이 급한 고월은 얼른 책을 보자고 재촉했다. 그러니 아직도 만법종의 느낌에 젖어있던 우창은 다음 구절이 중요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여유롭게 음미하면서 즐기고 싶었다.

“밥을 먹고 바로 책을 펴면 밥통이 싫어하지 않겠나? 잠시 차도 마시면서 숨이라도 좀 돌리고 하는 게 좋겠군.”

“그것도 좋지. 우창이 물을 끓여 오게. 내가 찻잔을 챙길 테니.”

고월은 차를 마셨던 뒷설거지를 하고 우창은 화덕으로 가서 불을 피워서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소리와도 같고, 바다에서 파도가 암벽을 두드려서 나는 해조음(海潮音)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지 않은 숲에서 부엉이 소리도 들려왔다. 산중의 생활에 익숙한 우창에게는 모두가 가족처럼 느껴지는 아늑함이 좋았다. 산새와 산짐승은 물론이고 불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까지도 친구처럼 느껴졌다. 물론 불길에 달려들어서 몸을 태우는 것을 보면 안쓰러움이 일어날 따름이다. 자연에서는 어둠을 밝히는 것이 짝을 찾는 반딧불이 정도이겠지만 인간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불길이 그것인 줄을 알지 못하는 밤벌레들에게는 죽음의 화형식(火刑式)이 될 뿐임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찻물을 끓일 적에도 어두워지기 전에 하는 것이 좋은데 오늘은 다소 늦었던 것이 의도하지 않은 살생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생각하니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문득 화(火)의 생극(生剋)이 떠올랐다. 차관(茶罐)의 물에게는 화생수(火生水)가 되겠지만, 불나방들에게는 화극목(火剋木)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은 생명력(生命力)이기도 한 까닭에 이런 경우에는 화극목으로 대입하는 것이 타당하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불과 장작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화극목이었다. 그러니까 불을 위해서 희생하는 장작이나 불을 구분 못하고 타죽는 나방이나 모두가 화의 재난을 입은 꼴이라고 해야 하지 싶었다.

“아직도 물이 끓지 않았나?”

안에서 고월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이미 물은 진작부터 끓고 있었는데 생각에 빠져서 깜빡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얼른 불을 끄고는 차관을 고월에게 전해 줬다.

“저녁에는 차를 싱겁게 먹는 것이 좋겠지?”

“당연하지. 아침 차는 진하게, 저녁차는 연하게 이것이 차의 음양이잖은가.”

“밥은 어떤가?”

“밥도 마찬가지겠군. 아침엔 든든하게 저녁엔 부족한 듯이 먹는 것이 차와 다르지 않겠는걸.”

“이치는 서로 통한다더니만, 왕성한 식욕을 갖고 있는 학인들은 밤에도 배고픔을 못 이기고 식당을 들락거리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조상님의 덕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하하~!”

고월의 말에 우창도 동의했다. 과연 몸이 공부하는데 협조하는 것이야말로 조상에게 물려받은 최상의 복이라고 해도 되지 싶었다.

“어찌 식욕뿐이겠는가. 수면욕(睡眠慾)이나 성욕(性慾)이나 명예욕(名譽慾)도 모두가 수행에는 악마일 따름이잖은가? 무엇이든 적절하면 삶의 세상이 윤택하게 되지만 과다하면 그 순간부터 이 몸은 감옥이 되어버리니 말이지. 하하~!”

두 사람의 대화는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허공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