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남해] 금산(錦山) 보리암(菩提庵)

작성일
2013-12-10 05:25
조회
2181
[경남-남해]금산(錦山) 보리암(菩提庵) - 2013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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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랜만에................... 맘을 일으킨다. 전날 저녁에 화인네 부부랑 차 한 잔 마시다가 말이 나와서 남쪽 바람이 불었다. 보리암으로 기도가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마침 부창부수로 죽이 맞아서 새벽 여섯 시에 일행 넷이서 집을 나섰다. 금휘도 가겠다고 했었는데 새벽의 파도잠이 밀려오는 바람에 포기를 했다. 그래 앞으로 갈 날도 많을 테니.....

화인 "보리암이 남해의 어디에 있지요?"
낭월 "남해에 있지 어디긴 어디야~!"
화인 "그러니까요. 남해의 어디 쯤인지 알려주시란 말씀이죠!"
낭월 "쳇!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참 네가 몰라도 너무 모른단 말이야~~"
화인 "예?"
낭월 "남해는 경상남도 남해군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거 아녀~!"
화인 "그런거였어요? 전 그냥 남해안의 어느 곳인 줄만 알고 있었지요. 호호~"
낭월 "호호는 무신..... 그러니까 하나를 알아도 제대로 알란 말이여~"
화인 "옙!!! 이제 확실하게 제대로 알겠습니다~!"

낭월이 사는 것이 항상 그렇다. 언제든 한 마음이 일어나면 즉시로 움직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몸이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이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더 말을 할 나위도 없다.



보자..... 보리암까지는 245km. 도착예정시간은 10시 36분이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구.... 왜냐하면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서 다소 단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략 3시간 정도면 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다.



7시가 되니 동녁에 물이 든다. 네비가 안내히는 대로 맡겼더니 완주에서 순천으로 가는 새로운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초행이다. 그러고 보니 참 한 동안 남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속도로가 생기고서 이렇게 오랜만에 처음으로 지나간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가고 보니까 그것도 예삿일이 되고 말았다. 삶이 바빠지기도 했음이겠지만.....



당연히 처음보는 휴게소이다.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것이 다 거기에서 거기이긴 하다. 8시에 도착했으니 어느 사이에 두어 시간을 달린 셈이다. 아침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운전기사도 교대 할 겸 가던 길을 멈췄다. 이른 아침이라 휴게소도 조용했다.



켜놓은 TV에서는 어젯밤에 김연아가 경기한 것을 보여준다. 초반에 넘어졌음에도 꿋꿋하게 잘 치르는 것은 노련함일 게다. 그리고 소치올림픽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 그것에 대한 관심을 더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 시장기를 때우고 가던 길을 계속했다.



오랜만에 금산에 올랐다. 차를 주차시키고 매표소를 지나서 바로 찍은 사진에 09시 34분이 기록되었다. 약 세시간 20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그만하면 부지런히 온 셈이다. 금산이 금산인 사연이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래도 혹 화인처럼 모르는 사람도 있으려니 싶어서 간단히나마 그 사연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만 그것조차도 사진기행의 목적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을상 싶기도 하다.

금산을 이야기 하려면 천지창조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에서는 여와씨가 나오고 한국에서는 하늘에서 환웅천황이 강림하기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백두대간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낭월의 얕은 지식으로는 그렇다는 말씀이다.



두산백과에서 가저온 백두대간이다. '힘차게~ 내리 뻗은~'이라고 하지 않으면 왠지 단군할배께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겨? 그런데 카이카지 백두 대간이 내리 뻗은 것이 맞기는 한겨? 낭월은 항상 이것이 의심스럽다. 어느 순간에 지각변동으로 인해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했을텐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삼천리'라고 하는 말에 세뇌가 되어서는 그렇겠거니.....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느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야든둥~!



'지리산에서 멈춘 백두대간'이라고 하겠지만 실은 내달리던 힘에 의해서 갑자기 멈출 수가 없었단다. 무슨 KTX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이냐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이야기니깐. 그런데 내달리던 산맥의 앞에 갑지가 망망대해가 등장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강력 긴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그러나 관성의 법칙은 여지없이 작용을 했다. 중심부는 겨우 지리산에서 멈췄지만, 아니 사실은 '멈춘 곳이 지리산이 되었지만'이 맞겠지.....? 앞서 달리던 한 무리는 중심부에서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그만 멈추질 못하고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섬이 되어버렸고 이름하여 남해도(南海島)인 것이다. 자, 이제 말해주마! 왜 남해안은 길이가 300km인데 하필이면 하나의 섬에다가 남해도라고 했는지를......

원래는 남해의 망망대해에는 섬이 하나 뿐이었다. 그러므로 남해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거제도, 진도는 다 뭐냐고? 이들은 그 후에 다시 생겨난 위성 섬이라는 이야기이다. 뭐 말이 안 된다면 할 수 없고. 그러니까 앞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백두대간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그래서 오리지날 남해가 된 것인데 그 다음에 생긴 섬들은 차차로 붙여지게 된 이름이라고 낭월은 생각한다. 흐~



남해는 이렇게 해서 남해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자, 지형을 보자. 뒤로는 지리산이 조산(祖山)이요, 좌통영 우여수로 청룡과 백호를 삼았고, 앞은 망망대해이니 이보다 더 명당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지. 참 말 된다. 엥? 섬으로 끊겼으니 무효라구? 그것도 모르시는 말씀이다. 맥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지리산과 남해도는 이렇게 기(氣)로 이어진 지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음.... 이러다가 말려들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시고.....)

지리산은 범위가 상당히 넓다. 485평방km나 되는 넓은 면적을 관리하기 위해서 혼자는 어렵다고 판단을 했는지 부부 산신령께서 관리를 하고 계셨다. 대부분의 산신령은 홀로 산을 지키시는데 지리산은 예외로 부부산신령이 관리를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남해도가 문제였다. 산이 또 하나 생겼으니 누군가는 그 곳을 지켜야 하는데 할배 산신령께서 생각하기에 자신은 넓은 산을 지켜야 하므로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작은 남해는 할멈이 관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으셨던 것이다.

할배산신 "아무래도 남해에는 임자가 가서 관리하는 것이 좋겠네~"
할매산신 "아이구~ 내가 미쳤수? 그 외딴 섬에 가서 생과부 노릇을 하게~"
할배산신 "그라마 우야노? 임자 혼차서 이곳을 다 지킬라카마 힘들낀데....."
할매산신 "마, 개인타! 장 지키던 곳은 별일 없으니 영감이 가시구랴~"
할배산신 "그래? 그럼 내가 가꾸마...."

그렇게 되어서 할배산신이 지리산을 할매산신께 맡겨놓고는 남해로 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부부산신령이 관리하는 곳이니 만큼 남해는 기(氣)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증거를 보여 드린다. 이래도 안 믿을 거냐는 투로 하하~





지리산 쌍계사의 산신각과 산신령이시다. 아무리 봐도 근엄하신 할배의 수염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히 할매 산신령이시기 때문이다. 이래도 못 믿겠냔 말이지. 그리고 남해의 보리암에 계시는 산신령도 보자.



자, 인자 종초지말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확실히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남해는 섬이지만 섬이 아니라 기운으로 이어진 기맥(氣脈)이라는 이야기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래도 못 믿으시는 것이야 낭월도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남해대교로 잘 이어져 있으니깐.... 뭐 물질적으로도 연결이 되기는 했네..... '근데 이 택도 없는 이야기는 언제 끝나는겨?' 라는 생각이 슬며시 드신다면 인자 다 되었다고 말씀드린다. 근데 금산이 금산(錦山)인 이유를 말씀드리려다가 천지창조로 가 버렸으니 다시 세월을 한정없이 많이 흘러간 다음의 이야기도 해야 하겠다. 이른바 고려 말이다.

고려말, 이성계라는 장군이 있었다. 뭐 다 아시는 이야기이다. 그가 지리산에서 기도를 했더란다. 그랬더니 할매가 나타나셔서는 한 말씀 하셨다.

할매산신 "내사마 그대가 원하는 왕이 되도록 해 주고 싶지마는...."
성계장군 " 예, 무슨 말씀이든지 다 따르겠습니다. 왕만 시켜주십시오"
할매산신 "그러이까네.... 영감한데 시키돌라캐라 내맘대로 안 된다카이~"
성계장군 "예? 영감이시라면....?"
할매산신 "니는 그것도 모리고 기도하러 왔더나~!"
성계장군 "아이구~ 송구하옵니다. 하교하소서~"
할매산신 "우리 영감님이 남해에 안 있나. 그 가가 물어보거래이~"
성계장군 "남해라면.... 어떤 남해를 말씀하시는지....?"
할매산신 "아따 문디자슥 남해라카마 남해지 무신 남해는 또 뭐꼬?"
성계장군 "예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매산신 "그래 영감한테 가가꼬 잘 빌어보거래이~ 웬만하마 들어 줄끼다~"

오호~ 참으로 인자하신 할무이 산신령님이시다. 원래 신정분리(神政分離)라야 하지만 예전에는 그러한 구분이 없어서 신정일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왕이 신에게 기도도 하고 그카지.... 그래서 이성계도 남해에 가서 보리암 아래에 움막을 치고서 100일 기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함 볼라카마 보여드릴 수도 있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nilva?Redirect=Log&logNo=130147677356 ]

이래 딱 나와 있네. 이씨기단(李氏祈壇)이라고 바위에 새겨놨으니 틀림없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를 하여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아도 전 국민이 다 아는 일이니 생략한다. 다만, 금산의 할배산신이 물욕이 생기셨던지 흥정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할배산신 "니가 백일기도를 열심히 하였으니 그 간절함이야 알겠다마는....."
성계장군 "예, 소원만 이뤄주시면 무슨 분부든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할배산신 "그래? 사실 우리 할마이가 비단을 억수로 좋아하거등~"
성계장군 "예, 말씀만 하시면 다 해 드리겠습니다."
할배산신 "사실 카니카지, 나도 할매가 보고잡플 때가 많다. 그래도 몬가잖아~"
성계장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할배산신 " 그라마 이 산에다가 비단으로 한 겹을 감아 도고~"
성계장군 "옛? 비단으로요?"
할배산신 "와? 안 되겠제..? 그라마 나도 할 수 엄따~!!!"
성계장군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할배산신 "그라마 약속 한 기데이?"
성계장군 "그럼요. 약속하였습니다."
할배산신 "만약에 몬지키마 우짜고....?"
성계장군 "그렇게 되면 피바람이 몰아치고 혈육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할배산신 "에구~ 말로 해도 우째 그리 끔찍한 말을 하노..."
성계장군 "그러니까,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할배산신 "그래 알았다.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만 가봐라~"

이렇게 약조가 되었던 것이다. 산신이나 중생이나 부부의 연은 이런 모양이다. 그래서 아내가 좋아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던 산신은 그런 황당무계한 다짐을 받아내고야 말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왜냐하면 왕이 된 다음에 산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대신회의를 했을 적에 천하의 천재인 정도전이 딴지를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다.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국고가 어떻고 환경오염이 어떻고.... 여하튼 불가한 이유를 999가지 들고 나왔으니 왕도 난감했겠지 싶기는 하다.

이성계 "그러면 어찌 하는 것이 좋겠소? 경들의 의견을 들어 보겠소~"
정도전 "정히 그러시다면 묘안이 있아옵니다."
이성계 "뭐요?"
정도전 "산 이름을 비단산으로 해 드리면 아마 할배산신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이성계 "야~ 그건 너무 얍삽하잖아~~~ 할배가 뭐라고 하겠냐구~"
정도전 "그러실 일이 아니니 고정하시옵소서."
이성계 "어떻게 고정해~ 내가 차마 말은 못하지만 맹서를 했단 말이야~"
정도전 "예? 무슨 맹서를 하셨습니까?"
이성계 "차마 내 입으로는 하지 못할 말을 했다는 거여~~"
정도전 "그러니까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살짝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성계 "그게 통할까?"

이렇게 해서 그때까지는 보광산(普光山)이었던 이름을 갈아치우고 금산(錦山)이라고 부르라고 왕명을 내렸던 것이고 모든 문서에도 그렇게 표기를 함으로 해서 비로소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렇게 긴 사연을 알아야만 왜 금산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으로 봐서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이야기 한 줄거리 정도는 알아 뒀다가 나중에 금산에 갔을 적에 재방송을 해도 좋지 싶다.

그런데, 할배산신은 흐뭇해 하셨느냐고 묻고 싶으신가? 그것이 궁금하다면 그 후로 조선왕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보면 알 것이니 낭월이 여기에서 차마 언급하기는 좀 거시기 하다. 미뤄서 짐작하기만 바란다. 물론 할배산신의 저주였다고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나무 사이로 보리암이 보인다. 바위 앞에 있는 전각은 산신각이다. 문제의 그... 할배산신령님 댁이란 말씀이다. 그 뒤에 있는 바위봉이 관음봉(觀音峰)이고 그 앞에 조그만 바위가 남순동자(南巡童子)이다. 원래 남순동자는 관음보살과 동행하는 보처이다. 좌보처는 남순동자이고 우보처는 해상용왕이다. 관음보살은 용왕을 부리고 사는 상당히 급수가 높은 양반이다. 흐~


흡사 위의 관음봉과 남순동자를 보고서 이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아니면 이 그림을 보고서 저 바위의 모습에서 연상을 했을 수도 있기는 하겠다. 여하튼 바위를 보고 있으면 그런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이미 관음보살도를 떠올리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이쯤에서 또 한 마음이 안개처럼 피어올라서 이야기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왜냐하면, 남해 보리암을 이야기하면서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이 뒷통수를 한 대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애둘러 설명을 생략하려고 한다. 기왕에 불자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고, 혹 불자가 아니라면 괜한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낭월학당이 무슨 불교를 홍보하는 곳도 아닌 바에야 이런 이야기들은 그냥 통과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상 싶기도 하다. 다만, 보리암의 위상에 대해서는 한 말씀 해도 되지 싶다. 물론 최대한 간단하게 하겠다.

한국에는 3대 관세음보살 기도처가 있는데 동해의 양양 낙산사, 서해의 강화 보문사, 그리고 이 남해의 보리암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 사찰의 공통점은 모두 바닷가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명 해수관세음(海水觀世音)이라고도 한다. 따지고 보면 관음보살이 계시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명소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문득 옛적에 보리암에서 기도를 할 적에 만났던 선승이 생각난다. 또 옛날 이야기로 빠진다.

때는 낭월이 조계종 통도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났을 때이니 나이로는 18세 무렵이고 서기로는 대략 1975~6년 쯤이었을 것이다. 참 어딘가 묵은 사진첩에서 그 무렵에 찍어 놓은 사진이............. (두시럭 두시럭...) 찾았다~~!!



참으로..... 오랜만이군. 40여년 전의 앳된 모습. 그야말로 꽃사미로군 흐~ 참고로 사미(沙彌)는 '갓 계를 받은 풋중'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묵은둥이가 되면 비구(比丘)라고 한다. '아직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스님'이라는 뜻이 사미라면 '능히 자신의 밥을 얻어 먹을 만 하다'는 정도가 비구이다. 사진을 보니, 하고 있는 폼세 하고는 당장 서산 사명을 만나도 능히 달려들 기세로다. 폼만 하늘을 찌를 기세로군 하하~

그렇다면 그로 부터 40여년이 지난 모습은 어떨까? 이렇다.



도도하게 바위 위에 앉아있다가 바닥으로 내려 온 것만도 워디여~! 세월이 흐르고 보니 참...... 거친 세파에.... 어릴 적에 모습은 간 곳이 없고...... 그래도 삶의 지혜를 많이 터득한 것은 있을지니 그로써 충분히 위로가 되기는 한다.

음 이야기가 추억로를 타고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구나. 고사를 이야기 하기로 해 놓고선.... 쩝쩝~ 그러니까 저 당시에 기도하다가 만난 화상이 있었는데 그는 대략 25세 쯤이었을 게다. 그도 예전 이야기를 한다.

화상 " 내가 3년 전에 보리암에 기도를 하러 왔었지요."
진상 " 신심이 대단하시네요.
화상 "뭘, 그 당시에는 화엄경을 보고 있었던지라 보현보살(普賢菩薩)님께 푹 빠져있었지요."
진상 "그러셨군요. 보현보살 기도처는 못 들어 봤습니다만..."
화상 "그래서 보리암으로 기도를 왔었고, 법당이 빌 적에만 혼자 보현보살 정근을 했지요."
진상 " 기도를 할 적에는 어떻하시고요?"
화상 "그때는 속으로만 보현보살을 할 수 밖에요."
진상 "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화상 "근데 쫓겨나고 말았지 뭐요."
진상 "아니 왜요?"
화상 "그게.... 처음에는 속으로 하는데 몰입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온단 말이오."
진상 "그러면....."
화상 "다들 '관세음보살~!'을 하고 있는데 혼자 '보현보살~!'을 하고 있으니..."
진상 "신도들이 헷갈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화상 "당연하지요. 주지스님께서도 처음에는 주의하라고 하시더니만..."
진상 "주의를 하지 않으셨던가 보군요?"
화상 "그게 맘대로 안 되더구만~ 신도님들이 미친 스님이라고 해대니 주지스님도..."
진상 "그러셨을만도 하네요. 천하의 보리암에서 보현보살을 찾았으니요. 하하~"
화상 "그래서 혼자 법당 뒤의 산신각에서 맘놓고 보현보살을 불렀지요."
진상 "잘 하셨네요. 아무 곳이면 어때요. 기도만 하면 되었지."
화상 "그런데 마가 끼려니까 이번에는 관광객들이 주지실에다가 보고를 하는 거요."
진상 " 뭐라고요?"
화상 "산신각에 이상한 미친 스님이 있다는 거지 뭐긴 뭐겠어~ 열이 확 받치더만~"
진상 "그러셨겠네요. 그래서 걸망 싸셨어요?"
화상 "그냥 가려니 억울해서 주지를 찾아갔지요. 그리고는 주지스님께 물었습니다."
진상 "뭐라고 물어셨길래요?"
화상 "주지스님 무리를 일으켜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관음보살이 계시지 않은 곳을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그 곳에서 보현보살을 부르겠습니다."라고 했지요.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때만 해도 어려서... 하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대단한 고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나 멋진가! '관음보살이 계시지 않는 곳을 알려 주십시오~~!' 햐~ 난 그런 말을 언제나 해 보나.... 했다. 참 대화자에서 진상은 당시 경봉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이다. 지금은 조계종을 떠나면서 이름도 버렸지만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서 낭월이라고 해 보니까 맛이 나지 않아서 이렇게 적어 봤으니 참고 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보리암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실려나?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보리(菩提 )란 말은 도(道)라는 인도말이다. 그러니까 원래 인도 말로 보리는 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리암은 도암(道庵)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보제암인데 왜 보제라고 써놓고 보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면 상당한 관찰력이다. 음역을 하다가 보니까 끌제(提)를 음차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니 어렵게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지 싶다.

반야심경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보리가 바로 이 보리이고 그 보리이다. 제(提)의 중국 음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ti이고 또 하나는 di이다. 보(菩)는 pu이다. 푸티, 푸디, 비슷하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특히 당나라 시대의 발음으로 음역을 하였으므로 현대의 중국어와도 차이가 있음을 감안하면 될 것이다.



  이게 관음봉 뒤쪽이다. 들어가지 말라는 경계를 넘어서 공원관리법을 위반했다. 벌금 10만원~! 세월이 흐르니까 정관도 약간 오염이 되는 모양이다. 흐~



보리암 참배를 하고, 부소대로 향했다. 지금은 부소암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부소대라고 했다. 선승 두어 분이서 공부하다가 쌀이 떨어지면 보리암으로 얻으러 오곤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남들이 안 가는 곳에 가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지라 일행을 안내했다.





멋진 철교가 놓여져 있군. 밧줄을 타고 올라갔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제 그것도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하겠다. 진시황이 어떻고 하는 전설은 생략한다. 그냥 바위 중턱에 까지집처럼 매달려 있었던 부소대가 생각날 뿐이기 때문에 그 추억을 찾아서 계단이 잘 놓여진 길을 더듬어 찾아 갔다.



집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축대도 잘 쌓였고, 손질을 많이 한 자취가 있다.



굳게 잠긴 잠을통을 보니 주승은 외출하셨는갑다. 너무 신식티가 나는 현판이 주변과 참 어색하게 언바란스져 보이기는 한다. 센스가 없는 주지화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기 뭐꼬.... 그야 아무렴 어떠랴 그냥 여기가 예전에 부소대 였다는 것을 알러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바위에는 마애보살이 계시는데 후광이 삼태극이다. 이건 또 무슨 퓨전인지 모를 일이다. 부처의 후광도 역학과 짬뽕이 되어가는 것은 불도합일(佛道合一)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철모르는 이가 본다면 다소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어 될 뿐.



젊은 부부네는 이렇게 경지 좋은 곳은 발견하면 재미나게 논다. 그리고 나이 든 부부네는 어떻게 놀겠느냐고 한다면 뭐 간단하다.



벌써 노는 모습에서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나 보다. 그림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오던 중년의 부부들 같기도 하다.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이다. 주인이 있었더라면 차라도 한 잔 얻어 먹을 수 있었는데 주인 없는 자리에서 주인 행세를 해 본 셈이다. 그렇게 20여분을 휴식하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 했다. 12월의 하루 해는 너무나 짧아서 어물거리다가는 귀가를 할 시간이 부족할 터이기 때문이다.



부소대로 가는 출입문이다. 닫기도 하고 닫지 않기도 한 문이었다. 그 의미는 다녀 온 사람만 아는 것으로 하자. 부지런히 내려오던 화인이 내 카메라를 보더니 딴전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퍼뜩 내려 오라고 소릴 질렀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장면을 찍을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화인도 바로 이심전심으로 통했던지 자동으로 그 포즈를 취한다. 그 참 신통하네~ 그 장면이란 바로 다음 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다는 이야기이다. 아, 사람이 뒤돌아 보고 있는 장면이었구나. 그렇다면....



그래 맞다. 이렇게 되어야 하겠구나. 문은 걸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갇혔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모습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때론 이러고 논다.

그렇게 부소대를 둘러본 다음에는 다시 상사바위로 향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헬기장에 도달한 다음에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거리는 바짝바짝 붙어있어서 지루할 겨를이 없다. 또 일요일이라서인지 등산객도 많아져서 제법 붐빈다. 기도도 하고 등산도 하는 일거양득의 명산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보리암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거리는 상당히 멀어보인다. 아줌마 포즈가 저절로 나온다.



젊은네의 노는 모습은 장~ 이렇다. 얼마나 활기발랄 한가 말이다. 이들도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뛰어 보라고 하면 다시 뛰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이렇게 틈틈히 자료를 담아둔다. 금산의 상사바위 꼭대기에서 이 짓을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기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하늘이 너무나 淸明하다. 한글로 '청명하다'라고 써서는 그 느낌이 살지 않아서 한자로 써봤다. 여하튼 뛰고 찍고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12시가 넘었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먹은 아침이 부실했음인지 기운이 빠진다. 바로 이때에 급유소(急油所)가 있었으니 무턱대고 이끌었다. 다들 배가 고프다는 푸념이 나오려는 찰라였다.



부산산장,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구나. 할머니가 등산객들을 상대로 간단히 요깃거리를 팔고 있었다. 막걸리 좋아하는 이서방이 가장 반가워했다. 그래서 긴급주유를 한 다음에 하산을 하기로 하고 잠시 앉아서 쉬었다.



저마다 두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낭월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데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이 친구는 쪼매 더 한 것 같다. 화인이 우야던둥 꼬드겨서 내려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절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 했다.

화엄봉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또 10만원을 물리겠다고 하여 준법의 차원에서 양보하고 다시 보리암으로 돌아와서 아침에는 기도 시간이라서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었던 관계로 그냥 지나쳤던 법당의 관음보살을 친견했다.



법당에서 부처님 사진을 찍으려면 괜히 쪼매 캥긴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촬영금지를 써붙여 놔서이다. 보리암에는 그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한 장 찍었다. 여행기에 쓸 사진이 필요해서였다. 관음상 뒤에 둘러져 있는 것은 대나무 통을 쪼개어서 도금을 한 것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머라카시노..? 딱 보니 경봉할배 글씨네..... 보자....

南海錦山無限景 남해의 금산에서 바라보니 끝없이 펼쳐진 멋진 풍경 아이가~!
天邊雲外此鐘聲 하늘가의 구름 너머까지 종소리여 울려 퍼져라~!
三羅萬像非他物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어찌 다른 것이겠노~!
一念不生猶未明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들 또한 깜깜한 소식일 뿐~!

               阿刺刺                                                에라 치아라~!

이기 뭔 소리고....? 에라 모르겠따~!


  할배는 항상 아자자 뒤에는 가가소(阿刺刺呵呵笑)를 붙여서 말씀하시고 시를 읊으셨는데 여기서는 가가소를 생략을 하셨는갑네...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에라 치아라, 껄껄껄~!'이라고 해석 하셨던 것 같은데..... 문득 그 시절의 할배 웃음소리가 귓가를 쟁쟁하게 때린다.



참말로 절경이다. 이런 산에는 이런 건물이 제격이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하산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뇌 속에 최신버전의 보리암으로 업데이트를 했다. 이제 또 다음 기회는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니.



사진가가 자신도 사진에 들어가는 방법은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쎌카를 찍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구차해 보인다. 오죽 사람이 없으면 지가 지 얼굴을 찍노.... 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이 이렇게 그림자를 동참시키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그 그림자가 자신인 줄을 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림자는 허상(虛像)이니 어찌 사람과 같겠느냐'고 그러나 그건 모르는 말이다. 결국 이 인간도 허상이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같은 허깨비일 뿐이라는 것을.


2013년 12월 10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