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 6. 봄이 가면 여름 오고

작성일
2017-01-10 14:09
조회
2206

[080]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6. 봄이 가면 여름 오고


=======================

우창에게 음양의 이치를 관찰하는 공부를 한 조은령은 이제야 공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자 심신이 충만(充滿)되었다. 비록 검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기 한 몸을 지킬 만큼 연마했으나 항상 느꼈던 공허감에 대한 것은 채워지지 않았던 것으로 인해서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엄습(掩襲)했었는데 별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던 이목구비(耳目口鼻)에 대한 관찰법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발견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공허한 갈증을 이제 해결할 수가 있겠어. 신체의 단련에서 얻지 못한 만족감을 학문의 길에서 채워질 수가 있겠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책상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음양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니까 주변에서 존재했던 모든 것이 음양으로 봐 달라는 듯이 고개를 내민다. 하나를 배웠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삼고 둘을 찾아내는 것은 배우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자신은 너무도 모르는 초보자였기 때문에 열심히 이치를 궁구(窮究)하는 우창에게 너무 큰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음양은 상대가 있다고 했지?’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에서 보이는 대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겨우 배우기 시작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서 먹을 갈았다. 그러다가 문득 붓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붓은 음이고, 종이는 양일까?’

우창은 답을 말하면 이유를 물었다. 그러니까 답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추론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붓이 음이 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붓은 먹물을 만나서 존재하게 되는 거잖아? 그렇다면 먹물이 양이고 붓은 음이 되어야 하겠구나.’

천천히 먹을 갈았다. 짙은 묵향(墨香)이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먹은 벼루가 있어야 하네? 그렇다면 벼루는 음이 되고 먹은 양이 되나?’

그렇게 생각에 잠겨서 먹을 갈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짙은 먹물이 되었다. 붓을 들어서 먹을 찍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은 이어졌다.

‘붓은 음이고 먹물은 양이 되는구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음양의 대입은 달라진다고 했으니까 고정되지 않은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란 말이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끗한 종이에 먹물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점점 번져가는 먹빛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먹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종이는 음이고 먹물은 양이 되겠구나.’

문득 예전에 글씨를 배우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는 10여 세가 되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같은 방에서 살았던 동갑내기의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우원정(虞圓晶)이었다. 은령은 앉아서 책을 읽고 글씨 쓰기 연습을 하는 원정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칼을 들고 산으로 뛰어다니면서 검술을 연마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원정은 항상 틈만 나면 책을 들고 읽고 있어서 대화할 일도 거의 없었으므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친구였다.

“원정아, 그렇게 글씨를 배워서 정경부인이라도 될 거야? 우리 부친이 말씀하시기를 ‘여자는 자기 이름 세 글자만 쓸 줄 알면 된다.’고 하셨는데 넌 뭐가 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이렇게 말을 걸면 원정은 항상 웃으면서 답했다.

“그냥…….”

아무리 장난을 걸어도 그냥 미소로만 받아주던 원정은 바보처럼 보이기조차 했다.

“그 책은 뭐니?”

“응, 삼자경(三字經)이야.”

“경(經)이라고? 경은 절간에서 화상들이 보는 것이잖아?”

“그런 경도 있지만 경은 무지하게 많아. 너도 읽어 봐.”

“에구~! 그런 소리 말아~!”

은령은 공부하라는 원정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앉아서 글을 읽는 것보다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글자는 잠이 들게 하는 수면제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었다.

“삼자경이 있으면 사자경도 있어?”

“몰라.”

“근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응, 좋은 이야기들이 쓰여 있어.”

“조금만 읽어 줘봐. 그렇게 재미있는 건가?”

“아마 너도 내용을 알게 되면 좋아할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人之初(인지초) 性本善(성본선) 性相近(성상근) 習相遠(습상원)”

“뭐라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말해 줘야지~!”

은령의 투덜거림도 미소로 받아넘기고는 천천히 설명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착하다는 거야.”

“내 그럴 줄 알았어. 쓸데없는 글은 볼 필요가 없다니깐.”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원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령을 바라봤다.

“세상은 악인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글이나 읽고 있어서는 무능한 인간이 될 뿐이야. 눈만 뜨면 남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눈알이 벌겋게 되어서 남의 빈틈을 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도 모른단 말이야?”

“그런가? 그런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하네.”

“무슨 말이야?”

“처음에는 누구나 착했는데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변해간다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네.”

“그래? 다음 구절은 무슨 뜻인데?”

“누구나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달라진다는 뜻이야.”

“그....래? 넌 어떻게 그런 것을 잘 알아? 뭔가 있어 보이잖아.”

“너도 칼춤만 주면서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지 말고 나랑 책도 읽으면서 성품을 길러봐.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항상 어른같이 말하는 동갑내기가 늘 탐탁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일리가 있는 말로 인해서인지 귀가 솔깃했다.

“그러니까, 넌 책을 읽고, 난 검을 익히는 것도 처음에는 같은 성품이었다는 거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물론 다 같을 수는 없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거야. 그런데 점차로 습관이 몸에 배면 문인(文人)이 되거나 검객(劍客)이 되기도 하는 거래.”

“와~ 네가 말하는 것은 흡사 스승님의 말씀같이 들리잖아. 호호호~!”

“너도 열심히 글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어. 뭐, 칼을 연마하더라도 스승이 못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맞아, 나는 검술의 사범이 될 거야. 따분하게 앉아서 글이나 읽으면서 밥을 먹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 글공부는 재미없어.”

“그야 맘대로 하렴. 그런데 글을 읽고 쓰는 것도 검술과 다르지 않다고 봐.”

“무슨 말이야? 글을 읽으면 말재주만 늘어난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네.”

“글자로 살생(殺生)이라고 쓰면 검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은 거야.”

“참나, 그게 어떻게 같애~! 그래서 몽상가(夢想家)라고 하나 보다. 호호~!”

“그렇지도 않아. 왕이 칙령(勅令)으로 그렇게 쓴다면 죄인은 살까? 죽을까?”

“왕이? 왕이 그렇게 쓴다면 살아남기 어렵겠네.”

“거봐. 문자로도 사람의 생사(生死)를 관장할 수가 있잖아.”

“그건 말이 되네. 그럼 살리는 문자는 뭐야?”

“방면(放免)이라고 쓰면 그 사람은 죽을 지경의 위기를 벗어나서 살아나겠네.”

“근데, 그건 왕이나 하는 거잖아?”

“꼭 그렇지도 않아.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할 지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문자로 정황을 잘 밝혀서 태수(太守)나 현감(縣監)에게 상소(上疏)하면 지혜로운 관청에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잘 살펴서 억울한 사람을 살려 줄 수도 있는 거야.”

“그건 말이 되네. 글자 공부를 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은령은 어느 사이에 원정의 말에 설복(說伏)되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검술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봤다. 자칫하면 칼날에 목숨은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말 수도 있는 것이 칼의 운명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럼 나도 글을 배워 볼까?”

“잘 생각했어. 삼자경을 같이 배우자. 넌 총명하니까 잘 익힐 수 있을 거야.”

“다음 구절은 뭐래?”

“苟不教(경불교) 性乃遷(성내천) 教之道(교지도) 貴以專(귀이전)”

“경불교 성내천 교지도 귀이전.”

은령도 원정을 따라서 입술을 달싹이면서 같이 읽었다. 글공부는 재미없지만 원정이 열심히 이야기를 해 준 공이 고마워서 같이 읽었다.

“무슨 뜻이야?”

“힘써서 가르치지 않으면 성품은 이내 천박하게 변하니, 가르치는 이치는 소중하게 전해야 한다는 뜻이야. 이해가 되지?”

“그렇구나. 나도 오늘부터 널 따라서 공부할 거야. 뭐부터 해야 돼?”

“우선 먹을 가는 법부터 배워야지.”

“그래? 어떻게 갈아?”

은령이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자 원정은 기뻐하면서 벼루에 연적(硯滴)의 물을 몇 방울 떨어트린 다음에 빙빙 돌리면서 먹을 가는 방법을 알려 줬다.

“얼마나 갈아야 하는 거야?”

“맘대로 갈면 돼.”

“뭐야? 정확하게 알려줘야 제대로 할 것 아냐?”

“잘 알려 준 거야. 조금 갈면 빛이 옅고, 많이 갈면 빛이 짙을 뿐이지. 어느 것이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찍어서 쓰면 되는 거야.”

“그런가? 그래도 글씨는 새까맣잖아?”

“보통은 그래. 그러니까 많이 갈아봐.”

그래서 숫돌에 칼을 갈 듯이 벼루에 먹을 갈았다. 그렇게 한참을 갈고 나니까 원정이 붓을 하나 내어 줬다.

“됐어. 이제 글씨를 써봐.”

“글씨는 써보지 않았는데?”

“누구나 처음엔 써보지 않은 거야. 이렇게 해봐.”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에 인(人)자를 썼다. 그 정도는 은령도 알아보는 글자였다.

“사람인. 맞지?”

“맞아. 그런데 그것을 쓴 이유가 뭐야?”

“사람이란 인연 따라 만나서 서로 이끌고 밀어주면서 살아가는 거래.”

“왜?”

“별(丿)은 앞에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고, 이(乁)는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야.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人生)이라는 거야.”

“와~! 오늘 널 보니까 존경스럽다. 맨날 앉아서 글만 읽고 있다고 무시했더니 그렇게 공부했던 거였어?”

“맞아. 공부는 항상 새롭고 재미있으니까.”

“글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뜻이 있는 것도 배워야 하네?”

“그러면 더 좋아. 어떤 사람은 글자를 배우고서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글자 속에 들어있는 뜻까지 배우면서도 ‘아직도 잘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느낌이 오네. 검법도 마찬가지야. 초식만 배우고서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초식의 변화까지도 익히면서도 아직 뭔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같다고 봐야겠네.”

“이제 붓과 검이 같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원정을 따라서 삼자경도 배우고 천자문도 배우면서 글자와 그 안의 깃든 의미를 배우는 인연이 되었던 것인데, 이렇게 노산에서 우창을 만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원정의 도움으로 인해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만, 그러니까 원정은 양이 되고 나는 음이 된 것이었나?’

문득 그 해맑은 원정이 그리웠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좋은 낭군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에서 잘 살고 있겠거니 싶었다. 심성이 착한 아이였으니깐.

 

은령은 우창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적었다. 이것도 원정에게서 배운 방법이었다. ‘적어놓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는 말이 늘 뇌리에서 맴돌았다. 그때에는 음양을 이야기하는 원정이 이상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는데 이제 자신도 그 바다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만사는 때가 있다고 하는가 보다.’

기억이 나는 대로 모두 적어놓고서 밖으로 나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니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어떤 방에서는 경을 읽는 소리가 들리고, 또 어떤 방에서는 수다스럽게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이렇게 노산의 봄날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꽃이 양이면, 바람은 음인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음양의 마음을 실어 보냈다.

 

우창이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앞을 바라보니 꽃이 만발한 정원을 나비처럼 사뿐사뿐 거니는 조은령의 모습이 보였다. 자연의 풍경에 취하여 사색하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래서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조용히 산책을 나섰다. 상청궁의 뒤편 언덕에 올라서 한 바퀴 휘돌아서 맑은 공기와 소통을 했다.

그렇게 오솔길을 따라서 산을 오르자 꽤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도사 차림의 사람이 바닥에 줄을 긋기도 하고, 발로 걸으면서 길이를 측정하는 것이 뭔가 열심히 몰입하는 풍경이어서 우창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을 느꼈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힐끗 돌아다봤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얼굴이 낯이 익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잊고 있었던 낙안과 찾아와서 처음에 뵈었던 운산 선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소생 우창이 운산선생님을 뵈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아, 누군가 했더니 우창이셨구나. 반가워. 잘 지내고 계시지?”

“예, 선생님의 배려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뭔가 연구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방해를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방해랄 것도 없지. 어차피 우창도 관심이 있을 것이 아닌가? 지금 기문으로 포국(布局)을 해 보고 있다네. 구경해도 상관없으니 지켜보게. 물론 봐도 모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봐 두는 것이 해롭진 않을 거니까. 허허허~!”

“그래도 된다면 보고 있겠습니다. 궁금한 것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지만, 우선 안목이라도 넓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데 그냥 지나치면 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비교적 눈에 잘 들어오는 언덕 쪽에서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앉았다. 간단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여유롭게 살펴보고자 함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열심히 바닥에 줄을 긋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운산이 허리를 폈다. 아마도 계획한 것이 마무리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떤가? 무엇인지 봐도 모르겠지?”

“당연하지요. 알 턱이 없습니다. 그래도 진지하게 연구하시는 모습을 뵙는 것만으로도 학문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모습을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창은 병법에 관심이 크지 않을 줄로 알고 있다네. 어찌 생각해 보면 사람을 죽이는 학문이기도 하니 자연의 이치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분야라고 할 수도 있지.”

“그럼에도 세상에서는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길흉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덕행이 높으신 운산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반드시 활인술(活人術)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음양의 공부가 탄탄하시군. 그대로 연마하면 큰 학자가 되시겠어.”

“고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귀한 가르침을 꼭 청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야 무엇이 어렵겠나. 언제라도 찾아 오서 이야기를 나누세.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더라도 견문은 조금 있으니 그래도 해롭진 않을 것이네. 허허허~!”

“여부가 있겠습니까? 멀지 않은 시간에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운산과 작별하고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가면서, 깊은 학문과 조예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운산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창도 깊은 학문의 경지에서 본분을 잊지 않고 저렇게 고상하게 나이를 먹어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하나 추가했다.

산천의 풍경은 점차로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봄의 계절에서 느껴지는 활기가 그대로 자연에 배어드는 것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여름은 폭염이고, 가을은 점차로 대지가 식어가는 모습이라서 한가롭지 못하다고 한다면 봄의 이러한 여유로움은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계절의 선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문득 겨우 외웠던 통신송이 흥얼흥얼 외워졌다. 자연과 더불어 통신송을 외우니 그 의미가 더욱 새록새록 맛있게 우러나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문득, 화산의 스승님이 뵙고 싶었다. 그리고 지혜가 깊어 보이는 무극자의 눈길도 떠올랐다. 또 장난기 많은 백발은 물론이고, 해박한 주역의 풀이로 흥미를 자아내게 했던 강절 선생의 품위 있는 눈빛도 생각이 났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현인(賢人)과 기사(奇士)를 적지 않게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는 더욱 많은 세상의 이치와 경험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중에서도 오행의 이치는 아직도 오묘하기만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깊어지는 사유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낙안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설명해 주던 오행의 이야기들이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 저녁에는 오행공부를 또 해야 하겠다.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상청궁의 경내로 들어서자 저녁밥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고요한 노산의 산천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저마다 하루의 수련에서 잠시 몸에 감사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시간이 온 것을 즐거워하면서 식당으로 모여드는 발걸음 소리가 어지러이 흐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