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 9. 천지음양(天地陰陽)을 관장(管掌)

작성일
2017-02-14 04:5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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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9. 천지음양(天地陰陽)을 관장(管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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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두 번째로 오르는 반도봉은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더구나 즐거운 벗들과 동행하니 길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토굴(土窟)에 도착하니 이미 경순이 인기척을 들었는지 마당을 서성이다가 불청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형님, 아우들이 형님을 뵈러 왔습니다. 편안하셨는지요?”

“어서들 오시게. 조 낭자도 동행하셨군. 잘 오셨어.”

“선생님 뵙고 싶었어요. 반가워요. 호호~!”

“자, 들어가지. 봐하니 오늘은 공부 보따리를 들고 온 모양인데 무슨 문제를 들고 왔을지 지레 걱정이 되는걸. 하하~!”

고월이 보자기에 싸서 갖고 온 적천수를 꺼냈다. 그리고는 문제의 무토장(戊土章)을 펼쳐놓고는 경순을 보고 정중히 말했다.

“형님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우리끼리 나름대로는 궁리를 해봐도 진의(眞意)가 보이지를 않아서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찾아뵈었습니다.”

고월의 말에 미소로 답한 경순은 책을 들여다봤다.

 

무토고중 기중차정(戊土固重 旣中且正)

정흡동벽 만물사명(靜翕動闢 萬物司命)

수윤물생 화조물병(水潤物生 火燥物病)

약재간곤 파충의정(若在艮坤 怕沖宜靜)

 

무토는 견고(堅固)하고 중후(重厚)하며

이미 중심(中心)을 이루고 또 바르다.

 

고요하면 닫고 움직이면 열어서

만물의 생명(生命)을 관리(管理)한다.

 

수기(水氣)가 윤택(潤澤)하면 만물이 소생(所生)하고

화기(火氣)가 조열(燥熱)하면 만물은 득병(得病)한다.

 

무토(戊土)가 진술축미(辰戌丑未)에 있으면

충돌(衝突)이 두려우니 안정(安靜)해야 한다.

 

무토의 항목에는 이와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던 경순이 탄복을 했다.

“오호~! 이런 내용이 적천수였나? 참으로 원모심려(遠謀心慮)가 느껴지는 구절이로군. 이러한 책을 운산 선생이 읽었단 말이지.”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제게 주시면서 잘 연구하면 깨달을 것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래, 심오(深奧)한 이야기로 봐서 아우들의 관점으로는 이치를 다 파악한다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군. 잘 오셨네. 덕분에 진귀한 책도 볼 수가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하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괜히 수행하시는데 장애나 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저어 되기도 했었거든요. 하하~!”

경순의 말을 들으면서 고월도 마음이 놓이는지 부담이 없어졌다.

“그래 어디, 풀이를 해 보려나?”

“풀이가 다 뭡니까? 첫 구절부터 바로 막힙니다.”

“그래?”

경순의 권유에 따라서, 고월이 이미 나름대로 들여다보며 궁리를 했기 때문에 대략 풀이를 해 보기로 했다.

“형님, 우제가 보기에는, ‘무토고중’이라는 말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역학에서는 무토(戊土)는 간괘(艮卦)로 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산을 의미하는 무토(戊土)에 고중(固重)이라는 말이 왜 붙어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진도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음……. 고월은 서역의 학문에도 식견(識見)이 있던가?”

“예, 약간의 상식은 있습니다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중력(重力)이란 것에 대해서도 들어 봤겠지?”

“중력(重力)이라고요? 당연히 들어 봤지요. 그게 무(戊)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중(重)은 중력(重力)을 말하는 까닭이라네. 하하~!”

“어떻게 단박에 그것을 꿰뚫고 계신 겁니까? 학문의 깊이가 입신지경(入神之境)입니다. 형님~!”

고월이 놀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아무리 고심을 해도 ‘산’과 ‘무겁다’는 것에 대해서 답을 못 찾았는데 이렇게도 쉽게 풀어버리다니 참으로 공부의 깊이는 한 만큼의 결실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하충 선생의 글에서 이미 이에 대한 암시를 받았기 때문이지. 그 선생은 서역으로 유학을 해서 서양인들의 과학지식을 많이 습득하여 명학(命學)의 이치에 부합시키려는 노력을 하셨거든.”

“아하, 그래서 글귀를 보시자마자 바로 알아보셨군요. 대단하십니다.”

“학문에 동서고금(東西古今)이 없다는 말을 들어 봤겠지?”

“물론이지요. 그야말로 서역의 지혜조차도 끌어다가 간지를 설명하신 하충 선생의 혜안은 감탄하겠습니다.”

“우리는 정신세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지만, 서역인들은 물질세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것이 다르기에 그들의 식견이 때로는 놀라울 때가 있기도 하거든. 하하~!”

“과연, 학문에는 동서(東西)가 없고, 고금(古今)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찾아뵙기를 천만 번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자, 그렇다면 중(重)을 중력(重力)이라고 봤으면 고(固)는 어떻게 봐야 할까?”

“우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단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혹 경(庚)이라면 단단하다는 말이 타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하, 그렇게 생각한 것에서 막히셨구나.”

“그렇습니다.”

“대기권(大氣圈)이라는 것이 있다네. 그것은 하늘과 땅의 중간에 매우 견고(堅固)하지만 투명(透明)으로 된 일종의 보호막(保護膜)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렇다면 눈에는 보이지는 않는 것입니까?”

“맞아~!”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견고한 것이 도대체 뭘까요?”

“우창, 먼젓번에 내가 계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던가?”

“아, 예.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중(固重)이라는 말은 계란의 껍데기와 같은 보호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계란이 안에서 부화가 될 때까지 보호를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니까.”

“아하~!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계란 껍데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우창은 보이는 것만 믿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무한(無限)의 연결된 인연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그냥 믿으면 되네. 이것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요소들을 막아준다고 보면 되거든.”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이해하는 차원에서 보면 되지 싶습니다. 실제로 확인은 못 하더라도 믿음으로써 해결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네. 서역인들이 그렇게 연구한 것이니까 믿어도 될 것이네. 더구나 하충 선생이 취용(取用)한 것을 보면 거의 틀림없을 것이네.”

고월이 감탄을 했다.

“아하~! 이렇게 풀어야 할 것을 아무리 산만 바라보면서 궁리를 해 본들 알 방법이 있어야지요. 이제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하하~!”

고월이 좋아하는 것을 본 경순은 자신도 학문을 궁리하다가 풀어낼 길이 없어서 꽉 막히게 되면 얼마나 답답했었던가를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자, 이렇게 감탄만 할 것이 아니잖은가? 허공의 소식을 과연 경도 스승님이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욱 신기하지 않은가? 참으로 놀라운 글귀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군.”

그 말에 우창이 받았다.

“형님, 그렇다면 계란의 노른자위는 땅이 되고, 껍데기는 대기권으로 구분이 되고, 그 중간의 흰자위는 우리가 말하는 하늘이라는 뜻이지요?”

“맞아, 틀림없이 잘 이해를 했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어떻게 됩니까? ‘기중차정’이라고 했으니, ‘이미 중심(中心)을 이룬 가운데 또 바르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바르다는 말입니까?”

“고월, 일어나보게.”

“예? 일어나 보라니요? 이렇게 말씀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고월이 일어섰다. 그러자 우창과 조은령은 무슨 가르침이 있는가 싶어서 시선을 경순에게 모았다.

“자, 고월이 지금 서 있는 모습은 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예, 그래도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게, 바르다는 기준이 무엇일까?”

“기준이요?”

“무슨 기준이 있어야 바르든 안 바르든 답을 대입할 수가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안 그런가?”

“지당(至當)하신 말씀입니다.”

“바르다고 함은 하늘을 향해서 반듯하게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네.”

“당연한 말씀이시잖아요?”

“그 당연한 것이 바로 무(戊)의 작용이란 생각을 해 보란 말이지.”

“무(戊)의 작용이라니요?”

“수직(垂直)이라는 것은 바로 무의 작용과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자, 이번에는 한쪽으로 몸을 기울여 보게, 옆으로 기울여봐.”

“아, 이렇게 말입니까?”

경순이 말을 한 대로 고월은 한쪽 다리를 살짝 꺾어서 몸이 기울도록 자세를 취했다.

“그래, 어떤가?”

“불안해서 오래 버틸 수가 없겠습니다.”

“그만하면 되었네. 이제 앉으시게나. 하하~!”

“이것이 ‘기중차정’이라네. 이러한 것은 무토의 작용으로 인해서 반듯하게 된다는 뜻이라네. 그리고 정(正)은 이 땅의 핵심부와 바르게 균형이 잡힌다는 말도 된다네.”

“참으로 오묘하군요. 경도 스승님, 하충 선생, 그리고 형님 스승님들이 계셔서 참으로 행복한 우창입니다.”

“고월도 마찬가지입니다.”

“령아도요~! 호호~!”

가만히 듣고만 있던 조은령도 한 부조를 했다. 고월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무토의 가르침은 우주론(宇宙論)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되네. 규모가 다른 사행(四行)과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되겠지?”

고월이 연신 감탄을 하면서 말했다.

“당연합니다. 여전히 감탄만 나옵니다. 경도 스승님의 가르침에 이러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다음은 뭔가?”

“다음 구절도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정흡동벽’이라, ‘고요하여 닫고, 움직여서 연다.’고 해석을 해야 하겠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니 당달봉사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우선 동정(動靜)은 뭘 의미하겠는가?”

경순의 질문에 고월이 답을 했다.

“아무래도 음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토(土)의 존재(存在)는 항상 사행의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러한 내용으로 봐서는 음양을 관리한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당연하지. 우리는 기(己)에 얹혀서 무(戊)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것을.”

“예? 그렇다면 천지의 음양을 관장하는 것이 무토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하하~!”

“놀랍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음양은 양둔(陽遁)과 음둔(陰遁)의 음양일 수도 있겠는데 어떻습니까?”

“맞는 말이네. 동지부터 하지까지는 동(動)하는 힘이 넘쳐나니까 기문에서 말하는 양둔(陽遁)의 벽(闢)을 하게 되고, 하지부터 동지까지는 정(靜)하는 기운이 발생하니 기문에서 말하는 음둔(陰遁)의 흡(翕)을 하여 만물을 거둔다네.”

“그렇다면 벽과 흡은 매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는 뜻입니까?”

“동지에 열리고 하지에 닫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어찌 매년뿐이겠는가? 매일의 천지운행도 또한 마찬가지라네. 오시(午時) 전에는 양기가 벋어나가고, 오후에는 음기가 발생하게 되는 것도 이치로 본다면 모두 같은 말이라네.”

“이것은 기문의 삼원(三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맞는 말이네. 그래서 경도 스승님은 기문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미뤄서 짐작할 수도 있겠군.”

“어쩐지.”

“왜, 느끼는 바가 있는가?”

“이렇게 풀어야 하는 것을 아무리 대입을 해도 아귀가 맞아야지요. 이제야 속이 시원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형님.”

“그래서 무(戊)는 병(丙)과 그 궤(軌)를 같이한다네. 이로 인해서 고인들은 병무(丙戊)를 동궁(同宮)에 넣고 관찰하기도 했었지.”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병(丙)을 태양으로 보고, 무(戊)를 대기권으로 봐서 함께 살펴보려고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라네.”

“그럼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고인의 가르침에도 취할 바가 있고 버릴 바가 있는 것이라네.”

“그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무(戊)가 병(丙)을 따라서 하늘의 기운을 열고 닫는 것과, 기(己)가 정(丁)을 따라서 땅의 기운을 열고 닫는 것은 근원이 같아서가 아니라는 것만 이해하면 된다네.”

“그렇잖아도 오전에 우리끼리 정(丁)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열(地熱)이 정(丁)이라고 정리를 했으니 정(丁)은 기(己)에 속해있다고 보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해도 되겠군요.”

“그렇다네. 잘 생각했네. 다만 그것을 확대해석해서 언제까지라도 같이 끌고 다니는 것은 또 다른 오류가 생긴다는 것만 주의하면 되겠지.”

“고맙습니다. 오늘 묵은 숙제들이 좌르르~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네.”

우창과 고월은 ‘정흡동벽’의 네 글자 속에 깃든 의미를 생각하느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은령은 알듯 말듯 싶은 이야기들로 인해서 머리가 조금은 복잡해진 모양인지 또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