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오행(五行)의 생극(生剋)

작성일
2009-11-0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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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2 화] 오행(五行)의 생극(生剋)


 


  안녕하세요. 늦은 가을의 낭월입니다. 계룡산의 풍경이 알록달록한 것을 보면서 또 오행의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늘 그렇습니다만 그 언저리를 배회하면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천성이 아둔해서 그런 것이겠거니 하면서도 또 특별히 더 나은 것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이대로 오행의 주변에서 이삭을 줍는 즐거움을 구태여 버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자기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조각들을 정리하면서 벗님의 가을 사색에 끼여드는 낭월입니다. 하하~


(하던 일을 끝내고 난 다음의 이 홀가분함~~~)


 


1. 오행의 생극(生剋)


  오행의 상생이 뭐냐고 물으면 벗님은 뭐라고 답을 하시는지요? 답이 하나 뿐인 경우는 대부분 수학(數學)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哲學)의 영역에서는 하나의 결과를 놓고서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경로를 거치면서 답은 각기 다르게 준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철학자들을 답이 없는 답을 찾아서 방황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오행의 상생(相生)에서는 어떤 답이 준비 될 수 있을까요? 수학자적인 답도 가능할 것이고 자연과학자적인 답도 가능할 것입니다. 의학자적인 답도 물론 가능하겠네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분야에서의 오행 상생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벗님은 어느 방면에서의 상생(相生)을 생각해 보시려는지요?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시고 나서 다음의 글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행의 연구에는 급할 것이 없고 다양할 것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이라고 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면 오늘 이 글을 클릭하신 공덕이 쪼매~! 있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 답이 아닌 줄을 알고 계신 오행의 고수님이시라면 그냥 미소만 머금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 수준을 벗어나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木生木, 木生火, 木生土, 木生金, 木生水라고 답변을 하실 수가 있으시다면 낭월은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요량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 木生火를 제외하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치신다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다시 생각을 해 보시라고 할 요량이지요. 만약에 앞의 이야기를 보시면서, 그것만이 아니라 나는 火生火, 火生木, 火生金, 火生水도 안다고 하시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네요.


  이렇게 相生의 관계를 늘어 벌리게 되면 대략 25개의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관계마다 말이 되는 설명을 붙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어느 논리를 끌어 오더라도 무관하다고 하겠습니다. 의학이든, 과학이든, 종교든 말이 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이에 상식은 더욱 풍부해지고, 알고 있는 지식은 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연습은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2. 火生木의 이치(理致)


  ‘화(火)가 목(木)을 생(生)한다.’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자꾸 木生火가 떠오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그 위에 레어어를 하나 더 얹어 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네요. 생각은 자꾸만 새끼를 치면서 번져 나가는 모양입니다.



  자동차를 놓고 생각해 봐도 되겠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이 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합의(合意)만 하실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동차가 金이어야 한다고 자꾸만 생각하신다면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여하튼 낭월의 소견으로는 달리는 자동차는 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木의 구성 중에는 움직이는 성분도 포함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로 돌아갑니다. 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동을 거는 것이겠네요. 시동을 걸지 않으면 차는 金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르릉~’하고 시동이 걸리게 되면 비로소 금에서 목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 놓고 생각을 해봅니다. 시동을 건다는 것은 결국 火를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으니까 이것이 이뤄지고 나서 火의 폭발력을 의지하여 엔진이 회전하게 되고, 그 힘으로 바퀴를 굴려서 비로소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이뤄지는 절차를 생각해 보면 火生木의 이치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자동차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면 나로호를 생각해 보셔도 좋습니다. 불기둥을 내 뿜고 나서 하늘을 향해서 솟구치는 로켓을 떠올리신다면 비로소 火生木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여전히 로켓이 木이라고 하는 의미를 잘 모르시겠다면 낭월도 더 이상 설명을 할 방법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적천수(滴天髓)를 떠올려 봅니다. ‘탈태요화(脫胎要火)’가 생각나서 말이지요. ‘태를 벗어나고자 할 때에는 火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지요? 예전에는 ‘어린 나무는 따스한 불이 필요하다’고만 생각을 했었지 뭡니까? 지혜롭지 못하면 그러한 생각에 갖혀서 이해하고 마는 것이 틀림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됩니다.


  하늘을 향해서 솟구치는 로켓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에 연결하고 있던 탯줄을 거두면서 발사되는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탈태요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벗님도 그러셨기를 바라는 것은 그래야 우리의 이야기 수준이 비슷해 질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설명을 드리는 것이 火生木의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납득이 되셨다면 이제 벗님께서 궁리를 하실 차례라고 떠넘길 작정입니다. 여하튼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철학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 무아지경에서 한 생각이 불꽃을 튀기면서 눈 앞이 환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거든요.


 


3. 火生金도 생각해 봅시다.


  알기쉬운 음양오행에서 말씀드렸나요? 어떤 책을 보니까 火生金이 옳고, 土生金은 옳지 않다는 설이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또 10년여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결론은 火生金도 가능하다는 것이 되었네요. 물론 土生金도 가능하고, 火生金도 가능하다는 의미에서의 火生金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하겠군요.


  화산(火山)의 용암이 굳어서 바위가 되는 것은 火生金이 타당하거든요. 그리고 화생금의 의미를 찾을 곳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대장간이나 제철소에서 나오는 것도 구태여 부정을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면서 오행의 생극(生剋)에 대한 생각이 다시 새롭게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火生金도 맞다’입니다.


  또 화생금을 떠올리면서 巳中庚金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은 한담 어디에선가 말씀을 드렸지 싶기는 합니다만, 다시 정리를 한다면, 巳火 속에서 庚金은 단련을 받아서 새롭게 태어난다고 보는 관점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지요. 그것은 庚金을 무엇으로 보느냐는 것으로 결과가 달라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경금은 바위라고 한다면 물론 답이 없습니다. 용광로에서 쇠가 나오는 것 이외에 달리 관찰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것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아도 되겠습니다. 다만 庚金을 비견(比肩)으로 보면서 주체(主體)라는 말이 떠오르게 된다면 비로소 낭월의 생각과 하나가 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주체는 자아(自我)로 이어지면서 자아는 불성(佛性)으로 확장이 되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입니다. 그렇다면 불성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한다면 천만번 담금질을 통해서 제련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을 할 수가 있을 것 같네요.


  사생지(四生支) 중에서 유독 巳火만 극의 구조로 되어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의 고리를 찾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이렇게 내린 것이 현재의 결론입니다. 몸은 불에 닿으면 타버리고 말지만 정신은 불에 닿을수록 더욱 더 강해진다는 것을 세상 몇 십 년 살아 본 지혜로운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라고 하겠으니 말이지요.


  장정이 제멋대로 생활을 하다가도 군대를 들어가게 되면 대부분은 그 환경에 적응을 하면서 정신력이 강화되는 것을 보면서 또한 火生金이 떠오릅니다. 빈둥거리면서 노닥거리는 아들을 보면서 군대라도 다녀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신 부모님이시라면 더욱 공감이 되는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火生金은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火生金이다’ ‘火剋金이다’ 하면서 논쟁을 했던 일들이 새삼 우습게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열심히 싸우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른 풍경을 접하게 되면 그 일들은 사소해지고 또 새로운 일로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이 헛된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생각의 핵심으로 접근을 할 수가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4. 유연한 관찰력


  이렇게 살피면서 철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한 관찰력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 몸이 이전 같지 않더라도 큰 장애를 받지 않고 할 수가 있는 것이기에 그야말로 천만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살피면서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것이 보이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시간들의 흐름이 헛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자연을 살피면서 五行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는 낭월인가 싶습니다.


  알찬 가을입니다. 그리고 며칠 있으면 또 입동(立冬)이 되네요. 생각을 하면서 자연을 관찰 할 수가 있다는 것이 행복해질 즈음이면 어느 사이에 세상을 반평생 살아온 다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듭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하니 말입니다. 또 한 살 더 먹는 것에 그만큼 가치가 부여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끔 생기네요.


  모처럼 한담다운 한담을 써 본 것 같습니다. 책을 두어 권 만드느라고 몇 달을 골몰하다가 보니까 어느 사이에 산천의 고운 색깔은 다 죽어버리고 겨울 준비에 들어간 풍경만 남았네요. 하하~


  낭월의 하루는 이러하거니와 벗님의 오늘은 또 어떠신지요? 모쪼록 어제보다 풍요로운 생각으로 가득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참, 제목에 생극(生剋)이라고 해 놓고서 극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고 하실 벗님도 계시지 싶네요. 그렇지만 원래 그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마음이 없었다고 할 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써 놨느냐고 하시겠지요? 그래서 한 말씀 힌트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생의 이치가 이와 같다면 극의 이치도 그와 같겠다는 생각을 해 보시라는 것이지요. 그만하면 또 생각을 해 볼 여지가 되겠습니다. 연구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할 참입니다.


 


            2009년 11월 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